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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Sergey Vasilyevich Rachmaninov]

Bawoo 2014. 11. 9. 23:16


 Sergey Vasilyevich Rachmaninov

 (1 April [O.S. 20 March] 1873[nb 2] – 28 March 1943) was a Russian pianist, composer, and conductor of the late-Romantic period, some of whose works are among the most popular in the classical repertoire. He is regarded as one of the major composers of the 20th century.


 

러시아계 미국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1873년 4월 1일 러시아 벨리키노보고로드에서 출생, 1943년 3월 28일 미국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에서 사망. 국민악파가 주를 이루던 시절[2]에 활동한 후기 낭만파 음악가로, 사실상 낭만주의의 마지막 세대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피아노 협주곡 4곡을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피아노 협주곡 이외의 곡도 다수 작곡했으며, 피아노 협주곡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피아노 협주곡에 가까운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이나[3]〈보칼리제〉 등의 곡도 광고 등에 흔히 등장하여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10대부터 작곡을 했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으며, 24살에 교향곡 1번을 발표하지만 평단의 압도적인 비판을 받으며 그 충격으로 후 3~4년간 아무 곡도 작곡하지 못한 채 엄청난 슬럼프에 빠진다. 생전에 연주 자체가 이루어지질 않았으니 뭔 설명이 필요한지? 이 시기에 사촌과 결혼했다가 러시아 정교회의 비난을 받아 우울증이 심해졌다고 한다.

이때의 우울증을 극복하면서 작곡한 것이 바로 노다메 칸타빌레에 등장한 회심의 역작 피아노 협주곡 2번이며,[4]이 곡으로 평단의 고른 호평을 받으며 재기에 성공한다. 기존의 협주곡에서는 오케스트라가 곡을 시작했다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은 저음으로 시작하는 피아노가 마치 반주로 들리며 오케스트라가 주 멜로디를 연주한다.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과는 다르게 오케스트라와 균형을 맞추는 듯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대 이전의 곡으로는 드물게 라흐마니노프 본인의 연주가 녹음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우울증을 고치는 방법은 최면술이었고 결과는 매우 좋았다는데, 이 곡 1악장은 우울증을 치료한 것치곤

 매우 격정적이며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다.


뒤이어 1909년에 '피아니스트의 무덤'이라 불리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발표했다. (악보와 함께 듣기) 극악의 난이도와 난해함으로 많은 피아니스트 지망생들, 심지어는 프로 연주가들마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곡. 심지어 라흐마니노프 본인에게서 이 곡을 헌정받은 당대의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조차도 '나를 위한 곡이 아닌 것 같다'며 거절했을 정도였다! 영화 샤인에서는 데이비드 헬프곳이 이 곡을 연습하다가 분열정동장애를 일으켰다고 묘사된다(헬프곳이 피협 3번 1악장 연주 듣기). 물론 본인 역시도 이 곡을 어렵지 않게 소화해낸 것처럼 이러한 묘사에는 과장이 있기 마련이며, 20세기가 피아니스트들의 황금기로 여겨지는 만큼 여러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의 레코딩이 존재한다.[5] 그 중 라흐마니노프 본인에게 직접 인정을 받았다고 하는 호로비츠의 연주들이  유명하다.[6] 연주의 난이도로 특히 유명하긴 하지만 작품성도 이전의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의 경향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부분이 돋보이는 훌륭한 곡이다.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를 떠나 노르웨이로 향했다가 1918년 미국으로 이민한다. 1928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를 만나 이후 평생 음악적 동료이자 친구로 지냈으며, 호로비츠의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에 대하여 "내 피아노 협주곡은 바로 이렇게 연주되어야 한다고 항상 꿈꿔왔지만, 살아서 이런 연주를 들을 줄은 기대치도 않았다"며 극찬했다. 호로비츠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도 다수 남아있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로도 굉장히 유명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에는 작곡보다도 연주회에 더 신경을 썼을 정도. 극악의 난이도의 피아노 곡들을 써대면서도 본인은 스스로 작곡한 곡들을 쉽게 소화해냈는데, 손이 매우 크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알려져있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녹음한 것을 들어보면 안그래도 빠른 초반의 피아노 전개가 워낙 빨라 산만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마르팡 증후군[7]을 앓아 손가락이 길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일설에 따르면 엄지로 '도'를 짚은 상태에서 새끼손가락으로 다음 옥타브의 '라'를 짚을 만큼 길었다고 한다. 손가락을 완전히 펼쳤을 때 대략 30cm 정도의 길이가 나왔다는 얘기. 그래서인지 유튜브 등지에서는 극악한 난이도의 피아노곡 동영상이 올라올 때 댓글에 종종 '라흐마니노프 사이즈의 손만이 칠 수 있다'는 말이 종종 보인다.

러시아 혁명 때문에 떠난 조국을 잊지 못해 소련독일에게 두들겨 맞을 때쯤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했으며, 소련 당국의 권유로 귀국준비를 하던 중 흑색종이 심해져 사망했다.

작곡가로서는 드물게 본인의 곡을 본인이 연주한 레코딩 전집이 남아있다. 보통 작곡가의 악보를 두고 서로 자기 해석이 제일이다 그러는 곳이 클래식 음악계인데 작곡가 본인이 남긴 레코딩이라면.. 음질이 그리 좋지 않은 게 흠이지만, 1920년대의 피아노 곡에 이 정도의 음질이 남아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보다 좋은 음질의 연주를 찾고 싶다면 연주가 녹음된 자동피아노에서 롤 형태의 천공 카드를 재생시킨 버전도 있다. 위에도 언급되듯이 본인의 연주는 현재의 해석된 연주보다 훨씬 빠른 전개를 보여준다.[8]

 

  • [1] 이 표기가 오른쪽보다 월등히 많이 쓰인다.
  • [2] 동시대의 인물로 핀란드의 장 시벨리우스(1865-1957), 스웨덴의 휴고 알벤(1872-1960), 엔리케 그라나도스(1867-1916) 등의 국민악파 음악가들이 있다.
  • [3] 관점에 따라서는 이 곡이 피아노 협주곡보다 더 유명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18번째 변주가 워낙 널리 '사용'되기 때문에
  • [4] 한국 자살블랙메탈밴드 Kryphos의 Suicide Suite 후반부에 이 곡의 전반부가 나온다.영상에서 나오는 것과는 다르게 오케스트라 파트를 피아노로 쳤다.
  • [5]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4곡의 레코딩은 2, 3번이 비슷한 정도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한다. 남은 두 곡은 안습...
  • [6] 참고로 이 곡의 카덴짜는 빠르고 가벼운 원곡과 중후한 오시아ossia의 2개의 버전이 존재한다. 호로비츠의 카덴짜는 기본적으로 전자를 모티브로 하되 호로비츠 특유의 저음부를 보강한 제 3의 카덴짜다. 오직 호로비츠의 연주에서만 들을 수 있는 부분.
  • [7] 유전병의 일종으로 육체적으로는 신장을 비롯해서 팔과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며 척추나 다리가 휘기도 하며 정신적으로는 신경쇠약을 동반한다.
  • [8] 라흐마니노프가 빨리 쳤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레코딩들은 속도가 변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출처: 엔하위키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