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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의 역사 1, 2: 박상하

Bawoo 2024. 7. 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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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감] 우리 역사의 상업 발달 측면(상업사)을 개괄적으로 조망한 양서. 잘 쓰인 소설처럼 재미, 흥미롭게 읽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 왕조는 상업을 억제했다. 의도적이었다. 나는 이를 권력을 쥔 지배계층만 잘 살면 된다는 통치방식인 것 때문으로 이해했다. 민중(백성)은 오로지 착취의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뭐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기는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 똑같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각설, 왕조국가인 조선시대에는  한성(서울)에 관급 물품을 조달하는 육의전, 전국을 돌아다니는 보부상, 지방의 주요 지역마다 있는 5일장 정도만이 있을 뿐이었다. 상업에 종사하는 자체를 천시하고 오로지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가 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이도 지배계층에 속하는 양반들에게만 해당되었다. 당연히  나라는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이게 무너진 게 1876년 일본과 맺은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 - 나무위키" 때부터이다. 공식적인 망국은 1910년이지만 그 이전에 이미 일본의 경제 침탈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육의전이 무너지고 일본인들이 득세한 틈바구니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본격적으로 상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토착기업도 생겨났다. 친일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권력을 그것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쥐고 있으니 그들에게 빌붙지 않으면 기업을 하는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은 해방 후 친일파로 재단되지만 이 책을 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됐다. 정치인처럼 자신만 호의호식만 한 것이 아니라 고용을 창출하는 긍정적인 면이 간과되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경험한 군사독재 시절에도 그랬다. 나처럼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은 체제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겉으로 표현 못하고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이었다. 반면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으로 귀결되어 민주화, 경제발전을 다 이룬 나라에서 살면서 노년을 보내고 있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언제나 먹고사는 문제였다. 뭐 소득 3만 불이 넘는 선진국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지금이라고 달라진 게 있겠는가. 사회기반 시설인 철도, 도서관을 이용할 때 나라 발전했다는 걸 실감하면서 가슴이 뿌듯함을 느낄 뿐이다. 빈부격차는 국력이 강해진 것 과 관계없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있게 마련이니까. 
     
     
    • 책에 관한 상세 해설은 아래 책소개, 목차, 출판사 서평을 참고바랍니다. [책소개: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발췌]*전문;

      사마천의 「화식열전」이 중국의 상인들에게 불멸의 상경(商經)이라 한다면, 일본을 경제 대국으로 굴기시킨 불멸의 상경은 시부사와 에이치의 「논어와 주판」이랄 수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역사에선 이 같은 상경이 없다. 율곡과 퇴계가 남겼다는 무수한 저서 속에도, 개혁 군주의 아이콘 정조의 많은 어록에서도,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의 책 곳간에서도, 문사철의 일체를 추구한다는 조선 선비의 서재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왜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라고, 그래서 부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외쳤던 역사가 없었는지 안타깝다. 2천여 년 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과 같은 19세기 만이라도 누군가 그 같은 상경을 써내고 널리 읽혔더라면, 우리 역사는 또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 책은 고통받는 격동의 역사 속에 파묻혀 끝내 발굴되지 않은 종로 육의전의 보부상단에서부터 해방 이후 대기업의 탄생까지, 선택된 소수의 사실만이 살아남은 100년 동안의 한국 상업사(商業史)를 그려내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 박상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역사는 가장 진실한 통찰을 준다는 일념 위에,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베네디토 크로체의 철학을 더해, 현대적 인문학 가치로 사회성 짙은 역사를 재발견하는 글쓰기를 지속해오고 있다. 1995년 허균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등단했으며, 2000년에는 문예진흥원 소설부문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저서로는 「명성황후를 찾아서」, 「은어」, 「진주城 전쟁기」,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 「박승직상점」, 「왕의 노래」, 「다산의 열아홉 번」 등의 장편소설과 「경성 상계」, 「한국인의 기질」, 「삼성경영 현대경영」, 「조선의 3원3재」, 「치욕」, 「한국인의 원형을 찾아서」, 「역사소설 작가수업」, 「보수의 시작 퇴계, 진보의 시작 율곡」, 「반란의 역사」, 「율곡평전」 등 다수가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일러두기

