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비아
나미비아 공화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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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ubliek van Namibië Republik Namibi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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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 Unity, Liberty, Justice (단결, 자유, 정의)2 | ||||
국가 | 용감한 나라, 나미비아여 | ||||
수도 | 빈트후크 남위 22° 34′ 12″ 동경 17° 05′ 01″ / 남위 22.5700° 동경 17.083611° / -22.5700; 17.0836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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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
공용어 | 영어, 아프리칸스어, 독일어 | ||||
정부 형태 | 대통령제 공화국 | ||||
대통령 총리 |
히피케푸니에 포함바 헤이그 게인곱 | ||||
역사 | |||||
독립 |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부터 독립 | ||||
• 독립날짜 | 1990년 3월 2일 | ||||
지리 | |||||
면적 | 824,292km² (34 위) | ||||
내수면 비율 | 거의 없음 | ||||
시간대 | UTC (UTC+1) | ||||
DST | 없음 | ||||
인구 | |||||
2005년 어림 | 2,031,000명 | ||||
2002년 조사 | 1,820,916명 (144위) | ||||
인구 밀도 | 2.5명/km² (225위) | ||||
경제 | |||||
GDP(PPP) | 2005년 어림값 | ||||
• 전체 | $151.4억 (123위) | ||||
• 일인당 | $7,478 (83위) | ||||
HDI | 0.608 (128위, 2012년 조사) | ||||
통화 | 달러 (NAD) | ||||
기타 | |||||
ISO 3166-1 | 516, NA, NAM | ||||
도메인 | .na | ||||
국제 전화 | +264 | ||||
1독일어: Republik Namibia 2독일어: Einheit, Freiheit, Gerechtigkeit |
나미비아 공화국(영어: Republic of Namibia 리퍼블릭 오브 너미비어[*], 독일어: Republik Namibia 레푸블리크 나미비아[*])는 남아프리카에 있는 공화국이며 수도는 빈트후크이다. 북쪽에 앙골라와 잠비아, 동쪽에 보츠와나와 짐바브웨, 남쪽과 동쪽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접경하고 있다. 독립 전쟁 후 1990년 3월 21일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었다.
나미비아는 유엔(UN), 남아프리카 개발 공동체(SADC), 아프리카 연합(AU), 영국 연방과 많은 다른 국제 기구들의 회원국이다. 많은 해 동안 나미비아는 남서아프리카로서만 알려졌지만, 나미브 사막의 이름을 따서 나미비아를 채택했다. 몽골 다음으로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적은 나라이다.
나미비아의 건조한 땅은 부시먼족, 다마라족, 나마콰족이 초기 시절 부터 거주했으며 반투족 확장과 함께 왔던 이민온 반투족이 대략 14세기 부터 살기 시작했다. 18세기 후반 동안 영국과 네덜란드 선교사들이 방문했지만 1884년 독일령 보호국이 되었다. 1920년 국제 연맹은 그들의 법과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강요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나미비아를 위임시켰다.
1966년,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에 의한 봉기와 요구는 유엔이 그 영토에 관한 직접적인 책임을 취하도록 이끌면서, 1968년에 국가명을 나미비아로 개명했으며 1973년 나미비아족의 공식적인 대표로서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SWAPO)를 인정한다. 그러나, 나미비아는 이 시기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통치 아래 남게 되었다. 뒤 이은 내부 폭동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85년에 나미비아에 과도 정부를 설치했다. (1994년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 통치 아래 남아있던 도시인 월비스 베이를 제외하고) 나미비아는 199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얻었다.
나미비아의 인구는 약 180만명이며 안정적인 다당제 의회 민주주의 국가이다. 농업, 가축몰이 (herding), 관광, 값비싼 보석과 금속의 채굴은 나미비아의 경제의 중추를 형성한다. 대략 인구의 절반이 하루 1.25 달러의 국제적인 빈곤선 아래 살며,[1] 2007년 HIV에 감염된 성인 인구의 15%와 함께, HIV/AIDS의 영향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있다.[2]
역사
나미비아라는 이름은 나미브 사막에서 유래했으며, 이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으로 간주된다.[3] 1990년 독립 전에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Deutsch-Südwestafrika)로서 처음 알려졌으며, 그 후 남서아프리카로서 변경되었고, 독일과 영국의 식민지배에 영향을 받았다.
나미비아의 건조한 땅은 초기에 부시먼족, 다마라족, 나마족이 거주했으며 대략 14세기 부터 반투족 확장과 함께 이주해 온 반투족이 정착을 했다. 당시 지역에 상륙하여 탐험을 한 최초의 유럽인은 1485년에 디오고 캉 (Diogo Cão), 1486년에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등의 포르투갈 항해가였으며, 아직 그 지역은 포르투갈령 영토로 점유되지 않은 상태였다.
