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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gang Amadeus Mozart의 아들]Franz Xaver Wolfgang Mozart

Bawoo 2014. 9. 8. 12:41

Franz Xaver Wolfgang Mozart

 

( 1791 -1844 / 정조  15년-헌종 9년, 53세) was the youngest

child of six born to Wolfgang Amadeus Mozart and his wife Constanze. He was a composer, pianist, conductor, and teacher whose musical style was an early Romanticism, heavily influenced by his father's mature style.( 모차르트 6자녀 중 막내. 작곡가,화가, 지휘자, 교사. 음악 스타일은 초기 낭만주의지만 아버지 모차르트의 원숙기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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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no Concerto No 1.2 외 다른 곡 모음( 연속 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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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no Concerto No.2 in E-flat major, Op.25 (1818)

 

Pianist: Henri Sigfridson
Orchestra: International New Symphony Orchestra Lemberg
Conductor: Gunhard Mattes

Piano Concerto No.2 in E-flat major, Op.25 (1818) Dedication to Son Altesse Imperiale Madam

e la Grande Duchesse Marie Paulowne, Princesse héréditaire de Saxe-Weimar



Mov.I: Allegro con brio 00:00
Mov.II: Andante espressivo 13:37
Mov.III: Rondo: Allegretto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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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Xaver Wolfgang Mozart(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들이다.

 

모차르트의 자녀 중 한명이 작곡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슈테판성당의 성캐터린채플에 걸려 있는 명판(銘板)에 의하면 모차르트에게는 여섯명의 자녀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넷째와 여섯째가 바로 슈테판성당의 성캐터린채플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 아들이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로서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791년 태어났다. 모차르트는 12월에 세상을 떠났으며 프란츠는 7월에 태어났다.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는 보통 F. X. Mozart 또는 모차르트 주니어로 알려져 있다.


F.X.Mozart는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 음악교사였다.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라는 그의 이름은 모차르트의 친구 겸 제자인 프란츠 사버 쥐쓰마이르(Franz Xaver Suessmayr)가 모차르트를 추모하여 붙여준 것이다. 모차르트의 여섯 번째 아들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는 아버지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이름과 그의 제자 겸 친구인 프란츠 사버 쥐쓰마이르의 이름을 혼합한 것이다.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는 1791년 7월 26일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짐작컨대 현재의 슈테플 백화점 뒤편에 있는 라우엔슈타인가쎄(Rauensteingasse)에서 태어났다고 생각된다. 이 집은 프란츠가 태어난지 5개월 후에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프란츠는 평생 동안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아버지 모차르트의 그늘에 가려서 지내야 했다. 어린 프란츠는 안토니오 살리에리와 요한 네포무크 훔멜로부터 음악 교습을 받았다. 프란츠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프란츠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주 어릴 때부터 작곡에 재능을 보였다. 프란츠는 아버지 모차르트의 후광을 업고 전문 음악인으로서 그리고 연주자로서 순탄한 생활을 하였다. 프란츠는 훌륭한 교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던지 대단히 소심했다. 아버지의 뛰어난 재능에 비하여 자기의 재능은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프란츠 사버 모차르트가 청년시절을 보낸 르비브(Lwow)의 중심지역

 

프란츠의 첫 피아노 협주곡은 1805년 프란츠가 14세 때에 발표되었다. 프란츠는 이 곡을 발표하여 얼마간의 돈을 벌수가 있었다. 프란츠는 계속 생활을 위해 돈이 필요했다. 17세 때에 그는 르비브(Lviv)로 가서 바보로브스키(Baworowski) 백작의 딸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해주며 돈을 벌었다. 백작의 저택은 외진 곳에 한가롭게 있었다. 프란츠는 비록 월급의 수준은 만족스러웠지만 외로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얼마후 그는 부르슈틴(Burshtyn)이라는 큰 도시에 사는 왕족인 야니체브스키(Janitzewski)공자의 딸들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수락하였다. 그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 이외에도 음악회장이나 살론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다.


