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 1749년 이전]

Monteverdi - 오페라 '오르페오'

Bawoo 2014. 9. 9. 21:53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 ~ 1643년/선조 1년-인조 19년, 76세)

 이탈리아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가수이다.

몬테베르디의 작품은 르네상스바로크 음악의 과도기에 놓여있다. 그의 작품은 그 두시기의 범주로 분류될 수 있으며, 스타일의 변화에 변화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혁명적인 인물로 여겨진다. 몬테베르디는 가장 최초로 드라마적으로 실용가능한 오페라인 《오르페오》를 작곡했으며, 그 작품은 그에게 한평생 명예를

드높이게 하였다.

 

< 공연 전(全) 실황 - 연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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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everdi - L'ORFEO

 

Théâtre de la Monnaie, 1998-05-21
Conductor - Rene Jacobs
Staging & choreography - Trisha Brown
Collegium Vocale Gent
Trisha Brown Company

Orfeo - Simon Keenlyside
Euridice/La Musica/Eco - Juanita Lascarro
La Messaggiera --Graciela Oddone
Proserpina/Ninfa --Martina Dike
La Speranza --Stephen Wallace
Plutone --Tómas Tómasson
Caronte - Paul Gérimon
Apollo --Mauro Utzeri
Ninfa --Anne Cambier, Martina Dike
Pastori, Spriti - Stephen Wallace, René Linnenbank, Paul Gérimon, Yann Beuron, John Bowen

Dancers: Brandi Norton, Kathleen Fisher, Stanford Makishi, Mariah Maloney, Stacy Matthew Spence,

Katrina Thompson, Keith A. Thompson, Abigail Yager and Ming-Lung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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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종호>

 

그리스의 신화시대가 배경이다. 류트와 노래의 명수인 오르페오는 사랑하는 에우리디체와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 그런데 피로연 도중에 신부 에우리디체가 그만 뱀에게 물려서 죽고 만다. 신부를 잃은 오르페오는 절망하지만, 이내 황천까지 가서라도 신부를 되찾아오겠다고 결심을 한다. 그는 삼도천에서 도선장지기인 카론테를 따돌리는 등 모험 끝에 황천에 도착한다. 그는 황천의 왕 푸르토네와 왕비 프로세르피나를 설득하여, 아내를 지상으로 데리고 갈 수 있도록 허락받는다. 하지만 이승에 도착할 때까지 아내를 뒤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이 붙는다. 아내를 데리고 이승으로 가던 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마는데......

 

 

 

=== 프로덕션 노트 ===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종호>

 

오페라의 역사를 4백 년이라고들 말하지만, 당시에 처음 만들어진 오페라 작품들은 우리가 현재 극장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세계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정기적으로 공연되는 작품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가 1607년에 작곡되어 이탈리아의 만토바에서 초연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므로 많은 극장들에 있어서 <오르페오>를 공연한다는 것은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됨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그 극장에는 영광임과 동시에 최초의 오페라를 상연할 경지가 되었다는 자부심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같은 이유로 그 프로덕션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 <오르페오>이기도 하다.

 

지금 남아있는 몬테베르디의 오페라들은 <오르페오>를 위시하여 <율리세의 귀환>과 <포페아의 대관> 등 모두 세 작품이다. 이 몬테베르디 3부작은 스위스의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서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지휘와 장 피에르 포넬의 연출로 모두 올리는데 성공하여, 오페라 공연 역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었다. 그리고 이 작품의 공연들은 모두 당시에 영상과 음반으로 제작되어 많은 사람에게 몬테베르디의 세계를 알려주었다.

그런 만큼 이제 이 3부작을 연출하게 되는 연출가들은 포넬의 영상을 넘어서야 하고, 지휘자들은 지휘자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 음악문헌학자이자 이론가이며 또한 뛰어난 첼리스트이기도 한 아르농쿠르의 지휘를 뛰어넘어서야만 하는 과제를 짊어지게 되었다. 최소한 그보다 못한다면 굳이 무엇하러 또 만드느냐 하는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는 다양한 오페라에서 연출을 맡아왔는데, 그의 연출 세계의 한 분야를 이루는 것이 바로크 오페라 세계이다. 그는 이미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바흐의 수난곡들을 오페라 버전으로 연출하면서, 바로크 시대에 대한 높은 관심과 비상한 능력을 보인 바 있었다. 그후로 그는 헨델이나 비발디 그리고 몬테베르디 등의 초기 오페라 제작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왔다.

