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Mascagni, Cavalleria Rusitcana
Pietro Mascagni 1863 - 1945 이태리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Lush chorus from Pietro Mascagni's opera 'Cavalleria Rusticana'.
Served up by The Robert Shaw Chorale,
from their 1961 album 'Operatic Choruses'.
오페라 중에는 귀족의 궁정이나 부호의 대저택을 무대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실제 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을 다룬 오페라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넓은 홀, 고풍스런 가구, 번쩍이는 의상 등 일상을 뛰어넘는 화려한 세계에 관객이 쉽게 매혹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이탈리아의 젊은 작곡가들은 오페라의 이런 소재와 무대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혁명과 전쟁, 산업화와 빈곤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는 고통이 가득한데, 오페라가 구시대의 광휘(光輝)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은 가난한 농어민, 노동자들의 삶을 소재로 삼아 현실보다 더 적나라한 현실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이는 ‘베리스모(verismo. 진실주의 또는 극사실주의)’ 오페라를 개척했습니다. 문학사에서는 사실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자연주의’ 경향에 해당합니다.
푸치니와 함께 밀라노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한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3-1945)는 1890년 5월 17일 로마 콘스탄치 극장에서 초연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 이 베리스모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원작소설을 쓴 조반니 베르가(Giovanni Verga, 1840-1922)는 시칠리아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알렉상드르 뒤마 1세([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작가)를 모방한 소설로 출발해, 20대에 피렌체에 진출하고 30대에는 밀라노에 정착했습니다. 프랑스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고향 시칠리아를 무대로 하는 엄격하고 간결한 문체의 단편소설들을 썼으며, 객관적 시각에서 진실을 묘사하려고 노력한 작가입니다. 베르가의 소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1880)는 1884년에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1890년에는 조반니 타르지오니-토체티와 귀도 메나시가 함께 대본을 쓴 마스카니의 오페라로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시칠리아의 부활절, 피의 복수극
이야기의 배경은 1880년경, 시칠리아 섬 어느 마을의 부활절입니다. 갓 제대한 투리두는 애인이었던 롤라가 같은 마을의 알피오와 결혼한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다가, 자신을 위로해주는 처녀 산투차와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그러나 결혼한 롤라가 다시 유혹하자 투리두는 옛 사랑을 잊지 못해 다시 롤라와 밀회하기 시작하지요. 오페라의 첫 장면은 운송업자 알피오가 일하러 간 사이에 투리두가 롤라와 밤을 보내고 나서 새벽에 부르는 시칠리아나 ‘우윳빛 셔츠처럼 하얀 롤라 O Lola ch'ai di latti la cammisa’입니다. 곧 이어 마을사람들의 합창 (‘오렌지 향기가 바람에 날리고 Gli aranci olezzano’)이 마을을 가득 채웁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의 뜻 : '시골기사' 또는 '시골 기사도'를 뜻한다.
즉 '시골 사나이의 전통적 사교 규범, 또는 결투의 습관'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알피오는 운송마차를 몰고 나타나 사랑스런 아내 덕분에 힘든 줄 모르고 일한다는 내용의 아리아 ‘말은 힘차게 달려 Il cavallo scalpita’를 노래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사제가 성상을 앞세우고 행진하는 부활절 행렬예식을 지켜보며 ‘주 찬미가 Inneggiamo’를 노래합니다. 투리두와 결혼을 약속한 산투차는 사실을 알고 나서 투리두의 어머니 루치아에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유명한 아리아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Voi lo sapete, o mamma’를 노래합니다. 군대에서 돌아왔을 때 롤라의 변심에 상처 받았던 투리두를 자신이 위로해 진정시켰는데, 이제 두 사람 사이를 질투한 롤라가 투리두를 다시 유혹한다며 처절한 심정으로 시어머니 될 루치아에게 하소연하는 장면입니다.
산투차가 ‘어디 갔었느냐’고 추궁하자 투리두는 ‘질투심 따위로 나를 잡아두지는 못할 것’이라며 냉랭한 태도를 보입니다. 화를 내도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분노를 참지 못하게 된 산투차는 롤라의 남편 알피오에게 롤라와 투리두의 관계를 폭로하고, 격분한 알피오는 투리두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포도주를 마시던 투리두(‘포도주를 마시자 Viva il vino spumeggiante’)는 알피오가 술을 거절하며 모욕을 주자 그에게 달려들어 결투를 신청합니다. 취한 채 집으로 돌아온 투리두는 어머니 루치아에게 산투차를 딸처럼 여겨달라고 부탁한 뒤 알피오와 결투를 하러 다시 나가지요. 곧 마을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투리두는 알피오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둡니다.