      들어가는 글
      사람은 누구나, 어차피 그 무언가를 팔면서 살아간다

      「제1장」 5백 년 전통의 조선상계 ‘종로 육의전’과 ‘보부상단’
      백여 년 전 서울의 풍경, 신비로운 샹그릴라
      5백 년을 이어온 조선의 상계, ‘종로 육의전’
      종로 육의전, ‘금난전권’으로 상권을 지켜오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생게망게한 옛 ‘장터 풍경’
      두메산골의 장터까지 누빈 장돌뱅이 ‘보부상’
      ‘조선상계’의 길목을 장악한 전국 4대 상단商團

      「제2장」 개항, 조선 상계 ‘종로 육의전’의 붕괴
      왕조의 도성 안에 격증하는 일본인들
      개항으로 급조된 인천의 제물포
      호텔의 탄생, 대불호텔에서 손탁호텔까지
      개항으로 붕괴하고만 종로 육의전의 최후
      종로 육의전의 마지막 후예 ‘대창무역’

      「제3장」 5백 년 ‘한성’에서 상업 중심의 근대도시 ‘경성’으로
      변모해 가는 한성, 도심 속을 달리는 전차
      강철 같은 별표 고무신과 안창남에 열광하다
      유행을 키운 활동사진, ‘몽 파리’
      돈 놓고 돈 먹기, 불붙은 전당포와 고리사채업
      은행의 탄생, 조선은행에서 동일은행까지
      우후죽순처럼 세워지는 근대 건축물들

      「제4장」 경성의 젊은 상인들, 종로 거리로 돌아오다
      궁중의 비방으로 탄생한 동화약방의 ‘활명수’
      왕조가 망하자 잡화 상점 차린 왕족
      개화경 장사로 종로 상계에 다시 진출하다
      경성의 자동차왕, 민규식에서 방의석까지
      맨손으로 이룬 첫 근대기업가 ‘박승직상점

      「제5장」 조선의 3대 재벌 김성수·민영휘·최창학
      조선의 3대 재벌, 김성수·민영휘·최창학
      은행장 박영철, 민대식, 김연수의 하루
      조선은행 지하 금고와 총독부 월급 3백만원
      ‘종로 삘딍’과 ‘한청 삘딍’의 빌딩 쟁탈전

      「제6장」 경성의 젊은 여성들, 시대를 거역하다
      조선극장과 단성사, 명월관과 식도원
      신문사 사장 월급 5백 원, 4만 원 저축하는 기생
      최초의 토키-영화 ‘춘향전’ 첫날 흥행 1,580원
      60만 원 던져 호텔 짓는 김옥교 여사장
      현대 ‘쌀라리맨’의 수입과 경성의 자동차 대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사의 찬미’

      「제7장」 꿈의 노다지, 황금 열풍에 휩싸이다
      꿈의 노다지, 10조 원의 운산광산
      금광왕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되다
      노다지 꿈 이룬 간호사 출신의 금광 여사장
      신흥광산의 광부들, 습격 폭파사건
      동척으로 넘어가고만 노다지 꿈의 에필로그

      「제8장」 조선의 물류업계에 새벽이 열리다
      ‘조선미창’, 조선 물류업계의 새벽을 열다
      자본금 3조8,500억 원, 종업원 5만 명의 ‘조선운...

       

      [2권 목차]

      「제9장」 육의전의 영광을 간직한 종로통으로 진출하다
      24살 청년, 지물업체 사장으로 입성하다
      육의전의 영광을 간직한 종로통으로 진출하다
      최남, 조선 최초로 백화점을 세우다
      개의 시간이 가고 늑대의 시간이 오다

      「제10장」 종로 화신백화점 vs 혼마치 미쓰코시백화점
      라이벌 동아백화점 인수 비결은 ‘미인계’
      미쓰코시·조지야·히라다·미나카이에 도전하다 …
      대화재에 휩싸인 화신백화점
      한국 자본주의 메카, 종로통 상가의 풍경

      「제11장」 상업자본에서 산업자본으로의 진화
      해외에서 맨손으로 일궈낸 근대 기업가들
      조선 최고 부자 민영휘의 최후
      김연수, ‘산업의 아버지’가 되다
      해외 진출 1호, 조선 최고의 대기업 ‘경성방직’
      ‘라초이’ 접고 미국에서 돌아온 유한양행의 유일한

      「제12장」 걸음마를 시작한 10대 기업의 풍경
      8·15해방 전, 걸음마를 시작한 10대 기업의 풍경
      해방 직후 황금알을 낳는 ‘정크무역’
      상계의 기업 마카오무역에서 비즈니스를 익히다

      「제13장」 8·15해방, 새로운 응전과 황금빛 기회
      194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
      ‘동척’의 85개 계열 기업, 폐쇄되다
      ‘반민反民 1호’, 화신백화점의 박흥식이라고?
      주인 없는 황금 거위 ‘적산기업’을 잡아라
      국내 최대 기업 ‘미창’, ‘조운’, ‘경방’의 운명은?

