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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바로 알기] 같은 일본 다른 일본:김경화

Bawoo 2023. 2. 24. 12:35
* 미디어 인류학자가 읽어주는 일본의 속사정*

[소감] 지일 차원의 일본 알기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 중 한 권이라고 생각했다. 내용을 딱히 뭐라고 끄집어 내기는 어렵지만 읽다 보면 뒷 내용이 궁금해져 계속 읽게 되는 맛이 있다. 활자 크기가 읽는 데 지장 없을 정도 - 활자 크기가 작아 읽기를 포기하는 책이 꽤 된다. 다 몸이 늙은 탓이다. ㅠㅠ. -여서 좋았고 지질(紙質)이 갱지여서 젊은 시절 추억을 불러 일으켜준 점도 좋았다. 값 비싼 종이 사용하지 말고 갱지로 출판하면 출판비가 적게 들 텐데. 대신 글자 크기는 좀 크게. 노년층이 점점 더 많아지는 시대인데 상업성 측면에서도 그래야 하지 않겠나. ㅠㅠ. 

 

책소개:저자 프로필, 목차, 책 속으로는 책 메목을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진보와 반동의 시계추를 오가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읽어야
비로소 일본 사회의 ‘지금’을 이해할 수 있다

‘혐한’과 ‘반일’을 넘어서, 한일 양국의 현재를 직시하는
미디어 인류학자의 날카로운 시선!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미워도 배워야 할 나라’인가,
‘맛있는 스시를 먹을 수 있는 여행지’인가?

유통기한이 지난 관점을 버리고
일본의 ‘지금’을 직시하면 숨겨진 차원이 보인다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인 저자가 과거에 멈춰 있는 일본 사회에 대한 인상론을 극복하고자, 변화하는 일본의 현주소를 입체적인 시각으로 담아낸 책이다. 저자는 2019년 12월부터 격주로 일본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현안을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담고 있는 이면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단순히 외부자의 시각으로 그때그때의 이슈에 대해서만 다루는 게 아니라, 18년 간 일본에서 살면서 체화한 문화적 맥락을 녹여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이 책에는 ‘도쿄’라는 지역 공동체의 주민으로서, 다른 일본의 대학 사회라는 연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부지런히 참여관찰을 해온 결과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일본 사회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김경화 선생은 “변화하는 일본 사회와 문화의 역동성을 기술하는 데에 최적의 경력과 조건을 갖췄다”(이문웅 서울대 명예교수). 15년이 넘는 일본 생활에서 듣고 보고 경험한 일들, 일본 대학에서 디지털 미디어론을 강의하는 교수로서 대학생들과 나눈 대화, 다양한 연구자료와 인터뷰 등이 그의 통찰력과 결합하여 일본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4부로 구성된 본문 중 1부 ‘일본 사회,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에서는 일본 젊은이들의 사고방식, 한국과 일본이 공통으로 직면한 과제 등을 담았다. 2부 ‘11가지 키워드로 알아보는 일본 문화’에서는 집단주의, 자연 재난, 아날로그, 오타쿠, 매뉴얼주의 등 비교적 한국에 잘 알려진 현상이 현재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기술했다. 3부 ‘한국이라는 거울에 비춰본 일본 문화’에서는 ‘우치’와 ‘우리’, ‘오모테나시’와 ‘정’, ‘홀로 하기’와 ‘더불어 하기’ 등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특징을 비교했다. 4부 ‘국경을 넘나드는 미디어와 한일 관계’에서는 급변하는 정보 환경 속에서 한일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담았다.
이 책은 일본 사회와 문화에 대한 탐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문화가 어떤 얼굴로,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개별 사건들에서 본질을 읽어내는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일본은 물론 우리 사회까지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일본 현지에서 찍은 사진에 다채로운 일러스트가 더해져 이해를 돕는다.

현상 이면의 본질을 읽어내는 세밀한 눈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 친절하다, 내성적이다, 사과를 잘한다……. 한 번쯤 들어봤을 속설이다. 정말 그럴까? 저자는 일본의 어떤 문화적인 특성 때문에 우리가 그런 인상을 갖게 되었는지를 다양한 예시를 통해 설명하면서 오독을 방지한다.
예를 들어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라는 속설은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라는, 일본 문화 특유의 화법과 태도에서 비롯되었는데, 다테마에는 ‘외부에 밝히는 공식적 생각’, 혼네는 ‘진짜 속마음’을 가리킨다. 업무를 마친 상사가 직원에게 회식을 제안했다고 하자. 업무에 시달려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한 직원은 “안타깝지만 업무가 남아서 회식에 갈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했다. 직원은 업무가 남아 있다는 말(다테마에)로 회식에 갈 마음이 없다는 본인의 의사(혼네)를 에둘러서, 하지만 명확하게 표명한 것이다. 이처럼 혼네는 숨겨두는 속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들켜야 하는 속마음이다. 다테마에는 속마음을 감추는 수단이 아니라, 속마음을 들키기 위한 수단이다. 다테마에와 혼네의 문화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이 아니라, 간접적이나마 속내를 분명히 드러내는 능동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또한, 일본인이 ‘스미마센’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는 겸손의 정서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스미마센은 감사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으로, ‘남에게 빚지고 싶지는 않다’라는 자기만족적인 생각이 더 강하게 작용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진심을 담은 극진한 접대’를 뜻하는 오모테나시라는 개념 역시 그 속에 숨어 있는 독특한 문화적 코드를 이해하지 않으면, 일본인의 친절에 대해 오해할 수 있다. 오모테나시는 손님에 대한 배려와 서비스로 가시화되지만, 친절의 실천 기술을 가다듬고 궁극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자기만족적 환대의 문화에 가깝다.

