〈창가의 인물〉
살바도르 달리
Figura en una finestra(Figura en una ventana)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는 인기가 많은 화가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관에 가 보면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옛날 사람들만 그려져 있질 않나, 추상화라고 하는 것은 내가 그려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처럼 단순해 보이기 일쑤인데, 달리의 작품을 보면 정교한 그림 솜씨는 기본이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흥미진진하고 들여다볼수록 신기하다. 그의 기발한 상상력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미술 애호가, 혹은 예비 미술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나의 눈길을 처음 사로잡았던 달리의 작품은 그가 스물한 살 때 그린 여동생의 뒷모습이다.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은 참 묘했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면 나도 그녀가 보고 있는 강변(혹은 바다의 만(灣)일 수도 있겠다)을 더 넓게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살짝 보이는 볼살이 꽤 통통하기 때문이다) 소녀와 여인의 중간인 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보고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 그러다 보면 이 소녀를 보고 있는 나를 누가 뒤에서 또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등으로 한참 동안을 이 앞에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훗날 달리는 같은 자세로 서 있는 부인 갈라(Gala)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는데, 여동생을 그릴 때와는 달리 꽤 선정적인 모습으로 그렸다.
달리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피게라스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다가 마드리드의 왕립 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그 후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로 유명한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 극작가이자 시인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와 가까운 사이가 됐다. 달리와 가르시아 로르카는 매우 친밀한 사이였고 루이스 부뉴엘과는 함께 영화 제작도 할 정도였는데, 결국에는 셋 다 서로 사이가 멀어졌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스페인 내전 중에 공화국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처형되었는데, 그가 동성연애자였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
몇 년 뒤 달리는 파리를 방문해서 호안 미로의 소개로 피카소와 알게 되었고, 당시 파리의 초현실주의자들과도 친분을 쌓게 되면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림을 그렸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이성을 기반으로 한 예술, 즉 계산하고 측정하며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기존의 방식에 반대하여 예술가의 무의식 세계를 드러내고자 했다. 우리 안에 있는 무의식을 의식 밖으로 꺼내기 위해 초현실주의자들은 최면 상태 또는 수면부족으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시를 쓰기도 하고, 카다브르 엑스키(cadavre exquis, ‘우아한 시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라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종이를 사람 수만큼 접고, 각자 주어진 한 칸에만 그림을 그려 나가되, 다음 칸으로는 연결선만을 남겨둔다. 다음 사람은 앞에 그려진 그림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연결된 선에서부터 다른 그림을 그리고, 마찬가지로 다음 칸으로는 연결선만을 남겨둔다. 이렇게 해서 참여자가 각자 그림을 그린 후 펼쳐 하나의 완성 작품을 만드는 것이 ‘카다브르 엑스키’라는 놀이인데, 초현실주의자들은 이 방식이 집단 무의식,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림이므로 그들의 정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달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무의식에 가까운 것을 꺼낸 그림이 〈위대한 수음자의 얼굴〉이다. 눈을 감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달리의 얼굴과 흡사하다. 머리에서는 금발 여인이 솟아나고 여인의 얼굴은 남자의 사타구니 근처에 머물러 있다. 달리는 자신의 성적인 집착을 그림으로 그려서 내놓았다. 어떤 초현실주의자도 달리만큼 대담하게 스스로의 집착과 무의식을 드러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혼자서 시도 쓰고 그림을 그렸던 작가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공개한 것으로 보아서는 달리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남자의 얼굴은 건축 장식의 일부처럼 생긴 것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여인의 몸과 꽃은 은근슬쩍 합쳐졌다. 앞서 말한 카다브르 엑스키의 달리 버전이다. 달리는 꿈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를 그렸지만 정교한 화법으로, 진짜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그려서 꿈과 실제 세계의 사이를 모호하게 흐려 놓았다.
정치적으로 단호하게 좌파였던 다른 초현실주의자들에 비해 달리의 정치적 입장은 모호했고, 이로 인해 초현실주의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은 그를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쫓아냈다. 이에 대한 달리의 반응은 ‘내 자신이 초현실주의다’였다. 달리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 오브제 등의 다양한 시각예술, 영화, 연극, 사진, 패션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심지어는 초콜릿 광고에 출연하기도 할 정도로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 책은 그를 화가로 소개하지만 사실 달리는 회화라는 것을 뛰어넘은 특별한 존재였다.
[출처:글-최경화 / 스페인 미술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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