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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2차대전기 나치에 부역하여 종전 후 처형당한 매국노]비드쿤 크비슬링(Vidkun Quisling)

Bawoo 2021. 6. 20. 20:50

비드쿤 크비슬링[Vidkun Quisling}

Photograph of Quisling, circa 1919

 

비드쿤 아브라함 레우리츠 욘쇤 크비슬링(노르웨이어: Vidkun Abraham Lauritz Jonssøn Quisling [ˈvidkʉn ˈkvisliŋ][*], 1887년 7월 18일 ~ 1945년 10월 24일)은 노르웨이의 정치가이자 군인이다. 텔레마르크주 출생이며 1942년 2월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노르웨이 정부가 런던에 망명해 있는 동안 독일 점령하의 노르웨이에서 총리직을 지냈다. 종전 후 반역죄로 총살되었다.[위키백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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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중에 독일군이 노르웨이를 점령하는 데 협력하여 '반역자'의 대명사가 된 인물이다.

1911년 육군에 입대하여 1918~19년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1919~21년 헬싱키에서 공사관부 육군 무관으로 근무했다. 러시아에서 유명한 북극 탐험가이자 인도주의자인 프리트요프 난센을 도왔고, 그후 국제연맹을 위해 실업구제사업에 참여했다. 영국과 소련 사이에 외교관계가 없는 동안 노르웨이의 주모스크바 공사관에서 영국의 이익을 대변했다(1927~29). 농민당 정부에서 국방장관 재직시(1931~33)에 수력발전소 근로자들이 일으킨 파업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것으로 악명을 얻었다.

1933년 장관직을 사직하고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통일당을 조직했는데, 이 정당은 공산주의와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탄압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퀴슬링 자신은 의회에 한 번도 진출한 적이 없다.

1939년 12월 아돌프 히틀러와의 회담에서 그는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해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1940년 4월 독일군이 침공한 후 자신을 정부의 수반으로 선언했다. 그의 정권은 광범위한 계층으로부터 격렬한 공격을 받아 1주일 만에 붕괴되었지만, 그는 점령군의 군정 일을 계속 맡았으며, 1942년 2월 독일 제국 군정장관 요제프 테르보벤 밑에서 '각료 의장'으로 임명되었다. 교회와 학교와 청년들을 국가사회주의로 전환시키려 한 그의 시도는 노르웨이인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1,000여 명의 유대인을 집단수용소로 보내 죽게 한 장본인으로 지목되었다. 1945년 5월 노르웨이가 해방된 후 체포되어 반역죄와 그밖의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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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책- 2차 세계대전 민중사:저자 도니 글룩스타인 | 역자 김덕련 | 오월의봄 | 2021.3.8.

민중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2차 세계대전 야만, 압제, 독재, 파시즘, 제국주의와 맞서 싸웠던 사람들 그들에게도 2차 세계대전은 ‘좋은 전쟁’이었을까? 미국ㆍ영국ㆍ소련 등 연합국은 왜 ‘민중의 전쟁’을 탄압했나?
그들은 진정 파시즘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싸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