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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누누 알바레스 페레이라[Nuno Álvares Pereira ]

Bawoo 2019. 11. 13. 20:09

Nuno Álvares Pereira

 

Statue of Nuno Álvares Pereira on horseback in Batalha



출생1360. 6. 24, 포르투갈 본자르딤
사망1431. 4. 1, 리스본
국적 포르투갈


[요약 ] 포르투칼의 군사지도자.


Nuno Álvares는 Nun Álvarez라고도 씀. 본명은 Blessed Nund Santa Maria.


'신성 컨스터블'(Holy Constable)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역사적인 알주바로타 전투(1385. 8. 14)

[ The Battle of Aljubarrota]에서 카스티야군에 승리를 거두어 포르투갈의 독립을 보전했다.


페레이라는 이미 1373년 13세의 나이로 전투에서 카스티야의 침입에 맞서 싸우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포르투갈 국왕 페르난두 1세가 죽고(1383. 10) 페르난두의 딸인 베아트리스가 왕위계승을 요구하자 페레이라는 그녀가 카스티야의 왕 후안 1세와 결혼했기 때문에 포르투갈의 독립에 위협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를 반대하고 페르난두 1세의 이복형제인 아비스의 주앙을 지지했다.


1384년 1월 후안 1세가 포르투갈로 쳐들어왔다. 그의 가족들 중 그를 제외한 대부분은 카스티야를 지지했으나 페레이라는 아비스의 주앙(뒤의 포르투갈의 왕 주앙 1세)을 계속 지지해 아톨레이로스 전투(1384. 4. 6)에서 카스티야 왕국에 승리를 거두었다. 계속해서 뛰어난 영웅적 행위를 보여준 그는 1385년 컨스터블 자리에 올랐다.

카스티야군은 1384년 물러났으나 이듬해에 다시 쳐들어와 리스본으로 향했다. 이들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페레이라는 알주바로타에서 카스티야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는 수적으로 크게 우세한 카스티야 군대를 맞아 용의주도한 방어진과 용기 있고 결단력 있는 지휘를 통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1411년 10월 30일 최종적인 평화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카스티야군과 싸웠으며, 1415년에는 포르투갈 최초의 아프리카 식민지인 모로코 북부의 세우타를 무어족으로부터 빼앗으러 떠나는 원정군에게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포르투갈의 왕 주앙 1세는 페레이라에게 많은 영예를 안겨주었다. 그는 국왕에게서 많은 작위를 비롯해 광대한 토지와 저택이 딸린 소유지를 받았다. 그의 딸인 베아트리스는 주앙 1세의 적자인 아폰수와 결혼해 브라간사 왕가의 시조가 되었고 이 가문은 1640년부터 포르투갈의 왕가가 되었다. 페레이라는 자신의 맹세에 따라 리스본에 카르멜회 수도원을 짓고 1423년 산타마리아의 수사로서 직접 그곳으로 들어갔다. 교황 베네딕투스 15세는 1918년 1월 23일 그를 복자의 자리에 올렸다.[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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