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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씨 개명을 거부하고 자결한 인물]설진영(薛鎭永)

Bawoo 2021. 2. 4. 20:58

 

설진영(薛鎭永, 1869년 ~ 1940년)은 구한말의 학자이자 의병이다. 본관은 순창이며 초명은 설진삼(薛鎭三), 자는 도홍(道弘), 호는 남파(南坡), 율재(栗齋)이다.

1895년(고종 32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기우만을 따라 의병을 일으켜 장성ㆍ나주 등지에서 왜병과 싸웠다. 1940년 일제가 조선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이를 거부하여 맹세코 성을 고치지 않겠다는 절명시(絶命詩) 2절과 유서를 남기고 우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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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본관은 순창(淳昌). 초명은 설진삼(薛鎭三). 자는 도홍(道弘). 호는 남파(南坡) 또는 율재(栗齋). 아버지는 통정(通政) 설상기(薛相基)이며, 어머니는 탐진최씨(耽津崔氏)로 최덕순(崔德淳)의 딸이다.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고광선(高光善)·박인섭(朴寅燮) 등과 교유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95년(고종 32) 민비(閔妃)가 시해되자 기우만을 따라 의병을 일으켜 장성·나주 등지에서 왜병과 싸웠다. 1910년 국권강탈을 당하자 아미산(峨嵋山) 남쪽 기슭에 남파서실(南坡書室)을 짓고 두문불출하면서 학문 연구와 후진 교육에 심혈을 경주하여 많은 영재를 배출하였다.

1940년 일제가 조선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이를 거부하여 맹세코 성을 고치지 않겠다는 절명시(絶命詩) 2절과 유서를 남기고 우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전라북도 진안 이산묘영광사(駬山廟永光祠)에 충의열사 33인과 함께 제향되었다. 저서로 『남파유고(南坡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 『남파유고(南坡遺稿)』
  • ・ 『대한이산묘지(大韓駬山廟誌)』
  • ・ 『염재야록(念齋野錄)』
  • ・ 『흠재문집(欽齋文集)』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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