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구노
구노는 파리에서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와 제도공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5세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의 어머니가 구노의 첫 번째 피아노 선생이었다. 어머니의 지도 밑에서 구노는 첫 번째로 그의 음악적 재능을 선보이게 되었다. 이렇게 어머니에게서 초보의 문학·미원]]에 들어가서 작곡가인 알레비(Fromental Halévy)에게서 사사했다.
그는 1839년 그의 칸타타인 《페르디난드》(Ferdinand)로 로마 대상을 수상하였다. 구노는 그 결과로 이탈리아로 가서 작곡가,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을 공부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옛 종교 음악을 연구하였으며, 독일·오스트리아를 거쳐 파리로 되돌아왔다. 처음에는 교회 음악에 뜻을 두었으나, 슈만·베를리오즈를 사귀고는 세속 음악으로 전향하여 가극을 시작하였다.[1]
구노는 1851년 그의 첫 번째 오페라인 《사포》를 썼지만, 괴테의 극본을 기초로 한 《파우스트》(1859년)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파우스트》는 그의 대표작으로 남아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기초로한, 낭만적이고 멜로디성이 강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1867년에 초연되었으며, 이 역시 정기적으로 공연되고 음반이 녹음된다. 매력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1864년의 《미레이유》는 전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1870년부터 1875년까지 구노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중에 잉글랜드에 거주하면서, 현재 왕립 합창단(Royal Choral Society)이라 알려진 곳에서 첫 번째 지휘자가 되었다. 그 당시의 대부분의 구노의 음악은 자연히 성악이거나 합창이었다.
후기에 구노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1권의 첫 번째 서곡을 기초로 《아베 마리아》같은 기독교 음악을 많이 작곡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심정의 깊이보다는 극적 효과에 차 있다. 구노는 사중주 현악을 위한 실내악에 헌신하였다.
구노는 1893년 프랑스의 생클루에서 사망하였다.
구노의 마리오네트의 장례 행렬(1873년)이 1950년대 미국의 TV프로그램인 '알프레도 히치콕 프레젠트'에서 사용되었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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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프랑수아 구노는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화가였고, 어머니는 폭넓은 교양을 갖춘 유능한 피아니스트로 어린 구노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구노는 1835년까지 생루이 국립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철학으로 학위를 딴 뒤, 보헤미아의 작곡가 안톤 라이하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라이하가 죽자,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프로망탈 알레비와 장 프랑수아 레쉬외 밑에서 공부했으며, 3년 뒤 칸타타 〈페르낭 Fernand〉으로 로마 대상을 받고 3년 동안 로마의 메디치 저택에 머물면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이탈리아로 가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곡가 조반니 다 팔레스트리나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쏟았고 깊은 영향을 받았다. 팔레스트리나의 방식을 모방한 미사곡은 그의 초기 작품들 중 중요하다. 로마를 떠나 빈으로 가서, 이탈리아에서 작곡한 미사곡과 진혼곡을 각각 1842, 1843년에 발표했다. 프라하·드레스덴·베를린을 거쳐 파리로 돌아갔다. 또한 라이프치히에 들러 펠릭스 멘델스존과 4일을 함께 지내면서 멘델스존의 〈스코틀랜드 교향곡 Scottish Symphony〉 공연과 토마스 교회에서 열린 멘델스존의 바흐 오르간 작품 연주회에 참석했다.
파리로 돌아와서 미시옹 에트랑제르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 겸 성가대 지휘자가 되었고, 2년 동안 주로 신학을 공부했다. 1846년 생쉴피스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이듬해 성직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1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진혼곡과 〈테 데움 Te Deum〉을 완성하지 않은 채,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오페라인 〈사포 Sapho〉(1851)ㆍ〈피투성이가 된 수녀 La Nonne sanglante〉(1854)는 베를리오즈가 호의적인 평론을 써 주었는데도 별로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는 〈성 카이실리아의 미사 Messe de Sainte-Cécile〉(1855)에서 종교음악과 세속적인 작곡방식을 혼합해 보려고 했다. 그후 몰리에르의 희극을 토대로 한 〈돌팔이 의사 Le Médecin malgrélui〉(1858)를 발표하여 희가극 쪽으로 잠시 방향을 바꾸었다.
