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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도쿄 전범재판에서 일본 전범을 옹호한 변호사]라다비노드 팔

Bawoo 2020. 9. 3. 20:59

Radhabinod Pal

1886년 1월 27일 ~ 1967년 1월 10일

1. 개요

인도 제국의 법률가.

2. 이력

1886년에 인도 벵골 주에서 태어났다. 법률가의 길을 지망하여 캘커타 대학을 졸업하고, 1920년에 법학 석사 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등록했다. 1924년에 캘커타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캘커타 대학 법학부 교수를 지내면서, 1941년에는 캘커타 고등법원의 판사로 취임했다. 1944년에는 캘커타 대학 총장에 취임하여 1946년까지 재직했다. 태평양 전쟁 중 찬드라 보세일본군과 협력한 사실이 인도에 알려지자 이를 지지하는 시위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1946년 5월에 극동국제군사재판 인도 대표 판사로 파견되었다.[1]

1950년, 1952년, 1953년에 각각 일본을 방문했다.

3.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의 만행과 비

  • 평화에 대한 죄, 반인륜범죄는 사후법이며, 죄형법정주의 입장에서 피고인들을 유죄로 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든 피고인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할 것을 주장했다. 판사는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도 똑같이 갖고 있는 근본적 문제인 법의 불소급 원칙을 들어 지금 만든 법으로 이전에 저지른 전쟁범죄를 처벌하는 것은 단순한 보복행위라고 주장했다.

  • 난징 대학살 부정: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 "선전과 과장을 참작하여야 한다.", 변호인 측 주장에 동조하여 "퇴각 중인 중국군이 상당수 잔학행위를 범했다"고 판결문에 명시하였다. 사실 자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인정했지만, 책임자들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 오히려 난징대학살 사건의 증인에게 "일본군이 학살를 했다면 왜 당신은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고 숨어있었냐? , 당신을 못 믿겠다."식으로 망언을 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라다비노드 팔은 일찌감치 일본에 대해 무조건 무죄를 주장할 생각으로 미국, 영국, 중국 등의 연합국 판사들이 작성한 공명정대한 재판운영을 다짐하는 공동선언문에 유일하게 서명하지 않았다. 466일의 공판기일 중 109일이나 재판에 결석하였고, 피해자들이 제출한 일본의 전범 행위 증거물도 제대로 살펴보는 경우도 없었고, 무엇보다 재판 자체에 성의없는 행동으로 무책임한 태업 행동을 하였다. 또한 일본군을 아시아를 해방시켜줄 구원자로 여겼고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이는 친일 성향을 드러냈다.

4. 평가[편집]

팔의 경우 단순히 이런 법리적인 문제만으로 이런 의견을 낸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덮어놓고 '일본인을 살립시다. 일본이 옳습니다'라고나 안 했다 뿐이지, 본인의 국가나 본인 스스로의 행보를 생각해 보면,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일본 편을 들어 줬다고 봐야 한다. 전범 재판이라는 게 그렇게 법리적으로 정당성이 없고, 단순히 연합국의 부당한 보복 조치 정도에 불과한 일이었다면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씩이나 열릴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그 법리적인 명분을 들고 카와베 마사카즈[2]를 제외하고는 A급 전범 전원 사형을 주장한 델핀 판사 등도 있었고 팔 판사와 같은 견해야말로 소수에 불과했다.그런 상황에서 저런 짓을 한 일이다.

일부 인도인들은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로 일본 제국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

극동국제군사재판 당시 일본의 전범들을 강력히 처벌해서 모두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중국 판사들을 강력하게 비난하였고 심지어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판사들에게도 비난을 서슴지 않으며 일본의 전범들을 용서해주자는 의견을 확고히 했다. 당연히 일본 극우 세력에게는 전가의 보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양심있는 인물로 극찬받고 있다.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팔을 귀축영미의 비열한 보복행위에 맞서 유일하게 양심을 지킨 아시아의 의인으로 추앙하는 송덕비를 세우는가 하면 그에게 틈만 나면 찾아가서 감사 인사를 하는 등의 속이 뻔히 보이는 짓을 계속 했다.

나중인 1966년에 팔은 당시 일본 총리이자 이 재판에 전범으로 기소되어 죽을 뻔했던 기시 노부스케의 초청을 받아 일본으로 갔는데 이때 기시 총리로부터 일본 최고의 훈장을 수여받는 등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이때 팔은 “일본이 전쟁범죄를 일으켰다고 어린이들에게 뒤틀린 죄의식을 심어줘서는 안된다”며 일본을 재차 두둔했다. 전범 재판이라는 국제 법정에까지 가서 판사로 일하고 전범들의 목줄을 쥐락펴락하던 양반이, 설마 자기를 초청한 사람들이 누구이고 자신이 일본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일본 정부가 어째서 자신을 초청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리가 전혀 없는데도 저런 소리를 한 것이다.

