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앞두고 선조에게 올린 장계(狀啓)다. 전투에 임하는 비장한 각오를 담고 있다. 그는 고작 12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전선을 무찔렀다. 어찌 보면 무모하다시피 한 전투였다. 냉정한 현실 인식과 치밀한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무조건 하면 된다는 소위 ‘무대포 정신’으로 임했다면 참혹한 패배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당시 승리는 철저한 준비 덕분이지만 실제로는 화포, 즉 대포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천자·지자총통 등 조선의 화포가 일본군에 비해 사정거리가 길었기 때문에 일본 함선을 격파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전투의 승리를 위해 꼭 필요한 무기가 대포이다 보니 ‘무대포’를 얘기할 때는 당연히 대포가 연상된다. 적을 무찌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 대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무모하게 상대에게 달려드는 행위가 떠오른다. 조선 수군을 무시하고 상대적으로 열세인 대포를 가지고 전투를 벌인 일본군이야말로 ‘무대포 정신’으로 달려든 셈이다.
그러나 ‘무대포 정신’이란 말 속의 ‘무대포’는 글자 그대로 ‘대포가 없다’는 우리말과는 거리가 있다. ‘무대포’의 어원은 일본어 ‘무철포(無鐵砲)’다. 여기에서 철포(鐵砲)는 소총 등 총포류를 이르는 말이다. ‘무철포(無鐵砲)’는 일본식 한자어로, 앞뒤 생각 없이 행동하는 모양을 뜻한다. 일본식 발음 무데뽀(むてっぽう)에서 ‘무대포’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무데뽀’라는 말을 표제어로 올리고 ‘깊이 생각하는 신중함이 없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설명해 놓았다. 따라서 사전에 맞게 적으려면 ‘무데뽀’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무데뽀’인지 ‘무대포’인지 헷갈린다. 무모하게 달려드는 것을 생각하면 ‘무대포’가 맞을 듯도 해 ‘무대포’로 적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차피 일본식 한자어의 일본식 발음에서 온 말이라면 문맥에 맞게 ‘막무가내’나 ‘무모’라는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대포 정신’은 ‘막무가내 정신’이라고 하면 된다.
* 출처: 중앙일보-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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