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소설을 쓰려는 사람은 소설이 거짓말 이야기라는 사실을 자기 자신에게 확인시켜야 한다. 남을 속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 누가 뭐래도 소설은 독자를 속여먹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1. 소설은 악의의 음모요 반역이다.
소설을 쓰려는 당신에게는 분명 어떤 악의가 있어야 한다. 인간이 믿고 있는 어떤 생각, 이를테면 전통적 규범이나 도덕적 가치를 다른 각도로 휘어놓거나 아예 무시하려는 그런 부정의 정신을 말한다. 지금까지 참말이라고 알려진 것을 참말이 아니라고 믿게 하려는 이야기가 소설이다. 악의가 아니고, 반역이 아니고서 어찌 이제까지의 참말을 뒤집어엎을 수 있겠는가. '그'를 아는 모두가, 심지어는 그의 부모까지도 그가 죽어 없어지기를 바라는 그런 구제불능의 악덕한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그'가 당신들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말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소설이다.
소설은 감춰져 있는 것 드러내기의 한 방법이다. 소설을 쓰려는 당신은 당신 속에 들어있는 그 어떤 것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봐야 한다. 당신이 꾸며내는 거짓말 이야기, 그것은 당신 자신의 이야기다. 소설가는 자서전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소설을 통해 자신을 다 풀어내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체험의 기록'이 문학이라 할 때, 당신이 하려는 거짓말 이야기는 당신의 체험을 토대로 했을 때라야만 상대를 감쪽같이 속여 넘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2. 소설은 과장이다.
'그 여자와 그 남자는 매우 애틋한 사랑을 했다' 또는 '전쟁은 비극이다'등등의 단순한 진술을 위해서 소설가는 오랜 시간을 끙끙거려 수백 장 혹은 수천 장의 이야기를 꾸며낸다. '아아 괴로워!'그 말 한마디면 족할 것을 중언부언 그럴싸한 말들을 끌어다가 자신의 내면이 매우 복잡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그 괴로움이 결코 단순하고 저급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독자는 현실의 일도 아니요, 자기 얘기도 아니라는 안도감에 과장된 그 거짓말 속으로 허심탄회하게 들어가 감동을 눈물을 맛본다. 좋은 소설이란, 자기가 읽은 소설이 결코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착각을 일으켜 현실 그 이상을 생각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럴듯하게 과장된 거짓말을 의미한다.
3. 소설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당신은 어떤 인간이 이러한 상황에 이렇게 대처해 나갔으며 급기야는 그 상황을 이런 의지로 바꿔놓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이와는 반대로 어떤 상황이 인간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 당신은 그 인간들이 만든 나쁜 상황으로 인해 이 지경이 된 그를 우리들 모두가 사랑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 실패한 소설이란 대부분 작가 자신이 사랑하지도 않는 그를 독자에게 내놓고 이 사람이야말로 당신들이 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란 발언을 소설 속에 끼워넣는 경우다. 소설은 인물 탐구며 성격 창조라는 기초에서, 성공한 소설은 모두 이러한 인간의식을 그려내겠다는 인물 창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것보다 앞서 있었음을 알게 된다.
4. 소설은 상상의 산물이다.
소설은 단순히 과거 감각의 인상을 그대로 재생해 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 체험에서 유추된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세계를 지향한다. 소설에 필요한 상상력은 대상을 의식하고 거기서 어떤 의미를 인식하려는 절박성으로 인해 구체성을 띄며 현실적이다. 상상력은 과거의 어떤 기억( 강력한 충격에 의해 각인된 것일수록 좋다 )이 현실의 어떤 대상과 만나는 순간 불꽃처럼 피어오른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풀리지 않는 답답함과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불꽃이며, 그 불꽃에 의해 피어오르는 문학적 상상은 인식된 대상을 변용, 변화, 융합시키는 즐거움을 동반한다.
5. 소설은 창조된 세계이다.
당신이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세계는 현실에서 유추된 세계이다. 그러나 결코 현실의 모사가 아니다. 어느 날 당신은 신문기자인 친구와 충청도의 어느 마을을 방문한다. 열녀가 많이 나와 나라로부터 세금까지 면제받았던 마을이라는 것이 옛 문헌에까지 고증된 김씨 마을에 대해 친구는 열광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 친구와 반대 입장에 서야 한다. 당신은 전통과 가문과 유교적 악습이 커다란 폭력이 되어 그 마을 여자들의 인권을 유린했다는 사실을 착안해야 된다. 그 여자들 중 어느 한사람이 그 폭력으로부터 도망치려 몸부림하던 일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결코 기록에 오를 수 없었던, 그러나 분명히 있을 수 있었던 그 작은 항거에 대한 생각, 그것이 바로 소설을 창조의 세계로 이끄는 개연적 진실이다.
구상
1. 선택받은 발상에 살붙이기.
실제로 발상이 되었대서 모두 소설로 발전되지는 않는다. 대개의 경우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느닷없이 '아, 그걸 쓰면 되겠구나'하는 끌림을 받은 뒤 살이 붙기 시작하는 그런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떠오른 생각을 그때그때 메모해둔 것이 소설로 발전된달 때 메모의 필요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구상이란 생각을 얽어 틀을 만드는 일이다. 생각은 고정된 틀이 없는 것이어서 그대로 두면 산만해서 의미가 없다. 생각을 하나의 통일된 얼개로 묶어놓기 위한 작업을 구상이라 한다. 주제의식 불어넣기, 표현방법 찾기, 얼개 만들기의 구상단계에서 세 가지 유념할 원칙이 있다.
(1) 이야기의 중심을 분명히 잡아 산만한 글이 되지 않게 할 것.
(2) 지리한 글이 안 되게 꼭 필요한 이야기만 넣되 독자를 긴장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할 것.
(3)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 것.
2. 분명한 주제의식으로 시작한다.
살아있는 진실된 이야기를 위해 주제의식을 분명히 해야 된다. 그러나 주제의식의 빈약도 문제지만, 주제의 노출은 더 안 좋다. 주제가 빈약하면 읽는 사람에 따라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명시적인 주제는 소설의 형상화를 방해하는 가장 분명한 요인이다. 소설의 주제는 수필처럼 이 얘기는 바로 이것을 말하려 쓴 것이라고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단순하고 가시적인 것은 아닌, 보다 암시적이고 함축적이며 복합성을 필요로 하는 성질의 것이다. 분명한 것은 소설의 주제는 작품의 앞에 있는 것도, 뒤에 있는 것도 아닌, 그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중심원리로서의 어떤 힘이다.
3. 의식은 분명히, 그러나 이야기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
당신이 조심할 일은 성질 화끈한 독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성급하게 당신의 의도를 노출시키는 일이다. 그네들이 소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하나 당신이 말하는 그 무엇에 대해서는 당신보다 여러 면으로 또 더 깊이 알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쓰지 말고, 독자와 섣불리 정면으로 맞서지 말라. 당신은 사상가도 철학자도 정치쟁이도 아니다. 주제에 대한 강박감이 당신을 철학가로 사상가로 착각시킬 수도 있으나 당신은 오직 당신이 만드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과 겨뤄야 한다. 당신이 혹은 독자들이 그렇게 신경 쓰는 주제를 당신 자신만이 아는 방법으로 슬쩍( 그러나 의식은 분명하게 ) 당신의 특기인 당신이 만드는 이야기 속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독자들은 섣불리 주제를 꺼내려 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야기 속에 풀어 넣은 주제는 보다 음전스러운 모습으로 그 이야기가 주는 감동과 함께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몫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열 명의 독자가 당신의 이야기를 읽었으면 이제 당신의 의도가 열 가지 이상으로 확대됐다는 생각을 해도 좋을 것이다.
'뭔가 말하려 하는 건 알겠는데 이야기가 제대로 안됐어.'
'이야기는 그런대로 됐는데 왜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위 두 가지 지적들은 독자가 당신이 만든 소설을 그네들의 몫으로 나눠 갖기를 거부하는 결정적 불만이다. 형상화의 실패가 그 원인이다.
4. 주제의식이 분명해야 이야기의 초점이 모인다.
횡설수설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말하고자하는 어떤 무엇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산만하다는 것은 그 이야기 전체를 통어할 어떤 중심이 없기 때문이다. 구상을 할 때 유념할 또 하나는 꼭 필요한 이야기만을 유효적절하게 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5. 독자를 긴장시켜 사로잡아야 한다.
소설이 독자를 긴장시킬 수 있는 것은 독자가 그 이야기에 흥미를 가졌을 때만 가능하다. 추리 소설이 독자를 사로잡는 그 기법을 알아보는 일도 구성공부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소설을 소설답게 하는 묘미와 그 힘은 독자가 한눈을 팔 수 없도록 하는 긴장감 조성에 있다. 긴장감이란 단순히 호기심을 유발하는 스토리의 흐름이 아니고 작가가 계속 던지는 질문과 몰래몰래 감추어 온 의미 찾기에 독자가 기꺼이 참가하고 싶은 자발적 노력이 생기도록 유도하는 힘이다.
6.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한다.
재미있는 소설이란 읽히는 이야기로서의 요소를 갖춘 것을 말한다. 찾는 이의 지적 수준이나 취향에 따라 상당히 다르겠지만, 당신만이 해보일 수 있는 그런 재미를 당신이 쓰려는 소설의 힘으로 구현시키는 일, 그것이 구상의 묘미이다.
7. 꼭 필요한 이야기만 적적한 비율로 배분하라.
구상이 잘된 작품이란 주변적인 이야기를 적당히 배분하여 작가가 의도한 바를 살리기 위한 일에 보탬이 되는 것을 말한다. 바로 핵심화의 원리에 따라 모든 사건과 인물과 배경이 서로 끌어당겨 필요로 하는 관계로 이루어져야 한다. 불필요한 삽화를 과감하게 잘라버리는 욕심의 억제, 진정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8. 자신의 장기가 있는 쪽에서 이야기를 풀어라.
한승원은 '언덕씨름을 하면 이긴다'고 했다. 즉 자기가 유리한 지점에서 승부를 해야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호랑이와 악어의 싸움에서 그들은 서로 유리한 곳으로 적을 끌어들이려고 할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감각, 취향, 개성에 맞는 배경과 분위기와 인물과 사건을 다뤄야 한다. 소설가 지망생이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재능이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 데 적절할 것인가, 자신의 장기를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가 하는 것을 빠른 시간 안에 파악하여 그 방면으로 넓고 깊게 파고들어가 '자기 언덕 만들기'의 치열성으로 시작할 일이다.
9.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당을 찾아야 한다.
당신이 구상하고 있는 그 이야기를 어떤 색조, 어떤 어조로 할 것인가를 구상단계에서는 분명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림의 바탕색과 같이, 그 이야기의 얼개와 방향성, 등장인물의 운명을 암시, 예언하는 역할을 한다. 필자는 중편 <투석>을 구상할 대 다음과 같은 톤을 의도했다.
- 돌이 날아드는 그 집의 분위기를 되도록 암담하게, 생각의 흐름도 되도록 어둡고 비감스럽게, 현실문제에 대한 인식을 다룰 때는 되도록 의지적인 문체로, 돌의 상징성을 작품 여러 곳에 배분하되 노출시키지 말 것.
발상이 영감처럼 왔다고 해서 그 구상도 빠른 시간에 이뤄져야 한다는 법은 없다. 집짓는 데 설계가 필요하듯 구상은 당신이 쓰려는 소설의 뼈대와 그 살을 붙이기 위한 성찰과 판단의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시간이 길고 신중할수록 좋다.
