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ph Leopold Eybler - Clarinet Concerto in B-flat major (1798)
Clarinet: Dieter Klöcker / Orchestra: English Chamber Orchestra
Work: Clarinet Concerto in B-flat major (1798) written for Anton Stadler.
Mov.I: Allegro maestoso 00:00
Mov.II: Adagio 11:22
Mov.III: Rondo alla turca: Allegro 17:04
오스트리아 작곡가.
모차르트의 친구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요제프 아이블러(Joseph Leopold Eybler)는 1765년 빈 근교의 슈베하트(Schwechat)에서 태어났다.
음악가였으며 합창장을 지낸 그의 부친은 하이든 일가와 친분을 맺고 있었다.
아이블러는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으나 이후,당시 모차르트와 견줄만한 명성을 지니고 있던 저명한 작곡가
요한 게오르그 알브레히츠베르거(Johann Georg Albrechtsberger)에게 본격적으로 작곡및 음악이론에 대해 사사했다.
1792년,빈의 카르멜리트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됐고,2년 뒤엔 스코틀랜드 계열의 베네딕트 수도원인 쇼텐크로스터(Schottenkloster)로 옮겨서 30년간 그곳에서 일했다.
1824년, 궁정의 합창장이 돠었고,여황 마리아 테레자를 위해 일했다.
이 시절에 쓴 작품 가운데 <레퀴엠>이 있다.
한동안 아이블러를 가르쳤던 하이든을 통해서 모차르트를 소개받았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를 지휘하기도 했고 둘은 평생의 친구로 지냈다.
1790년에 모차르트가 아이블러를 위한 추천장을 쓴 일이 있었는데
..."아이블러는 알브레힛츠베르거의 제자로서 튼튼한 기초를 지녔으며,실내악과 교회음악,예술가곡에서 균등한 기술을 지니고 있으며,오르간과 클라비어 연주자로서도 재능이 있음을 증명합니다"...라고 썼다.
아이블러는 모짜르트에 대해
..."나는 그가 죽을 때까지 어떤 약속도 없이 그를 만날 수 있는 친구라는 행운을 가졌다.
나는 그를 침상에 옮겨주었고 그의 마지막 병고 동안에 그를 돌볼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모차르트가 죽고난 후 미망인 콘스탄쩨가 레퀴엠을 완성해달라는 청을 했고 아이블러는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은 완성하지 못했다.
1833년,모차르트의 레퀴엠의 완성에 매달려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탓으로 아이블러는 궁정음악가로서의 책무에도 많은 지장을 초래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그의 헌신이 인정을 받아 1835년에 귀족이 되었으며,그의 이름도 에들러 폰 아이블러(Edler von Eybler)로 격상되었다.
1846년,귀족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작품은 교회음악이다.
오라토리오,미사,칸타타,봉헌송,층계송,레퀴엠 등이 있다.
그 밖에 오페라,기악곡,가곡이 있다.
클라리넷 협주곡은 모차르트의 영향이 그의 음악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잘 들려준다.
■ 참고
*.요제프 아이블러와 모짜르트 '레퀴엠'
1791년 12월 5일 모차르트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슬픔에 잠긴 아내 콘스탄체에게 <레퀴엠, Requiem K.626>은 남편 모짜르트가 남긴 또 하나의 부담거리로 다가오게 되었다.
이미 선금으로 절반을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완성된 총보를 넘겨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와 가장 가까이 있던 제자 쥐스마이어 대신 아이블러(1765-1845)에게 '레퀴엠'의 보필을 의뢰했다.
여기에 대해 콘스탄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차르트는 '내가 오래 살아있을 수만 있다면,이것은 나의 걸작이자 백조의 노래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굉장한 열정으로
작곡했다.
몸이 약해진다고 느낄 때에는 쥐스마이어,나,그리고 그이가 함께 작곡한 것을 종종 노래불렀다.
결국 쥐스마이어는 모차르트에게서 진짜 레슨을 받은 셈이다.
그리고 나는 모차르트가 쥐스마이어에게 종종 이렇게 말하는 것도 들었다.
...'에이, 너는 또 다시 벼락맞은 오리같이 서 있구나. 언제나 이해할 수 있나?' ...
깃펜을 들고 주요 부분을 써 내려가는 것은 쥐스마이어에게 무리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쥐스마이어가 모차르트에 의해 남겨진 것들을 발견했다 가정해보면,그것은 레퀴엠이 전부 모차르트의 작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아이블러에게 악보를 주어 완성을 시키게 하려 한 것은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당시에 쥐스마이어에게 화가 나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 모차르트 스스로도 아이블러를 더 높이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 스스로는 모든 주요 부분이 작곡되어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블러를 불러 나의 소원을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정중히 용서를 빌면서 즉시 거절했기에 악보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콘스탄체는 아이블러에게 실제 악보를 전달해 주었고 12월 21일에 계약서까지 썼던 사실을 잊고 있었다.
대신 모차르트 스스로가 아이블러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다음의 증언으로도 확인된다.
...나는 요제프 아이블러가 그의 선생인 알베르츠베르거의 뛰어난 제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작곡의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교회와 실내음악의 양쪽에서 균등한 기술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성악가창에도 많은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또 뛰어난 오르가니스트이자 피아니스트이다.
짧게 말해서 아이블러는 그에게 필적한 만한 젊은이가 얼마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음악가이다....
그렇다면 아이블러가 넘겨받은 모차르트의 자필 원고는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을까?
여기에서 잠시 '레퀴엠' 전곡의 차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중략) 모차르트는 1부 입례송의 작곡은 오케스트레이션까지 완전히 마쳐 놓은 상태였다.
실제로도 모차르트가 죽은지 5일 후에 거행된 장례 미사에서 이 부분이 간단히 연주되기까지 했다.
2부 키리에의 경우는 조금 복잡하다.
아이블러가 넘겨받은 악보에는 이 부분도 완전히 완성되어 있는 상태였지만,실제 오케스트레이션은 모차르트가 한 것이 아니었다.
모차르트는 4성부의 성악과 첼로,베이스,오르간으로 구성된 콘티누오 부분만을 작곡했으며 나머지 관현악 부분은 모차르트의
제자인 프라이슈타틀러(1768-1835) 및 쥐스마이어가 써넣었다.
하지만 이들이 한 작업은 매우 단순한 것으로,프라이슈타틀러는 모든 관현악에 성악 및 콘티누오 부분을 그대로 중복하여 써넣었고,쥐스마이어는 트럼펫과 팀파니 파트를 맡았을 따름이다.
이런 수준의 작업은 모차르트의 생전에 그의 지시에 따라 제자들이 대신 해준 것임에 틀림없다.(최근까지 키리에는 완전히 모차르트가 완성시킨 것으로 생각되어져 왔다.)
3부와 4부에서 모차르트는 성악 및 콘티누오 파트를 완전히 작곡했지만 관현악은 여기저기 특징적인 부분만 제시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또 12/8 박자의 30마디로 완성되어 있는 '라크리모사'는 8마디까지만 작곡되어 있었다.
아이블러는 디스 이레부터 시작하여 라크리모사까지 모차르트의 자필 원고에 직접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넣었다.
하지만 '라크리모사'에 이르러 그는 8마디 이후 2마디의 소프라노 파트를 작곡해 넣은 후 기권을 하고 말았다.
오케스트레이션과 직접 멜로디를 작곡해 넣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콘스탄체가 기억하는 요제프 아이블러의 '정중한 용서'는 아마도 이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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