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감상실 ♣/영화로 보는 우리소설

축제 Festival

Bawoo 2014. 12. 19. 20:17

축제 Festival

 

 

 

 

축제 Festival (1996)

40대 명망있는 작가 이준섭은 5년이 넘게 치매를 앓아온 시골노모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분주히 고향을 찾는다. 87세 할머니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감정으로 다가간다. 특히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셔온 형수의 감정은 홀가분함과 애석함이 교차한다. 한편, 준섭의 모친상을 통해 그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기사를 쓰러온 기자 장혜림은 관찰자로 장례식의 이모저모를 취재하기 바쁘다. 장례가 시작되고, 어머니의 죽음을 놓고 생기던 그 골이 깊어진다. 그러나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가족들의 갈등은 서서히 풀리고, 할머니를 모시지 않은 삼촌 준섭을 원망하던 용순은 준섭이 쓴 동화를 읽고 눈물을 흘린다. 장례가 끝나자 노모가 남겨준 큰 사랑과 삶의 지혜를 가족들은 각자의 가슴속에 간직하게 된다.

Lee Joonsup is a famous writer in his 40s. one day, he is informed that his mother who has been ill for more than 5 yea rs has died. Before he goes to his mother's house in the countryside to assist with the funeral, he is busy cancelling a ll his appointments and telling everyone about his mother's death. A journalist, Jang Haerim, comes to the funeral to write an article about Joonsup's literary world. The funeral starts and enmity among the family of the deceased deepens as Joonsup's niece, Yongsoon, arrives. However, by the end of the fu neral, Yongsoon cries after reading Joonsup's fairy tale, and the relatives come to understand each other better. When t he funeral ends, all the relatives cherish the wisdom and love of life of Joonsup's deceased mother.

 

 

  • 출연 :안성기(Ahn Sung-ki):오정해(Oh Jeong-hae):한은진(Han Eun-jin)

  • 감독 :임권택(Im Kwon-taek)

  • 영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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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은 고 이청준 선생의 '축제'라는 소설. 선생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데 우리 나라 옛 장례문화를 엿볼 수 있자는 것만으로도 큰 소득.^^

     

    선생은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삶의 영속성을 강조하고 죽음이 또다른 시작을 상징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삶과 죽음은 상호 분리된 게 아니라 연결돼 있으며 따라서 그 축제성은 생사를 초월해 살아 있다는 것을.

    주인공 이준섭은 작가 자신임을 금방 알 수 있다. 3인칭 시점을 사용했지만 삶의 흔적과 내적 죄책감 등이 작가의 그것을 연상시킬 만큼 빼닮았다. '이준섭'은 곧 '이청준'이며 소설은 바로 그의 삶인 것이다.
    유년 시절에 준섭은 고향을 등지고 광주로 유학을 떠나면서 홀로 남겨진 어머니에게 돌아오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런 다짐은 현실과 맞부딪히면서 점차 퇴색하고 결국 불효자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치매를 앓던 어머니는 임종 순간에 '비녀'를 달라고 한다. 시집올 때 가져왔던 낭잣비녀다. 시집살이하면서 비녀를 빼앗겼고, 이는 잃어버린 삶과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 삶과 자존심을 죽음이라는 최후 고비에서 되찾고 싶었던 것이다.
    준섭이 아들로서 갖는 죄책감은 장례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복질녀가 "할머니도 팔아묵고 집안식구들도 팔아묵고…'라고 쏘아붙이며 응어리로 마음속 깊이 남아 있던 그의 죄책감을 건드려 끄집어낸 것이다.
    죽음이 축제인 것은 이런 묵은 감정을 씻어내주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3일장을 치르는 동안 내내 불거졌던 갈등은 가족들이 원망을 하나하나 벗어내고 화해함으로써 해소의 길로 접어든다. 가족사진촬영 장면이 이를 잘 상징해준다.

    작품에서 준섭은 어머니를 여읜 심정을 '고아가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께서는 평생 동안 우리를 씻기고 입히고 돌봐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할머니께서 떠나가시려는 지금 단 한 번 씻겨 드리고 있는 중이다. 평생 입은 은혜를 오늘 마지막에 단 한 번 갚아드리는 기회인 셈이다."

    슬픔만으로 가득할 것 같은 초상집 분위기는 결국 흥건한 잔치마당으로 승화한다. 전통의 장례가 항용 그러지 않았던가. 시끌벅적하고 분주한 가운데 신명과 흥취로 난장이 돼곤 했다. 산자와 산자, 산자와 죽은자가 다시 만나 용서하고 화해하는 자리다. 역설 같지만, 울고 웃는 장례마당은 곧 삶과 죽음이 왁자하게 어우러지는 놀이판이었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이번엔 그 자신이 질펀한 축제판을 벌여주고 천국으로 떠났다. 2일 오후,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의 고향마을에서 거행된 노제는 유유히 흘러가는 삶과 죽음의 행로와 순환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줘 우리를 숙연케 한다. 그렇다고 보면 우리는 모두 떠나는 자가 마련해주는 축제판에서 흠씬 놀다가 훗날엔 자신이 그 주인공이 돼 남은 이들에게 축제판을 한바탕 열어주고 떠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비탄과 오열에만 젖어들 수 없는 것은 죽음과 삶이 결국은 하나이며 어떤 생명도 그저 변화할 뿐 없어지지 않는다는 진리 덕분이라고 하겠다. 이씨의 말처럼 죽음은 또다른 시작이며, 삶이 영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의 질펀한 축제는 오늘도 계속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