구성
1.새집 설계는 살던 집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플롯이 없는 소설, 그것은 그 소설의 특징이며 또 다른 플롯의 시도다. 그러나 독창적인 것의 시도는 기존의 틀을 완전히 이해하고 습득했을 때만 가능하다.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는 그 관념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소설은 유기체로 파악되는데, 부분과 전체가 필연적인 관계를 지니면서 은밀히 혹은 어떤 충격적인 효과를 준비하여 독자를 사로잡는 살아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꼭 필요한 것들만의 필연적 결합이어야 한다.
2.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를 찾아 선택, 정돈 ,배열되는 질서 찾기.
아우트라인 작성이 이러이러한 집을 짓겠다는 희망의 청사진이나 조감도라면, 구성은 전문가가 실제적 구조를 도면화한 설계도이다. 작가의 주제의식, 인물, 작품의 분위기, 시점, 문체도 구성의 설계도 속에서 얻어진다. 아우트라인 작성 과정에서는 미처 고려되지 못한 사건과 사건들이 연계되는 필연성이 인과관계를 뼈대로 하여 검토되고 계획되어 하나의 완전한 구조를 지향하는 작업을 구성이라 한다.
3. 모든 소설은 구성된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극히 우연적이며 돌발적이다. 신문기사를 예로 들자.
- 24일 오후 4시 15분쯤 경북 칠곡군 왜관읍 내곡동 경부고속도로 왜관인터체인지 부근 상행선에서 대구에서 서울 쪽으로 가던 대구 5897호 로얄프린스(운전자 박재봉.36)가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에서 오던 경북 4643호 16인승 버스(운전자 정삼암.45)와 정면으로 충돌, 승용차에 타고 있던 운전자 박씨 일가족 5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숨진 사람은 운전자 박씨와 박씨의 부인 윤기복씨(25)와 아들(2) 조카 윤경양(9) 외에 박씨의 형수로 추정되는 30대 여자 등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사고의 개연성은 물론 희생자들과 연관된 어떠한 인간적 갈등이나 고통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작가들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우선 그 사고가 우발적이지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위해 그날 아침의 고속도로 상황을 불길하게 묘사할 수도 있다. 사고가 나기전의 승용차에 탄 사람들이 내일 있을 얘기로 언쟁을 벌이는 내용을 삽입하는 것도 좋다. 그 차에 어떤 묘령의 여인이 타게 된 경위와 그 문제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고조시킴으로써 긴장된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4. 쓰여 지는 모든 이야기는 취사선택된 것이다.
소설뿐이 아니고 글로 쓰여 지는 모든 이야기는 구성된 것이다. 즉 그 이야기를 만들려는 어떤 의도에 맞춰 모든 요소들이 취사선택된다는 사실이다. 필요한 것들만을 뽑아서 쓴다는 것이 소설구성에서 유념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5. 소설구성의 요체는 인과관계에 있다.
포스터는 스토리를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정리된 사건의 서술'로, 플롯을 '인과관계에 중점을 둔 사건의 서술'로 구분했다. 소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사건은 동기가 있고 그 동기에 의해서 유발된 무수한 사건들은 반드시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어떤 결과에 이른다. 그 인과관계의 시작과 끝을 위해서 작가 나름의 질서와 법칙을 부여하는 것이 소설의 구성이다. 플롯은 독자가 자신의 기억력과 지적인 논리를 모두 동원하여 이야기 전개에 동참케 한다. 예술적 의도를 가진 짜임새여서 때로는 진행이 지루하여 답답한 경우도 있으나, 그 답답함 속에 작가가 노리는 소설 미학이 감춰져 있을 수도 있다.
6. 인과관계를 위해선 사건 속 인물들이 개연성을 가져야 된다.
몇 년 전 신문에 났던 일단 기사내용이다.
- 고층 아파트 14층 베란다에서 갓난아이가 떨어진다. 그러나 그 밑을 지나가던 그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떨어지는 아이를 받아낸다. 그 어머니가 약간 다쳤을 뿐 어린아이는 말짱했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므로 어린아이가 어떻게 떨어지게 되었는지, 과연 14층에서 갓난아이를 받아내는 게 될법한지 의문은 제기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작가가 콩트로 썼다면 그야말로 거짓말쟁이란 비난을 면치 못할 일이다. 소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는 결코 안 된다. 독자들은 소설 속에 우연성을 용서하지 않는다. 소설에 구성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왜 어머니가 그 밑에 있었는가, 이것이 구성에서의 개연성의 문제다.
7. 갈등의 연출, 소설 구성의 핵은 갈등에 있다.
이야기를 짠다는 것은 그 이야기 속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얽힘을 뜻하며, 그 요소들은 나름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의 갈등을 열, 대비, 진행시키는 데 따라 소설의 맛은 변한다. 갈등의 고전적 정의는 악과 선, 도덕과 비도덕,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환경. 제도, 인간 내면의 복잡한 심리 등의 크고 작은 대립과 혼란이다. 갈등이 꼭 대립으로 이해되는 것은 옳지 않다. 생각하는 방법이나 개성이, 등장인물들 나름의 철학이 다양한 모습으로 대비 조화되는 것도 갈등이라고 한다. 구성이 갈등을 중요 요소로 삼는다 해서 모든 것을 대립시키는 도식적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 소설을 소설답게 하는 갈등은 이음새가 안 보이는 땜질처럼 그 갈등 자체가 겉으로 안 드러나게 하는데 있다. 갈등은 구성의 핵일 뿐 이야기의 얼개자체는 아니다.
8. 갈등은 절정을 향해 집중적으로 치달려야 한다.
아무리 단순한 구성의 단편소설이라 해도 그 속에는 여러 개의 갈등이 서로 밀고 당기는 관계를 가지며 중심 갈등으로 모여든다. 갈등의 고조는 얽힌 것이 풀릴 기대를 동반한다. 그 사람은 결국 그런 생각에서 이런 일을 벌였구나하는 해답이 얻어질 가능성이 전제된 갈등의 고조가 절정이다.
필자의 졸작 <우상의 눈물>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 최기표는 학교의 골칫덩이로 모든 학생들의 공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우상으로 군림한다. 선생들이 보기에 그는 악마처럼 음흉하고 교활하다. 그런 최기표를 무력화하기 위한 작업이 담임과 반장에 의해 시도된다. 그들은 기표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불우한 가정환경을 찾아내 폭로함으로써 학생들의 우상을 라면이나 허겁지겁 건져먹는 배고픈 동물로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다. 순수한 악마를 한낱 부끄럼타는 아이로 변신시켜버리는 교활한 선의 그 음모와 지혜야말로 이 시대를 지배하는 힘의 논리가 아니겠는가.-
기표를 무력화시키는 작업이 갈등의 중심을 이루면서 기표가 한낱 부끄럼타는 아이로 변신되는 그 마지막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는 글을 남기고 가출하는 것을 절정으로 소설은 끝난다. 소설독자들의 절정에 대한 기대는 가슴 졸이는 불안감과 긴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사람의 정체는 도대체 뭔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래선 안 되는데 도대체 작가는 왜 이런 상황으로 끌고 가야 하는가' 독자가 끌려들지 않을 수 없는 힘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게 추리적 수법이다. 실제로 소설의 구성은 작가와 독자가 벌이는 알아맞추기 놀이다. 작가는 짐짓 시치미를 떼려하고 독자는 작가가 감춘 것을 찾아내려 한다. 그 감추고 찾기에 집중하는 것이 추리소설이나 모험소설이고, 대중통속소설도 그 범주이다. 그런 소설은 독자를 계속 긴장시키기 위해 놀라운 일들을 준비하는 구성법을 착안한다. 안방극장의 드라마의 흐름이 그렇다. 다음날에 어떤 결판이 날 것 같은 기대로 끝나지만 그 기대는 엉뚱한 일로 깨지면서 또 새로운 호기심을 유발한다. 작가가 되려는 당신은 추리소설이나 안방극장의 그런 드라마를 통해서도 구성의 기교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연결이 어떻게 개연성을 잃고 마는가를 찾는 공부다.
9. 구성의 단계는 무시하는 것이 좋다.
소설을 발단, 분규, 절정, 결말 등으로 나누는 구성의 단계가 실제로 창작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구성의 유형을 알아보는 일은 바람직하다.
상황이나 사건을 중요시하는 소설은, 세태소설, 현장소설, 모험소설, 상황소설로서,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긴박감이 있으며 흥미위주로 구성된다. 이런 인간이 이런 생각으로 그 상황이나 사건을 어떻게 극복했나를 관심으로 삼는 쪽도 많다. 인간의 의지나 신념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바꿔나가는지를 살펴보는 구성으로, 주로 사회적 여건이나 그 제도와의 싸움을 벌이는 구조를 취한다. 인간의 심리상태를 중시하는 소설은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개성, 심리흐름을 중심구조로 한다. 심리소설, 성장소설로서, 대체로 느슨하고 세밀하며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견해의 차이가 크다. 주로 도덕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이 바탕이 된다. 추상적 관념적 세계를 구성의 중심요소로 삼는 소설은, 작가의 신념이나 철학내지 사상을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구현한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구성이어서 무기교의 구성법을 취하고 갈등의 진폭이 적다.
10. 구성의 진행방법을 터득하라.
하나의 사건이 단일 궤도를 따라 진행되는 단선적 구성이 있다. 곁가지 없이 집중적으로 전개해나가는 방식이다. 단선적 구성은 말하고자하는 바를 분명히 밝히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다. 목적의식을 지닌 소설일수록 그렇다. 이와는 달리 두개 이상의 이야기를 평면적이고 입체적으로 동시에 진행시키는 복선적구성은 더욱 많이 쓰인다. 주로 장편소설에 쓰이나 현대소설은 중단편에서도 사용된다. 중심이야기와 다른 작은이야기들이 병행된다. 어떤 것은 또 하나의 이야기가 곁다리로 붙어 나와 가지를 쳐 중심이야기를 돕는다. 아예 그 곁가지가 슬그머니 중심이야기로 들어앉기도 한다. 복선적 구성은 두개 이상의 이야기가 독자적인 구성에 의해 질서와 균형을 잡으면서 완벽하게 결합되는 묘미를 보여야한다.
11. 선택한 것 배열하기엔 비율이 중요하다.
복선적 구성에서 여러 이야기의 배열 방식과 비율은 중요하다. 옛날이야기나 전기문처럼 시간의 순차적 진행에 따라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가는 방법, 현재와 과거를 뒤섞어놓아 절정으로 달리는 입체적, 평행적 진행방법이 있다. 후자가 현대소설에 널리 사용되며, 과거와 현재가 나름의 일관성을 가지고 한 끈에 꿰어져야 통일된 이야기가 된다.
12. 복선적 구성은 모자이크화 기법으로 하라.
한 작품에 갑 을 병 세 사람의 이야기를 전개할 때 두 가지 진행법을 생각할 수 있다. 갑의 이야기 후 을과 병을 차례로 하는 것인데, 너무 낡고 단순하여 잘 안 쓰인다. 갑의 이야기를 적당한 데서 끊고 을의 이야기를, 다시 갑의 이야기로, 다시 병의 이야기로...마치 모자이크화를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색체와 모양이 다른 여러 개의 조각들이 모여 배색의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모자이크화는 바탕그림의 구성도 좋아야 하지만, 작은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앉는 조립의 구성력이 최고로 중요하다.
13.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 그것이 구성의 비법이다.
