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성에서 벗어나 환상으로의 도피 – 낭만주의 회화

18세기가 계몽사상의 시대였다면, 낭만주의는 그 환멸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으로 유럽인들은 잠시나마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 선택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환상에 도취했었다. 그러나 혁명 이후의 정국은 전대미문의 공포정치로 흘러갔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형장에서 사라졌다. 공포와 혼란 속에 새로운 영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그러나 온 유럽을 초토화한 나폴레옹 정복전쟁은 그 또한 제국을 꿈꾸는 또 한 명의 독재자였을 뿐임을 증명했다.
1815년, 나폴레옹은 완전히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혁명과 전쟁은 계속되었다. 어떤 이성적인 판단이나 합리적인 논리도 유럽이라는 ‘문명사회’에서 일어나는 잔인한 사건들을 설명할 수 없었다. 결국 공포와 비탄, 좌절과 허무 속에서 머나먼 미지의 땅이나 전설적인 과거의 한때, 혹은 의식 속에 깊이 숨겨진 인간의 어두운 내면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정신적인 열망이 낭만주의를 낳은 셈이다.
이국적인 동양에 대한 낭만적인 호기심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과 함께 증폭했다. 안-루이 지로데가 그린 [카이로의 폭동]에서, 죽어가는 장군을 한 손으로 우아하게 끌어안은 채 격렬하게 싸우는 이슬람 군인의 강인한 누드는, 화려한 유니폼을 갖춰 입은 프랑스 장교만큼이나 매혹적이고 장엄하게 그려졌다.
나폴레옹의 종군 화가였던 앙투안 장-그로는 [자파의 페스트 병동을 방문한 나폴레옹]에서 이집트 원정에 대한 환상을 부풀렸다. 원정 중에 프랑스 군영에 페스트가 창궐했고, 패닉 상태에 빠진 군인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나폴레옹이 병동을 방문했다. 그의 부관은 썩어가는 환부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를 참지 못하고 코를 틀어막고 있지만, 나폴레옹은 끼고 있던 장갑 마저 벗어 들고 맨손으로 거리낌없이 환자를 어루만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