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ph Martin Kraus
Joseph Martin Kraus (1756-1792) as a student in Erfurt.
독일 태생이나 스웨덴에서 주로 활동하다 죽은 고전파 음악가.
모차르트가 태어 난 해인 1756년 6월 20일 독일의 프랑크푸르크암마인 동쪽에 자리한 밀텐베르크(Miltenberg)에서 태어났다. 21살에 스웨덴으로 가서 활동하다가 36세에 스톡홀름에서 결핵으로사망했다. 모차르트 사망 불과 1년 뒤.
1775년, 그의 나이 19세에 그의 초기 작품가운데 한곡으로 기록되는 레퀴엠을 작곡했다. 이러한 종교음악 장르의 작품이 어린 크라우스의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질풍 노도 운동이 주는 매력의 영향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도리가 없다. 비록 아직은 어린 나이를 반영하듯 경험부족에서오는 미숙함이 확연하게 드러나긴 하지만 이 작품은 대단히 드라마틱한 힘을 갖고 있으며 대담한 아이디어에 기초하고 있다.
괴팅겐에서 공부하는 동안 스웨덴에서 유학온 동료 Carl Stridsberg와 매우 가까운 친구로 지냈으며 그와의 친분관계는 그 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Carl Stridsberg는 스웨덴 궁정의 Gustav III에게 크라우스를 소개하기 위해 스톡홀름에 동행하게되고 덕분에 22세이던 1778년에 크라우스는 스톡홀름 궁정으로 옮기게 된다. 그러나 처음 스톡홀름에서 1년은 다시 귀향을 신중하게 고려할 만큼 아려운 시간이었다. 구스타프 3세는 예술적인 심미안과 관심이 많은 계몽군주였으므로 유럽의 새로운 예술적 시도들이나 음악가들을 흔히 자신의 궁정에 초청하거나 소개하곤 하였는데 그의 발레 Azire가 Royal Swedish Academy of Music에서 거절되는 등 , 구스타프 3세가 크라우스를 알아주고 인정할 때 까지 3년정도 매우 궁핍하고 힘든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의 시간은 오페라 Proserpina가 Royal Swedish Academy of Music에의해 Ulriksdal Palace 에서 성공적으로 초연됨에 따라 Royal Swedish Opera의 부악장직과 the Royal Academy of Music의 지휘자에 임명되는 것으로 다 해결이 되게 된다.
구스타프 왕은 또한 좀 더 수준높은 음악을 원하며 크라우스로 하여금 5년 동안 국비로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도록 배려해 주었고 이 기간동안 그는 글룩, 하이든 등의 당대 유명한 음악가들과 교류를 가질 수 있었다. 이때 하이든을 위하여 교향곡 D major를 작곡 했고 하이든은 이 곡을 자신이
근무하던 에스트리하지 궁에서 초연했다.
이 시기에 Flute Quintet in D major도 작곡을 했고
모차르트처럼 프리메이슨에도 가입을 했다.
그가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은 스톡홀름에서 그의 귀환을 막으려는 음모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으나
구스타프 3세기의 음악을 특징지울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아 결국 스웨덴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31세이던 1787년 스웨덴으로 돌아온 크라우스는 Royal Academy of Music의 교과 과정을 담당하는 책임을 맡았으며, 이듬해 Francesco Antonio Uttini의 뒤를 이어 카펠 마이스터에 임명되었고 혁신적인 지휘자, 진보적인 교육가, 그리고 다재다능한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또한 Erik Palmstedt를 중심으로한 스웨덴의 수도에서의 문화적이고 지적인 삶을 위한 토론 모임이었던 문학 서클의 멤버이기도 하였다.
크라우스는 1792년 서곡과 행진곡을 , 볼테르의 작품을 각색하여 올린 무대극의 간주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무대 음악 작곡가로 인식되고 있었긴 하나 그의 오페라 중 중요한 작품의 하나인 Aeneas i Cartago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 연주되지 못하였다.
1792년 3월 , 구스타프 3세는 여느 때처럼 자신이 세운 스웨덴 계몽 절대왕정의 상징, 왕립 오페라좌에 들러 오페라를 관람했다. 그날은 특별히 극이 끝난 후에 가면 무도회가 펼쳐졌는데 여기서 저격을 받고 살해되었다. 크라우스는 왕을 애도하는 장송 칸타타 와
장송 교향곡을작곡했으며 ,
이작품은 4.13일 매장의식에 연주되었다.. 이 사건 직후 그의 건강은 악화되었으며 몇달 후인
1792년 12월 결핵으로 삶을 마감, 그의 유해는 스톡홀름 교외의 티볼리에 안장되었다.
그는 36년이란 짧은 생애동안 교향곡
Composed in the 1770s.(14세)
실내악곡
오페라 종교음악 등 208곡의 연주곡과 15곡의 성악곡을 포함해 오랜동안 잊혀졌다가 20세기가 되어서야 다시금 재조명 받고 있다.
오늘날 그는 스웨덴의 고전파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심지어 '스웨덴의 모차르트' 라는 찬사도 받고 있다. 그만큼 그의 음악은 고전파의 양식에 충실하고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음악성을 갖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교향곡 C단조는
세기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하이든도 좋아했던 곡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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