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당 전투[Battle of Sedan]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때 프랑스군이 참패한 전투(1870. 9. 1).
The movements of the French and German armies from 23 to 29 August. Red: French, Blue: Germans
이 패배는 결국 프랑스 제2제정의 몰락을 초래했다. 전투는 뫼즈 강 연안의 프랑스 국경에 있는 스당 요새에서 마크 마옹 원수가 이끄는 12만 명의 프랑스군과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이 지휘하는 20만 명의 프로이센군 사이에 벌어졌다(→ 독일사, 제2제정). 마크 마옹은 메스에 갇힌 프랑스 라인군을 구출하기 위해 나폴레옹 3세와 함께 샬롱쉬르마른에서 메스를 향해 북동쪽으로 진군할 예정이었다. 몰트케는 신문 보도를 통해 마크 마옹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작센의 알브레히트 황태자를 지휘관으로 하여 새로 편성된 뫼즈군을 재빨리 북쪽으로 보내 마크 마옹의 앞길을 차단했다.
뫼즈 강 연안에서 벌어진 3차례의 소규모 전투(8. 29~31)에서 마크 마옹은 프로이센군에게 밀려 스당 요새로 물러났다. 마크 마옹이 한번 더 프로이센군과 싸워서 포위망을 뚫고 동쪽의 메스로 갈 것인지, 서쪽의 파리로 퇴각할 것인지 결정하는 동안, 몰트케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태자가 이끄는 프로이센 제3군을 움직여 스당을 완전히 포위했다.
그해 9월 1일 새벽에 마크 마옹이 다쳤기 때문에 프랑스군 지휘 체계에 커다란 혼란이 일어났고, 덕분에 프로이센군은 별다른 저항도 받지 않고 포위 작전을 수행했다. 그후 프랑스는 대규모 기병대까지 동원해 포위망을 뚫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수많은 사상자를 냈을 뿐 아무 성과도 얻지 못했다. 프로이센 포병대가 아침부터 내내 프랑스군 진지에 포격을 퍼부은 뒤, 오후에 총공격을 개시했다.
The Prussian Guards at the battle
전세가 절망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폴레옹 3세는 항복했고,
A mural painted in 1884 by Carl Steffeck depicts General Reille delivering Napoleon III's letter of surrender to King William I at the Battle of Sedan on 1 September 1870. It was at the former Ruhmeshalle in Berlin and was destroyed by bombs during World War II.
이튿날 아침 8만 3,000명의 프랑스 병사와 함께 포로가 되었다.
Napoleon III conversing with Otto von Bismarck after being captured in the Battle of Sedan (1878 painting by Wilhelm Camphausen)
프랑스는 3,000명의 전사자와 1만 4,000명의 부상자를 냈고, 2만 1,000명이 행방불명되거나 사로잡혔다. 프로이센은 9,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승리한 프로이센군이 파리로 진군하고 있던 중인 같은 해 9월 4일, 파리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 제2제정을 무너뜨리고 임시 공화 정부를 세웠다.
[다음백과]
--------------------------------------------------------------------------------------
1. 개요
보불전쟁 시기인 1870년 9월 1일 프로이센군이 뫼즈 강 연안 스당 요새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한 전투.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군에게 포로로 잡혔으며, 프로이센 왕국이 보불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오게 만든 전투였다.
2. 배경
보불전쟁이 시작된 후 프로이센군은 8월 내내 프랑스군을 상대로 뛰어난 전략을 펼쳐 연승을 거두었고, 프랑스는 어지럽게 퇴각했다. 나폴레옹 3세는 노련한 아쉴 바젠 원수를 프랑스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지만 베젠은 느리고 우유부단했다. 그 결과 바젠이 이끄는 군 전체가 요새 도시 메츠에 포위당하고 말았다. 이는 프랑스군에게 엄청난 타격이었고, 나폴레옹 3세는 그를 구하기 위해 9만 명 이상의 병력을 모아 군을 새로 조직해 막마옹 장군과 함께 진격했다.
프랑스군은 벨기에와의 국경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해 전선의 왼쪽 날개를 공격했지만,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은 프랑스군의 움직임을 간파한 후 프로이센 2개 군이 메츠를 포위하도록 남겨놓은 채 다른 2개 군을 북쪽으로 이동시켰다. 8월 30일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프랑스군과 조우한 프로이센군은 뷰몽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고, 프랑스는 5,000명의 사상자를 낸 채 스당으로 퇴각했다. 나폴레옹 3세는 이곳에서 탄약과 물자를 보충한 후 다시 공격에 나서려 했지만 프로이센군은 쉴 틈을 주지않고 신속히 스당을 포위했다.
3. 전투경과
"이제 그들을 쥐구멍에 몰아넣었습니다."