복선적 구성에서는 작가가 비중을 두는 부분에 따라 배열의 비율이 틀리다. 그때 이야기의 뼈대에 붙는 여러 삽화들은 꼭 필요한 것만 선택해 써야한다. 별로 필요치도 않는데 그냥 아까워 끼워 넣은 일화는 작품의 형상화에 결정적 흠이다.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 중요치 않은 것을 간략히 처리하는 절제력이 필요하다. 두개의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시키되 그 두개의 구성이 각기 다른 주제를 내포하도록 복선구조를 생각하라. 독자가 어느쪽 주제를 선택하느냐는 작가의 몫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독자로하여금 끝까지 읽도록 하는데 있다. 액자소설이라는 구성법은 좀 구식이긴 해도 하고 싶은 중심이야기를 자연스레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애용된다. 어떤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 하나를 넌지시 끼워 넣어, 나중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그것이 끝나면 다시 먼저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여운까지 계산된 구성법이다.
14. 단순하나 의미 있게, 분명하고 깊이 있게, 아름답고 균형 있게
아무리 복잡한 구성도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에 비하면 단순하기 그지없다. 인생의 그 복잡다단한 것을 단순하나 의미 있게, 분명하고 깊이 있게, 아름답고 균형 있게 만드는 게 소설이다. 구성의 가장 좋은 공부는 남의 좋은 작품을 찾아 꼼꼼하게 읽는 일이다. 외국의 명작은 그 습속과 사고의 신선함으로 소설구성의 새 방법을 터득케 해 줄 것이다.
문체에 관하여 -- 자기 목소리, 자기 말버릇 --
1. 자기 목소리만이 자기 세계를 만든다.
소설독서를 많이 한 독자들은 문장만 보고도 독자를 금방 알아낸다. 그렇게 이미 자기 목소리를 가진 작가야말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힌, 좋은 작품을 남긴 작가일 것이다. 작가가 자기목소리를 갖지 못했음은 소설을 통한 자기세계를 구축 못했다는 말과 같다. 소설에서의 자기 목소리란 문체(스타일)를 의미한다. 곧 소설이나 시에서 화자 혹은 작가가 말하려는 바를 드러내는 방법이다. 생각하는 방법이나 개성의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창조되는 모든 것은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
표현하는 투, 말하는 방법은 작가의 개성에서 비롯된다. '문체는 곧 그 사람이다'란 뷔퐁의 말처럼 작가의 개성과 인격이 문체를 결정짓는다.
3. 문장이 소설의 옷, 문체는 옷의 색과 모양새
문장이란 옷이 입혀져야 비로소 소설이라 명명한다. 같은 옷이라도 그 색이나 모양에 의해 사람의 성격과 개성이 드러나듯, 작가는 나름의 방법을 통해 소설을 만든다. 작가의 의도와 이야기 거리에 따라 문체는 달라진다. 사랑이야기는 되도록 부드럽게, 어떤 문제에 대한 불만이나 은폐된 비리의 폭로는 보다 냉소적인 어휘구사에 의한 강직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사랑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가 사회고발적인 얘기까지 잘 쓰란 법은 없다. 결국 작가는 자기 목소리에 맞는 이야기를 찾아내기 마련이다.
4. 솔직한 말, 자신 있는 얘기에서 자기목소리가 나온다.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 직접 체험한 것,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 결코 감춤이 없다는 허심탄회한 심정일 때 문체는 자연스레 선택된다. 잘 풀리는 이야기는 그 얘기에 걸맞는 문체가 저절로 생겨난다.
5. 자기 말버릇에 옷 입히기
문체는 작가의 말투, 즉 말버릇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사람은 상냥한 말투, 어떤 사람은 무뚝뚝한 말투를 쓴다. 목소리를 착 낮게 깔아 조용조용 말하는가 하면, 처음부터 목소리를 높여 좌충우돌 듣는 사람의 혼을 빼는 말투도 있다. 물론 작가의 말투는 주제나 제재에 따라, 독자의 층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6. 문체를 결정짓는 요소, 첫째가 언어 선택이다.
말투는 당신이 선택하는 언어에 의해 만들어진다.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어휘에 의해 자기 목소리를 만든다. 때로는 고상하고 우아한 말투를, 때로는 야비하고 천박한 말투를 구사하는 것도 모두 작가가 선택한 어휘에 의해 결정된다.
예).인간은 그 생명의 유한함을 망각할 때가 허다하다.
.사람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늘 잊고 지낸다.
.니두 내두 다 뒈진다는 거 몰랐냐?
어떤 작가는 한자어를 많이 구사하는 일이 문장 만들기에 편하다고 하고, 다른 작가는 순우리말을 쓰는 것이 좋다고 한다. '곤충'이라고 써야 어울릴 때가 있고, '벌레'가 어울릴 때가 있으며, '버러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7. 문장의 구조도 문체를 결정짓는 요소의 하나다.
선택된 어휘를 어떤 질서에 의해 나열하는가, 어떤 구문이 효과적인가를 익히게 되면 그것이 자기 말투를 이루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예).진호는 그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속마음에 깊이 다졌다.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그를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다시는 안 만날 거다. 진호는 자신에게 그렇게 다짐 두었다.
문장의 길이나 단문과 복문의 비율도 문장의 구조에 속한다. 복문의 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의 호흡과 짧은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의 호흡은 차이가 난다.
8. 수사, 문장의 패션
문체를 결정짓는 또 다른 요소는 비유의 쓰임과 빈도이다. 문학적 문장은 대체로 표현하려는 대상을 비유적 언어로 처리한다. 직유와 은유로 대상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게 비유적 언어의 사용이며, 속담이나 격언의 구사, 상징적인 말, 풍유, 대유, 의성, 의태 등도 비유에 해당한다. 작가로서의 재능도 비유를 통한 소설문장의 묘미를 보여줌으로써 확인된다. 귀에 익은, 죽은 비유는 문장을 진부하게 만들므로, 되도록 참신한 비유를 써야 자기 문체의 효과를 얻는다.
예)비는 분말처럼 뭉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흙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9. 문체는 선택하는 게 아니라 신명에 의해 우러나온다.
자기 개성에 맞는 문체, 억지로 만드는 문장에 의한 문체가 아닌, 그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신명나는 문체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어느 작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선택해서 쓰거나 흉내내는 것이 아니다. 자기 개성에 맞는 문체, 쓰려는 이야기에 맞는 말투, 그것을 읽는 독자의 수준이 가늠되어 독자가 매료되는 그런 말투를 찾아야한다.
10. 그 작품을 쓰는 태도가 당신의 어조를 결정한다.
어조(톤)도 문체를 결정짓는 요인이다. 어조란 작가의 제재에 대한 혹은 독자에 대한 태도를 의미한다. 쓰려는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기분이며, 그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배경음 같은 것, 혹은 바탕색 같은 것이다. 작가와 독자가 서로 묵시적으로 통하는 기분이며 공감대라 할 수 있다.
11. 작품발상 때의 기분, 그 의도를 문체와 연결하라.
문체는 작품이 발상될 때의 기분, 그 흥분상태에서 결정된다. 발상 때의 기분이 하나의 흐름이 되어 초고문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초고 때 떠오르는 어휘, 비유적 언어, 그 분위기를 되도록 살려야한다. 그 흐름을 놓쳐선 그 작품에 걸맞는 문체, 자기 호흡이 담긴 자신의 문체를 갖기 어렵다. 즉, 작품을 쓰려는 의도가 그대로 문체를 결정짓는다는 말이다.
12. 당신의 이야기를 쓸 때 당신의 문체가 생긴다.
당신의 문체를 얻기 위해 되도록 당신의 개인적 체험, 당신이 절실하게 생각한 바로 그 문제부터 쓰는 일이 중요하다. 자기가 잘 아는 이야기, 자신이 겪은 이야기는 자기의 목소리가 그대로 나올 수 있다.
13. 간결한 문체
소설을 처음 쓰는 사람은 간결한 문체를 써야한다. 긴 문장은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모호하게 만들거나 산만하게 할 우려가 크다. 우선은 단문(單文)을 쓰는 것이 좋다. 단문(單文)과 단문(短文)은 구별되어야 한다. 간결한 문장과 간단한 문장은 다르다. 문장을 짧게 끊어쓰는 게 좋다고 해서 생각을 토막 내서 단순화시켜선 안 된다. 간결한 문장은 뜻이 최대한 함축된 것이요, 단순한 문장은 생각을 토막 내서 나열한 데 불과하다.
短文)나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다섯 시였다. 그때 잠이 깬 것이다. 바깥은 아직도 캄캄했다. 옷을 찾아 입었다. 양말도 신었다. 세수를 했다. 양치질도 했다. 차표를 확인했다. 며칠전 예매해둔 것이다.
單文)잠이 깬 것은 다섯 시, 밖은 아직도 칠흙의 어둠이었다. 옷부터 챙겨 입고 세수를 했다 며칠 전 예매한 차표를 확인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14. 문체는 독자에게 낯설어야 한다.
이왕이면 표현효과가 큰 문체를 써야한다. 남들이 항상 쓰는 진부한 표현으로 효과를 얻기 힘들다. 독특하고 참신한 말투로 독자를 긴장시켜야 한다. 이미 일반화한 뻔한 체험을 뻔한 말, 상식적인 말로 표현해서는 작가의 개성을 찾을 수 없는 별것 아닌 글이 되고 만다.
15. 문체의 여러 유형
습작기의 많은 작가들이 좋은 문체를 본떠 자기목소리를 찾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문체를 모방하는 작업이어선 곤란하다. 그 작가가 보여주는 문체의 힘을 인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인식에 의해 자기의 목소리를 찾도록 해야 한다. 문학사에 남는 좋은 소설을 쓴 작가들은 모두 나름의 문체를 통해 작품의 형성화에 성공했다. 소설을 쓰려는 당신은 개성과 체질에 문체를 개발해야 된다.
배경에 관하여
1. 작품의 모든 배경은 어떤 의도에 의해 설정된다.
작품이 구상되는 단계에서 작가는 질문하게 된다. 어떤 시대 어느 시간, 어떤 상황, 어느 장소에서 그 일이 일어날 것으로 할 것인가, 그 인물의 활동이 자연스러운 환경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어떤 배경이어야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까. 어떤 의도, 어떤 목적으로 그 배경을 선택했는가를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한다.
2. 잊을 수 없는 사람, 지워지지 않는 배경
소설의 인물이 기억에 오래 남듯 인물의 활동무대인 배경 또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어떤 장소, 혹은 신비감을 일으키는 어떤 분위기, 어떤 현장에서의 사건의 얽힘과 풀림을 통한 극적인 장면이 독자를 긴장시켜 기억에 새겨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 장소, 그 분위기, 사건이 일어난 그 시간이, 우리가 체험 못한 낯선 것일수록 긴장과 흥분이 따른다. 비록 우리가 늘 생활하는 집안이 무대라 해도 작가가 색다른 각도에서 포착하여 그려내게 되면 그것은 전혀 낯선 세계로 보여 질 수 있다. 작가만이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어느 현장의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치밀한 의도에 의해 선택되어진 배경이다.
3. 배경은 소설을 이루는 요소의 하나다.
배경은 환경, 무대, 공간이라고도 말해지며, 이야기가 짜여지고 펼쳐지는 동안의 '특정된 시간과 공간'을 의미한다. 넓게 말해 그 작품이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케니의 <소설분석법>에 의하면, 배경은 4가지요소로 되어있다.
(1)자연적 배경 :지리학적 장소, 실내의 세부묘사 장면
(2)사회적 배경 :인물이 생활해가는 직업 및 그 양태
(3)시간적 배경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 즉 역사적 시대나 계절
(4)정신적 배경 :인물의 종교적 도덕적 지적 사회적 정서적 배경
4. 작품의 무대를 어디로 할 것인가.
