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dn, String Quartet Op.76 No.3 'Emperor'
하이든 현악 4중주 ‘황제’
Franz Joseph Haydn
1732-1809
Takács Quartet
Gábor Takács-Nagy, violin
Károly Schranz, violin
Gábor Ormai, viola
András Fejér, cello
Schubertsaal, Konzerthaus, Wien
August 1987.08
무려 30년 동안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궁정음악가로서 전형적인 18세기 음악가의 삶을 살아야 했던 하이든이 인생의 결정적 전환기를 맞이한 것은 그의 나이 58세 때인 1790년의 일이었다. 하이든이 모시던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가 세상을 떠난 후 니콜라우스의 뒤를 이은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는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궁정악단도 해산하고 하이든에게도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사실상 자유의 몸이 된 하이든은 그의 음악을 원하던 런던의 음악애호가들을 위해 런던을 두 차례 방문해 12곡의 ‘런던 교향곡’을 발표했다. 12곡의 ‘런던 교향곡’은 하이든에게 국제적인 성공과 금전적인 이익, 최고의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1795년에 하이든이 빈으로 돌아왔을 때 모차르트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베토벤은 아직 신인이었다. 유럽을 통틀어 하이든에 필적할 만한 음악가는 없었다. 이제 하이든은 전 유럽을 통틀어 현존하는 최고의 음악가로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받게 된 것이다.
다가올 낭만주의 음악을 예견한 대가의 현악 4중주
하이든이 다시 에스테르하지 후작 가문으로 되돌아왔을 때도 운명은 여전히 그의 편이었다. 하이든이 런던에 다녀오는 사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수장은 니콜라우스 1세의 손자인 니콜라우스 2세로 바뀌어 에스테르하지의 궁정악단이 재조직되긴 했으나 궁정악장 하이든의 책임은 예전보다 한결 가벼웠다. 그는 매년 여름에 2~3개월 아이젠슈타트에서 궁정악장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고 니콜라우스 2세의 부인인 마리아 헤르메네길트를 위해 미사곡을 작곡하는 것 외에는 거의 빈에 머무르며 작곡을 하고 음악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일과를 보냈다. ▶하이든의 최고 후원자였던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
이 시기에 하이든이 남긴 작품들의 수는 많지는 않지만 그 음악 양식은 매우 새롭고 혁신적이다. 작품 하나하나에서 평생 동안 새로운 음악 양식을 개발하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하이든의 근면함과 진취적인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 시기를 빛낸 대작들로는 두 곡의 장려한 오라토리오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1796), <천지창조>(1798)와 <사계>(1801), 그리고 니콜라우스 2세를 위한 여섯 곡의 미사곡이 있는데, 이들 작품에는 이미 두 차례의 런던 여행을 계기로 런던에서의 대규모 대중음악회의 생생한 경험을 쌓은 하이든의 무르익은 음악성이 녹아 있다. 생애 말년에 이르러서도 성숙하고 침착하며 장엄한 후기 양식과 청년기의 실험적 양식을 혼합한 새로운 음악 양식으로 다가올 시대를 예고했던 하이든은 진정 혁신적인 음악가였다.
하이든의 혁신은 그가 일생에 걸쳐 진지하게 몰두했던 현악 4중주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찍이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함께 연주하는 현악 4중주라는 음악 장르를 통해 빈 고전주의 음악의 균형미를 보여준 하이든은, 런던에서 돌아온 후 2년이 지난 1797년에 여섯 곡의 ‘에르되디 4중주’를 완성해 고전주의 음악의 순수성과 형식미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요제프 에르되디 백작의 의뢰로 작곡된 까닭에 ‘에르되디 4중주’라는 별명을 얻은 여섯 곡의 현악 4중주곡은 하이든이 완성한 현악 4중주 연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다. 하이든은 이 작품 이후 세 곡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을 뿐이고 그나마 마지막 곡은 미완성이다. 여섯 곡의 ‘에르되디 4중주곡’들은 64세의 노대가가 새롭게 개발해낸 음악적 아이디어로 넘친다. 현악 4중주 3악장의 미뉴에트 춤곡은 좀 더 빠르고 날렵해지면서 베토벤의 빠른 스케르초와 비슷해지고, 느린악장에 담아낸 감정적 깊이는 다가올 낭만주의 음악을 예고하는 듯하다. 각 악장마다 확신에 찬 어조와 대담한 기법이 빛난다.
Buchberger Quartet - Haydn, String Quartet Op.76 No.3 'Emperor'
Helmut Sohler, violin
Hubert Buchberger, violin
Joachim Etzel, viola
Julia Greve, cello
2005
추천음반
하이든 ‘황제’ 4중주곡의 추천음반으로는 이 곡의 풍성한 화음을 잘 살려낸 아마데우스 4중주(DG)의 음반과 응집력 있는 앙상블을 선보인 알반 베르크 4중주단(EMI)의 음반이 있다. 타카치 콰르텟(Decca)의 드라마틱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연주와 모자이크 콰르텟(Astree)의 날렵한 연주도 추천할 만하다.
글 최은규(음악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ㆍ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 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