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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현의 힐링 미술관]위험에 빠지다 외

Bawoo 2015. 8. 11. 21:43

 

In Jeopardy·1902년, 아서 해커

주위에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나들이를 나온 듯한 한 여인은 치마를 움켜쥐고 다급히 물가로 뛰어온 듯합니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물을 타고 흘러가는 양산이 있습니다. 물은 잔잔하고 얕아 보이지만 선뜻 물에 뛰어들지는 못합니다. ‘위험에 빠지다(In Jeopardy)’라는 그림 제목대로 어떤 인물이 위험에 빠진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위험에 빠진 건 양산입니다.

우리는 가끔 사소한 것에 굉장히 집착하여 감정이 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부터 사람과의 관계까지 여러 생활 국면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가끔 치료실에서 과거에 대한 집착과 후회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최근 상담을 위해 병원을 찾은 박모 씨는 그림 속 여인처럼 떠내려가는 양산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기만 할 뿐 다른 것은 전혀 시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물에 뛰어드는 용기도 필요한데 그저 하염없이 떠내려가는 양산을 쳐다보는 자신의 모습이 그림에 비치는 것 같다고 합니다.

물론 들고 있던 양산이 갑자기 물에 빠지면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찌 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주변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방법을 떠올려야 합니다. 또는 양산을 건지지 않고 빨리 마음을 비우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손으로부터 벗어난 것에 대해 집착을 버리는 것은 마음의 짐을 비우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것은 자신의 몫입니다. 그림의 여성은 연약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치마를 탁 잡았습니다. 뛸 자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 전체에서 느껴지는 노란색을 보십시오. 유채색 중에서 명도와 채도가 가장 높은 노란색은 대뇌를 자극해 집중력과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과 관련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노란색은 치유와 희망의 색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박 씨가 과거에 놓친 양산은 안타깝지만 그림 전체에 피어 있는 노란색의 꽃들을 통해 희망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보다는 현재가 중요하니까요.

여러분도 작품 속 풍경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양산을 건져낼 것인가, 흘려보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해보고 그림 속 다음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잔잔히 흘러가는 물처럼 나의 마음도 같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동아일보 - 김선현>

 

 

 

Arthur Hacker RA (London 25 September 1858 – 12 November 1919 London) was an English classicist painter.

 

Hacker was the son of Edward Hacker (1813–1905), a line engraver specialising in animal and sporting prints (who was also for many years the official Registrar of Births, Marriages and Deaths for Kentish Town in the St Pancras registration district, north London). In his art he was most known for painting religious scenes and portraits, and his art was also influenced by his extensive travels in Spain and North Africa. He studied at the Royal Academy between 1867 and 1880, and at the Atelier Bonnat in Paris. He was twice exhibited at the Royal Academy, in 1878 and 1910, and was elected an Academician in 1910. In 1894 he was the subject of a bust by Edward onslow Ford. An original portrait by Hacker of Sir Alfred Keogh by hangs in the RAMC HQ Mess at Millbank, London.

 

 

In 1902, Hacker built a new house at Heath End, Checkendon, Oxfordshire, called Hall Ingle, commissioning the young architect Maxwell Ayrton and carrying out the decorations himself.[1] Paintings on public display include Pelagia and Philammon in Liverpool's Walker Art Gallery,[2] and The Temptation of Sir Percival in Leeds City Art Gallery.

 

<아서해커의 다른 작품 및 해설 자료>

 

 

위험에 빠지다   In Jeopardy / oil on canvas / 1902

 

이런 큰 일입니다. 일본풍 양산이니까 당시에 흔한 물건은 아닐 것 같은데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물을 타고 흘러가는 우선을 쫓아 여인은 물가로 황급히 내려왔지만 치마를 움켜쥐고 바라보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주위의 노란 꽃들이 흐드러졌고 고스란히 그 모습과 색을 담은 물은

여인의 타 들어가는 마음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돌아 보면 사소한 것에 모든 것을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엉뚱한 자존심과 소소한 것에 대한 집착으로 더 큰 것을 잃어버리곤 했지요.