마드리드의 레알 극장은 이름 그대로 왕실 극장의 전통을 잇는 스페인 최고의 오페라하우스인데, 그들은 <오르페오>가 세계 초연된 지 4백 년을 기념하여 2007년 <오르페오>의 새로운 제작을 감행하였다. 그 중요한 의의가 바로 4백 년 전에 이 극장에서도 실제 <오르페오>가 공연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의 4백 주년 기념 공연은 더더구나 의미가 크다.

 

무대는 과거 왕실 극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서 4백 년 전 공연 분위기를 내는 데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관객들의 입장에서 사실적인 드라마를 본다기보다는 4백 년 전의 만토바나 마드리드로 돌아가서 당시의 공연에 참석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는데 더욱 무게가 놓여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연출은 대단히 고전적인 재현에 역점을 두어 연출상의 현대적인 기발한 점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리스 비극을 연상하는 흰옷을 입은 여성들의 집단 동작은 위엄을 보여주며 비극의 위대함을 강조하는데 효과적으로 쓰인다. 대신에 마지막 피날레에 그동안 무대 뒤에서만 노래하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두 검은 연주복을 입은 채로 무대 위로 쏟아져 나와서 마지막 곡의 연주에 즐겁게 참여한다. 이 대목은 이 연출의 백미인데, 이것으로 연출가는 고전적인 무대의 틀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효과적으로 한 방에 깨고 있다. 이런 것이 정말 필요한 연출가의 실력이자 유머인 것이다.

고전적인 연출에 맞추어 연주도 원전연주를 쓰고 있는데, 대단히 뛰어나다. 우리 시대에 바로크 원전연주의 제1인자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 크리스티가 지휘하며 그 자신이 이끄는 레자르 플로리상이 최고의 연주를 보여준다.

 

 

=== 작품 해설 ===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종호>

 

오르페오

인류 최초의 오페라, 인류 최고의 신화

 

흔히 오페라의 역사를 4백 년이라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오페라는 무엇인가? 보통 오페라는 피렌체 메디치 가문을 중심으로 시작하였다고들 생각한다. 이곳에서 1594년에 처음으로 상연된, 리누치니가 대본을 만들고 페리가 작곡한 <다프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지금 악보가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것을 감상해볼 수는 없는 실정이다. 다음으로 1600년에 역시 이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에우리디체>가 지금 악보가 전하므로, 우리가 공연을 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몇몇 오페라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져서 지금도 전해진다. 이어서 만들어진 오페라 작품들 가운데에 카치니의 <에우리디체>도 중요하게 전한다.

 

그러나 바로 오페라의 중심은 피렌체를 떠나서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만토바로 옮겨간다. 그것은 이 도시국가를 지배하던 곤차가 가문에서 정열적으로 오페라를 후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곤차가 가의 궁정에서 오페라를 주도하던 이가 바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1567~1643)였다. 그는 곤차가 가를 위해서 적지 않은 오페라를 작곡하였는데, 지금 전하는 그의 첫 작품인 <오르페오>가 상연된 1607년부터 만토바의 오페라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베네치아에 1637년 처음 공개적인 오페라 극장이 세워지고 베네치아가 오페라의 중심으로 다시 떠오른다. 당시 인구가 12만에 불과하던 베네치아는 오페라 전문 극장만 4개에 이르는, 이후 오페라의 중심도시가 된다. 그러니 피렌체 시대와 베네치아 시대의 중간 단계에 만토바 시대가 있었으며, 그 만토바 시대를 대표하는 이가 몬테베르디였는데, 그의 전성기는 대략 1607년에서부터 1637년 사이의 30년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몬테베르디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보고 듣는 오페라의 많은 규칙을 혼자서 확립했던 것이다.

 