자연적 배경은 사건이 일어나는 지정학적 공간으로서 향토색이 짙다든지 도시빈민촌을 그렸다는 등 특정장소를 구체화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김유정, 이효석은 강원도 시골풍경의 지정학적 배경으로써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의 충청도 촌락, 조정래<태백산맥>의 벌교땅, 이청준<당신들의 천국>의 소록도, 양귀자 <원미동 사람들>의 원미동 등은 모두 그 지역의 특수한 환경 등을 배경삼아 성공한 작품들이다.
5. 낯선 세계에 대한 관심 혹은 동경 낯선 이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독자를 긴장시킨다. 특히 그 이국의 정취가 이야기의 흐름이나 인물의 행동에 직접, 간접으로 연결되도록 배려되었을 때 효과는 더욱 커진다.
6. 지형지세로 작품내용 암시하기
그 지형의 특수한 모양을 배경으로 그려냄으로써 그 소설에서 일어날 일을 미리 암시하기도 한다. 즉 지리적 배경은 작품의 주제와 전개를 상징할 수도 있다. 현기영의 <변방에 우짖는 새>는 조선말기의 제주도 민란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다룬 것인데, 그 첫머리 상당부분을 민란이 있지 않으면 안될 지형적, 역사적 원인들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7. 사라져버린 고향지, 그 복원
이야기가 전개되는 어떤 특정장소, 예를 들면 가옥의 구조나 방안을 묘사하는 장면 보여주기의 배경은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연상시키는 힘을 갖는다.
8. 그 골방, 그 간이역이 작품의 전체적 배경일 수도 있다.
어떤 특정장소를 설정하여 그 한정된 장소에서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설도 많다. 시골 간이역의 을씨년스러운 배경, 내성적인 한 소녀가 우울한 나날을 지내는 다락방 등.
9. 유년기의 복원
작가가 복원시키는 유년시절의 기억, 그 장면들이야말로 작품의 문학성을 높이는 장치 역할을 한다. 그것은 작가의 머리 속에서 수십 년 동안 걸러진 끝에 선택되었으므로, 미적 구조까지 거의 완벽하게 갖춰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유년기의 기억을 오늘의 상황과 심경에 투영시키는 배경은 대체로 유년기의 가정적 혹은 사회적인 형편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10. 그 시대, 그 상황을 잘 잡아야 한다.
어떤 사회적 신분이나 직함 등도 작품의 배경이 된다. 등장인물의 신분과 직업도 환경적 배경이고, 그 직업을 통해서 여러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이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11. 작품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도 배경이 된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처럼, '안개'는 그 작품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흔한 배경이다.
12. 어떤 것의 형성과정도 배경이다.
김용운의 <안개꽃>은 '한강 가운데 동서로 돋아있는 섬'이었던 여의도가 종합개발에 의해 '새 서울'로 변모되는 과정을 정확한 수치까지 써가며 개발과정을 그리고 있다.
13. 신중히 선택된 배경만이 작품의 형상화에 기인한다.
이야기에 알맞은 배경을 선택한다는 것은 작품의 형상화에 절대적이다. 모든 소설은 작가가 선택한 특정의 시간과 장소에서 선택된 인물이 선택된 일을 하게 돼있다. 그 무대가 바로 배경이므로 배경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다른 것의 선택도 혼선을 빚는다. 초보자에게는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를 되도록 단순화시키든가 제한하는 것이 좋다. 대체로 어떤 극한상황 혹은 한정된 장소나 시간을 주어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긴장감 있게 서술하는 게 쉽다. 윤홍길이 <꿈꾸는 자의 나성>은 말단사원 '나'가 만나게 되는 '꾀죄죄한 사내'의 이야기인데, 그 무대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방으로 한정되어 있다.
14. 현장의 그 사실감을 최대한 살려야한다.
작가가 작품의 배경에 신경을 쓰는 것은 독자의 인상에 남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기 위함이다. 홍희담의 <깃발>은 80년대 광주사건이 일어난 그 며칠의 광주를 배경으로 적절히 다룬 작품이다.
15. 배경은 사건전개의 복선
배경은 작품의 의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며 가능하면 배경 자체가 복선이 되도록 장치하는 것이 좋다. 진눈개비가 추적이는 산동네 묘사를 통해 그 산동네에 일어날 참담한 어떤 상황을, 삼복더위 속에 허덕이는 어떤 상황을 통해 한 사람의
죽음을 예견케할 수도 있다. 인물의 성격에 어울리는 배경이 설정돼야한다. 다소 병적인 침울한 성격의 인물이 생활하는 방이 너무 밝고 청결하게 설정되어선 어울리지 않는다.
16.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
소설에 그려지는 배경은 우리들이 흔히 체험하는 일상적인 것과 체험이 쉽지 않은 비일상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일상적인 것은 우리들이 생활하면서 늘 부딪히는 사회의 여러 현상들, 늘 가보는 건물의 어느 공간, 학교의 교실, 눈비가 내리는 어느 밤의 황량한 분위기 등이다. 비일상적인 배경은 시간이나 공간이 비현실적이거나 추상적이어서 그 점이 오히려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미래의 과학세계를 그린 공상과학소설이나 아프리카 밀림지대를 그린 특수지대만이 아니라, 윤후명의 <돈황의 사랑>에 누란에 대한 묘사 등 배경이 비현실적인 분위기인 경우를 말한다. 관념소설이나 특이한 심리상태를 그리는 심리소설도 비일상적인 배경을 그린다.
17. 상상, 배경 만들기의 즐거움
소설을 쓰는 재미중의 하나는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세계를 잘 아는 것처럼 그려내는, 그 상상의 재미다. 작품의 배경이 실제의 그것보다 실감나게, 지루하지 않게, 보다 구체적으로, 새롭게 보여주기 위한 작가로서의 참신한 시각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의 그것에서 현실의 그것보다 더 새롭고 의미 있는 세계를 배경으로 그려내기 위해선 독창적인 눈을 갖지 않으면 독자의 인상에 남는 좋은 배경을 얻기 힘들다.
발상에 관하여
1. 좋은 소설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방법이다.
소설을 만드는 것은 그 어떤 방법이 아니고 그 어떤 방법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 거리와 그 이야기에 감춰져 있는 작가의 어떤 의식이다. 소설은 어차피 창조된 세계다. 창조란 있던 것을 흉내냄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얼굴 다른 개성을 가지듯이 당신이 쓰려는 소설은 나름의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다.
2. 소설쓰기의 절차를 밟아라.
(1)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 의도 혹은 어떤 이야기 )
(2) 이야기의 얼개 구상 ( 대충 줄거리, 전개 방법, 인물. 배경 설정 )
(3) 집필 ( 제목 붙이기, 초고잡기, 서두쓰기, 효과적 반전 )
(4) 퇴고 ( 부분 수정, 처음부터 다시 쓰기 )
※ 발상 →구상 →아우트라인 →집필 →퇴고
3. 독자들은 작품 발상 경위를 알고 싶어 한다.
감동이 큰 작품일수록 그 작가의 실제 체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독자들의 이러한 소설 발상에 대한 관심은 그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픈 무의식적 욕구인 동시에 자신이 빠져든 그 거짓말 이야기에 대한 신뢰를 후회하지 않으려는 소설 사랑의 마음이다.
4. 가까이 지내는 사람에 대한 작가적 관심이 소설을 만든다.
열편의 소설은 열개의 발상에 의해 만들어진다. 같은 작가라 해도 작품 하나하나의 발상이 모두 다르다. 그리고 당신은 정말 별것 아닌 일에서 그 작품이 소설로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원일의 <미망>은 이데올로기의 질곡에 희생된 자신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한 깊은 실제 삶을 그린 것이다. 성격은 물론 그 식성까지 대조적이던 두 분의 평소 그 갈등을 소설 속에서나마 화해시키고 싶었던, 그 장손으로서의 마음이 동기가 되었다. <가을볕>은 자식으로서 평소 어머니의 자상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작가가 구원의 한 여인상( 어머니의 실제 모습과는 반대되는 )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과정에서 얻어진 작품이다.
5. 여행에서 겪은 잊혀 지지 않는 일이 소설의 단서가 된다.
절필선언까지 했던 <객주>의 작가 김주영은 <새를 찾아서>란 작품을 쓰게 된 동기를 '작가의 말'에서 적고 있다. - 내 생활을 세 가지로 대변한다면 술과 여행과 외박이다. 나는 이 세 가지 생활 관습 중에 한 가지도 등한히 할 수 없어서 항상 사랑한다. <새를 찾아서>는 그 세 가지 중 여행에서 얻어진 소재이다. 이 작품에 도움말을 준다면 이야기의 줄거리는 실제였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해 여행 경험을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6. 생각의 상투성 깨기, 그것이 곧 소설의 시작이다.
신문의 논조나 여론 등을 다른 각도로 뒤집어보기, 즉 시각의 상투성 깨기는 소설문학의 힘이다. 즉, 사건이나 인물에서보다 관념 쪽에서 소설의 발상법을 찾는 법이다.
7. 신화, 전설, 어떤 사람의 죽음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다.
<붉은 방>의 작가 임철우는 <달빛밟기>란 단편이 발상된 경위를 이렇게 말한다.
- 우연한 기회에 한 곱추 여자를 알게 되었다. 움막 같은 단칸집 마루 끝에 구부정하니 앉아서 늘 홀로 대바구니를 짜고 있던 모습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지난 겨울 어느 날 그녀는 지켜보는 이 하나 없이 눈을 감았고 그 불행한 여자의 쓸쓸한 삶과 죽음은 내 마음에 오래도록 축축한 물기로 남아있었다. 어쩌면 삶은 분노가 아니라 따뜻함일 거라고 아니 바로 그래야만 할 것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문득 그 여자가 내게 깨우쳐 주었다. 정소성은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아테네가는 배>의 작가 노트에서, 멸망 트로이의 전설이 모티브가 됐다고 말했다.
8. 신문의 작은 기사 한토막이라도 저장하라.
필자의 중편 <투석>은 지방신문의 작은 칼럼을 스크랩해둔 4년 후 단편으로 구상했다가 집필 과정에서 중편으로 탈고된 것이다. 극작가 존.필미어는 신문의 헤드라인 '수녀가 아이를 죽이다'에 착안, <신의 아그네스>를 만들어냈다.
9. 싹수있는 것을 놓치지 않는 작가의 눈을 가져야한다.
소설이 처음부터 대단한 명제를 가지고 시작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체험 속에서 문득 어떤 사실을 환기시킬 수 있는 기억들이 적당한 시기에 소설로 형상화된다. 모든 것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제고 소설이 될 수도 있겠다는, 그런 싹수를 가진 이야기, 그런 상황, 그런 생각을 찾아 기억해두는 습관을 기르자. 평범 속에 비범을 찾아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의 눈을 갖자.
소설의 시점
1. 화자, 숨어있는 작가의 분신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입장, 그리하여 이야기의 신빙성을 은근히 강조하는 장치가 바로 화자의 선택 문제다. 소설속의 인물과 사건의 흐름을 조절하며 독자의 반응을 살피는 작가의 숨겨진 분신 만들기가 바로 화자의 선택인 것이다.
2. 화자의 이야기하는 위치가 분명해야 된다.
관찰대상을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는가, 대상과의 거리를 얼마나 두어야 하는가는 중요하다. 이야기하는 사람의 태도나 심경에 따라 이야기의 톤이나 분위기도 달라진다.