전주곡과 시칠리아나 : Andante Sostenuto
전주곡 Preludio
간주곡 : Andante Sostenuo
Cavalleria Rusitcana : Intermezzo
가난한 제빵사의 아들로 태어난 마스카니는 13세에 오페라를 작곡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했으나 2년 후에 중퇴했고,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취직했다가 유랑악단을 이끌고 유럽 곳곳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1888년, 신인 작곡가 등용을 위한 손초뇨(Sonzogno) 사(社)의 단막 오페라 작곡 공모에 참여해 최고상을 받은 작품이 바로 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입니다. 이때부터 오페라 작곡가로 유명해진 마스카니는 모두 16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페사로 음악원장, 로마 음악원장을 지낸 그는 무솔리니 독재 치하에서 국민음악가로 추대되었고, 그 때문에 동료 음악가들에게서 인간적으로 버림받는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은 어떤 지역보다도 지배계급에게 심하게 수탈당하고 전쟁에 시달린 지역입니다. 가난하고 거친 삶 속에서 가족주의가 강해져, 가족의 불명예를 반드시 피로 갚는 ‘피의 복수’가 전통적으로 일반화된 고장이지요. 또 가톨릭 신앙이 어느 지역보다도 보수적이고 완고하게 뿌리박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 오페라의 제목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역시 ‘시골 기사’ 라는 뜻으로, 시골 젊은이들이 마치 귀족 기사들처럼 결투를 해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비아냥거리는 어조를 띠고 있답니다.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
이 오페라에서 가장 알려진 음악은 바로 간주곡일 텐데요, 산투차가 알피오에게 진실을 알린 뒤 복수극이 벌어지기 전에 연주되는 이 간주곡은 봄이 시작되어 만물이 소생하는 평화로운 시칠리아의 부활절 풍경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폭풍 전야의 고즈넉함’ 같은 독특한 긴장을 품고 있습니다. 베르디의 오페라가 극적이면서도 여전히 주인공의 아리아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과는 달리, 베리스모 오페라들은 아리아보다 두 사람 사이의 레치타티보 및 중창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레치타티보와 중창이야말로 걸러지지 않은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장면들이기 때문이지요. 합창 역시 효과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리스모의 경향에 회의적이었던 베르디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보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는 일은 나름대로의 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그건 사진이지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당시에 발전한 사진기술은 이와 같은 사실주의적 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베르가의 원작소설에서는 알피오로 대표되는 ‘돈 잘 버는 상인’과 투릿두가 대표하는 ‘가난한 농부’ 사이의 갈등이 당시 시칠리아의 산업화에 의한 농민들의 빈민화를 비판하는 중심축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스카니의 오페라에서는 이런 사회비판적인 요소는 크게 축소되고,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가 더욱 비중 있게 부각되었답니다.
Intermezzo - Cavalleria Rusticana
Andre Rieu & The Johann Strauss Orchestra
P. Mascagni: Prelude and Siciliana from "Cavalleria Rusticana,
" Fresno Youth Philharmonic Orchestra
마스카니 [ Pietro Mascagni ]
이탈리아 1863~1945
1863년 12월 7일에 이탈리아의 리보르노에서 가난한 빵집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을 법률학자로 만들고 싶어했으나, 마스카니는 피아노를 배워서 소프레디니 음악원에 입학했다. 아버지는 분노하였으나, 숙부가 아버지를 설득해 주었다. 그러나 얼마 후 숙부가 죽어 마스카니는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랄데렐 백작이 후원자가 되어 주어서 밀라노 음악원을 졸업할 수가 있었다.
졸업 후 그는 유랑극단에 들어가기도 했고, 소도시 시립악단의 지휘자 노릇을 하기도 했는데, 1889년에 밀라노의 음악출판업자 손쪼니가 1막짜리 가극을 모집한 것에 응모하기 위해 겨우 8일간에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써내어 이것이 멋지게 입상(26세)하였는데, 명성은 순식간에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그는 15개의 가극을 비롯해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1945년 8월 2일에 로마에서 타계했다.
마스카니는 베르디의 뒤를 이어서 이탈리아 가극계의 중진이 되었고, 이른바 ‘베리즈모(現実主義)파’라 일컬어지는 반낭만적 작곡가 무리에 군림하며, 시민의 일상생활을 제재로 하는 사실주의를 표현의 특징으로 삼았다. 작품으로, 「나의 벗 프리츠」 · 「이리스」 · 「이자호」 · 「로드레타」 등이 있는데,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뛰어난 대표작으로 꼽힌다. 작곡뿐만 아니라 지휘로도 활약하여, 스칼라 극장의 지휘자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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