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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장과 거품 사이

Bawoo 2015. 4. 26. 20:55

#강세장은 강세장인데 아직은 좀 이른 것 같다.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고 코스닥시장으로 뭉칫돈이 몰려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흥청거리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강세장이 시작됐다고 하면 서점가에서 투자 관련 서적의 판매부수가 늘어나고, 무슨 모임이나 식사자리에 가면으레 주식으로 돈 번 얘기가 화제가 되고, 심지어 증권이 뭔지도 잘 몰랐던친구와 사촌들이 적금과 보험까지 깨서 이런저런 종목에 투자했다는 말이 들려오는데,지금은 이런 광경을 찾아볼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증시만큼 오르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개인들의 직접 투자보다는 연기금과 펀드 같은 기관투자가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최근까지도 명예퇴직과 감원으로 몸집을 대폭 줄인 여의도 증권가의 구조조정 탓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너무 차분하고 조용한 건 사실인데, 아마도 증권가의 분위기가 바뀌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5월이 다 지날 때까지는 옷을 벗어 던지지 말라”는 속담처럼 인간 심리에도 관성의 법칙이란 게 있다. 이것이 한번 방향을 틀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주식시장도 똑같다. 시장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이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미리 예단하고 성급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고 계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든가 “랠리가 한번 있었다고 대세상승이 시작되는 건 아니다” 같은 시장 격언은 이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면 늘 한 발 늦는다. 월가의 현자(賢者)로 불렸던 존 템플턴 경의 말은 그런 점에서 기억해둘 만하다. “강세장은 비관적 분위기에서 태어나 의심과 함께 성장하고 낙관 속에서 무르익은 뒤 풍요에 취했을 때 끝난다.”그러니까 아직은 강세장의 초입 단계고 투자자들이 여전히 비관적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증권가 분위기가 뜨겁게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더 의심하는 가운데 강세장은 서서히 강력한 불길이 되어 타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강세장은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에야 비로소 인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인데, 강세장이 위험한 것은 이 때문이다. 강세장이 처음 시작될 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본다. 시장이 계속 상승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다가 결국에는 처음 판단이 잘못됐음을 알아차리고 뒤늦게 낙관적 분위기에 휩싸여 뛰어든다. 하지만 풍요로움에 잠깐 취해있는 사이 강세장은 어느새 거품을 만들어낸다.

투자자들은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광기, 패닉. 붕괴’를 쓴 경제사가 찰스 킨들버거는 아주 냉정하게 지적한다. “친구가 부자가 되는 것을 보는 것만큼 한 사람의 복지와 판단에 혼란을 주는 것도 없다.” 그래서 단지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주식을 매수하고, 주가란 일단 오르기 시작하면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갖고 거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거품은 터지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낸다. 그리고는 패닉과 시장 붕괴가 찾아온다. 마치 알코올 중독자가 고통스러운 숙취를 피할 수 없듯 강세장에 취해 있던 투자자들도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거품은 항상 그것을 집어삼킬 사람들을 찾고 이들의 돈을 전부 집어삼킨 다음에야 꺼진다. 오죽했으면 아이작 뉴턴 같은 천재 물리학자조차 18세기 초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 투기 붐에 휘말려 거액을 날린 뒤 이렇게 한탄했겠는가. “나는 천체의 운동은 계산할 수 있지만 대중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강세장이 한창 달아오르면, 자기보다 더 어리석은 바보들이 많으니 거품이 터지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고 자신한다. 이들은 하나같이“동작 빠른 놈이 살아남는다(Devil take the hindmost)”는 속담을 외쳐대지만 파국은 언제나 예상보다 한 발 앞서 도래한다. 아직 강세장이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거품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예방주사는 미리미리 맞아두는 게 좋다. 바다와 파도에 사이가 없듯 강세장과 거품에도 사이가 없다.

 

*  출처: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