물론 그 것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것들이어서 극도로 조심을 하고 있지만 순간적으로 그 사실을 잊어 버리곤 합니다.그나저나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모자 쓴 아저씨, 좀 너무 하군요.

깊지 않은 물이면 뛰어 들어서 아가씨를 위해 양산 좀 건져 올리시죠!

 

해커는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판화가였는데 스포츠 장면이나 동물들이 주제였다고 합니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했지만 열 여덟 살에 로열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을 보면 일찍 그림에 관심이 있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또 아버지의 직업을 고려해보면 어려서부터 그림에 대한 교육을 아버지로부터 받았을 수도 있었겠지요.

 

 

 

 

 

어부의 아내     Fisherman's Wife / 130.2cm x 174.6cm / oil on canvas / 1885

 

벽난로 앞에 누운 아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바다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먼저 먹은 밥그릇을 치울 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돌아와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일이 한 두 번이겠습니까 만은 여전히 이 시간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선창가에라도 나가면 가슴 끝에 거대한 추가 달려 있는 것 같은 이 마음이 조금은 덜 할 것 같은데 잠자는 아이를 깨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팔에 얼굴을 기댄 그녀의 얼굴은 간절함으로 물들었습니다. 삶은 이렇게 늘 애끓음의 연속인 걸까요?

 

로열 아카데미에서 4년간의 공부를 끝내고 1880, 해커는 파리로 건너갑니다.

졸업을 하기 전에 이미 로열 아카데미 전시회에 작품을 걸었던 그는 당시 국제적으로 초상화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던레옹 보나의 화실에 입학 1년간 공부를 계속합니다. 레옹 보나는 드가와 평생 친구였지요.

초상화를 그리고자 했던 해커에게 보나는 이상적인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려운    A Difficulty / 90cm x 126cm / oil on canvas / 1888

 

손녀의 구멍 난 양말을 꿰매려고 바늘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죠 바늘 귀가 보이질 않습니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바늘 귀에 실을 넣어 보려고 하지만 자꾸 빗나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 얼굴에는 점점 더 주름살이 깊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손에는 힘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기다리다가 지친 손녀는 의자 위로 올라와 할머니를 향해 몸을 기울였습니다.

그렇다고 어린 손녀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정말 어려운 상황입니다. 요즘 두 개의 안경을 가지고 다닙니다. 먼 곳을 볼 때 쓰는 것과 돋보기 입니다. 돋보기 쓰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했지만 가끔은, 정말 가끔은 돋보기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받아 들여야 할 일이지만 제게도 어려운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혹시 바늘 귀에 실을 잘 넣으시는지요?

 귀국 후 그는 풍속화와 역사화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제작합니다. 1881년 로열 아카데미 전시회에 프랑스 농촌의 모습을 주제로 한 작품을 출품하는데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이후 외광파 기법과 사실적인 묘사가 더 해진 그의 작품들에 대해 미술 관련 잡지들로부터는 호평을 받습니다. 

 

 

 

 

기사 퍼시벌에 대한 유혹   The Temptation of Sir Percival / 132.1cm x 157.5cm / oil on canvas / c.1894

 

