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 피아노

[스크랩] 조반니 비오티 / 피아노 협주곡 G단조 (Piano Concerto in G minor)

Bawoo 2014. 4. 2. 13:20

조반니 비오티 / 피아노 협주곡 G단조

Piano Concerto in G minor

 

 


Felicja Blumenta piano / Alberto Zedda, cond / Torino Symphony Orch/ 3악장 Presto

 

 

조반니 비오티 / 피아노 협주곡 G단조

Piano Concerto in G minor

조반니 비오티 (Giovanni Battista Viotti)

1755.5.12 ~ 1824.3.3 .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연주자·작곡가. 피에몬테 출생. G.푸냐니에게 사사한 뒤 1780

년 스승과 함께 유럽 각지를 여행하고, 1784년에는 파리에서 마리앙투아네트의 장려금을 받아 궁정 연주자가 되었다. 1788년부터 이탈리아오페라운동을 일으켰으나 프랑스혁명으로 중단되고, 1795년 정치상의 혐의로 함부르크 교외로 추방되었다. 뒤에 풀려나 런던에서 잠시 술장사를 하다가 1813년 악단에 복귀하여 1818∼1822년에는 파리에서 지휘자로 활약하였다. 바이올린 연주법을 확립하여 후세의 연주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29곡의 협주곡을 비롯하여 많은 바이올린곡을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연주되는 곡이 적지 않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악재(樂才)를 보여 처음에는 스승 G. 푸냐니를 따라서, 뒤에는 혼자 유럽 각지를 연주여행하였으며, 1780∼90년대에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인정되었다. 90년대부터 런던·파리에서 극장의 음악감독, 지휘자를 지냈고 말년에는 잠시 파리오페라극장의 감독으로 있었으며 런던에서 죽었다. 그의 연주는 이탈리아 바이올린 연주기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서 세련된 음색이 특히 뛰어났다 한다. 그의 작품은 29곡의 바이올린협주곡으로 대표되며, 고전적 형식의 테두리 속에서 이탈리아의 연주기교와 낭만파의 감정표현이 융합되어 있다.

 

Franco Mezzena의 바이올린 연주로 듣기

 

1악장 (Allegro Maestoso)

2악장 (Adagio non Troppo)

3악장 (Presto)

Franco Mezzena, Violin / Luciano Borin. Cond. / Viotti Chamber Orchestra

 

 

프랑스 악파의 기초가 된 비오티 연주법

 

파리 음악원이 설립되기 몇 해 전인 1786년, 프랑수아 투르트가 활등이 오목하게 휘어진 현대적인 활을 개발해낸 사건은 주목할 만하다. 투르트의 활은 곧 현대적인 운궁법의 출현을 뜻하며, 또한 현대까지 이어지는 바이올린 악파의 연주법이 개발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활털을 팽팽하게 조인 투르트의 활은 활등이 볼록했던 예전의 활보다 탄력이 뛰어나고 현에 대한 밀착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바이올린으로부터 훨씬 더 강력한 소리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투르트의 활에 매혹되었고 그때부터 오늘날과 같은 현대적인 운궁법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782년 ‘현대 바이올린 연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비오티가 파리로 건너온 사건은 프랑스 바이올린 악파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비오티는 푸냐니로부터 배운 이탈리아 전통 바이올린 연주 기법을 현대적으로 다듬어 그의 세 제자 로드·크로이처·바이요에게 가르쳤다. 이 주법은 곧 파리 음악원을 통해 전수되면서 프랑스 바이올린 악파의 서열과 인맥이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비오티로부터 뻗어나간 바이올리니스트의 계보가 프랑스 악파뿐만 아니라 독일과 러시아의 바이올린 악파로 발전했던 것을 보면, 비오티야말로 현대 바이올린 악파의 시조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 바이올린 연주의 아버지 비오티(Giovanni Batistta Viotti, 1775-1824)는 1755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푸냐니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코렐리의 바이올린 연주법의 흐름을 이어받았다. 그는 1775년부터 1780년까지는 이탈리아 궁정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1780년부터 1781년까지 스승인 푸냐니와 함께 유럽 각지를 순회하며 연주했다. 1872년 파리로 건너가 그때부터 10년간 파리에 머무르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했을 뿐만 아니라 오페라 지휘와 작곡에도 전념하여 그가 남긴 29곡의 바이올린 협주곡들 가운데서 무려 19곡을 작곡했다. 비오티는 이탈리아 출신인데다 코렐리의 전통을 이어받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까닭에 그가 파리에 가서 전파한 바이올린 주법은 기본적으로 이탈리아 바이올린 음악의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바이올린 문헌사를 살펴보면 마리니로부터 시작해 코렐리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은 이탈리아 바이올린 음악은 특히 성악적인 선율선과 노래하는 듯한 표현력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은 바이올린 주법에도 영향을 미쳐 다성음악(polyphony)을 연주하기 위한 중음 주법(double stopping) 등의 난해한 테크닉은 드물게 나타났던 반면, 3포지션을 넘지 않는 음역에서 효과적으로 선율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내는 연주법이 발전했다. 비오티의 연주법은 이렇듯 기교에 치우치지 않고 선율적인 아름다움에 비중을 두는 이탈리아의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여기에 비오티 자신의 개성적인 주법도 첨가되면서 좀더 현대적인 주법으로 다듬어졌고, 이것은 프랑스 악파의 바이올린 연주법의 기초가 되었다.

 

비오티 특유의 바이올린 테크닉 중에서 중요한 것은 빠르고 강렬한 비브라토와 ‘비오티 보잉’이라 칭해지는 특수한 활 주법이다. 비오티의 연주는 힘이 넘치고 여유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여기에는 빠른 비브라토가 한몫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왼손의 관절을 움직여 진동음을 만들어내는 비브라토 주법은 일종의 장식적 효과 정도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강조하고 싶은 음에 약간 사용되는 정도였지만, 비오티는 극적이고 인상적인 표현을 하기 위해 좀더 강렬한 비브라토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의 활 잡는 방식도 오늘날과 비슷해서 집게손가락의 둘째 마디에 활대가 닿도록 활을 감싸쥐고 오른손의 엄지와 중지가 마주보게 하여 중심점을 형성한 다음, 나머지 손가락들을 차례로 가지런히 올려놓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런 방법은 활의 속도와 균형의 조절을 용이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점 리듬 음형에서 긴 음을 업 보우로 연주하고 짧은 음표를 다운 보우로 연주하여 짧은 음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비오티의 보잉’이야말로 현대의 바이올린 교본에서도 다루어질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자료출처 : NATE 지식 Q&A)

 

비오티의 29개 바이올린 협주곡 중 13개는 그의 생전에 피아노 협주곡으로 출판되었다. 그 중 'Violin Concerto No.19 in G minor' 의 피아노 버젼이 이 곡이다. 

 

Viotti - Piano Concerto in G minor

 

 

 

출처 : 멀뚱박사의 사랑방
글쓴이 : 멀뚱박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