      「제14장」 새벽 전파를 타고 날아든 화폐개혁의 날벼락
      이병철·정주영,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 직후까지
      6.25전쟁, 재앙과 기회가 공존한 시련이었다
      오사카는 밀수 본거지, 대마도 전진기지
      새벽 전파를 타고 날아든 화폐개혁의 날벼락

      「제15장」 1960년대 상계의 주역, 10대 그룹의 철옹성
      정치권력에 줄서기가 상계의 명운을 갈랐다
      적산 기업과 원조 자금, 두 번의 황금빛 기회
      재벌로 가는 마지막 열차는 전후 복구
      첫 국산차 ‘시발’ 서울 거리를 내달리다
      구경도 못한 참치 잡으러 원양어업에 나서다
      10대 그룹 삼성, 삼호, 개풍, 대한, 락희, 동양, 극동, 한국유리, 동립산업, 태창방직 …

      에필로그
      선택된 소수의 사실들만이 살아남은 100년 동안의 도전과 응전, ‘상계의 역사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선택된 소수의 사실만이 살아남은 100년의 도전과 응전, ‘상계의 역사’

      우리의 근대 상업사商業史는 일천하다. 이웃 나라만 보더라도 우리하곤 사정이 다르다. 중국은 이미 1872년부터 ‘상인을 초청해서 설립한 공기업’이란 뜻의 해운회사 ‘윤선초상국輪船招商局’ 설립을 시작으로, 상업을 넘어 기업이 급속하게 늘어났다. 일본 역시 민간 철도회사인 니혼철도(1881)와 오사카방적(1883)을 시작으로 근대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세워졌다. 그에 반해 우리의 근대 기업사는 턱없이 짧은데다 초라하기까지 하다. 20세기에 들어서야 겨우 ‘경성방직’과 같은 근대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나마 제대로 조명된 적도 없다. 왜 그랬던 걸까?

      이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역사를 붙잡고 따져 물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았을 때 상업사에서 기업사에 이르기까지 움터 오를 수 있는 토양이나 씨앗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땅을 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먼저 오늘날 우리의 토대를 이룬다는 조선왕조만 해도 그렇다. 조선왕조 땐 상업을 하고 싶다고 하여 아무나 상업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태조가 새 왕조를 창건한 이래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으면서 일반 백성들에겐 상업을 허락할 수 없다는, 이른바 ‘억말무본抑末務本’이라는 국시를 추상같이 견지 해온 까닭이다. 따라서 조선왕조는 상업에 지극히 부정적이었다. 상업 활동은 백성들을 간사하게 만들뿐더러 통치 이념의 교화에도 어긋난다 해서, 심지어 농산물의 유통에까지 소극적이었다. 유교의 정신주의만을 강조했을 뿐 자본 축적의 기회에 손이 미치지 못했다. 물론 선말에 이르면 통공通共을 시행하기도 한다. 정조(1791) 연간에 ‘누구나 상인이 될 수 있다’라고 선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 한성의 바깥에서나 가능한 소리였다. 도성 안의 알토란 같은 상권을 제외한 찌꺼기나 다름없는 나머지곳들, 그리하여 도성 바깥으로 나가 하찮은 푼돈이나 주고받는 상거래에 한정한다는 논의에 불과했다. 왕조의 기왓장이 허물어져 내리는 그날까지 우리에게 상업조차 존재할 수 없었다.

      반면 이웃 나라들의 사정은 사뭇 달랐다. 중국의 경우 4천여 년 전 대륙 최초의 국가인 하夏나라 때부터 벌써 상업이 출현했다. 3천여 년 전 주周나라 땐 상인들이 등장했고, 춘추전국 시대가 되면 이미 ‘재물의 신’이라고 불렸던 범려와 자공, 백규와 같은 큰 상인들이 경영의 진수를 한껏 뽐냈다. 이후에도 누대에 거쳐 상업이 천하와 두루 통하다通行天下, 19세기에 이르러 상업과 기업의 중간 단계랄 수 있는 ‘매판買辦’을 거쳐, 근대 기업으로까지 연착륙하게 된다. 일본 역시 일찍부터 상업과 금융업이 상업자본으로 꽃피웠다. 대표적인 상업자본으로 지금까지도 건재한 고노이케鴻池, 스미토모住友, 미쓰이三井 등을 들 수 있다. 고노이케는 1656년 환전업에서 일반 금융업으로 성장해갔으며, 스미토모는 1691년 이래 부동산 개발과 함께 동銅 거래를 시작해서 금융업으로 사업을 전개해갔고, 미쓰이는 1673년 의류상을 시작으로 대자본을 일궜다. 이쯤 되면 다시금 의문에 빠지게 된다. 한·중·일 삼국이 오랜 역사 속에서 다 같이 불교와 유교문화의 지배를 받아왔음에도, 자본 축적의 기회에서만은 우리가 뒤처진다. 유독 뒤처진 데다 초라하기까지 하다. 그저 단순히 유교를 국시로 삼은 왕조의 탓만이었을까?