퍼시벌 기사는 아더왕의 원탁에 나오는 기사 중 한 명입니다. 성배를 찾는 임무를 맡았는데 그에 대한 악마의 유혹이 두 번 있었습니다. 네이버 백과에 실린 내용을 정리해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악마의 1차 유혹을 물리친 그는 아침에 자신이 바닷가 황무지에 누워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때 배 한 척이 다가오고 그 안에는 절세 미녀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원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못된 사람들에게 가진 것 모두를 빼앗겼다고 말하면서 힘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합니다. 흔쾌히 그녀의 요구를 승락한 퍼시빌을 그녀는 천막으로이끌고 달콤한 말로 그를 유혹합니다. 그녀의 꾐에 완전히 넘어간 퍼시빌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 때 칼자루에 붉은 십자가가 매달린 그의 칼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광경을 본 퍼시빌이 무심코 성호를 긋는 순간 천막의 형체가 사라지더니 한 줄기 연기가 되어 하늘로 날아 올랐고 여인은 무시무시한 비명을 지르며 배를 타고 멀리 사라져 갔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쁜 여인의 유혹 앞에 견딜 수 있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해커는 여행을 많이 한 화가였습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와 모로코가 그의 빈번한 여행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여행들을 통해 얻은 경험과 감상이 그의 작품에 반영되었죠.

여행을 통해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경우를 떠 올려 보면 여행이 그의 작품에 중요한 영향을 준 요소였다는

평론가들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냐 ()이냐   The Cloister or the World / 218cm x 170.5cm / oil on canvas / 1896

 

수녀는 빛나는 날개를 가진 흰 옷의 천사와 화려하고 요염한 모습의 여인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비록 수녀의 길로 들어섰지만 때때로 나타나는 또 다른 길에 대한 상념이 그녀를 흔들기 때문입니다.

어느 길이 그녀에게 더 어울리는 길인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손에 걸린 묵주, 저녁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습니다. 문득 어려서 본 오드리 헵번 주연의 파계라는 영화가 떠 오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파계를 통해서 그녀는

신께 더욱 가까이 다가 간 것 아닌가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옷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작품 활동이 성공을 거두면서 해커는 1894, 서른 여섯의 나이에 아카데미 준회원으로 선발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졸업한 로열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합니다. 얼마 전 중학교 학생들 앞에서

그림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2시간이었지만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죠.

졸업한 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 기분이 어떨까 싶었습니다.

1910, 해커는 아카데미 정회원이 됩니다.

 

 

 

 

 

아침 산책    A Morning Walk / 43cm x 43cm / oil on canvas / 1902

 

아침 산책 길에 나선 여인, 표정이 이상합니다. 자세히 보니 눈을 감고 깊게 꽃 향기를 마시는 것 같습니다.

옷차림을 보니 부지런한 여인입니다. 초록과 노랑이 배경으로 서 있는 풍경이 신선합니다.

더구나 아침이 주는 맑은 이미지 때문에 그림 가득 생명력이 흐르고 있습니다.

작년, 아침 산책 길에 들꽃을 한아름 꺾어 들고 서 있던 아내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얼굴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맑았고 수수한 들꽃이었지만 어느 꽃보다도 화려했습니다. 이제는 날 것이 편한 나이가 된 모양입니다.

 

해커는 뉴린파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스텐호프 포브스(http://blog.naver.com/dkseon00/140067336474)로열 아카데미도 같은 시기에 다녔고 파리에서 보나의 화실에서도 같이 공부했습니다. 이때 포브스가 추구하던 사실주의 기법에 관심을 가졌는데 나중에 기존의 아카데미에 대항해서 신영국미술협회(New English Art Club)창립멤버가 됩니다. 그러나 해커의 화풍은 계속 변화합니다.

 

 

 

 

 

가을   Autumn / oil on canvas / 1907

 

여기 떠날 준비를 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사방에서 불어 오는 바람에 나뭇잎은 여인의 몸 주위를 나비처럼 날아 다니고 있고 치마는 부풀대로 부풀었습니다.

붉은 머리의 여인은 그 동안 벗고 있던 옷을 다시 입고 있습니다.

세상을 붉은 색과 갈색으로 물들였던 그녀는 이제 그 역할을 다했다는 듯한 얼굴입니다.

얼굴 한 쪽에는 아쉬움도 있고 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대한 자아 도취도 보입니다.

그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년에 또 뵙지요.