1852년부터 〈파우스트〉를 작곡하기 시작했으며, 1859년 3월 19일에 초연된 이 작품은 프랑스 오페라의 발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이 작품의 그늘에 가려 프레데리크 미스트랄의 시를 토대로 한 〈미레유 Mireille〉(1864)를 비롯해서 〈로미오와 줄리엣 Roméo et Juliette〉(1867) 등 그후 작곡한 오페라와 후기의 오라토리오들은 오늘날까지도 별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1852년 파리 오르페옹 합창단의 지휘자가 되어 2개의 미사곡을 비롯한 합창곡을 많이 작곡했다. 1870년부터 5년 동안 런던에서 구노 성가대(나중에 로열 합창단으로 이름이 바뀌었음)를 조직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오라토리오 작곡에 바쳤다. 소프라노 독창과 합창, 관현악을 위한 비가(悲歌) 〈갈리아 Gallia〉는 1870년 프랑스군이 독일군에게 패배한 것에서 영감을 얻어 쓴 곡이며, 1871년 5월 1일 런던 만국박람회 개막일에 런던의 앨버트 홀에서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오라토리오〈구원 La Rédemption〉·〈삶과 죽음 Mors et Vita〉은 1882년과 1885년 버밍엄 축제에서 연주되었으며, 1888년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의 선율은 종종 지나치게 감상적이기도 하지만 독창성이 뛰어나다. 그는 성악곡과 관현악곡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페라는 그 음악이 갖는 특성을 너무 가볍게 파악했다는 느낌을 주고, 종교음악에 나타나 있는 신앙도 너무 피상적일 때가 많다.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 곡집〉 제1권 중 〈전주곡 C장조 Prelude in C Major〉에 덧붙인 구노의 〈아베 마리아〉는 작곡가로서 독창성, 여유, 표현상의 순박함을 보여주는데 그의 음악이 1920년대 신고전주의 음악가들에게 명성을 얻은 것은 바로 이 순박함 때문이었다.
그들은 구노가(철학적이거나 문학적이 아닌) '순수한' 작곡가라는 이유로 그를 존경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의 시학 Poétique musicale〉이라는 책에서 〈파우스트〉만이 아니라 〈돌팔이 의사〉·〈비둘기 La Colombe〉·〈필레몽과 보시스 Philémon et Bausica〉까지 찬미하고 있다.<다음백과/F. Goldbeck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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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노의 작품
오페라
- 사포, Sappho (1851)
- 핏빛의 수녀, La Nonne Sanglante (1854)
- 그 자신도 어쩔수없는 의사, Le Médecin malgré lui (1858)
- 파우스트, Faust (1859)
- 5개의 화성, Cinq-Mars (1877)
- 폴뤽트, Polyeucte (1878)
- 자모라에게 바침, Le Tribut de Zamora (1881)
오라토리오
- Tobie (c. 1866)
- Gallia (1871)
- Jésus sur le lac de Tibériade (1878)
- 부활, La Rédemption (1882) (버밍험 3주기년 음악 축제를 위해 의뢰된 음악으로, 그곳에서 초연됨)
- Christus factus est (1883)
- Mors et Vita (1884)
실내악
- 현악 4중주 a단조, String Quartet in a minor (Old No.3)
- 현악 4중주 1번, String Quartet No.1 in C minor "Le petit quatuor"
- 현악 4중주 2번, String Quartet No.2 in A Major
- 현악 4중주 3번, String Quartet No.3 in F Major
교향곡
Symphony No 1 in D-major
Symphony No.2 in E-flat major (1855)
- 작은 교향곡, Petite Sympho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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