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런 코플런드
에런 코플런드(Aaron Copland, 1900년 11월 14일 ~ 1990년 12월 2일)는 순음악에 미국의 이미지를 심어 놓은 작곡가이다.
Concerto for Clarinet and String Orchestra
1900년 11월 14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대계·러시아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리에 유학했고, 귀국 후 현대음악과 대중이 유리되어 있음을 보고 멕시코 여행의 인상을 바탕으로 한 <엘 살롱 멕시코>(1937)를 발표하여 넓은 음악층을 사로잡았다. 그 뒤로 코플런드는 미국적인 요소를 순음악으로 살려, 미국이라는 이미지를 클래식 작품에 심는 데 성공하였다. 이 계열의 작품은 발레곡 <로데오>, <애팔래치아의 봄>, <빌리 더 키드>, 오페라 <텐더 랜드>, 영화음악에 <생쥐와 사람들>, <빨간 망아지>, <우리의 거리> 등이 있으며, 넓은 대중층을 획득하였다. 반면 코플런드에게는 <제3교향곡>을 비롯한 절대음악적인 작품 계열도 있어 2가지 면을 지닌 작곡가이다.
작품
- 애팔래치아의 봄(Appalachian Spring)은 발레 모음곡으로 1945년에 초연되었다. 애팔래치아 산맥에 봄이 찾아와, 개척자의 집에서 젊은 농민의 결혼식이 거행된다. 청교도의 한 파인 '셰이커파'의 청순한 찬송가를 바탕으로 한 변주곡이 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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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적인 현대적 양식으로 미국의 독특한 음악적 개성을 이룩했다(→ 색인 : 민속음악). 뉴욕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곳의 공립학교를 다녔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우중충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거리에서 태어났다. 음악은 그 거리와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플런드의 누이는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고 15세가 되던 해 그는 작곡가가 될 결심을 했다. 그 첫 단계로 통신교육과정을 통해 화성법을 배웠다.
1921년 여름 프랑스 퐁텐블로에 새로 설립된 미국인을 위한 학교에 입학한 그는 한 세대에 걸쳐 미국의 음악가를 길러냈던 뛰어난 음악교사인 나디아 불랑제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는 파리에 계속 머물기로 결정했으며 작곡 분야에서 불랑제의 첫 미국인 제자가 되었다. 파리에 머물렀던 3년 동안 그의 음악은 점점 더 실질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 1924년 뉴욕 시로 돌아가는 그에게 불랑제는 자신의 미국 연주를 위해 오르간 협주곡 작곡을 의뢰했다. 코플런드는 펜실베이니아의 여름 휴양지의 호텔 3중주단의 일원으로 피아노를 치면서 그 곡을 작곡했다. 그해 여름 〈오르간과 관현악을 위한 교향곡 Symphony for Organ and Orchestra〉은 작곡가 겸 지휘자인 발터 담로슈가 지휘하는 뉴욕 심포니의 연주로 카네기 홀에서 초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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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로서의 성공과정에서 그는 당대의 중요한 조류들을 반영했다. 파리에서 돌아온 이후 〈극장을 위한 음악 Music for the Theater〉(1925)·〈피아노 협주곡 Piano Concerto〉(1926)에서 재즈 리듬을 사용했으며, 이후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그는 스스로 '좀더 엷은 음향과 헐거운 짜임새'의 추상음악을 추구했다. 이런 특성은 〈피아노 변주곡 piano variation〉(1930)·〈짧은 교향곡 Short Symphony〉(1933)·〈관현악을 위한 서술 Statements for Orchestra〉(1933~35) 등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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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의 생애에서 가장 생산적인 국면으로 이끄는 방향 전환이 있게 된다. 이 새로운 경향을 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과 현존하는 작곡가 사이의 관계에서 불만이 늘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우리 작곡가들이 진공 속에서 작업하는 위험에 빠져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더욱이 그는 라디오·전축·영화음악 등의 매체로 인해 새로운 청중 부류가 형성되어가고 있음을 인식했다. "그들을 무시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면 작곡은 소용없는 것이다. 가능한 가장 단순한 언어로 내가 말해야 할 것을 말할 수 있는지 아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결국 그는 1930년대 이후 많은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신음악을 단순화하는 시도를 통해 중요한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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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10년 동안은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떨치게 되는 작품들이 만들어진다. 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은 미국의 민속적 소재에 근거한 3편의 발레 〈빌리 더 키드 Billy the Kid〉(1938)·〈로데오 Rodeo〉(1942)·〈애팔래치아 산맥의 봄 Appalachian Spring〉(1944)이다. 그밖의 작품으로는 〈엘 살론 멕시코 El Salón México〉(1936), 고등학생들을 위한 2편의 작품인 〈제2의 태풍 The Second Hurricane〉(1937)·〈야외 서곡 An Outdoor Overture〉(1938), 영화음악 〈생쥐와 인간 Of Mice and Men〉(1939)·〈우리들의 거리 Our Town〉(1940)·〈붉은 조랑말 The Red Pony〉(1948)·〈상속녀 The Heiress〉(1948) 등이 있다. 그의 전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주요작품으로는 선율이 풍부한 〈교향곡 3번 Third Symphony〉(1946)과 함께 링컨의 연설문에서 가사를 따온 화자와 합창을 위한 〈링컨의 초상 Lincoln Portrait〉(1942), 〈집에서 온 편지 Letter from Home〉(1944)가 있는데 이 두 작품은 전쟁중에 작곡되었다.
후기에 접어들면서 그는 미국적인 소재를 더욱 세련되게 다루었다. "나는 더이상 의식적인 아메리카주의를 찾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 살고 있고 여기서 작업하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의 음악이 성숙해질 때 미국적인 특성을 갖게 될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의 후기작품으로는 오페라 〈입찰지 The Tender Land〉(1954), 성악과 피아노를 위한 〈에밀리 디킨슨의 12편의 시 Twelve Poems of Emily Dickinson〉(1950), 〈9중주 Nonet〉(1960) 등이 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점차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12음 음렬 기법을 받아들인 작품들을 썼다(→ 색인 : 음렬주의). 그러한 작품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거칠고 불협화적인 〈피아노 환상곡 Piano Fantasy〉(1957), 공연예술을 위해 뉴욕 시에 설립된 링컨 센터의 개관행사를 위해 위촉된 〈암시 Connotations〉(1962)·〈본질 Inscape〉(1967) 등이 있다.
40년 동안 대부분을 작곡가, 교사음악에 관한 저술가, 음악행사의 주관자로 보낸 그는 '미국적 장면에 대한 미국인의 의식의 가장 심오한 반응'이라는 표현처럼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 30여 개 이상의 명예학위를 받았으며 뉴욕 시가 그의 80회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코플런드의 날 행사를 후원했을 때 그는 자서전을 집필중이었다. < 다음 백과-J. Machlis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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