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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暗殺)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신문 기사) 모음

Bawoo 2015. 8. 14. 14:45

<요즘 영화 "암살"이 인기 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처음 천만 관객 돌파를 하는 영화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신문에 제법 나오네요. 이 기사들을 모아봤습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한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과 허구를 섞어 잘 만든 이 영화를 통해 우리의 아팠던 역사를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었는데 영화 내용과 다른 실제 역사는 어떠했는지 궁금하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신문에 실린 글 첫머리에 실린 글과 같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만일 그 시대를 살았다면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적극적인 친일파도 아닌  그저그런, 시대에 순응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 영화의 주역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절한 염석진(이정재)하고 부를 위해 자기 부인, 자식까지 죽이는 친일파 강모(이경영)가 아닐가 하는 생각. 뭐 그냥 제 생각입니다.^^>

 

 

< 아래 신문 자료 모음 > 

 

* 동아일보

 

영화 ‘암살’ 속 진실과 허구

일제강점기인 1933년 일본의 조선 주둔군 사령관과 친일파를 암살하기 위한 비밀 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이 이번 주 안에 관객 10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첫 ‘1000만 영화’다. 12일 현재 관객 수는 약 950만 명.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만큼 영화 속 인물들의 행적이나 사건 중 어떤 것이 사실이고 허구인지 궁금해하는 관객들이 많다. 영화 ‘암살’의 진실과 허구를 정리했다.

영화 ‘암살’의 김원봉(조승우·왼쪽)과 김구(김홍파). 두 사람이 협력한다는 영화 속 설정과 달리 시대적 배경인 1933년 당시 이들은 노선 차이로 대립 관계에 있었다. 흥미진진 제공

▽영화 속 염석진(이정재)은 실존 인물이 모델이다?

특정 인물을 모델로 하기보다는 그 시대 다양한 인물들의 행적이나 말을 종합해 창조한 캐릭터다. 예를 들어 염석진은 영화 말미 안옥윤(전지현)에게 목숨을 잃기 직전 “몰랐으니까. 해방이 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어?”라고 한다. 이는 미당 서정주가 광복 뒤 친일 행적에 대해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는 일화에서 따온 것이다. 최동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백의사’의 수장 염동진에서 착안했다”고 말했다. 염동진은 1930년대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일본 관동군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했고 광복 이후 ‘백의사’를 조직해 공산주의자를 상대로 테러 활동을 했다. 염동진이 관동군에 붙잡혔을 때 일제에 협력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후 지하 독립운동 단체인 대동단에서 활동하는 등 친일 여부는 논란이 많다.

▽김원봉은 백범 김구 선생과 친밀한 관계였다?

영화에는 김원봉(조승우)이 김구 선생과 가족의 안부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해 1920년대 유혈투쟁활동을 이끌었던 실존 인물이다. 다만 영화의 배경인 1933년 당시에는 민족주의자였던 김구와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성향이 강했던 김원봉은 오히려 대립 관계에 있었다.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조직해 무장투쟁의 길을 걷다 1940년대 들어 김구와 임시정부가 이끌던 광복군에 합류해 1942년에는 광복군 부사령관을 지냈다.


▽영화 초반 안옥윤이 가담한 전투는 실제 있었던 전투다?


영화 초반 김구 선생의 부름을 받고 상하이로 가려던 안옥윤은 일본군이 한밤중에 독립군 주둔지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총을 장전해 일본군 4명을 사살한다. 이 전투가 1933년 한국독립군 지청천 부대가 중국군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한 대전자령(大甸子嶺) 전투라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은 대전자령 전투가 벌어졌던 7월이 아니라 10월로, 실제 전투를 모티브로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안옥윤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대전자령 전투에 참가해 활약한 뒤 암살 작전에 가담했을 가능성은 있다.

 

▽하와이피스톨(하정우)이 과거에 가담했던 ‘살부계(殺父契)’는 실존했다?

김구의 ‘백범일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예하면, 이상룡의 자손은 공산주의에 충실한 나머지 살부회까지 조직했다. 그러나 제 아비를 제 손으로 죽이지 않고 회원끼리 서로 아비를 바꾸어 죽이는 것이라 하니 아직도 사람의 마음이 조금은 남은 것이었다.” 영화 속 살부계가 친일파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한 조직이었다면 실제 살부회는 젊은 공산주의자들이 봉건 잔재와 구시대의 아버지 세대를 제거하기 위해 결성한 조직일 가능성이 높다.

(도움말: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 김성민 케이퍼필름 프로듀서)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입력 2015-08-13 17:12:00 수정 2015-08-13 17: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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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석진은 실존 인물?…900만 돌파 영화 ‘암살’의 진실과 허구

 

일제강점기인 1933년 조선 주둔군 일본 사령관과 친일파를 암살하기 위한 비밀 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이 이번 주 안에 관객 10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첫 ‘1000만 영화’다. 12일 현재 관객 수는 약 950만 명.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만큼 영화 속 인물들의 행적이나 사건 중 어떤 것이 사실이고 허구인지 궁금해 하는 관객들이 많다. 영화 ‘암살’의 진실과 허구를 5가지 질문으로 정리했다.