1884년 나미비아는 영국의 잠식에 앞서 독일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영국의 지배하에 있던 왈비스베이를 빼고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로 알려졌다.[4] 1904년부터 1907년까지 헤레로인과 나마쿠아인은 독일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켰고 그 후 헤레로나마쿠아 학살 속에, 10,000 명의 나마인 (부족의 절반 인구)과 대략 65,000 명의 헤레로인 (대략 부족의 80% 인구)이 죽었다.[5][6] 구금으로부터 풀려났던 생존자들은 수많은 방식의 아파르헤이트 시스템 속에서 강탈, 추방, 강제노동, 인종 격리와 차별 정책을 당하였다.
실제로, 몇몇 역사가들은 나미비아에 자행한 독일의 학살이 홀로코스트에서 나치 독일이 사용한 모델이었다고 추론했지만,[7] 대부분의 학자들은 당시에 작은 아이에 불과했던 나치당에게 그 사건은 특별히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말한다.[8] 당시 학살의 기억은 독립한 나미비아에서 민족 정체성과 독일과의 관계에 상응한 채로 남아있는 상태이다.[9]
1883년부터 1915년까지 독일의 식민지였으며, 1990년 남아공으로부터 독립했다. 독립 당시 유엔 국가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빈트후크 사람들은 높은 생활 수준을 자랑한다. 현재 야당인 남서아프리카인민기구(SWAPO, South West Africa People's Organisation)는 마르크스주의 정당이었으나 현재는 다당제 민주주의와 혼합자본주의경제를 따르고 있다.
지리
전체 면적은 825,418 km²정도로서 전 세계에서 34번째로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큰 나라이다. 몽골에 이어 나미비아는 인구 밀도가 가장 적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1㎢ 당 2.5명)
나미비아는 생명체와 관계가 없는 지대가 상당히 많다. 중앙고원, 나미브 사막, 절벽 지대, 저지대(Bushveld), 칼라하리 사막으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중앙 고원은 남북에 뻗쳐있으며 북동쪽으로 해골해안(Skeleton Coast)에 접한다. 나미브 사막과 해안 평원이 남서쪽에 있으며 남쪽에는 오렌지 강이 있다. 나미브 사막이 넓게 퍼져있으며 모래언덕과 평원을 따라서 전체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다. 폭은 100~수천km정도이다.
대절벽이 2,000m의 고도로 솟아 있는데 평균 온도는 인근 지역에서도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차이가 심해져서 상당히 춥기도 하다. 관목류의 식물을 찾아볼 수 있다.
저지대가 북동쪽에 있는데 앙골라와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 타지역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강수량이 풍부한
곳이기도 하다. 온도는 더 서늘하고 온화하여서 보통 기온이 10 °C 내지 30 °C에 머문다. 토양이 모래질이며 대개 평평하다. 모래로 구성되어 있어 물을 함유할 수는 없다. 일 년 내내 대부분 건조한 곳이지만 우기가 되면 6,000㎢ 정도의 호수가 생겨서 식수 해결에 큰 도움이 되며 동물들의 안식처가 된다.
기후
극도로 건조한 날씨이지만 벵구엘라 해류로 인해 서늘해지기도 하며 한류해류인 탓에 강수량도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
사람과 언어
주민
오반보족이 약 50%, 카방고족이 9%, 다말라족이 7%, 헤레로족 7% 등 흑인이 87.5%, 백인이 6.6%, 혼혈이 7.4%를 차지한다.
백인의 6할과, 혼혈의 다수가 아프리칸스를 모어로 사용한다.
언어
법적 공용어가 영어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비율은 별로 높지 않다. 백인의 60%는 아프리칸스어, 32%가 독일어, 나머지가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이외의 사람들은 각각의 부족의 언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2001년 국세조사에 따른 가정어 사용비율을 보면 오시밤보어(48%), 아프리칸스어(11%), 나마/다마라어(11%), 카방고어(10%), 헤레로어(8%) 순이었다. 1991년 조사때 9%로 4위였던 아프리칸스어는 공식어의 지위가 박탈되었지만 11%로 2위로 올라섰다. 영어는 조사항목에 없었다. 독립후 누조마 대통령은 영어화를 추진했지만 일상에서 영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아프리칸스어를 월등히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아프리칸스어는 1990년까지는 공용어였고 독일어는 준공용어였지만 현재는 모두 지위가 박탈되었다.
종교
독일의 식민지(1883년-1915년)였기 때문에 루터교회가 아프리카에서 드물게 다수인 나라이다.
현재 나미비아의 기독교인은 85%이며 이 가운데 50%가 루터교파이다. 토착화된 종교는 15%를 차지한다.[
문화
다음은 나미비아의 주이다. (괄호 안 글은 왼쪽부터 주도, 2001년 기준 인구, 면적, 인구밀도)
대외 관계
1990년 독립과 함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동시 수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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