자기의 작품과 아버지 모차르트의 작품을 연주했다. 부르슈틴에서 2년을 지낸 프란츠는 다시 르비브로 가서 거의 20년 이상을 교사로서 지내며 피아노 연주도 했다. 프란츠는 르비브에서 합창지휘도 했다. 1826년에는 아버지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성조지대성당에서 연주하여 감동을 주었다. 프란츠는 르비브에서 성세실리아협회를 구성하여 음악활동을 진흥하였다. 이 협회는 나중에 르비브 최초의 음악학교로 발전하였다. 프란츠는 우크라이나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연주회를 가졌다. 프란츠는 1820년대에 안토니오 디아벨리(Antonio Diabelli)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하는 유럽 50대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프란츠 사버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칼스바드 (산 밑에 보이는 큰 건물이 요양원)

 

1838년, 그는 마침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고향인 잘츠부르크로 돌아갔다. 이곳에서 그는 모차르트음악원(Mozrteum)의 합창지휘자 겸 음악감독의 직분을 맡았다. 프란츠는 잘츠부르크에 와서 정착한지 6년후인 1844년 잘츠부르크 인근의 칼스바드(Karlsbad)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소는 칼스바드에 있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녀가 없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적혀 있다. “May the name of his father be his epitaph, as his veneration for him was the essence of his life.” - 굳이 번역하면,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비문이 되게 하소서, 아버지에 대한 그의 존경심이 그의 생활의 요체였기 때문이로다.”

 

 

Biography

Franz Xaver Wolfgang Mozart was born in Vienna, five months before his father's death. Although he was baptized Franz Xaver Mozart, from birth on he was always called Wolfgang by his parents.[2] He received excellent musical instruction from Antonio Salieri and Johann Nepomuk Hummel, and studied composition with Johann Georg Albrechtsberger and Sigismund von Neukomm.[3] He learned to play both the piano and violin. Like his father, he started to compose at an early age. "In April 1805, the thirteen-year-old Wolfgang Mozart made his debut in Vienna in a concert in the Theater an der Wien."[4]


Wolfgang became a professional musician and enjoyed moderate success both as a teacher and a performer. Unlike his father, he was introverted and given to self-deprecation. He constantly underrated his talent and feared that whatever he produced would be compared with what his father had done.

 

The two surviving sons of Wolfgang Amadeus and Constanze Mozart: Franz Xaver Wolfgang Mozart (left) and Karl Thomas (right). Painting by Hans Hansen, Vienna, 1800.

 

Needing money, in 1808, he travelled to Lemberg, where he gave music lessons to the daughters of the Polish count Wiktor Baworowski. Although the pay was good, Franz felt lonely in the town of Pidkamin, near Rohatyn, so in 1809, he accepted an offer from the imperial chamberlain, Count von Janiszewski, to teach his daughters music in the town of Burshtyn. Besides teaching, he gave local concerts, playing his own and his father's pieces. These concerts introduced him to the important people in Galicia.


After two years in Burshtyn, he moved to Lemberg where he spent more than 20 years teaching (with students including Julie von Webenau, née Baroni-Cavalcabò) and giving concerts. Between 1826 and 1829, he conducted the choir of Saint Cecilia, which consisted of 400 amateur singers. In 1826, he conducted his father's Requiem during a concert at the Greek Catholic cathedral of St. George. From this choir, he created the musical brotherhood of Saint Cecilia, and thus the first school of music in Lemberg. He did not give up performing and in the years 1819 to 1821 traveled throughout Europe. In 1819 he gave concerts in Warsaw, Elbing and Danzig (Gdańsk).


In the 1820s, Franz Xaver Wolfgang Mozart was one of 50 composers to write a variation on a theme of Anton Diabelli for part II of the Vaterländischer Künstlerverein. Part I was devoted to the 33 variations supplied by Beethoven, which have gained an independent identity as his Diabelli Variations, Op. 120.


In 1838, he left for Vienna, and then for Salzburg, where he was appointed as the Kapellmeister of

the Mozarteum. From 1841, he taught the pianist Ernst Pauer. He died from stomach cancer on 29

July 1844 in the town of Karlsbad, where he was buried.

He never married, nor did he have any children. His will was executed by Josephine de Baroni-Cavalcabò, the dedicatee of his cello sonata[3] and a longtime patroness. The shadow of his father loomed large over him even in death. The following epitaph was etched on his tombstone: "May the name of his father be his epitaph, as his veneration for him was the essence of his life."


* 출처: 음원-유튜브/ 해설자료-다음 블로그 '정준극' ,영문 해설- 영어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