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네스트 쇼송(Ernest Chausson)
에르네스트 쇼송(Ernest Chausson, 1855년 1월 20일 ~ 1899년 6월 10일)은 파리 시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작곡가다.
'프랑키스트'의 주요 멤버로서 국민음악협회의 창립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던 쇼숑은 프랑크의 순수절대 음악을 기초로 하여 그 위에 독자적인 색채를 만들어 나갔는데, 그의 악풍(樂風)은 감각적으로 날카롭고, 우수에 찬 것이 많으며 또 자연에 대한 세련된 감수성이 넘쳐 있다. 음은 선명하고 아릅다고 정서는 청순하여 깊은 감동을 주는데, 가극, 피아노곡, 가곡, 교향곡 등 모든 분야의 작품 중,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시곡》(詩曲)
은 특히 유명하다.
어려서는 법률을 공부했으나, 이에 회의를 느껴 음악가로서는 다소 늦은 감이 있는 25세(1880년)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음악공부를 시작한다. 이러한 경로는 마치 음악가가 되기 위한 한 통과의례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로베르트 슈만, 루이 헥토르 베를리오즈,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모데스트 무소륵스키 등의 숱한 음악가들이 법률이나 의학 또는 그 밖의 다른 길을 걷다가 결국은 음악에 대한 정열과 미련으로 음악가의 험난하고도 어려운 길을 택하고 있기 때문인데, 에르네스트 쇼송 역시 같은 경로를 되밟으며 음악에 대한 그의 길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어려운 결단으로 일단 음악의 길을 선택한 쇼숑은 파리 음악원에서 쥘 마스네(Jules Massenet)와 세자르 프랑크(Cesar Franck)에게 음악수업을 받으면서 프랑크 학파의 전형적인 작곡가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1886년에 뮌헨과 바이로이트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을 접하고 강한 인상을 받아 10년동안의 작업으로 오페라 "《아르튀 왕》"을 완성하였다. 같은해에 쇼송은 국민음악운동 단체인 국민음악협회의 서기로 1896년까지 활동하였으며 이와 함께 정력적인 작곡활동도 펼쳤으나, 비교적 젊은 나이인 44세 때인 1899년 6월 10일 자전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889년 《교향곡 B장조》를 시작으로 1890년 《바이올린과 피아노와 현악4중주를 위한 협주곡》 그리고 1891년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시곡》 등을 남겼다. 그리고 쇼송은 가곡을 비교적 많이 남겼는데, 《라일락이 필 무렵》, 《사랑과 바다의 시》, 《대상》 그리고 《벌새》 등이 유명하며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바그너의 영향이 보이는 교향곡을 제외하고는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우수를 담은 서정성이 짙게 표현되어 있으며 프랑스 낭만주의와 드뷔시 등의 인상주의를 연결하는 역할도 하였다.
기악곡과 실내악을 중심으로 한 프랑크 영향 아래의 쇼숑은 외롭게 자신의 음악세계를 이뤄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당시의 화려한 낭만주의를 배경으로 한 조아키노 로시니, 자코모 마이어베어, 다니엘 오베르 등의 가볍고 화려한 오페라 작품들이 대중의 인기를 지배하고 있어 교향곡이나 실내악같은 순수음악은 거의 외면당하거나 무시되는 상태였기 때문이다.<출처: 위키백과>
Trio pour piano o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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