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기방무사 妓房無事> 기방에는 아무일 없다.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제목을 보고는 한참을 웃었다.
그 역설적인 재치에 어찌 감탄하지 않으리.
누비이불을 덮고 있는 천연덕스러운 남자의 얼굴과 새초롬한 기녀의 얼굴이 재미있다.
17. <청루소일 靑樓消日> 청루에서 시간을 보내다.
생황을 들고 쪽마루에 앉아있는 여인네에게 손님이 찾아왔나보다.
시종인 듯 보이는 소년을 대동하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여인이 나긋나긋하게 웃는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남자가 내다보며 미소를 지을 듯 하다.
소소한 기방의 일상인가 보다.
다른 그림과는 다르게 이상하게도 소년이 너무 작게 그려져 있다.
18. <노상탁발 路上托鉢> 길 위에서 시주를 청하다.
길 위에서 스님들이 시주를 청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좀 요란스럽게 법고까지 두드리면서 시주를 청하였나 보다. 장옷을 걸치거나
쓰개치마를 쓴 여인들이 길을 가다 멈춰서서 치마를 들춰 시주할 돈을 꺼내고 있다.
19. <납량만흥 納凉漫興> 피서지에서 흥이 무르익다.
악사들을 대동하고 피서지로 왔는지 절벽 아래에서 기생과 함께 춤까지 추고 있다.
여인의 몸짓에서 살짝 요염함이 느껴진다. 피서지에서의 춤판은 예전에도 있었나 보다.
이건 아저씨들의 춤판..^^ 요즘은 아줌마들의 춤판..^^
20. <임하투호 林下投壺> 나무 아래서 투호를 하다.
화제는 좀 난해하다.
"관구(款驅: 정성 관, 몰 구)가 가는 털에 들게 되었으니(款驅造化入纖毫),
가로로 맡겨둘지라도 슬퍼할 수 없다(任是枅?不可悲)"
해독이 어려워서리...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십시오 ㅠㅠ
어쨌든 투호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다.
21. <휴기답풍 携妓踏楓> 기녀를 태우고 단풍을 밟다.
화제는 이러하다
"낙양재자는 다소 안다(洛陽才子知多少) "
낙양재자는 낙양에서 재주많은 사람, 이름난 문장가라는 뜻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도시의 엘리트 정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가 무엇을 다소 안다는 것일까..?
여자를 데리고 가을풍류를 느끼러 다니는 것의 즐거움..? 그런 것일까..?
바람이 불어 도포자락과 갓끈이 너풀 날리는 선비를 기녀가 바라보고 있다.
22. <쌍륙삼매 雙六三昧> 쌍륙놀이 삼매경에 빠지다.
화제를 이렇게 해석한 것을 보았다.
"기러기 비켜나는 울음소리 역력한데 인적은 고요하고 물시계 소리만 아득하다"
쌍륙놀이가 그렇게나 재미있나 보다.
23. <문종심사 聞鐘尋寺> 종소리를 듣고 절을 찾아가다.
"소나무는 많고 절은 보이지 않는데(松多不示寺)
인간세상은 시끄러운 종소리로 흘러간다(人在徂闹鐘)"
시끄러운 인간세상을 떠나, 고즈넉한 절로 불공을 드리러 오는 여인의 모습이다.
귀한 손님인 양 스님이 홍문 밖가지 나와 반기며 맞는다.
24. <노중상봉 路中相逢> 길가운데서 만나다.
길 위에서 네 남녀가 만나는 다소 밋밋한 그림이다.
그냥 쉬 넘기는 그림이라 했는데 이 그림의 인물들이 입고 있는 복색으로 보아 장례를 마친
후의 그림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http://blog.naver.com/mzsj64/30025014000 참고)
25. <정변야화 井邊夜話> 야심한 밤 우물가에서 이야기 나누다.
야심한 밤 우물가에 있는 두 여인네들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서 있는 여인은 무슨 고민이 있는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서서 근심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앉아있는 여인은 물을 길어올리면서 눈은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담장 너머로 한 양반이 그들에게 호기심어린 눈길을 보낸다.
26. <삼추가연 三秋佳緣> 세 사람의 아름다운 인연
제목은 아름답기 그지 없는데, 어째 분위기가 묘하다.
국화꽃 만발한 가을의 정원에서 이 세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늙은 여인이 웃통을 벗은 남자에게 술을 권하고 있고 남자는 젊은 여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대님을 매고 (혹은 풀고?) 있다. 늙은 여인이 음흉하게 웃고 있는 듯한 이 그림을 대부분
"소녀의 초야권(?)을 사고 있는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이 그림을 조선시대의 애정소설인 "절화기담(折花奇談)"의 한 장면으로 해석하는 글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관련기사->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0726023008)
27. <표모봉욕 漂母逢辱> 빨래하던 아줌마, 봉변을 당하다.
이 그림 역시 별다른 화제도 없고,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큰 바위 아래에서 한 여인이 빨래를 하고 있고, 다른 쪽에는 노파와 젊은 스님이 빨래방망이를
들고 실랑이를 하고 있다. 젊은 여인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빨래하는 여인에게 수작을 걸려는 것일까..? 늙은 노파와 장난을 하는 것일까..?
어쨌든 젊은 스님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28. <유곽쟁웅 遊廓爭雄> 기생집에서 남자다움을 다투다.
혜원의 그림 중에서 기생집에 드나드는 양반의 모습이 가장 한심스럽게 그려진 그림이지 싶다.
다툼이 어찌나 거칠었는지 옷이 다 벗겨지고,갓은 박살이 났으며 상투 아래로 머리가 헝클어져
내렸다. 경찰 쯤으로 보이는 붉은 옷을 입은 별감이 나서서 뜯어말리고 있다.
기생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 한심한 듯 바라보는 눈빛이 바로 화가의 눈빛이지 싶다.
29. <니승영기 尼僧迎妓> 스님이 기녀를 맞이하다.
스님이 버드나무 아래에서 여인을 만나 예를 갖추고 인사를 한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는데, 화제가 "기녀를 맞는다"이다. 여인이 아니라..
그래서인지 삿갓 아래에 감추어진 스님의 얼굴이 발그레하다.
30. <홍루대주 紅樓待酒> 홍루에서 술을 기다리다.
초가지붕의 술집에서 기녀와 세 남자가 앉아서 술을 기다린다.
화면 가장자리에서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주모가 술을 준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먹색인 화면에 기녀의 푸른 치마가 화사하게 시선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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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전신첩]의 그림 30점을 모두 감상해 보았다.
하나같이 여인들을 그림의 중심에 두고 양반, 승려 등의 남자들을 배치해 두고 있다.
남자가 세상의 중심이고, 여자는 남자의 보조역할의 삶을 강요당하던 사회에서 여인들이
화면의 중심자리에 배치되고, 그림의 주인공이 된 데에는 화가의 의도가 분명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통해 그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을 관람자의 몫으로 비워둔 혜원이 그림들..
그의 그림을 보는 것은 숨어있을 법한 이야기를 상상해내고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는 것..
그 이야기를 상상하는 데에는 반드시 어떤 '강요된 금기'를 풀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들로 혜원의 그림이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이리라~!
제 2부 - 끝 -
2014/04/27 - 휘뚜루 -
Bold as love / Jimi Hendrix
gayageum L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