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행록
조선 초기 문신 송희경(宋希璟)이 회례사(回禮使)로 일본을 다녀오면서 쓴 사행일록(使行日錄).
[내용]
필사본. 1420년(세종 2) 윤 정월부터 10월까지의 기록이다.
내용은 맨 앞에 소세양(蘇世讓)과 조평(趙平)의 서문이 있고, 이어 저자의 6대손 징(徵)이 이 책의 내력을 자세히 설명한 <노송당일본행록가장 老松堂日本行錄家藏>과 일기, 그리고 맨 끝에 저자의 현손 순(純)과 조홍립(曺弘立)·김이계(金履銈)의 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기는 간단히 그 날의 일을 쓰고 주로 시로써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였다. 시는 절구와 사율을 합해 227편이나 되는데, 거의 시서(詩序)가 자세한 편이어서 그동안의 일들을 대강이나마 살펴볼 수 있다.
이 사행이 파견된 것은 이종무(李從茂)가 대마도를 정벌한 다음 해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이 명나라와 합세해 일본을 정벌한다는 말이 와전되어 양국 관계가 미묘하였다. 이에 그들을 회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파견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인의 조선 사행에 대한 시의(猜疑)와 분노가 대단하였다.
그러나 그의 시는 격하지도 않고 노여움을 나타내지도 않아 편안하고 여유있는 기풍이 돋보인다. 편마다 간단한 서술적 기록을 한 뒤, 시서에서는 일본의 제도, 음탕한 풍습과 불교의 숭상, 사찰과 승려에 대한 예리한 관찰, 삼모작을 하는 농촌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또한, 양국 사이에 있는 해로(海路)와 포구(浦口)에 관한 기록과 조선에서 보낸 서계(書啓) 가운데 황명영락(皇命永樂)의 연호가 문제가 되어 그를 구류하려는 일본측에 대해 그간의 경위를 들어 이를 설득했으며, 그 뒤로 더욱 후한 대접을 받았다는 내용도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죽은 뒤, 그 필사본을 유실했는데, 1556년(명종 11) 그의 현손 순이 남원 오상(吳祥)의 집에서 찾았다가 정유재란 때 다시 잃어버렸다. 그 뒤 1625년(인조 3) 징이 함평의 정경득(鄭慶得)의 집에서 다시 찾았다. 그런데 이 책은 임진왜란 때 경득이 포로가 되어 일본에 있을 때 마침 어떤 승려가 이 책을 가지고 있어 이를 사려고 교섭했으나 실패해 필사한 것이다.
조선 건국 초부터 당시까지 36차의 사행이 파견되었다. 이전 사행록은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가 1337년(충숙왕 6) 일본을 다녀오면서 쓴 시 몇 편과 1406년(태종 6) 이운(李芸)이 회례사로 다녀와서 쓴 ≪학파실기 鶴坡實記≫가 있다. 그러나 내용이 매우 소략해 겨우 사행의 행장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이 책은 일본의 문물을 자세히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양국 간의 사정을 소상히 밝혀놓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 정보 출처: '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이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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