3. 시점은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바라보는 위치와 거리, 작품을 지배하는 톤을 시점이라 한다. 이는 곧 서술방법이다. 흥미 있고 가치 있는 이야기가 되고 안 되고는 시점의 선택과 서술방법에 달렸다. 시점이 잡혀져야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점은 독자가 누구의 눈을 통해서 이야기 속 인물이나 사건과 만나는가, 어느 인물의 입장이 되어 인생을 바라보게 되는가의 문제다. 독자는 작가가 어느 위치에서 어떤 방법으로 말하는가 그 기법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이야기가 재미가 있다 없다, 좋다 나쁘다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소설을 쓰려는 당신은 독자의 그런 반응에 속아선 안 된다. 이미 독자의 입장이 아닌 당신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법을 깊이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당신은 '무엇'을 이야기하기 위해 작가가 되려는 게 아니다. 그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말하는 게 독자에게 감동적인가를 즐기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4. 시점은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이야기하는 상황이 아무리 달라진다 해도 이야기꾼으로서의 직무와 태도를 달리해선 안된다. 화자는 다양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화법을 구사해야 된다.
5. 작가와 화자는 다르다.
작가는 그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지 '이야기를 하는'사람이 아니다. 화자는 작가가 소설을 쓸 때 만들어내는 제 3의 등장인물이다. 실제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만들어진 인물이 이야기하는 것이 덜 부담스러울뿐더러 신뢰가 더 갈 수 있다는 작가로서의 계산이 있다. 작가가 소설의 이야기나 등장인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아는 척 참견하고 나서면 독자의 자존심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고 그만큼 이야기의 실감이 삭감된다.
6. 독자가 신뢰할 수 있는 화자를 찾아야 한다.
작가가 화자를 등장인물화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과 일치시킬 수도 있지만, 그것도 소설구조에는 그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작가 나름의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7. 시점, 위에서 주변에서 중심부에서 정면에서 유동적으로 위에서 이야기를 이끌면 관념소설, 주변적 위치에 서면 행동소설, 중심부에서 이야기하면 심리소설의 양상이다. 유동적으로 시각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다. '나'가 주관적인 위치에서 서술하는 시점은 독자가 '나'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사건과 인물을 만난다. 등장인물의 생각과 행동을 제 3의 눈으로 관찰하는 객관적 서술은 그 인물들의 성격과 생각을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화자가 모든 것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다 아는 투로 독자를 제압하는 경우 사건이나 인물을 독자가 상상할 여유를 빼앗는다. 소설의 시점은 설명보다는 그려내 보이는 데 편리하도록 설정한다.
8. 공인된 시점과 서술방법을 무시하려면 이미 널리 알려진 시점과 서술방법에 얽매여선 좋은 소설을 쓸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무시하려면 알려진 시점과 서술방법을 철저히 알아야함은 물론 그 방법에 의거한 소설을 20편 이상 써봐야 한다.
9. 전통적인 서술방법은 '나'나 '그'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나 '그'는 서술자를 인칭화한 바로 흔히 일인칭 시점과 삼인칭 시점으로 구분한다. 2인칭 시점은 '너'나 '당신'이란 인칭을 이용한 것이나 별반 설득력이 없고 실패의 확률이 크다.
10. 초보자는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 수월하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은 화자가 자기의 이야기를 하려고 자기(작가가 아니다) 목소리로 말하고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관에 의해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고 믿을 때 쓰는 방법이다. 장점은 그 깊이에 있다. 화자의 시점이 소설밖에 있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의 내부에 있어 독자들은 그 화자만이 지니는 감춰진 부분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린다. 인간의 가장 섬세한 정서와 사물을 대하는 민감한 반응까지를 놓치지 않고 포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독자는 화자의 확신에 찬 말이나 고뇌, 반성의 태도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화자와 주인공 사이에 일체의 거리감이 없기 때문에 얻어내는 솔직함에 기인한다. 독자가 화자와 작가를 구분하지 않게 함으로써 작가의 의지나 확신을 부담 없이 소설 속에 집어넣을 수 있다.직접 체험했다는데 어느 독자가 믿지 않겠는가 말이다.
11. 삼인칭 주인공 시점
삼인칭 주인공 시점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보다 객관화된다.
화자가 주인공이면서도 '그'라고 객관화함으로써 어떤 거리를 갖고 보여 지게 된다. 작가가 어느 정도 운신의 폭을 넓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며 일인칭시점에서 제한받던 전지적 권한이 많이 풀려진다.
12. 전지적 권한
전지적 권한이 주어짐으로써 작가는 주인공을 더욱 실감나게 묘사할 수도 있고 주인공이 갈 수 없고 알지 못하는 사실도 넌지시 이야기할 수 있다. 소설을 처음 쓰는 당신으로서는 자칫하면 시점의 혼란을 가져오거나 전지적 권한이 조금 주어진 걸 제대로 활용 못하고 남용함으로 독자의 신뢰를 잃을지도 모른다.
13. 일인칭 관찰자 시점
일인칭 관찰자 시점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처럼 화자와 주인공이 같은 인물이 아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닌 사람이 주인공의 사람됨이나 그가 벌이는 사건을 관찰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서술방법이다.
첫째, '나'가 그냥 화자일 뿐 중심이야기에 참여 안해 사건의 변화와 무관한 경우.
중심이야기를 하기 위한 전제로서 '나'가 나와 이제부터 말하려는 이야기의 중요성과 방향을 암시하여 독자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액자소설의 방법이며, 독자들은 화자인 '나'가 작가 자신이라고 편리한대로 생각하게 된다.
둘째, 화자가 중심이야기 속에 참가하되 조역정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
이 경우는 화자가 주인공을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하되 더욱 과장하거나 희화시킬 여유를 갖는다.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그 서술방법을 쓰고 있다.
셋째, '나'대신 '우리'란 복수로 어떤 관심사나 인물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경우.
이때 실은 '우리'가 맞서고 있는 어떤 문제나 인물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관찰을 통한 가치 판단을 시도하려는 저의가 깔려있다.
14. 삼인칭 관찰자 시점
'그'가 또 다른 '그'를 말하는 경우다.
예)그는 사무실을 나오면서 그의 책상에 놓여져 있는 책을 보았다. 그는 책벌레였다.
이런 식의 서술은 독자를 혼란시킬 우려가 크므로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15. 전지적 시점
시점의 제한과 서술의 한계를 벗어난 서술방법이 전지적 시점이다. 삼인칭 객관자 시점이라고도 하며 전대의 장편소설에서 흔히 쓰였다. 사건의 전면을 화자가 모두 아는 입장에서 이야기하므로,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가진 내밀한 생각까지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 화자는 시공을 초월하여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나 화자는 그 비밀을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에 설명을 안 한다. 전지적 시점의 소설을 읽는 독자와 작가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기로 묵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6. 전지적 시점의 경우 화자는 어디에도 없다.
즉 화자는 소설 밖의 존재다. 전지적 시점은 작가의 시점이며 필요에 따라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돌아가며 선택하여 그 한사람의 위치에서 사건을 말한다. 한 작품 속에 시점을 자주 옮기는 경우 이야기의 초점을 잃어 산만한 흐름이 되기 쉽다.
17. 화자의 입장과 태도를 분명히 하라.
화자가 긍정적 혹은 부정적, 이쪽 혹은 저쪽, 아니면 중간자적 입장인가를 마음속에 분명히 하되, 독자가 눈치 채지 않도록 설정하는 게 좋다. 화자의 입장이 섣불리 누설되면 소설읽기의 재미가 반감된다. 독자가 등장인물 중의 하나를 미워하게 된다면 전적으로 작가가 그 인물을 마음속에서 미워하기 때문이다. 그 미워하는 작가의 마음을 눈치 채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18. 시점의 새로움을 연구하자.
편지투나 일기 형식을 빌어 사건과 화자의 거리를 좁히는 서술방법도 많이 쓰인다. 독백체, 대화체, 기행체 등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와 방법을 새로이 하자.
구성의 아웃트라인
1. 아우트라인 작성에 모범답안이란 없다.
구상의 마지막 단계가 아우트라인 작성이다. 아우트라인은 머리 속에서 구상된 것을 도식화하여 메모한 것을 말한다. 당신이 구상한 소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중심 잡아 긴장감을 잃지 않은 채 일관성 있게 쓰여질 수 있도록 그 대충의 얼개를 만드는 일이다.
2. 집필에 들어가기 전 낙서하듯 끄적인 것이 아우트라인이다.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자기 암시적인 어떤 것을 얻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메모된 그것을 남에게 보였을 때 그것은 요령부득이거나 매우 유치한 것으로밖에 안 보이는 법이다. 이따위 낙서가 소설이 되다니. 만약 어느 독자가 자신이 읽은 소설의 아우트라인을 보면 그는 몹시 실망할 것이다. 김원일은 스무 살 나이 전후 '무작정 떠오르는 대로 써갈겨 대던 당시의 습작버릇'의 어느 날, 김동리 선생의 단편 <무녀도>의 창작노트를 보고 '참담한 느낌'에 빠지게 된다. 그 창작 노트의 분량이 완성된 작품의 그것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힌트를 얻기부터 등장인물의 배치와 성격분석, 표현의 효과문제, 현지답사, 참고문헌 등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기록돼 있었다.
3. 작가의 능력은 자신의 아우트라인을 벗어나는 데 있다.
아우트라인은 작품이 지향하는 목표와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일 뿐, 소설은 논문과 달리 처음 구상대로 쓰여지지 않는 법이다. 작가는 소설을 완성해놓은 뒤 처음 작성된 아우트라인을 찾아보고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바뀌었음을 알고 놀라게 된다. 그러나 처음의 아우트라인이 소설의 골격이 되어서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정성을 들인 아우트라인은 집필을 하는데 좀더 안정된 마음으로 이야기를 술술 풀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한다. 이미 집필 전에 얼개를 탄탄히 했으므로 이야기가 막히는 일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작성된 그 아우트라인을 한결 넘어서는 좋은 생각들이 떠오르게 된다.
4. 추상적, 관념적 아우트라인은 작품 형상화에 도움이 안 된다.
집필에 도움이 되는 효율적인 아우트라인 작성법을 개발하라.
5. 아우트라인, 당신의 장인의식에 불붙이는 불쏘시개다.
길가에 버려진 나무토막 한 개가 조각가의 소재로 선택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나무토막이 아니다. 자판기에 돈을 넣어야 종이컵에 커피가 쏟아지는 당연한 사실을 가지고 시인 최승호는 현대문명의 속성과 그 타락을 매춘으로 비유한 <자동판매기>란 시를 썼다. 그 흔한 자판기의 종이컵을 창녀로 상징, 비약시키는 시인의 그 통찰력, 상상력이 작품 형상화의 절대적인 힘이다.
소설의 서두
1. 첫머리의 실패는 소설실패의 첫걸음이다; 포우
독자의 처지에서 소설의 첫머리는 그 작품여행에서의 첫 만남이며 첫인상이다. 첫머리를 쓰기위해 응집되는 상상력은 작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설의 다음 장을 준비하게 된다. 작가가 그 작품의 첫머리에 집착하는 시간이 오랠수록 작가의 잠재된 상상력은 날개를 펴고 다음 장면으로 비약해 간다. 실제로 필자는 첫머리 십여 줄을 쓰기 위해 수십 장의 파지를 낸다.
2. 첫머리 만들기의 과정에서 작품의 모든 것이 손에 잡혀야한다.
소설의 첫머리를 계획성 있게 설계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과정에서 작품에 필요한 어조와 문체까지 결정된다. 사건 전개에 필연적인 복선도 첫머리에 은밀히 장치되어져야 한다. 그 작품이 필요로 하는 갈등의 빌미도, 준비 중인 분규의 실마리도 첫머리에서 배려되어야한다.
3. 독자 긴장시키기
대부분의 독자들은 즐기기 위해 소설을 찾는다. 그 시작에서의 긴장은 소설 여행의 재미를 배가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극적인 사건만이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다. 평범한 일상의 묘사도 독자를 긴장으로 사로잡을 수 있다.