한국과 일본, 서로를 거울삼아 비춰보다

저자는 또한 일본과 한국을 서로 비교하여 살펴보는 비교문화론적 관점을 제시하는데, 이를 통해 일본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돌아보게 된다.
일본의 ‘우치’는 가족이나 친구 등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뜻한다는 점에서는 한국의 ‘우리’와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한국의 ‘우리’는 사적인 교류와 친근함으로 뭉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일본의 ‘우치’는 공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우치’의 잘못은 ‘나’의 허물이라는 공식이 성립해, 남편의 불륜에 대해 아내가 사과하는 뜻밖의 일도 벌어진다. 일본의 ‘우치’는 장벽이 높아서, 결혼이나 입학, 취직, 개업 등의 공적인 계기를 통해서만 ‘우치’ 공동체에 소속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와 ‘남’의 경계선이 변화무쌍한 한국과는 달리, 일본인들은 사적 인간관계를 넓히는 데 소극적이다. 일본인이 내성적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역동성과 인간미가 넘치는 한국 사회에 비해, 일본의 인간관계가 차갑고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은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 정치나 자본 등 권력 근처에 뿌리내린 점을, 일본은 외국인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과 차별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국와 일본의 문화 차이에 따라 같은 기술이 다르게 진화하는 사례도 흥미롭다. 1990년대에 널리 사용된 개인용 무선호출기(한국의 ‘삐삐’, 일본의 ‘포케베루’)는 한국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한국의 삐삐는 목소리나 음악 등 소리를 전달하는 시끌벅적한 구술 미디어로 탈바꿈한 반면, 일본의 포케베루는 문자를 매개하는 과묵한 문자 미디어의 길을 택했다. 이는 인터넷 이용에서 한국은 구어 중심, 일본은 문자 중심이라는 차이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팟캐스트나 유튜브 등 음성이나 동영상을 활용하는 플랫폼이 빠르게 보급되었지만, 일본에서는 문자나 이미지로 소통하는 SNS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양국의 성씨 제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큰 차이가 있고, 이는 가족 개념의 차이까지 빚어낸다. 한국의 성씨는 씨족과 혈통의 계보를 강조하는 ‘속인주의’ 사고방식을 따르는 데 비해, 일본의 성씨는 고향이나 거주지의 특성이 드러나는 ‘속지주의’ 사고방식에 가깝다. 씨족의 계보를 중시하는 속인주의 전통에서는 혈연을 멋대로 바꿀 수는 없으니 성씨는 개인에게 주어진 본질이자 숙명이다. 반면, 속지주의 전통에서 성씨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혈연관계에 배타적으로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개인의 의지에 따라 끊을 수도 있고 새로이 맺을 수도 있는 상대적인 가족 개념인 것이다.

한일 관계를 지배해 온 단어 ‘혐오’.
이를 대체할 언어를 찾다

미디어 인류학자인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가 상대방을 어떻게 보여주는지에 주목한다. 우리는 미디어라는 렌즈를 통과하면서 ‘가공’된 결과로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그에 근거해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디어가 묘사하는 일본은 극우 사상과 배타주의로 얼룩진 사회이다. 일본의 한국 사회의 반일 감정을 불필요하게 부각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저자는 한일 양국에서 ‘혐한’이라는 말의 존재감이 커진 경위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혐한이 한일 매스미디어의 캐치볼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무시할 수 없는 정치 세력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在日特?を許さない市民の?’, 줄여서 ‘재특회’라고 부르는 단체는 자이니치나 한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일삼는 대표적인 혐한 세력이다. 이 단체가 발족한 것은 2006년. 한일 언론이 입을 모아 정체불명의 혐한을 걱정하기 시작한 지 무려 10여 년 뒤의 일이다.”(271쪽)
“언어에는 기묘한 힘이 있다. 우리는 언어가 현상을 기술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일단 언어로 형상화된 현상이 거꾸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혐오라는 언어가 오랫동안 한일 관계를 지배해 왔다. 이제 이를 대체할 언어의 실마리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276쪽)

‘혐오’를 대체할 언어의 실마리를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다행히 저자는 우려에 그치지 않고 그 가능성까지 소개한다.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거의 비극을 반면교사로 삼은 일본 시민사회의 노력 역시 존재한다. 바로 ‘FM요보세요’라는 라디오 방송이다. 1995년 1월 한신 대지진이 고베를 강타했을 때, 일본의 시민운동가들은 비영리단체를 꾸리고 ‘FM요보세요’(한국어 ‘여보세요’에서 따온 명칭)라는 라디오 방송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송출한다. 지진 피해를 입은 자이니치(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한국인과 북한 국적의 조선인)들에게 신속하게 재해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인들에게 자이니치 역시 지진 피해자이자 지역 공동체의 일원임을 정확하게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한일 관계가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에도, 일본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플랫폼에서 자발적인 정보 공유로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꾸준히 키웠고, 그 결과 제3차 한류의 흐름이 탄생했다. 또한 저자는 『82년생 김지영』을 제자들과 함께 읽으며, 한국 사회와는 다른 문화적 배경, 다른 젠더 감수성을 가진 일본의 젊은이들이 공감한 것에서, 평범함 뒤에 숨은 크고 작은 억압에 대항하는 문화적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친일 반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 사회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인류학자가 안내하는 이 흥미로운 여행에 함께할 것을 권한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