9월 1일 새벽 4시 프로이센 사단이 스당 앞의 바제유 마을을 공격하는 것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져 스당의 시민까지 산탄총을 들고 싸웠으며, 프로이센군은 일시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마을 바깥으로 전투가 확대되어 프로이센군은 바제유 북쪽을 공격하고 프랑스군은 역공하며 그들을 막아냈다. 전투를 지휘하던 막마옹은 자신이 탄 말이 대포에 맞고 본인도 심각한 부상을 입어 전선에서 물러나면서 오귀스트 뒤크로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뒤크로는 퇴각하려고 했지만, 프로이센 군단이 그들의 앞을 막았고, 그들은 꼼짝없이 싸워야만 했다. 오후를 넘기면서 프랑스군은 사실상 궤멸되었고 식량도 물자도 다 바닥났다. 나폴레옹 3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백기를 든 신하를 보내 빌헬름 1세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전달했다.
"나는 병사들과 함께 죽는 데 실패했소. 이제 남은 선택은 폐하의 손에 내 칼을 맡기는 것 뿐이오"
빌헬름 1세는 비스마르크와 스당에 모인 외국 관료들. 기자들 앞에서 이 편지를 읽어주며 승리를 자축했다. 프로이센은 프랑스에 가혹한 조건을 내걸었는데, 전군이 항복하고 장교가 아닌 모든 병사는 수용소에 갇혀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9월 2일 나폴레옹 3세는 스당에서 나와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게 조건의 완화를 요청했지만, 비스마르크는 단호히 거절했다. 스당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3,000명 전사, 1만 4,000명 부상, 2만 1,000명 실종, 8만 3,000명이 포로로 잡혔고 같은 기간 동안 프로이센군은 겨우 9,000 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나무위키]
----------------------------------------------------------------------------------------------
스당 전투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 프로이센이 뫼즈 강 연안 스당 요새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한 결정적인 전투로 이 전투에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포로로 잡혀 프랑스 제2제정의 몰락을 초래했다.
배경
프랑스 사령관 마크 마옹은 12만 대군을 이끌고 메스에 갇힌 프랑수아 바쉴 바젠 장군의 라인군을 구출하기 위해 나폴레옹 3세와 함께 샬롱쉬른마른에서 메스를 향해 북동쪽으로 진군할 예정이었다.
이에 프로이센 사령관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은 마크 마옹의 움직임을 알고 작센의 알브레히트 황태자를 지휘관으로 삼아 새로 편성된 뫼즈군을 재빨리 북쪽으로 보내 마크 마옹의 앞길을 차단하고 뫼즈 강 연안에서 벌어진 8월 29일~8월 31일까지 3차례 소규모 전투 끝에 마크 마옹과 나폴레옹 3세는 뫼즈 강 연안의 스당 요새로 후퇴했다.
마크 마옹이 한번 더 프로이센군과 싸워 포위망을 뚫고 동쪽의 메스로 갈 것인지, 서쪽의 파리로 후퇴할 것인지 결정하는 동안 몰트케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태자가 이끄는 프로이센 제3군을 움직여 스당 요새를 포위했다.
전투 과정[편집]
9월 1일 새벽에 마크 마옹이 다쳐 프랑스군 지휘 체계에 큰 혼란이 일어났고, 덕분에 프로이센군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포위 작전을 수행했다. 프랑스군은 대규모 기병대까지 동원해 포위망을 뚫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수많은 사상자만 내고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프로이센 포병대가 아침부터 내내 프랑스군 진지에 포격을 퍼부은 뒤 오후에 총공격을 개시했다. 전세가 절망적이라는 것을 안 나폴레옹 3세는 항복하여 포로가 되었고 이튿날 9월 2일 아침 8만 3,000명에 달하는 프랑스군이 프로이센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프로이센군이 파리로 진군하고 있던 9월 4일에는 파리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 제2제정이 무너지고 임시 공화 정부를 세웠다.[위키백과]
---------------------------------------------------------------
[같이 보기]
프랑스의 참패 스당 전투2020.01.29
프랑스의 참패 스당 전투 1870년 8월 말, 프랑스 샬롱의 병사 8만 5,000명이 거대한 분지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분지 한가운데로 뫼즈 강이 흐르고 그 위로 그림 같은...
----------------------------------------------
[정보] 책-화폐전쟁. 2(양장본 HardCover)시리즈
저자 쑹훙빙 | 역자 홍순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5.6.
'♣ 역사(歷史) 마당 ♣ > [역대 전쟁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류 역사에서 벌어진 역대 전투 목록: 나무위키 (0) | 2021.03.24 |
---|---|
[기사 계급 몰락의 시발점이 된 전투]파비아 전투(Battle of Pavia) (0) | 2021.03.08 |
[영국의 인도 지배권 확립 계기가 된 전투]플라시 전투 (Battle of Plassey) (0) | 2020.11.24 |
[몽골군이 패한 전투 중 하나]아인잘루트 전투(Battle of Ain Jalut) (0) | 2020.10.11 |
백년 전쟁(1337~1453)의 주요 전투 (0) | 2019.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