4. 독자의 신뢰 얻어내기
독자들은 작가가 전지전능한 위치에 있길 바란다. 낯선 신비의 세계로 자신을 안내하는 작가를 믿고 싶어 한다. 독자에게 얕잡아 보여선 그 여행을 즐겁게 안내할 자격이 없다. 어떤 문제를 풀어가는 작가의 전문적 식견에 의해 작가는 독자의 신뢰를 받는다. 그러므로 작가는 첫머리에서부터 독자를 압도해야 된다. 작가 이병주는 대체로 작품의 첫머리를 이국적인 정취까지 곁들여 거창하게 시작한다. 독자들이 모르는 세계를 작가만은 잘 알고 있다는 과시로써 독자들의 신뢰를 얻어내는 확실한 방편이다. 이문열의 경우도 처음부터 독자를 압도하는 식견을 발휘한다. 김원일은 소련 여행의 체험을 첫머리에서 활용했고, 이상은 <날개>에서 현학적인 어투로 첫머리에서 주제를 모두 드러냈다.
5. 인물 혹은 사건에 대해 어떻게 운을 뗄 것인가.
첫머리를 대화로 시작함으로써 독자들이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흥미를 갖게 하는 방법이 많이 쓰인다. 작품의 주인공을 소개하는 식으로 풀어가기도 한다.
6. 넌지시 드러내기
소설의 첫머리는 작품내용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즉 첫머리를 통해 이야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도록 세심한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한 암시는 첫 장면의 분위기묘사로 나타난다.
7. 화자 또는 시점을 알리는 방법
작품의 첫머리에서 지금 누가 어떤 위치에서 이야기하는가를 밝히는 일은 중요하다. 여류작가가 남성 화자를 쓰는 경우 일찌감치 그 사실을 밝히는 게 좋다. 독자들은 대개 화자가 그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혼란을 줄일 필요가 있다.
8. 작은 것도 상징적인 것으로
어떤 구체적인 물체를 묘사하는 첫머리로 작품의 상징성을 마련할 수도 있다. 그 물건으로 일어나는 해프닝을 통해 이 사회의 잘못된 생각을 신랄하게 지적하는 방법이다. 한승원은 <낙지 같은 여자>에서 제목 그대로 낙지 같은 여자를 그리려고 낙지에 대한 얘기를 첫머리로 하고 있다.
9. 사건의 시작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소설은 대체로 뜻하지 않은 사건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럴때 전화는 빼놓을 수 없는 소도구다. 비나 눈이 내리는 시작되는 첫머리도 많다.
10. 찾아서 떠나는 구조
길 위에서 시작되는 얘기가 많다. 화자가 어떤 사건 혹은 어느 인물, 장소를 찾아 떠나는 첫머리는 독장의 소설 여행 중 가장 흥미롭고 긴장이 되는 구조다. 독자가 그 여행에 기꺼이 동참하고픈 첫머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11. 꿈 또는 잠은 소설 첫머리의 단골이다.
소설의 첫머리를 꿈 얘기나 등장인물(혹은 화자)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으로 시작하는 경우는 진부할 정도로 많다.
12. 죽음, 소설 첫머리의 가장 강렬한 모티브
어떤 인물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독자들을 긴장시킬 수 있는 가장 흔한 방법이다. 그 외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의 묘사, 어떤 소문을 빌미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첫머리도 있다. 첫머리 첫 단어가 그 작품의 첫인상이 되므로, 소설의 첫머리는 우선 흥미가 있어야 한다. 독자가 작품을 읽는 동안 그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첫머리의 인상, 그 매력 때문이다. 독자들은 작품을 읽는 동안 계속 그 첫머리 장면을 잃지 않고 기억해냄으로써 이야기속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첫 장만 읽어도 안다.' 당신은 신춘문예에 응모된 그 수많은 작품이 예심과정에서 그 첫머리에 의해 탈락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서술, 묘사
1. 소설은 소설문장으로 써야 한다.
소설이 되기 위한 진술의 언어를 '소설문장'이라 한다. 글의 네 가지 기술양식이란 설명, 논증, 묘사, 서사를 말한다. 독자에게 무엇을 알리고자 하여 설명하고 주석하고 분석, 정의하는 글이 '설명'으로, 이런 글은 사물의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논증'은 어떤 명제를 구현시키기 위한 적극성이 필요하며 독자로 하여금 그 마음이나 생각, 태도, 관점을 달리 가지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일종의 주장피력이므로 합리적인 사고에 근거한 증명이어야 된다.'묘사'는 사물의 어떠함을 그려 보이는 글로, 감각적 경험 내지 대상을 생생하고 박진감 있게 체험케 하고자 의도한 글이다. '서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의 서술이다. 움직이는 생명에 관련된 사건을 기술하므로 움직임, 시간, 의미의 3요소를 갖춰야 된다. '설명'이나 '논증'이 객관적. 외적. 공적인 과학적 의도라면, '묘사'와 '서사'는 주관적이며 내적인 예술적 의도에 기인한다. 과학적 의도의 글은 추상적. 객관적. 보편적이며, 예술적 의도의 글은 개별적.구체적.감각적.예언적.암시적이다.
2. 서사. 묘사의 기술양식 속에 소설문장이 비롯된다.
소설은 서사의 글이며 사물의 지배적인 인상을 독자의 머릿속에 생생히 재생시키기 위해 묘사를, 때로는 설명과 논증(소설문장으로 구사된)을 한다. 소설문장은 화자가 서술하는 지문과 작중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로 이루어진다. 대화를 생명으로 하는 희곡이 지문을 중시 않는 데 반해 소설에선 그 서술방법이 소설의 성패를 판가름한다.
3. 실감, 박진감, 진실성은 이야기하는 방법에 달렸다.
자신이 쓰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서술의 솜씨를 필요로 한다. 이야기를 실감나게, 박진감 있게 하는 것도, 진실성을 주는 것도, 이야기의 방법에 따른다.
* 서술의 일반적 방법
.설명하기(서술) - 극적으로 말하기. 화자가 직접 나서서 사건과 인물에 대해 설명하기, 파노라마식 방법. 요약. 해설
.보여주기(묘사) - 장면. 장면제기. 화자가 사건과 인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기.
어떤 소설은 너무 설명적이라든가 스토리 위주라는 평을 듣는데, 그것은 작품이 주로 줄거리에 치중했거나 화자가 지나치게 어떤 상황이나 사실에 장황한 설명을 한다는 지적이다. 어떤 소설은 이야기의 속도가 느리고 밀도가 짙어 지루한 느낌을 주는데, 어느 장면을 집중적으로 제시해서 그 장면 속에서 어떤 의미를 포착하기를 바라는 보여주기의 방법에 치중한 까닭이다. 서술은 화자가 이야기 속에 들어가 참견하는 경우고, 묘사는 작가가 대상과 거리를 두고 있거나 아예 빠져버린 경우다.
<서술>
1. 해설 혹은 설명. 요약
작가가 독자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 해설을 한다. 독자에게 이해시켜야 될 부분을 요약할 때는 되도록 간결하게 시간적 흐름에 따라 작품 속 다른 이야기와 연계될만한 꼭 필요한 부분만 서술해야 된다.
2. 극적으로 말하기
사건이나 인물의 행동을 좀 더 박진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현장에서 보고 느낀 인상을 극적으로 기술한다.
3. 전환 서술
윤흥길의 중편 <장마>에서는 장이 바뀔 때나 같은 장에서라도 장면이 바뀔 때는 궂은 날씨를 반복리듬으로 되풀이해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을 암울한 상황 속으로 묶어놓는데 성공했다. 장마의 그 장면들은 묘사에 가까운 문장으로 사건의 흐름을 암시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서술이든 그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재생시키기 위해서는 독자의 신뢰를 얻어야한다. 신뢰를 얻기 위해 보다 실감나게, 진실 되게 서술하는 기술방법을 터득해야 된다. 사실을 독자에게 알릴 때 그 사실을 화자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를 유념하지 않으면 독자의 신뢰를 잃는다.
4. 독자의 상상력을 부추 키는 생동감 있는 서술을 하라.
설명하기의 서술에서 주의할 일은 작가가 독자의 상상력을 빼앗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보를 주고 사건과 인물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려는 의도가 자칫 독자를 싫증나게 하거나 상상할 여백을 빼앗아선 곤란하다. 설명하기는 되도록 간결하게
압축하는 방법을 길들여놓는 게 좋다.
<묘사>
1. 독자의 오감에 호소하라.
묘사는 대상의 '어떠함'을 '그리는 것'이다. 대상의 모양, 빛깔, 감촉, 냄새, 소리, 맛 등을 그림 그리듯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양식이다. 독자들이 그 대상을 눈에 보는 것처럼, 귀에 들리듯, 감촉은 물론 냄새와 맛까지 직접 느끼도록 재생시키는 방법이다. '말하기, 설명, 해설, 요약'등도 소설문장으로 쓰여진 이상 서사적 묘사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정보와 지식을 주어 이해시키는 방법이며, 인간의 감각기관에 지각되는 사물의 전체적이고 지배적인 인상을 그려내는 암시적 함축적 기술은 문학적 묘사라 한다. 문학적 묘사에 의해 독자는 비로소 왕성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소설읽기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묘사라면 인물의 행동묘사, 외양묘사, 성격묘사, 사건의
상황묘사, 분위기묘사, 배경묘사 등이 있다.
2. 남들과 달리 보는 눈, 참신한 시각이 좋은 묘사문을 낳는다.
자신이 관찰할 대상을 실감나게 표현하는데 신경을 집중한다면 좋은 묘사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뻔한 묘사, 너무 일반적이고 진부한 표현은 독자에게 실감을 주기 어렵다. 대상에 대해 남들과 다른 관찰, 독특한 표현법을 갖지 못하면 좋은 묘사문장을 만들기 어렵다.
3. 묘사는 실감나게, 그러나 반드시 의미를 가진다.
묘사하고자 하는 의도에 맞는 어조를 지녀야 화자가 느낀 만큼의 인상이 효과적으로 표현되어 독자의 머릿속에 생생히 재생된다. 어떤 '의미'를 효과적으로 살리려면 '실감'있는 묘사가 필요하다. 화자가 세부적인 사항을 선택해서 실감나게 묘사하는 건 어떤 의미를 인상 깊게 전하기 위함이다. 소설 앞부분에 심한 바람이 부는 도시의 밤풍경을 음산한 분위기로 묘사했다면, 소설의 내용이 심상치 않은 사건을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대화>
-- 짧고 명료하게, 박진감있게, 함축적으로 --
소설에서의 대화는 사건의 전개와 등장인물의 성격묘사를 위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야기의 줄거리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하며, 말하는 사람의 성격과 일치해야 되고, 때로는 사건을 요약, 설명하여 이야기흐름에 속도를 주기도 한다. 소설의 대화는 보다 참신하여 실감을 줄 수 있는 극적인 효과를 살려야한다. 되도록 짧게, 명료하게, 함축적으로 구사된 대화만이 소설의 형상화에 이바지한다. 대화는 따옴표를 사용하는 게 보통이나, 현재의 이야기에 과거가 나오는 경우는 따옴표를 생략하는 편이 혼란을 막는 길이다. 아예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는 소설도 있다. 독백도 대화의 형태이다. 대화를 너무 빈번히 남발하면 밀도를 잃어 허술한 작품이 될 우려가 크다. 지문으로는 효과를 얻기 힘든, 그런 절실한 필요성에 의해 대화를 적절히 써야한다. 대화는 갈등의 점층적 고조를 보여야 효과적이다. 또한 긴장감 조성에 기여하는 대화를 구사해야 된다.
