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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대독 투쟁을 하다가 나중엔 협력했다는 혐의로 종전 후 처형당한 인물 ]드라자 미하일로비치(Draža Mihailović)

Bawoo 2021. 5. 5. 21:12

Draža Mihailović in 1943  

드라골류브 "드라자" 미하일로비치(세르비아어: Драгољуб "Дража" Михаиловић, 1893년 4월 26일 ~ 1946년 7월 17일)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활동한 세르비아계 유고슬라비아 장군이다. 그 추종자들에게는 드라자 삼촌(Чича Дража, Uncle Draža)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완고한 군주주의자 왕당파였던 그는 독일군이 1941년 4월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하자 유고슬라비아 육군 체트니크 분견대라는 유격대 조직을 조직하여 베오그라드 근교의 산 중에서 싸웠다. 미하일로비치의 체트니크는 유고슬라비아 최초의 반독 투쟁이었으며, 그 뒤를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공산주의 파르티잔이 뒤따랐다. 체트니크와 파르티잔은 처음에는 협력했으나 1941년 후반부터 전후 유고슬라비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항쟁하기 시작했다.

잡다한 민병 조직을 긁어모아 만든 체트니크가 파르티잔의 대독 투쟁 성과를 따라잡지 못하자 영국은 런던에 망명정부를 꾸리고 있던 유고 국왕 페타르 2세에게 압력을 넣어 체트니크와 미하일로비치를 버리고 티토와 손잡을 것을 종용했다. 국왕에게 버림받은 체트니크는 독일군과 협력하게 되었고, 미하일로비치는 종전 이후 신생 공산 유고연방에 의해 체포되어 반역죄 및 전쟁범죄 혐의에 대해 사형을 선고받고 베오그라드에서 총살된다.

미하일로비치가 정말 전쟁범죄를 벌였는지, 만약 벌였다 할지라도 사형에 해당되는 극범죄인지 여부는 1940년대 당대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이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미하일로비치 사후 미국의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그에게 공로훈장을 수여했으며, 2005년 세르비아 고등법원은 미하일로비치를 복권했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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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장교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체트니크로 알려진 유고슬라비아의 왕당파 지하군 사령관(→ 체트니크).
별칭은 Draža.

육군장교였던 그는 발칸 전쟁(1912~13)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투 경험을 쌓은 후 1941년 4월 독일군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할 당시 대령으로 복무하던 중 유고슬라비아군의 항복에 순순히 따르기를 거부했다.

미하일로비치는 왕당파인 체트니크를 조직했는데 이들은 주로 세르비아에서 활동했다. 그는 1941년 장군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페타르 왕의 망명정부는 그를 전쟁장관에 임명했다. 미하일로비치가 이끄는 체트니크와 티토가 이끄는 공산주의 노선의 유격대는 함께 독일 점령군에 저항했지만 정치적 차이로 불신이 생기자 결국 무력충돌까지 빚었다(→ 파르티잔).

독일군 점령 초기에 벌인 체트니크의 항쟁이 보도되자 연합군은 크게 사기가 올랐고 미하일로비치는 영웅적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세르비아인들에게 가혹한 보복이 돌아올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미하일로비치는 연합군의 지원이 늘어날 때까지 소극적인 항쟁 정책을 취했고 유격대는 정면대결 정책을 지지했다. 연합군은 유격대의 정책을 더 좋아했고, 특히 이탈리아가 차지한 지역에서 체트니크가 독일군에 협력하여 유격대에 불리한 일을 했다는 보도에 접한 연합군은 미하일로비치 대신에 티토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전쟁이 끝난 뒤 미하일로비치는 숨어버렸다. 그는 1946년 3월 13일 붙잡혀 반역죄와 독일에 협력한 죄로 고발되었다. 미국의 조사위원회가 미하일로비치와 그의 명령을 직접 받았던 이들의 결백을 밝혔지만 이것을 놓고 아직도 몇몇 역사가들 사이에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 위원회는 또한 연합군에 대한 그의 군사적 지원과 격추된 연합군 공군 몇 백 명을 구해준 그의 노고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러나 티토를 지도자로 하는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미하일로비치와 함께 일했거나 그가 구출해준 여러 연합군 장교의 증언을 부정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다. 1948년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은 그에게 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다음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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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위키]

Dragoljub "Draža" Mihailović[a] (Serbian Cyrillic: Драгољуб Дража Михаиловић; 27 April 1893 – 17 July 1946) was a Yugoslav Serb general during World War II. He was the leader of the Chetnik Detachments of the Yugoslav Army (Chetniks), a royalist and nationalist movement and guerrilla force established following the German invasion of Yugoslavia in 1941.

Born in Ivanjica and raised in Belgrade, Mihailović fought in the Balkan Wars and the First World War with distinction. After the fall of Yugoslavia in April 1941, Mihailović organized the Chetniks at Ravna Gora and engaged in guerrilla warfare alongside Josip Broz Tito's Partisans against occupying German forces. Opposing strategies, ideological differences and general distrust drove them apart, and by late 1941 the two groups were in open conflict. Many Chetnik groups collaborated or established modus vivendi with the Axis powers, which along with British frustration over Mihailović's inaction led to the Allies shifting their support to Tito in 1944. Mihailović himself collaborated with Milan Nedić and Dimitrije Ljotić at the end of the war.

Mihailović went into hiding after the war but was captured in March 1946. He was tried and convicted of high treason and war crimes by the communist authorities of the Federal People's Republic of Yugoslavia, and executed by firing squad in Belgrade in July. The nature and extent of his responsibility for collaboration and ethnic massacres remains controversial. In May 2015, Mihailović's verdict was overturned on appeal by the Supreme Court of Cassation of Serbia, citing his trial and conviction as politically and ideologically motiv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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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책 -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

저자 도니 글룩스타인 | 역자 김덕련 | 오월의봄 | 2021.3.8.

민중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2차 세계대전 야만, 압제, 독재, 파시즘, 제국주의와 맞서 싸웠던 사람들 그들에게도 2차 세계대전은 ‘좋은 전쟁’이었을까? 미국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