또한 팔은 아시아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일본인을 같은 아시아인이랍시고 편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인에게 학살과 침략을 당한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인도차이나 등의 수많은 피해자는 깡그리 무시하고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망언을 일삼았다.

반면에 딱히 중립적인 위치에 서서 일본의 문제를 지적하는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재판 당시의 상황이나 이후 이와 같은 팔의 행보를 보면 팔 본인의 친일 성향과 관계없이 단순히 법리적인 문제만으로 전범 재판에 반대했다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다.

더군다나 팔은 국제법이나 형사법 전문가도 아닌 세법 전문가였으며 국제법에 대한 공부도 도쿄 전범재판 직전에 시작했다.

이 사람 때문에 일본에서 인도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인도 역시 일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만모한 싱,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라다비노드 팔을 찬드라 보세와 함께 인도와 일본 우호의 상징으로 언급한 바있다. 기사 물론 인도도 일본이 벌인 침략행위를 정당화하지 않으며 역사교과서에도 침략자로 가르친다.

결국 그에게는 일본군이 서구권 백인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중요했지 일본군이 인도처럼 서구권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들을 침략하여 서구권 사람뿐만 아니라 같은 아시아인들을 남녀노소 상관없이 학살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야스쿠니 신사라다비노드 팔 송덕비가 있다. 송덕비에는 법의 정의를 지킨 열렬한 사명감과 고도의 문명사적 식견이라는 찬사가 적혀져 있다. 전시관인 유수칸 안에도 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초상화가 크게 걸려있다. 그냥 슥 둘러만봐도 이 사람의 초상화가 눈에 띈다.

리그베다 위키에서는 일본의 전쟁범죄 항목 등에서 승전국들의 일방적인 결정에 라다비노드 팔이 승자의 보복 운운하며 일본 전범들을 두둔했지만 그 자신도 일본의 전쟁범죄를 비난했다던가, 일본 극우들이 인도까지 가서 라다비노드 팔을 칭찬하며 감사를 표하자 팔의 가족들이 일본 극우들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는 등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식의 의심스러운 서술이 적혀 있었다. 팔의 가족들이 일본에 항의한 적은 전혀 없으며 그의 아들인 프라샨토 팔은 아베 신조와의 면담 당시 “아버지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니 자랑스럽다. 아버지의 공적은 당연한 것이었고 정당했다.”, '“어떻게 전쟁 범죄에서 한쪽만을 비난하고 다른 편은 옹호할 수 있겠는가.”라는 발언을 하며 자랑스러워 했다.

다만 후에 일본에서 군국주의에 경도되지 않은 사학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버지 라다비노드 팔은 당시 비폭력주의를 주장하는 간디주의와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에 부정적이고, 독재자 한명이나 소수의 엘리트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는 파시즘,나치즘,일본 제국주의 같이 전체주의 국가관을 지지하는 인물이었다고 인정했다.

[1] 본래 세법 담당이었기에 재판 참여 자격이 없으나, 막 설립된 인도 정부의 행정 오류로 참여하게 되었다.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졌지만 다른 담당자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가 계속하였다.[2] 임팔 작전 참고[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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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日 戰犯 무죄 주장한 인도 판사, 국제법 모르는 稅法변호사"

2014.08.16 | 조선일보 | 다음뉴스

식견." 일본 전범을 합사한 일본 도쿄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있는 인도인 다비노 판사 헌정비에 새겨진 찬사이다. 극우세력은 침략전쟁을 단죄한 도쿄 전범재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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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 친일파 - 다비노 (Radhabinod Pal) 2019.08.13.

인물이 대표적이었는데요, 일본과 나치의 지원을 받아 영국을 몰아내는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죠. 다비노 역시 마찬가지의 입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지배하에서 승승장구했던 인물이...

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20434633 디브이디 프라임

 

[정보]책-하종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3.2.

아베 총리의 선거구, 인구 150만도 안 되는 변방 야마구치현에서 총리가 9명이나 배출됐다. 그 야마구치현의 옛 이름은 조슈번이고, 이곳 출신의 우파 정치가들은 지난 150년간 일......[이 책에 따르면 찬드라 보스의 열렬한 추종자인 다비노 팔은 " 적(영국)의 적(일본)은 친구(인도)"라는 생각으로 일본에 호의적으로 협조했다는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