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전신첩은 일본으로 유출되었던 신윤복의 풍속화를 1930년 전형필이 오사카의 고미술상
에서 구입해 와 새로 표장한 것이라고 한다. 가로 28.2cm, 세로 35.6cm의 작은 화면 안에
들어있는 이 그림들은 우리의 눈을 커지게 하고, 상상력을 마구마구 부풀리는 작품들이다.
간송미술관에서 전시회가 있을 때마다 몇 점씩 선보이는 이 작품집 전체가 궁금해졌다.
하여 간송미술관에서 본 30점의 작품 중에 먼w저 15점을 제 1부로하여 올린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그림들의 화가들 중에서 혜원 신윤복처럼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화가도
없을 것이다. 혜원의 그림이 전시된다고 하면 유난히 긴 줄을 늘어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번 가을 전시회는 "혜원전신첩"의 30 작품 중에서 무려 절반이나 전시가 되었다.
우리를 매혹시키는 그의 작품들을 보자면 마음이 화사해지고 은유적인 제목에 살짝 미소가
지어진다. 또 그 그림 속의 여인네들은 어찌 그리 자태가 고운지..양반네들의 마음이 녹아
내리지 않을 수 없지 싶다. 아마도 나도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뻑~소리나게 갔을듯..^^ㅋㅋ~
1. <청금상련 聽琴賞蓮> 가야금 소리를 들으며 연꽃을 감상하다.
화제는 "좌상에는 손님이 가득하고(座上客常滿), 항아리에는 술이 비지 않으니(樽中酒不空),
나는 걱정이 없다(吾無憂矣)" 라고 한다. 연꽃이 가득한 연못이 있는 정도의 대저택의
지체높은 양반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2. <월하정인 月下情人> 달빛 아래의 정인들
화제가 재미있다.
오주석의 화제를 인용해 본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그림 중>
"달도 기운 야삼경(月沈沈夜三更), 두사람 속은 두 사람만 알지(兩人心事兩人知)"
두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두 사람은 누구인지, 그들만이 알 것이리라. ^^
3. <월야밀회 月夜密會> 달밤에 몰래 만나다
이번에는 보름달이다.
무관의 차림을 한 남자와 함께 있는 여자, 모퉁이에서 그들을 보고 있는 또다른 한 여자...
무슨 삼각관계인지 우리의 호기심을 최고로 자극한다.
4. <춘색만원 春色滿園> 봄빛이 전원에 가득하다.
화제는 이러하다.
"봄빛이 전원에 가득하니(春色滿園中) 꽃이 붉게 흐드러지게 피었다(花開爛漫紅)".
여자의 바구니를 붙잡고 장난삼아 수작을 거는 듯이 보인다.
5. <소년전홍 少年剪紅> 소년이 붉은 꽃을 꺾다.
화제는 이러하다.
"빽빽한 잎사귀에 푸르름이 짙게 쌓이니(密葉濃堆綠) 무성한 가지들은 굵은 꽃송이를 뿌리며
떨어진다(繁枝碎剪紅)". 이형기의 낙화가 떠오른다. 분분한 낙화, 붉은 꽃잎은 떨어지는
결별 뒤에 찾아오는 무성한 녹음. 그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림은 그런 아름다운 결별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지 않다.
소년은 붉은 꽃이 아닌 좀 나이들어 보이는 여인의 손목을 꼭 잡고 있는 것이다.
6. <주유청강 舟遊淸江> 맑은 강에서 뱃놀이를 한다.
화제는 이러하다.
"젓대소리 늦바람으로 들을 수 없고(一笛晩風聽不得), 백구만 물결 좇아 날아든다.
(白驅飛下浪花前)" 대금과 생황의 소리 가득한 뱃놀이라.. 낭만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화제가 심상치 않다. 늦바람 때문에 대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니,
그 늦바람은 무엇이고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 백구는 무엇인가..?
7. <연소답청 年少踏靑> 젊은이들이 푸르름을 밟는다.
봄나들이를 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곰방대를 물고 있는 여인들은 기녀들인 것 같고, 장옷을 걸치고 말을 탄 여인은 양반댁 처자인
것 같다. 길이 만나는 곳에서 두 일행이 마주치기 바로 전인데, 기녀들의 일행이 잠시 말을
쉬며 기다리는 듯 하다.
8. <상춘야흥 賞春野興> 봄을 즐기는 들놀이의 흥겨움..
양반들의 상춘에 악사와 기녀들을 대동하였다. 가야금과 해금, 대금 연주가 있고, 넓은 자리에
장침과 담배까지 준비되고, 술상이 들어온다. 사람들의 얼굴표정이 각각이다.
