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 바위 사이를 내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지척의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늘 옳니 그르니 다투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렀다네’. 통일신라 말기 학자 최치원의 한시 일부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시대상에 절망해 가야산에 은거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심정과 요즘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시비(是非)’란 한자를 우리말로 풀 때 “옳니 그르니 다투는”과 같이 ‘-니 -니’로 표현하는 이가 많다.
형용사 ‘옳다’와 ‘그르다’ 뒤에 쓰인 ‘-니’는 이러하기도 하고 저러하기도 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연결어미다. ‘-니’는 ‘이다’의 어간, ㄹ받침 또는 받침 없는 형용사 어간 뒤에 붙는다. ‘그르니’는 문제가 없으나
‘옳니’는 잘못된 말이다.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형용사 어간 뒤엔 ‘-으니’가 온다. “옳으니 그르니 다투는”이라고 해야 바르다.
“며느리가 차린 밥상을 받고 짜니 다니 까닭 없이 꼬집으려 드는 시어머니 마음과 뭐가 다르나!”처럼 ‘-니 -니’ 구성으로 사용될 때 틀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받침 없는 형용사인 ‘짜다’의 어간 뒤, ㄹ받침인 형용사 ‘달다’의 어간 뒤에는 ‘-니’를 붙이는 게 맞다. 문제는 ‘-으니 -으니’ 구성으로 쓰일 때다. “전체적인 틀에서 없애야 할 것도 있고 늘려야 할 것도 있는데 일방적으로 규제가 많니 적니 떠드는 건 무의미하다” “특약 범위가 넓니 좁니 말들이 많다”와 같이 사용해선 안 된다. ‘ㄹ’ 이외의 받침 있는 형용사 어간에는 ‘-으니’가 붙는다. ‘많니 적니’는 ‘많으니 적으니’로, ‘넓니 좁니’는 ‘넓으니 좁으니’로 바루어야 한다.
‘있다, 없다, 계시다’의 어간, 동사 어간 또는 어미 ‘-으시-, -었-, -겠-’ 뒤에 오는 ‘-느니’도 ‘-니’로 잘못 쓰기 쉽다. “뇌물수수 사건 때마다 대가가 있니 없니 궁색한 논쟁을 벌이는 정치권을 보는 심정이라니!” “주민들은 죽니 사니 아우성인데 정부는 묵묵부답이다”처럼 사용하는 건 잘못이다. ‘있느니 없느니’ ‘죽느니 사느니’로 고쳐야 한다. ‘있다, 없다’와 동사 어간 뒤엔 ‘-느니’가 온다.
* 출처: 중앙일보-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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