      ‘만일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늙은 데다, 처자식은 연약하며, 명절이 되어도 조상에게 제사조차 올리지 못한다면, 더구나 가족이 한데 모여도 음식을 변변히 먹지 못하고, 입을 옷이 없어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우면서도, 그 같은 가난을 진정으로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참으로 못난 사람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런 이유로 재물이 없어 가난한 사람은 힘써 일하고, 재물이 조금이나마 있는 사람은 지혜를 짜내며, 이미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은 시기를 노려 보다 많은 이익을 좇게 된다. 이것이 곧 삶의 진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중국 고전 「사기史記」의 한 대목이다.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이 같은 대목이 아무 문제가 될 리 없다. 하지만 2천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사기」는 2천여 년 전인 중국 한나라 때 사마천이 쓴 대륙의 역사서이다.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 등 모두 130권 52만 6,500자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이다. 그 130권 중 〈열전〉의 70권 가운데 예순아홉 권째가 곧 「화식열전」이다. 앞서 인용한 문장은 이 「화식열전」에서 가려 뽑은 일부이다. 여기서 화貨는 재산이며, 식殖은 불어난다는 뜻이다. 춘추전국 말기부터 한 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상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들의 활약상을 꿰뚫어 본, 요컨대 재산을 늘리는 숨은 비책을 섭렵하고 있다. 특히 ‘재주 있는 자는 부유해지고, 모자란 자는 가난해진다’라거나, ‘사람의 모든 행위는 오직 부귀해지려는 몸부림이다’랄지, ‘이익을 추구하고, 가난을 치욕으로 여기라’는 먹고사는 민생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경제 능력이 사회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면서, 명분보다는 실질을 택하라고 목청을 돋운다. 가난을 돌이킬 수 없는 수치로 여기라고 외친다. ‘사농공상의 시대’에 상업을 천시했던 가치관을 일관되게 부정하고 거역하는, 당시로선 불손하기 짝이 없는 혁명적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사마천은 물러서지 않는다. 당대의 유학자들이 ‘이익을 추구하고 가난을 치욕으로 여긴 자’라며 거침없이 손가락질했던 상인들의 진가가, 딴은 본질적으로 유교의 정신과도 합치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때문에 방대한 역사서 속에 별도로 「화식열전」을 따로 구성해서, ‘이익을 추구하고, 가난을 치욕으로 여겼던’ 상인들의 삶을 조명하여 기탄없이 칭송하고 있다. 이유는 너무도 자명했다. 상인들이라 할지라도 ‘평범한 사람들로 정치를 어지럽히지 않을뿐더러 백성들의 생활을 방해하지도 않았고, 단지 상품의 매매에서 기회를 포착해서 재산을 증식하였을 따름’이라고 대변한다. 그런 만큼 ‘지혜로운 자라면 여기서 반드시 깨달은 점이 있어야 한다’고, 「화식열전」을 엮은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마천의 「화식열전」이 중국의 상인들에게 불멸의 상경이라 한다면,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불멸의 상경은 시부사와 에이치의 「논어와 주판」이랄 수 있다. 우리와 같이 ‘상업은 곧 악’이라고 일컫던 ‘사농공상’의 에도막부 시대에, 그는 전혀 딴 목소리를 낸다. ‘부귀는 인류의 성욕과도 같은 가장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욕구’라고 주장하면서, ‘에도 시대의 유학자들이나 송나라의 유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도덕과 이익 추구는 상호 모순의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 만큼 도덕과 이익 추구는 더불어 추구할 수 있다’라며 강조하고 나섰다.
      시부사와는 「논어」에 결코 부귀를 천시하는 내용은 없으며, 공자가 부귀를 악으로 보았다는 해석도 후세의 오독이라고 단언한다. 본래 공자는 부귀하여 방탕해지는 것을 경계했을 뿐인데, 마치 이것을 공자가 부귀를 혐오했다고 이해하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또 그는 이 같은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공자의 「논어」를 거듭 찾는다. 송나라의 주자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에도막부 시대의 유학은, ‘이利를 배척하고 인仁만을 강조’했기 때문에 「논어」와 다르다고 말한다. 공자가 당초에 의義와 이利는 불과 물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관계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의리 합일’을 외쳤다고 주장한다.
