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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 창을 내겠소 - 김상용

Bawoo 2015. 4. 29. 21:50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김상용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요.

갱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시 외우기 26 -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金尙鎔 1902-1951)

  시인. 호는 월파(月波). 경기도 연천 출생. 일본 릿쿄(立敎) 대학 영문과 졸업. 이화 여자 전문학교 교수. 서정시 “무상”, “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와 창작 생활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망향(望鄕)>이 1939년에 출간되었다.

 

* 이해와 감상

 

김상용의 이 한 편의 시는 시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한시(漢詩)에서 익히 보아 온 동양적 관조의 세계가 우리 토착어의 말맛에 기막히게 어우러지면서 표현된 수작이다.

이 시의 시상은 도발적이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고 첫머리에 던지는 시구는 독자를 놀라게 하고도 남는다. 시인의 태도를 처음부터 드러내는 것에 당혹감을 가질 뿐이다. 화자는 남으로 창을 내겠다는 선언을 한다. 이 선언은 그의 생활의 지향점이다. 양지를 향한 건강한 삶에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남쪽은 앞쪽이요, 태양을 향한 쪽이다. 광명한 곳을 향하겠다는 자세는 그의 시혼(詩魂)의 건강성을 짐작하게 한다.

이 시는 전원으로 돌아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화자의 삶의 자세가 잘 형상화된 작품이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복잡한 도시 생활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종의 모성 회귀(母性回歸)의 본능과 같은 것이다.

화자는 이 전원 생활 속에서 스스로 만족을 느끼며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도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라고 말하고 있다. 땅을 일구고 자연을 벗하며 인정미 넘치는 삶의 여유와 관조가 회화조의 친근한 어조에 용해되어 시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잔잔한 웃음으로 답하는 모습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초월과 달관의 경지를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시적 표현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참고> 이백(李白)의 “산중 문답(山中問答)”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의서벽산) “무슨 뜻으로 푸른 산 속에 사느냐?”고 나에게 묻기에,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저절로 한가롭다.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복숭아꽃 물에 흘러 아득히 떠 가니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천지로다.

 

[출처]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김상용 |작성자 국어지기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