 

해커의 화풍은 1880년대 초반에는 와광파 기법을 따르다가 1880년 후반에는 프랑스의 아카데믹 화법으로

전환합니다. 그 후 라파엘전파의 기법과 상징주의 기법을 거치게 됩니다. 화풍을 바꾼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골랐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의 기준이 확실했다는 표현이 더 근사할 수도 있겠습니다.

 

 

 

 

 

피카딜리 서커스의 오는    A Wet Night at Piccadilly Circus / 71cm x 91.5cm / oil on canvas / 1910

 

어둠이 내리자 노란 불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젖은 길 위에 그 빛이 반사 되면서 저녁 무렵의 피카딜리 서커스는 몽환의 세계로 바뀌었습니다.

저녁 안개 속, 길 위를 오가는 마차와 모자를 쓴 사람들은 실루엣으로 떠있고 그들 사이로 축축한 깊은 가을의 시간이 조심스럽게 흐르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을 저녁은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되살아 나는 시간입니다. 대개의 기억들은 쓸쓸하거나 통속적인 것들이어서 멀쩡하던 정신을 깊은 심연으로 밀어 넣곤 합니다.

그러나 나쁘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저처럼 그 기억을 곱씹고 있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학교 앞 술집에서 늦게까지 노래를 부르던 비 오는 가을 밤이 떠 오릅니다.

 

풍속화와 역사화, 종교적인 주제가 주를 이루었던 해커의 작품 주제가 20세기로 접어 들면서 변합니다.

런던의 거리 풍경이 추가 된 것이죠. 연작으로 제작된 그의 작품을 두고 평론가들은 런던의 본 모습을 그릴 준비가덜 되어 있다고 했지만 너무 앞서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들이 평론가들 보다 늘 한 발 빠르거든요.

 

 

 

 

 

개밀 태우는 사람들    The couch burners / 109.9cm x 127.3cm / oil on canvas / 1910

 

추수가 끝난 벌판에서 먹지 못하는 밀인 개밀을 태우고 있습니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었고 집으로 가져가야 할 추수한 것은 수레로 하나 가득 인데 여인은 밭 정리를 마저 끝 낼 작정인 모양입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와는 달리 여인은 시뻘건 불꽃이 널름거리는데도 쇠스랑으로 개밀 덩어리를 휘젓고 있습니다. 빨리 태우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그 동안 농사로 지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 속에 그 동안 흘렸던 땀과 눈물도 담겨 있겠지요.

아저씨, 그냥 서 있지 말고 아줌마하고 같이 좀 해요!

 

 해커는 말년에느 초상화에 집중합니다. 원래부터 뛰어난 초상화가였고 그로 인해 경제적인 부를 쌓았던 해커는 동료들과 미술 관련 사회 저명 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생애를 정리할 때쯤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는 것도 좋겠다 싶습니다. 머리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니까요.

 

 

 

 

 

갇혀버린     Imprisoned Spring / oil on canvas / 1911

 

갇혀버린 봄? 제목이 심상치 않다 싶어서 소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봤더니 이해가 됩니다.

창을 통해 들어 오는 햇빛은 창가에 세워 놓은 노란 꽃병을 거쳐 탁자 위에 또 하나의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빵 한 조각으로 식사를 하던 소녀는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 머물러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금방이라도 울음이 쏟아질 것 같은표정입니다. 어지럽게 널린 포크와 나이프가 소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갇혀버린 봄이라는 제목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어떤 사유로 이 소녀는 나가지를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몸뿐일까요? 그렇게 보면 소녀나 저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일상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의 많은 소녀들이 떠 올랐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화가 중 가장 다재 다능한 화가였다는 평가를 받았던 해커는 예순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나이를 보면 좀 아쉽습니다. 그의 아내 릴리언도 화가였고 그녀 역시 로열 아카데미에서 작품 전시를 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부부가 같은 길을 걸었으니 큰 아쉬움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해커 선생님?

 

출장을 가기 전 화가 이야기를 올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당분간은 그림 이야기 보다는 여행 이야기가 계속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