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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현악4중주 전곡

Bawoo 2021. 2. 13. 19:16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모차르트의 1770년대 초상화

ⓒ Barbara Krafft/wikipedia | Public Domain

 

The Complete String Quartets on Period Instruments

모차르트는 1770년 3월 최초의 현악4중주곡 〈로디〉를 작곡한 후 1790년까지 20년 동안 모두 23곡의 현악4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사이 1774~1782년까지는 이 장르를 작곡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의 분위기로 보면 23곡 중 13곡의 초기 작품과 빈에 완전히 정착한 후에 쓴 10곡으로 나뉜다. 모차르트의 현악4중주들은 생전에는 〈하이든 4중주〉 6곡과 〈K. 499〉만 출판되었다. 모차르트의 현악4중주들을 작곡 장소에 따라 분류하면, 첫째, 이탈리아 여행 시기(1770~1773), 둘째, 1773년 8월과 9월 빈에 잠시 체제하면서 작곡한 시기, 셋째, 빈에 완전히 정착한 1782년 이후 1790년까지로 3구분할 수 있다. 13곡의 초기작품과 빈에 정착한 후 10곡의 걸작으로 분류된다. 초기의 현악4중주 7곡은 모두 이탈리아 여행 중에 작곡한 것이다. 최초의 현악4중주(1번, K. 80, 일명 〈로디〉)는 로디에서(자필악보에 적힌 기록에 따르면 작곡 완성은 1770년 3월 15일 로디에서로 되어 있고, 제4악장은 1773년 혹은 1774년 빈이나 잘츠부르크에서 썼다) 작곡되었다. 모차르트는 그 후 더 수준 높은 현악4중주곡을 작곡했지만 이 첫 시도에 특별한 애착을 보였다. 전형적인 이탈리아풍인 제1, 제2악장, 잘츠부르크풍인 미뉴에트, 그리고 전형적인 프랑스풍의 론도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여러 민족의 음악양식을 혼합한 것으로, 겨우 14세인 모차르트의 범상치 않은 능력을 엿볼 수 있다. 2번(K. 155)은 볼차노에서 시작하여 베로나와 밀라노에서 완성했고, 3번(K. 156), 4번(K. 157), 5번(K. 158), 6번(K. 159)은 밀라노에서, 7번(K. 160)은 밀라노에서 시작하여 잘츠부르크에서 완성했다. 2번에서 7번까지는 작곡한 지역 이름을 빌어 〈밀라노 4중주곡〉으로 불린다. 모차르트의 현악4중주곡 중에서 초기 작품 7곡은 이탈리아 여행 중 들은 것, 접촉했던 음악가 등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당시 현악4중주는 하나의 장르로서는 아직 형성되는 과정에 있었는데, 모차르트는 호기심과 소년기를 벗어나 청년기로 향하는 시기의 마음을 표현하였으며, 예술가로서의 성장을 반영하는 작품들이다. 〈밀라노 4중주곡〉 6곡은 1번 〈로디〉 이후 거의 2년 반이 지나 세 번째 이탈리아 여행(1772년 10월 24일~1773년 3월 13일) 동안 연작 형태로 작곡되었다. 세 번째 이탈리아 여행은 첫 번째 이탈리아 여행 때 밀라노 궁정 극장에서 주문받은 오페라 세리아 〈루치오 실라〉의 작곡과 공연을 위한 것이었다. 〈밀라노 4중주곡〉 중 첫 번째 곡은 1772년 10월 28일 볼차노에서 시작하여 1773년 1월 4일 밀라노에 도착하여 완성된다. 작곡 동기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 그러나 1772년 10월 28일 레오폴트가 볼차노에서 쓴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지금 아들은 지루함을 달래려고 4중주곡을 쓰고 있소.” 당시 일반적으로는 6곡 1조로 된 4중주곡 출판이 관행이었고, 레오폴트가 1772년 2월 7일 브라이트코프 출판사에서 보낸 편지에서 “4중주곡, 즉 바이올린2, 비올라, 첼로에 의한 곡도 있습니다”라면서 모차르트가 작곡한 작품을 열거하고, 동 출판사가 출판할 의사가 있는지 묻고 있다. 따라서 모차르트가 이 곡을 심심해서 작곡했다기보다는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다. 〈밀라노 4중주곡〉 6곡 모두 〈제1번〉과 마찬가지로 신포니아의 3악장 형식으로 씌여졌으며 악상도 이탈리아적 선율이지만,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의 현악4중주 작곡가들, 즉 보케리니(Luigi Rodolfo Boccherini, 1743~ 1805, 현악4중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최초로 현악 5중주와 피아노 5중주를 작곡했다)나 삼마르티니의 작품을 직접적으로 모방하지는 않았고 독자적인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밀라노 4중주〉는 교향적인 요소에서 실내악적인 요소까지 포함하는 과도기적 현악4중주곡으로서, 청년기에 들어선 모차르트의 다감한 감정의 표출을 들을 수 있는데, 그런 주관적인 감정 표현은 당시의 사교적인 교향곡이나 디베르티멘토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나머지 현악4중주들(8~23번)은 장소적으로 모두 빈에서 작곡되었다. 빈에서 작곡된 것들은 1773년에 작곡한 6곡(8~13번, 일명 〈빈 4중주곡〉)과 1782년에서 1785년 사이 하이든에게 증정한 6곡(14~19번), 그리고 호프마이스터 출판사에게 보낸 20번(K. 499)과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위해 작곡한 3곡(21~23번)이다. 현악4중주는 당시 실내악 작곡의 관습에 따라 양식적인 단정함을 지닌 6곡 연작으로 쓰여졌다. 출판은 하이든 4중주 6곡과 K. 499 등 7곡만 생전에 대중적으로 출판되었다. 1773년 8월에서 9월 사이 빈에서 〈빈4중주곡〉 6곡을 작곡한 후 모차르트의 악풍은 갈란트 양식으로 바뀌었고, 잘츠부르크 시대에서 만하임과 파리 여행 시대까지는 현악4중주곡을 한 곡도 쓰지 않았다. 모차르트가 이 분야의 곡을 다시 쓰기 시작한 것은 빈으로 옮겨온 1782년 말인데, 그것은 하이든의 현악4중주 33번에서 받은 깊은 감동 때문이었다. 바흐와 헨델을 통해 최고의 절정기로 치닫던 바로크 음악의 불꽃이 꺼져 갈 무렵 빈 음악계에 등장한 하이든은 고전주의(classicism)의 토대를 쌓으면서 서양 음악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만약 고전주의 음악가의 표상이자 전형으로서 하이든이 없었다면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나 음악의 성인 베토벤은 고전음악의 기초공사를 위해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을 것이다. 따라서 요제프 하이든은 고전주의 음악가의 표상이자 모범으로서 모차르트나 베토벤에게는 스승이었고 그들의 앞길을 열어준, 훌륭한 인품을 가진 음악가였다. [모차르트와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 이재규 | 21세기북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