몬테베르디는 만토바 시절에 약 10여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여 상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에 완전하게 전하는 것은 <오르페오>, <율리세의 귀환>, 그리고 <포페아의 대관> 등 세 작품만이다. 이 세 작품은 이제 몬테베르디를 상징하는 3부작으로서, 인류 오페라의 최고(最古)의 유산으로서, 초기 오페라 확립에 대한 연구의 교과서로서 그 자리를 완벽하게 차지하고 있다. 이 작품들도 처음 발견 당시에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많은 학자와 음악가들의 노력에 의해서 지금의 모양으로 복원되었는데, 특히 지휘자 니콜라스 아르농쿠르와 연출가 장 피에르 포넬의 협업에 의해서 취리히의 오페라하우스에서 모두 상연되는데 성공함으로써, 지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오래된 첫 번째 작품이 <오르페오>이다. 이 작품은 이미 이전에 있던 페리나 카치니가 작곡했던 오페라와 동일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음악의 명수인 오르페우스가 아내 유리디케를 잃고 나자, 그녀를 잊을 수 없어 수금을 들고 아내를 찾으러 저승까지 간다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이다. 이 신화는 이제 무려 40여 작품의 오페라로 만들어져서, 아마도 세계 오페라의 소재 중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순서로 수위를 점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많은 음악가가 같은 소재를 다양한 음악으로 만들게끔 해준 기폭제가 된 것이 바로 몬테베르디의 이 <오르페오>다. 즉 이미 이전에 페리와 카치니의 작품이 있었음에도 몬테베르디는 자신있게 자기만의 완전히 새롭고 훨씬 더 훌륭한 오페라를 내보여서, 오페라에서는 동일한 소재라도, 아니 나아가 같은 소재일수록 작곡가의 예술세계를 더욱 개성적이고 더 잘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오르페오>에서 보여준 몬테베르디의 새로운 개혁들은 지금 우리가 접하는 오페라의 기틀을 확립한 것들로서, 이런 것들이 한 작곡가의 머릿속에서 한두 개의 작품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그러니 몬테베르디는 지금 우리가 보는 오페라의 모양새가 확립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공헌자이며, 어쩌면 그가 바로 오페라를 발명한 사람이라고까지 말한다고 하여도 크게 과장은 아닐 것이다.

첫째 몬테베르디는 레치타티보를 확립하였다. 아리아와 아리아 사이에 진행되는 레치타티보를 단순히 웅얼웅얼 거리는 것이 아니라, 시어(詩語)의 억양을 제대로 살리면서도 또한 선율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화성적으로 풍부하게 만들었다. 둘째로 아리아에서 다 카포 형식을 확립하여, 오페라의 아리아는 다 카포 아리아나 혹은 유절형식의 노래가 오페라 역사의 초반까지는 일반적이 되도록 확립하였다. 셋째 합창을 극적으로 만들어서, 합창은 극의 진행과 해설을 맡으면서도 동시에 수준 있는 곡들로 만들어내었다. 넷째로 오페라 속의 관현악을 확립시켜서 40개 이상의 악기가 완벽한 형태로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상호 간에 한데에 어울리는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그에 의해서 오케스트라는 오페라에서 빠질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다섯째로 그는 오페라 전체의 구성을 통일적으로 균형적으로 반복적으로 만들어서, 모양새뿐만 아니라 오페라를 듣는 관객들이 드라마에서 극적인 감격과 통일적인 안정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몬테베르디는 초기 오페라의 성립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그것들은 그의 세 작품 속에 들어있고, 그 시작이 되는 것이 바로 <오르페오>인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지금 세계 오페라하우스에서 올려지는 모든 표준 레퍼토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출처: 다음 카페-서푼짜리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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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0년 베니스 시절의 몬테베르디 베르나르도 스트로지의 작품

 

몬테베르디는 이탈리아 북쪽 지방인 크레모나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몬테베르디란 이름은 이탈리어로 '초록빛 산'을 뜻한다. 유년시절 크레모나 성당의 maestro di cappella인 마르크 안토니오 인게그네리에게서 배우게 된다. 그곳 성당 성가대에서 기록이 없는 것을 봐선, 음악 레슨은 아마도 개인 교습이라 생각된다.

16세에 <교회용 합창곡집>을 발표하였다. 1590년부터 만토바 공(公) 빈첸초 1세 아래서 궁정 음악가로서 약 20년 동안을 지냈다. 가극 <오르페오>와 <아리안나>를 작곡하여 명성을 떨쳤다. 1613년 당시 이탈리아 음악가 최고의 영예인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교회당의 악장이 되어 교회 음악의 개량 등에 힘을 쏟았다. 1637년 베네치아에 세계 최초의 공중 가극장이 개관되자, 가극·발레 음악을 발표하여 가극의 창시자로 불리게 되었다.[1]

 

몬테베르디는 적어도 18개의 오페라를 작곡하였으며, 그 중 오직 오르페오, 포페아의 대관식, 율리우스의 귀환과 그의 두 번째 오페라인 l'Arianna의 유명한 아리아인 "Lamento"만이 현존한다.

 

* 출처: 음원- 유튜브/ 해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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