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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세상을 바꾼 엔지니어들 - '수돗물 혁명' 조지 풀러(1868 ~ 1934)

Bawoo 2014. 7. 29. 09:31

세상을 바꾼 엔지니어들 ④ '수돗물 혁명' 조지 풀러(1868 ~ 1934)

1908년 6월 19일 오후 미국 뉴욕에 있는 조지 풀러(George Fuller·사진)의 사무실에 존 릴이 찾아왔다. 풀러는 황산알루미늄을 이용해 물속 불순물을 걸러내는 급속여과법을 개발한 미국 수질공학계의 떠오르는 스타였다. 반면 릴은 뉴저지주에서 공중보건책임자로 명성을 얻은 의사였다. 당시에는 저지시티에 상수도를 건설한 회사의 보건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수돗물이 오염돼 법원으로부터 긴급 개선명령을 받은 참이었다. 릴은 일면식도 없던 풀러를 찾아와 “수돗물 염소소독 공장을 지어달라”고 했다. 그것도 석 달 안에 완공해 정식 운영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유럽과 미국에 상·하수도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세기 말부터다. 당시에는 깨끗한 물을 상수도로 끌어오고 하수도로 더러운 물을 분리 배출하기만 하면 식수 오염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상·하수도를 보급해도 수인성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수돗물이 상수도 취수장에 섞여 들어갔기 때문이다. 상·하수도가 보급되면 보급될수록 더 넓은 수원이 오염됐고 전염병이 퍼졌다. 미국의 수질공학자 마이클 맥가이어는 이를 ‘죽음의 나선’이라고 불렀다. MIT 화학과 재학 중에 결혼한 풀러도 첫 아내를 그렇게 잃었다.

풀러가 설계한 분튼취수댐과 그 밑의 염소처리장.

 

 몇몇 수질공학 엔지니어와 의사들은 염소 살균법을 대안으로 검토했다. 하지만 비커 실험 수준이었을 뿐 대형화에는 모두 실패했다. 염소는 농도가 낮으면 살균력이 떨어지고 높으면 인체에 해롭다. 이 때문에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규모가 커질수록 염소를 고루 섞는 게 힘들었다. 한데 하루 15만t의 수돗물을 처리하는 염소소독 공장을 지어달라니…. 풀러는 릴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염화석회 를 써보면 어떻겠느냐”는 릴의 아이디어에 무릎을 쳤다. 당시 표백제로 팔리던 염화석회는 풀러가 개발한 급속여과법에 쓰이는 황산알루미늄과 비슷한 방식으로 물에 녹기 때문이었다. ‘수돗물 혁명’은 그렇게 시작됐다.

 풀러는 약 40t 용량의 혼합조에서 0.5~1% 염화석회 용액을 만든 뒤, 이를 저장 탱크로 퍼올려 취수탑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섞어 주는 설비를 만들었다. 이곳에선 유량에 따라 밸브를 조절해 염소 농도를 1ppm 이하로 조정할 수 있었다. 풀러는 송수관을 여러 번 꺾어 시내까지 37㎞를 흘러가는 동안 염소 용액과 취수 원수가 고루 섞이도록 했다. 덕분에 낮은 농도로도 살균이 잘됐다.

 풀러와 릴이 만난 지 99일째, 풀러가 설계한 분튼염소처리장은 살균한 수돗물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추가 경비는 하루 5~6달러에 불과했다. 두 사람의 아이디어는 곧 미국 전역에 퍼졌다. 10년 만에 약 3300만 명이 살균 처리된 수돗물을 공급받게 됐다. 문명 세계의 장티푸스 사망자는 한때 매년 10만 명당 20여 명에서 이제 소수점 이하로 떨어졌다. 풀러의 염소 소독법이 인류를 ‘죽음의 나선’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 이관수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