9. <무녀신무 巫女神舞> 무녀의 신춤..
사선으로 된 구도 위쪽에 자리한 무녀의 옷차림이 눈에 뜨인다.
복을 비는 여인들이 여럿인데 각기의 표정과 시선이 사뭇 달라서 재미있다. 담장 너머의
남자가 굿판을 살짝 엿보는, 혜원 특유의 드러내어 놓은 엿보기의 즐거움이 표현되어 있다.
10. <주사거배 酒肆擧盃> 술집에서 술잔을 들다.
주모의 파란 치마와 손님의 붉은빛 저고리에 노란 초립을 쓴 손님이나 푸른빛 포를 입은
손님들의 옷 색상이 밝고 활기찬 느낌을 준다. 화제는 이러하다.
"술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擧盃邀皓月), 술항아리 끌어안고 맑은 바람 대한다.
(抱甕對淸風)" 주당들의 풍류가 넘치는 화제이다.
11. <계변가화 溪邊佳話> 시냇가의 아름다운 이야기..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머리를 감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눈길도 발걸음도 떼지 못하는
남자의 모습. 특히 젊은 여인이 긴 머리를 땋아 내리는 모습에 눈길이 가는 듯 하다.
뒤편의 할머니가 못마땅한 듯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 재미있다.
11. <쌍검대무 雙劍對舞> 쌍검을 들고 마주보고 춤을 추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회의 혜원 그림 중에서 가장 감탄을 하며 감상하였던 작품이다.
여러 기생들과 양반들 앞에서 검무를 추는 기생들의 모습인데,
날렵하게 움직이는 몸짓과 아름답게 돌아가는 버선발의 선이며 휘날리는 옷자락이며, 시선을
뗄 수 없을 아름다운 자태이다. 이렇게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래쪽의 악사들 또한 그 뒷모습만으로도 어떤 악기를 연주하는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고, 위쪽의 인물배치 또한 꽉 차 있지만 결코 넘치지 않는 짜임새를
보여준다. 고운 색상의 검무도 의상과 작은 장식깃털까지 세세히 표현한 섬세함..
그 최고의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가슴에 담아두게 된다.
13. <야금모행 夜禁冒行> 야간 통금을 무릅쓰고 간다.
다른 그림에 비해 인물이 다소 크게 그려져 있는데, 그들의 옷차림을 보아하니 추운 겨울밤이다
손으로 곱게 누볐을 속바지, 누비저고리, 팔토시, 그리고 초롱불을 들고 있는 소년이 가지고
있는 풍차.. 추위를 무릅쓰고 어딜 가는 것일까..
빨간색 포를 입은 사람은 순라꾼이 아닐까 싶은데, 이 양반은 금지되어 있는 통행을 허가받을
만큼의 빽이 있나 보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그 장면을 포착한 혜원은 뭐냐..?
14. <이부탐춘 嫠婦耽春> 과부가 봄빛을 탐하다.
어느 양가댁 후원에서 과부가 봄볕을 쬐고 있는데 개 두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눈웃음치며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아마 과부일 것이다.
함께 있는 여인은 아직 처녀인데, 당황스러운지 과부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다.
'봄을 탐한다'는 제목을 누가 붙였는지 참으로 표현이 딱이다.
15. <단오풍정 端午風情> 단오날의 운치있는 정경..
이 그림은 워낙 유명한 관음증(Voyeurism)으로 해석되는 작품인데, 실제 그림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참으로 따뜻하다. 엿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동자승이라서 그럴까..
어쨌든 나는 개인적으로 여인들을 보는 혜원의 따뜻한 눈길이 느껴졌다.
그림 속의 남자들은 데리고 노는 대상으로 여자들을 바라보고.
그림 밖의 남자들은 눈요기감으로 보는 대상으로 여자들을 바라보지만,
그림을 그리는 혜원의 시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만의 느낌일까..?
16. 미인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미인도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너무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머리카라 한올한올까지 빛을 발하며, 얌전한 눈매와 작은 입술, 가녀린 어깨,
풍성한 치마와 단아한 버선코까지한국사람이라면 어찌 이 여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화제는 이러하다.
오주석의 화제를 인용해 본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그림 중>
"가슴 속에 서리고 서린 봄볕 같은 정(盤胸中萬化春)
붓끝으로 어떻게 마음까지 전했을꼬(筆端能與物傳神)"
제 1부 - 끝 -
2014/04/25 -휘뚜루 -
Bold as love / Jimi Hendrix
gayageum L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