      에도막부 말기에 농업과 상업을 겸한 집안에서 자란 시부사와는, 27세 때 파리 만국박람회(1867) 시찰을 계기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산업제도가 얼마나 우수한지 몸소 체득했다. 유럽에서 돌아온 그는 메이지 정부의 조세국장과 구조개혁국장을 지내며, 일본의 화폐·조세·은행·회계제도를 근대적으로 개혁했다. 그러나 33세 때 ‘상업이 부흥해야 나라가 산다’는 일념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고위 관직을 스스로 버린다. 그런 뒤 ‘만약 부를 추구해서 얻을 수 있고 떳떳한 것이라면, 비록 말채찍을 잡고서 왕의 길을 트는 미천한 마부의 일일지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라는 각오로 상계에 투신한다. 이후 그는 미즈호은행, 도쿄가스, 도쿄해상화재보험, 태평양시멘트, 데이코쿠호텔, 지치부철도, 도쿄증권거래소, 기린맥주, 세키스이건설 등 500여 개에 달하는 기업을 설립했다.
      유교적 윤리와 더불어 현실적 시장 감각의 조화를 꾀하면서 ‘일본경제의 아버지’,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왼손에는 건전한 부의 윤리를 강조한 「논어」를, 오른손에는 화식의 「주판」을 들고서 당당하게 경제활동을 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그의 저서 「논어와 주판」은, 곧 일본 상계의 나침반이자 상경이 되었다. 일본 경제를 일으킨 ‘비즈니스의 바이블’로 불리며 지금껏 끊임없이 읽히고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역사에선 이 같은 상경이 없다. 율곡과 퇴계가 남겼다는 무수한 저서 속에도, 개혁 군주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가난한 백성들을 그리도 생각했다는 정조의 수많은 어록 속에서도, 무려 500여 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는 다산 정약용의 책 곳간 속에서도, 평생 출사하지 않고 종루거리의 거지 왕초로 살아가면서 애오라지 저작에만 몰두했다는 연암 박지원의 도서 목록을 다 뒤져보아도, 아니 그들 말고도 문사철의 일체를 추구한다는 수많은 조선 선비들의 서재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누구 한 사람 복숭아씨 같이 단단한 그런 불멸의 상경을 남겼다는 이는 끝내 찾을 길이 없다. 우리는 왜 가난을 치욕으로 여기라고, 그래서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피를 토하듯 부르짖는 역사가 없었는지 안타깝다. 요란한 빈말들이 아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낼 그 같은 고뇌가 부재했는지, 결과적으로 먹물들의 해오解悟는 있었을지 몰라도,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대각大覺은 없었는지 아쉽기 그지없다. 2천여 년 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과 같은 19세기 만이라도 누군가 그 같은 상경을 써내고 널리 읽힐 수 있었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또 어떻게 흘렀을까?

      이 책은 고통받는 격동의 역사 속에 파묻혀 끝내 발굴되지 않은 종로 육의전의 보부상단에서부터 해방 이후 대기업의 탄생까지, 선택된 소수의 사실만이 살아남은 100년 동안의 한국 상업사(商業史)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 이 책은 고통받는 격동의 역사 속에 파묻혀 끝내 발굴되지 않은 종로 육의전의 보부상단에서부터 해방 이후 대기업의 탄생까지, 선택된 소수의 사실만이 살아남은 100년 동안의 한국 상업사(商業史)를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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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담] 이 시기 정치적인 측면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보면 참으로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아래 한국사 연표 중1875년  운요호 사건 이후 역사 참조) 그런데 나라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건 태어났으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이런 큰 사건은 어쩌면 남의 일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제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는 부류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태어났으니 먹고살기 위해 사는 그런 삶이었을 것이다.   
  • 이 책을 보면 기업(부)을 일구려고 한 사람들은 세 번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해방 후 일본이 물러간 시기 그리고 한국전쟁기. 당연히 권력을 쥔 사람들과의 연계는 필수적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기업)의 부침사를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으며 알 수 있게 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