등장인물 표현하기
1. 인물 창조의 그 진통, 그 신명남
독자에게 제시할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란 어떤 인물일까, 독자를 사로잡을만한 매력을 지닌 인물은 도대체 어떤 형태의 어떤 성격을 가져야하나. 생동감 있고 실제의 인물과 꼭 닮았다는 실감을 획득하기 위한 내 나름의 방법은 없을까. 아무리 단역이래도 독자의 관심 속 에 들어가 강한 인상을 남기며 뜻한 바의 반응을 가져다줄 그런 인물을 그려내는 방법은......?
2. 당신의 분신인 작중인물, 이미 당신의 영향권을 떠났다.
그네들은 이미 당신을 떠나 그 소설이 필요로 하는 사회의 온갖 규범과 질서의 지배 속에 들어갔다. 그냥 그 인물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가 독자들의 관심 밖으로 벗어나거나 소설이 끝나기도 전에 증발되지 않도록 감시하며 조언하는 역할에 당신은 만족해야 된다. 사람은 모두 복잡하고 까다로운 구조로 되어있다. 그러나 당신이 소설 속에 선택한 인물은 결코 복잡하거나 까다롭지 않다. 실제의 인물이 보여주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면을 분명하고 단순하게 표현하기 위해 그 인물을 택했기 때문이다.
3. 인물은 신비와 매력의 등대여야 한다.
독자에게까지 당신이 선택한 인물이 단순하고 분명한 인물로 여겨져선 안 된다. 독자는 우선 인물에 매력을 느껴야 한다. 실제의 인물과 닮았으면서도 실제의 인물에게선 찾지 못하는 어떤 특이함을 가지는 인물이어야 한다. 독자는 당신이 창조한 인물에게서 뭔가를 암시받고 싶어 하며 인생의 새로운 면과 인간에 대한 어떤 깊이를 터득하고자 한다. 작중인물의 고뇌와 갈등에 동참하는 재미로 독자는 소설을 읽는다.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사랑,증오,연민,분노,희망,절망,추악,신비 등등에 흠씬 젖어 정화되고 싶어 한다. 독자들의 기대를 채워줄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그것이 만든 인물이 아니라 실제의 인물과 만나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해야 한다. 독자는 그 착각과 환상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4. 설명과 묘사의 절충이 필요하다.
인물을 직접적으로 설명을 통해 보여주는 소설은 대체로 상황을 중시하거나 주제에 치우친 작품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빠르고 사건의 결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인물의 묘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소설은 그 흐름이 늦고 사건에 대한 기대보다는 인물의 심리적 깊이와 향방에 관심이 높다. 이 두 방법의 절충이 좋다.
5. 이름 짓기에 의해 인물은 성격을 가진다.
이름의 어감이나 음색에서 풍기는 인상으로 인물의 성격은 물론이고 작품의 분위기나 주제까지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름이나 별명을 통해 그 인물의 성격을 설정할 경우 자칫하면 그 인물의 성격이 굳어져버려 전형화 될 우려가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어떻든 인물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당신은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까지도 깊이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6. 작중인물도 나이를 먹는다.
작품을 읽다가 보면 그 나이가 실제의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 그 인물의 나이가 몇 살 쯤이라는 것이 독자에게 밝혀질 수 있어야 한다. 작가 지망생인 20대가 쓴 중년남자의 이야기에는 중년의 것이 아닌 20대의 의식과 행동이 그려지곤 한다. 작가의 능청스러움이 그런 데서 드러나야 한다.
7. 출생지와 현주소, 신분을 밝혀라.
독자는 인물의 말씨나 외모를 통해서 지명이나 지리적 묘사를 통해서 인물의 근원을 알고자 한다. 등장인물의 외양이나 신체적 특징과 말버릇, 표정 등으로 성격을 드러내는 것은 상식적이다. 이는 한 장면의 묘사로는 안 되며 여러 개의 부분의 유기적 배치로써 총체적으로 파악된다.
8. 인물의 성격묘사를 위해 남다른 관찰력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의 내면 성찰은 물론 모든 사람에 대한 예리한 관찰이 필요하다. 소설을 쓰려는 사람은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 그것의 지배적인 인상을 찾아내 기억해둬야 한다.
9. 말의 절제, 함축, 상징, 비유가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소설의 대화는 사건의 전개와 말하는 사람의 성격을 드러내도록 세심히 만들어져야 된다. 일상의 대화와는 달라야 한다. 꼭 필요한 말로의 절제와 압축, 어떤 상징과 비유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대화를 통해서다.
10. 대화를 통해 갈등이 드러난다.
갈등의 고조와 해결도 대체로 대화를 통한다. 이미 지난 일을 얘기할 때는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고 지문과 섞어도 무방하다. 대화를 별항으로 잡지 않고 지문 속에 그대로 씀으로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11. 적절한 방언의 사용은 형상화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
자기가 태어나 성장한 지방의 말을 자신 있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작가로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이나 다름없다. 방언에 의해 인간의 체취가 풍기는 진정한 우리 백성을 만날 수 있다.
소설의 구성과 작중 인물의 관계
소설의 구성과 작중인물의 관계는 바늘과 실의 관계이다. 어떤 이야기의 주체가 어떤 인물로서, 좀 특이한 성격의 어떤 인물의 좀 흥미로운 생각과 행위들을 긴장과 재미를 잃지 않게 엮은 것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1. 소설은 인간성 탐구에 목적을 둔다.
실제로 기억에 남는 소설은 모두 그 소설 속에 창조된 인물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창조해냈다. '도대체 이 소설엔 관심을 둘만한 사람이 없다구, 매력있는 그런 인물이 없다는 거지.' '인물이 살아있지를 않아.' '등장한 인물들이 모두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 거야.' '인물 설정이 너무 도식적이고 그 성격도 진부해.'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어. 창조된 인물이 아냐. 개성도 없고.' 위에 늘어놓은 불만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소설은 실패작이다.
2. 독자의 기억에 스며드는 살아있는 인물을 찾자.
독자의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다면 작품이 형상화됐다는 증거다. 실제로 좋은 소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작품 속 인물만은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소설 속에 그려진 어떤 인물에 대한 강렬한 인상이 그 작품의 인상으로 남는다.
3. 실제의 인물과 소설의 인물은 달라야 한다.
소설의 인물은 실제의 인물과 달라야한다. 그것은 소설이라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만 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 있는 실제의 인물보다 소설의 인물은 자유롭지 못하다. 제한된 이야기 속에서 소설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필요로 하는 생각과 행위만을 보여준다는 구속을 받는다.
4. 소설의 인물은 독자의 상상력에 의해 생명력을 갖는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태어난 인물은 독자가 그 작품 속에 깊이 몰입되어 작가가 바라는 어떤 환상으로서 그 인물과 만나야만 이해될 수 있다. 소설을 쓰는 재미는 독자가 그런 환상으로 등장인물과 만나 감동받는 것을 훔쳐보는 즐거움이다.
5.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 있는 인물을 그리자.
실제의 인물들보다 생동감을 주는 인물을 만드는 일은 작가의 의무다. 소설에는 한 인간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필요에 의해 유기적으로 나열돼 있다. 그 인물의 출생이나 성장과정, 과거 어느 날의 일화, 이름, 식성, 말버릇, 취미, 가정과 식구들의 생각, 그의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장치들이 눈에 안보이게 얽혀져있는 것이 소설이다. 작가가 그 인물을 독자의 환상 속으로 집어넣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취사선택한 장치들이다. 그 장치들은 자신이 등장시킨 인물이 독자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혀 눈치 채지 않게 감추고 상징하는 역할까지 한다.
6. 등장인물은 작가의 필요에 의해 선택된다.
작가는 작품이 필요로 하는 인물을 선택할 권한이 있다. 작가에 의해 선택된 인물은 소설의 주제와 이야기의 얼개 속에 들어가 작품의 형상화에 이바지한다.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부여받아 독자의 관심 속으로 들어가, 그 심경에 어떤 반응을 일으킨다. 이기적이고 오만한 인물에 대한 분노, 속절없이 짓밟히는 여인에 대한 연민, 사치와 허영 덩어리지만 사랑받을만한 어떤 매력을 지닌 여인에 대한 연정, 병적으로 일그러진 기인의 해프닝을 통한 억압된 감정의 대리충족, 우울증 사내의 내면응시를 통해 새로이 얻게 되는 현실인식과 존재론적 허무감 등.
7. 소설인물은 반드시 정형성을 가져야한다.
정형성이란 곧 보편성이다. 작중인물의 정형성은 소설이 아무리 허구의 세계라 해도 현실을 반영하거나 굴절시킨 세계라는 확인이다. 현실의 인물과 달라야 하면서도 현실속의 인물을 빗대거나 확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뜻이다. 소설문학의 리얼리티를 입증하는 것이다.
8. 작중인물은 대개 상징성으로 설정된다.
소설의 인물은 현실사회의 어떤 면을 암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 존재로서 선택된다. 선악의 상징, 사기꾼,폭력,물질적,속물적,가진자,뺏긴자,지배층,피지배층 등을 대변한다. 상징성이 너무 드러나는 것도 소설 형상화에 장애요인이다. 상징은 그냥 상징으로서 그 상징의 동굴에까지 애써 찾아와 보물상자를 찾으려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그것을 눈치 채게 해선 안 된다.
9. 작중인물은 개성을 가진다.
현실 속에서 만나는 인물은 일상의 관습과 이해관계에 의하므로 독특함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소설의 인물은 독자의 어떤 기대 심리를 충족시킬 의도로 그려지므로 개성이 강조된다. 소설의 인물은 독자를 긴장시킬 수 있도록 낯설어야 한다. 그 낯설음이 바로 개성이다.
소설속의 인물도 실제의 인물처럼 성격변화가 복잡하나 본래의 성격은 어떤 환경 어떤 사건에 놓이든 변해선 안 된다. 변하지 않는 성격을 개성이라 한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도 개성이 분명한 사람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처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독특한 개성에 의한 생동감을 보여줄 때 독자들은 강한 호기심과 기대로 그 인물을 따라다닌다.
10. 진지한 인물과 우스꽝스런 인물 중 한쪽을 택한다.
진지한 인물이 소설의 내용을 독자가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양 심각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면,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등장한 소설은 독자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그것이 자신과는 무관한 얘기라는 안도감을 갖게 하는 이점이 있다. 그 안도감이야말로 그 작품이 이야기하려는 의도를 보다 우회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작가가 쳐놓은 덫이다.
11. 등장인물은 신분에 맞는 의식을 가진다.
소설 속에 의사를 등장시켰으면 의사의 신분에 맞는 지식은 물론 그 언행이 의사다워야 한다. 아무리 의사를 파렴치한으로 그린대도 의사는 의사로서의 격이 있기 마련이다. 소설을 처음 쓰는 사람 중에는 등장인물이 지녀야 하는 그런 합당한 의식을 찾지 못해 인물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2. 모델이 있는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을 위축시킨다.
실제로 있는 인물을 모델로 쓰여 진다 해도 소설의 모든 인물은 작가에 의해 재창조된다. 실제인물이 살아 내려온 내력을 그대로 옮겨놓는다면 소설이 아니라 실화가 된다. 모델이 있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조심해야 된다. 자기 집에 초대받았던 어떤 작가가 그 가든파티 장면을 소설의 배경으로 별로 안 좋게 써먹었다고 작가를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실제의 인물을 모델로 할 때 작가가 마음에 어떤 중심을 가질 일이다. 실제 있는 그 이야기를 재구성해야 작품의 형상화가 된다는 믿음과 거기 등장하는 인물도 외양이나 성질들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그리려는 인물이 소설이라는 울타리 속에서나 살 수 있는 만들어진 인물로서 실제의 그 인물보다 생동감 있고 의미 있는
인물로 그려내지 못하면 역효과가 될 뿐이다.
