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fioraia fiorentina La Fioraia Fiorentina from Péchés de vieillesse, 오페라 부파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드높인 로시니는 극장 작곡가로서 세태에 부응하는 표현 기법으로 대중을 사로잡아 2세기에 걸친 이탈리아 오페라의 금자탑을 세운 대가이다. 유려한 선율과 생생한 인물 묘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며 또한 오페라 아리아에서도 대단한 수완과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어로는 플로렌스(Florence)라고 한다. 로마의 북서쪽 약 230㎞, 아펜니노산맥 기슭, 아르노강 연변에 있다. 기후는 비교적 온화한데 일시적으로 극단적인 계절적 기온을 나타내기도 한다. 11세기말 마틸데 디 카노사 시대까지 도시의 발전은 정체되었으나, 12세기초 자치도시가 된 뒤 모직물공업이 발전하여 유럽의 상공업·금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3세기초 교황당(겔프)과 황제당(기벨린)이 싸워 교황당과 대상인(大商人)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그 뒤 대상인은 정치적 혼란을 틈타 세력을 확장하였고, 13세기말 교황청으로부터 징세업무를 위임받아 금융·무역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여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15세기초 피렌체의 재벌 메디치가(家)가 권력을 장악하였고 C. 메디치와 손자 L. 메디치가 실질적인 독재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들은 예술과 학술을 후원하는 등 르네상스 진흥을 위해 노력하였고, 이때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까지 메디치가의 추방과 복귀가 되풀이되었으나 1532년 메디치가의 세습체제가 확립되고 피렌체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메디치가의 분가(分家)인 코지모 1세가 토스카나대공(大公)의 칭호를 받아 69년 토스카나공국(公國)이 성립하였으며 피렌체는 수도가 되었다. 그 무렵부터 질병이 유행하고 인구가 감소되었으며 경제도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나 1737년 메디치가 최후의 대공 가스토네가 죽은 뒤 계몽군주 레오폴트 2세의 치세로 다시 활기를 찾았다.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이탈리아 통일운동)의 고조 속에 1860년 국민투표에 의해 사르데냐왕국(61년 통일 이탈리아왕국이 됨)에 통합되었고 65∼70년까지 통일 이탈리아왕국의 수도였다. 제 2 차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치열한 공습을 받았으며 1967년 아르노강이 범람하여 우피치궁전 등의 문화재가 큰 손실을 입었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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