13. 작중인물은 모두 우리자신이 모델이다.
작중인물은 작가가 자화상을 변형 혹은 객관화한 실체이다. 모델이 있대도 일단 작가에 의해 필요한 부분이 선택되고 변형되어 그려지므로 작가의 분신이다. 작중인물을 창조해내는
작가의 인간이해의 안목과 통찰력이 그 재능과 얼마나 조화 있게 어울려 나타나는가가 관건이다.
14. 인물의 성격은 어떤 유형이다.
인물은 혈액형이나 기질을 살펴 능동적. 피동적, 내성적. 외향적, 단세포적, 행동형. 사고형 등으로 나눈다. 혹은 인간의 생체적 구조와 현상이 심리를 결정한다는 입장에서 아래 네 가지 기질로 나눈다.
담즙질: 침착. 냉정. 인내. 의지적이나 고집스럽고 거만함,
우울질: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늘 마음이 우울함,
점액질: 무딘 감정. 매사 활기가 없으나 끈기가 있고 의지가 강함.
다혈질: 쾌활하고 활동적이나 인내력이 부족하고 성급함 등
평면적 인물과 입체적 인물로 나누는 구분은, 전형적 인물과 개성적 인물의 구분과 상통한다.
평면적 인물은 진지한 이야기나 비극에 맞지 않고 풍자적이거나 희극적 분위기에 효과적인 단순한 생각, 단세포적 성질을 보여준다. 상투적인 익살꾼, 무조건 순종하는 착한 인물, 사기꾼의 전형, 위선자 등등.
입체적 인물은 복합적 인물이라고도 불리는데, 한 작품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격이 발전하고 변화하여 독자에게 계속 놀라움을 안겨주는 의외성을 지닌다. 현대소설에서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인간심리와 의식의 자유분방함을 표현하는 입체적 인물이다.
주역인물과 반동인물로 유형이 구분되기도 한다.
주역인물은 작품의 주인공이자 중심인물이고, 반동인물은 주역인물에 대해 대립 갈등하는 역할을 맡는다.
좋은 소설이란
1. 인식의 힘
-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힌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최승호 시 <인식의 힘>전문)
사람들의 문학에 대한 접근은 일차적 재료(언어)에의 이해와 숙련에 앞서 메시지에 집착한다. 타 예술과는 달리 문학이 전달하고자하는 사상과 감정을 중시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작가가 되려는 당신은 소설에 대한 접근을 남들과 다른 각도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장인의식에서 출발해야 된다.
당신은 사상가나 철학자나 정치가가 아니다. 당신은 이야기꾼이다. 가능하다면 좋은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싶을 뿐이다. 당신에게는 이러한 장인의식이 필요하다. 당신의 문학적 재능은 우리말의 어휘구사, 좋은 문장 만들기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 때 발휘된다. 장인기질이란 바로 그러한 재료에 대한 남다른 집착과 신명남에서 드러난다.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말을 곡진하게, 더욱 실감나게 할 것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문제는 문장이다. 좋은 문장을 만들려는 당신의 욕심과 노력이야말로 당신몸속에 잠재한 좋은 생각, 할말 쓸말을 찾아내기 위한 작가로서 거쳐야할 힘든 과정이다.
3. 어휘 구사력, 당신의 문학적 재능이다.
어휘력이란 자신이 아는 낱말을 적절히 써먹는 능력이다. 프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은 영원히 유효한 명언이다. 하나의 사물을 표현하는 데는 꼭 필요한 낱말이 따로 있다.
4. 우리말의 특징을 당신의 개성으로 수용하라.
우리말은 부사와 형용사어가 풍부하다. 의태어, 의성어, 첩어 등의 발달로 그 어감의 뉘앙스가 뜻의 곡진한 전달에 기여한다. 의성어, 의태어 등은 소설 쓰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창조된다. 개 짖는 소리를 '멍멍'하지 않고 '까웅까웅'하거나, 뻐꾸기 소리를 '뻐꾹뻐꾹'하지 않고 '워꾹워꾹'하는 발상이 필요하다.
5. 국어사전, 문장의 바이블이다.
어휘력을 기르고 유효적절한 말을 구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펴보면서 쓰는 일이다. <우리말 분류사전>이나 <우리말 역순사전>, <속담사전>,<백과사전>도
필수적이다.
6. 문법에 맞아야 옳은 문장이다.
뜻이 잘 통하지 않는 애매모호한 문장을 만들면 안 된다. 미승우 씨의 <맞춤법과 문장작법>에서 발췌해본다.
.어미와 조사를 정확하게 가려 써라./조사를 함부로 생략하지 말라.
.적절한 낱말을 골라 써라./뜻이 모호한 문장을 만들지 말라.
.설명이 부족해선 안 된다./어색한 문장을 만들지 말라.
.시제가 맞아야 문맥이 호응된다./사실과 다른 지식을 쓰지 말라.
.비과학적 문장은 피하라./긴 문장을 만들지 말라.
.맞춤법에 맞게 써라./외국어를 함부로 쓰지 말라.
.띄어쓰기도 지켜야 한다./ 겹말을 피하라.(기간 동안,피해를 입다, 역전 앞, 라인 선 줄 너머로 나가시오)
.문장부호에 주의하라.
7. 지나친 미문의식이 좋은 문장을 방해한다.
소설은 아름다운 문장보다 개성 있고 뜻 전달이 곡진하며 참신한 문장이 필요하다. 지나친 美文의식은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을 흐린다.
예)그녀는 내 오른쪽 어깨너머로 순두부를 붕대에 싼 듯이 물컹한 젖가슴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아름답게 꾸민 말과 글귀는 하고자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흐려놓거나 그것의 진실됨 혹은 절실함을 잃게 한다. 진실됨과 절실함이 없기에 아름다운 말과 글귀로 위장을 하는지도 모른다.
8. 수식어를 많이 쓰는 문장은 내용이 빈약하거나 자신 없다.
예)그렇게 아름답고 화려한 그 예쁜 신부의 고운 얼굴이 어느 순간에 비애와 크나큰 절망으로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9. 지나친 미문의식은 복문형태로 나타나 문맥이 안 통한다.
예)붉은 바탕색 위에 군데군데 검정과 흰색이 십자로 이어진 인조가죽 잠바를 씌운 핸들을 잡고 있는 현우의 손은 흡사 골수종증을 앓고 있는 환자의 것처럼 마디마디가 퉁그러져 있었다.
10. 복문형태의 문장은 한 문장에 묶지 말아야 될 상황을 엮어 중심의도를 애매하게 만든다.
예)그는 왼손으로 책을 접으면서 긴 하품을 하고 그녀의 가는 허리에 눈을 준 채 구두를 찾아신은 뒤 회사로 가기 위해 집을 나왔다.
11. 동의어의 중복도 지나친 미문의식이다.
예)나는 희죽희죽 싱거운 웃음을 실적게 흘리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12. 상투적이고 진부한 어휘, 추상적이고 관념적 어휘는 글의 사실성과 실감을 반감시킨다.
예)사무치는 연민에 몸을 떨었다, 의식의 협곡
13. 밀도 있는 문장
밀도란 어느 부분을 집중적으로 깊이 있게 서술하는 걸 말한다. 필자는 중 고교때 밀도가 있는 부분은 대충 뛰어넘어 사건의 진행이나 좇는 독서를 해서 지금도 쉽게 고쳐지질 않는다.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쓰면서 깨닫게 된 사실은, 필자가 지루하다고 그냥 지나친 부분이야말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힘들여 집어넣었거나 사건의 배경으로서 암시와 상징을 보여준 중요부분이었다는 점이다. 등장인물의 심리나 사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통 대중 통속소설과 본격 순수소설을 구분 짓는 데도 소설의 밀도가 상당히 작용한다.
14. 소설문장의 밀도는 예술로서의 미적 가치를 획득한다.
의식의 흐름을 구사한 대개의 소설문장이 밀도를 미덕으로 삼는다. 특히 소설을 처음 써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에 따른 문체가 만들어지기까지 되도록 밀도 있는 문장을 많이 써보는 게 좋다. 처음부터 듬성듬성 성긴 문장은 버릇이 되어 이야기 자체의 밀도까지 잃게 된다. 문장의 밀도 주기는 작품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그 작가의 이야기 솜씨로써 높고 낮음, 길고 짧음, 혹은 빠르고 늦추기의 호흡 조절과도 같다.
15. 억지로 만든 문장은 좋은 문장이 아니다.
숙련공만이 좋은 물건을 만든다. 좋은 문장도 훈련에 의한다. 그러나 문장에 재능이 있다는 사람이 종종 범하는 실수는 문장에 기교를 부리는 일이다. 문장의 잔재주도 문장을 억지로 만드는 데 해당된다. 문장에 힘을 쏟는 것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생각을 깊이 정리하는 것이되, 문장을 억지로 만들기는 그릇의 겉모양으로 내용의 빈약함을 가리려는 속셈이다. 좋은 문장은 보다 효과적인 내용전달 방법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16. 자기만이 아는 이야기, 솔직한 이야기가 좋은 문장의 방법
자기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 그 흥이 좋은 문장을 만드는 힘이 된다. 마음에 감추는 게 있고 자기 신념이 아닌 걸 자기 것인양 말할 때는 필요이상 수다스럽거나 과장되기 마련이다. 솔직한 마음이 아닐 때 그 문장에 성실성을 보이기도 어렵다. 독자는 솔직하지 않은 문장, 성실하지 못한 문장은 금방 알아차린다.
17.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흐름으로 글의 톤이나 문체, 시점은 물론, 내용이 일관되어야 한다. 아우트라인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소설문장이 일관성을 갖는 실질적인 경우는 대명사와 인칭 사용문제이다.
18. 시제, 대체로 과거형으로 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소설시제는 과거형이다. 이야기 속의 어느 장면을 현실감 있게 그리기 위해서 현재형으로 쓰기도 하나, 과거형과 현재형이 일관된 흐름이어야 뜻한바 효과를 얻는다. 우리말에서 과거완료형은 불필요하다.
예)나는 열아홉 살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문제아였었다.? 문제아였다.
19. 대명사 사용의 일관성
문장의 앞에 나오는 명사를 너무 흔하게 삼인칭 대명사로 바꾸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생략하거나 명사를 그대로 쓰는 것도 괜찮다. 황순원은 가능하면 '그'를 사용하지 않았다.
예)준태는 눈알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눕고만 싶었다. 차츰 더 전신이 까부라지고 머리가 내돌려 주모더러 물을 달래가지고 병원에서 지어온 약을 먹었다. 입맛이 없어 점심을 거른 빈 속에 약을 먹어서 그런지 속이 메슥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술도 안하며 앉아있기가 뭣하기도 했지만 준태는 억지로라도 낟알기를 좀 해야 기운이 차려지는 것 같아 주모더러 흰죽을 좀 쒀 달라고 했다.
20. 띄어쓰기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작가 나름의 기준에 따라 띄어쓰기를 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창조자로서의 권위와 개성의 발현으로서 나름의 원칙이 있어도
괜찮다는 뜻이다. 대개의 작가는 소설 습작을 할 때 다른 작가의 작품 10여 편 이상을 원고지에 베껴 쓰는 과정에서 문장의 구조나 어휘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문장공부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베껴 쓰는 과정에서 주어, 술어의 호응은 물론 형식단락과 내용단락도 구별할 수 있어 글의 전체적 흐름도 파악하게 된다. 소설의 습작은 문장공부로 시작한다. 작가가 된 뒤에도 당신의 문장공부는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좋은 문장이 좋은 소설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원글 출처: 등용문, 편집및 정리-청안애어>
출처 http://blog.daum.net/whatayun/4322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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