△영화 속 염석진(이정재)은 실존 인물이 모델이다?

특정 인물을 모델로 하기보다는 그 시대 다양한 인물들의 행적이나 말을 종합해 창조한 캐릭터다. 예를 들어 염석진은 영화 말미 안옥윤(전지현)에게 목숨을 잃기 직전 “몰랐으니까. 해방이 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어?”라고 한다. 이는 미당 서정주가 해방 뒤 친일 행적에 대해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는 일화에서 따온 것이다. 최동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백의사’의 수장 염동진에서 착안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염동진은 1930년대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일본 관동군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했고 해방 이후 ‘백의사’를 조직해 공산주의자를 상대로 테러 활동을 전개했다. 관동군에 붙잡혔을 당시 염동진이 일제에 협력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후 지하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단에서 활동하는 등 친일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김원봉은 백범 김구 선생과 친밀한 관계였다?

영화에는 김원봉(조승우)이 김구 선생과 가족의 안부를 묻는 장면이 등장한다.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해 1920년대 유혈투쟁활동을 이끌었던 실존 인물이다. 다만 영화의 배경인 1933년 당시에는 민족주의자였던 김구 선생과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성향이 강했던 김원봉은 오히려 대립 관계에 있었다.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조직해 무장투쟁의 길을 걷다 1940년대 들어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가 이끌던 광복군에 합류, 1942년에는 광복군 부사령관을 지냈다.

 

△영화 초반 안옥윤이 가담하는 전투는 실제 있었던 전투다?

영화 초반 김구 선생의 부름을 받고 상하이로 가려던 안옥윤은 일본군이 한밤중에 독립군 주둔지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총을 장전해 일본군 4명을 사살한다. 이 전투가 1933년 한국독립군 지청천 부대가 중국군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한 대전자령(大甸子嶺) 전투라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은 대전자령 전투가 벌어졌던 7월이 아니라 10월로, 실제 전투를 모티브로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안옥윤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대전자령 전투에 참가해 활약한 뒤 암살 작전에 가담했을 가능성은 있다.

△하와이피스톨(하정우)이 과거에 가담했던 ‘살부계(殺父契)’는 실존했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예하면, 이상룡의 자손은 공산주의에 충실한 나머지 살부회까지 조직했다. 그러나 제 아비를 제 손으로 죽이지 않고 회원끼리 서로 아비를 바꾸어 죽이는 것이라 하니 아직도 사람의 마음이 조금은 남은 것이었다.” 영화 속 살부계가 친일파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한 조직이었다면 실제 살부회는 젊은 공산주의자들이 봉건 잔재와 구시대의 아버지 세대를 제거하기 위해 결성한 조직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는 단칸방이었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설정이다. 1920년대 초반부터 임시정부는 자금 부족으로 열악한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에는 중국인들이 먹다 버린 반찬을 가져와 밥을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항저우 청사는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의거를 성공시킨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마련한 장소였기 때문에 상하이 시절보다도 더 열악했다. 현재 항저우에 남아있는 청사 건물은 작은 2층집으로 복원 과정에서 실제보다 좀더 확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도움말: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 김성민 케이퍼필름 프로듀서)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입력 2015-08-13 17:12:00 수정 2015-08-13 17: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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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역사 왜곡

 

김원봉 치켜세우고 독립운동과 친일 이분법 구도
“변절의 나라” 등 편향적 인식에 악용될 우려
공동체 의식 확인은커녕 서로 으르렁대는 광복 70년
올해도 못 바꾸고 넘어가나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영화 ‘암살’에는 김구 김원봉 같은 현대사의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극중에서 일본의 밀정 노릇을 하는 염석진도 염동진이라는 실제 인물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는 어차피 상상이자 허구일 수밖에 없지만 ‘암살’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1930년대 항일투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광복 70년이라는 시점에 상영돼 1000만 관객 동원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단순한 ‘픽션’으로 보아 넘길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한다.

김구 김원봉 염동진 세 사람은 실제 역사에서 모두 독립운동을 했던 공통점이 있다. 김구는 독립운동 세력에서 우파를 대표하는 인사였고 김원봉은 좌파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김원봉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1948년 남북협상 때 북한으로 간 뒤 그대로 눌러앉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에서 노동상 등 요직을 맡았다. 광복군 출신의 장준하는 저서 ‘돌베개’에서 김원봉에 대해 ‘판에 박힌 공산주의자’라고 증언했다.

염동진은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영화 속 시대 배경인 1930년대 초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항일무력투쟁에 나선다. 일제의 기록에는 ‘중국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비밀공작에 종사한 까닭으로 수배됨’이라고 적혀 있다. 그는 광복 이후 국내 공산주의자를 상대로 테러를 가하는 핵심 인물이 된다. 그가 총사령으로 있던 ‘백의사’라는 단체는 1946년 3·1절 때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했다.

염동진에 대한 반감은 1937년 일본군에 붙잡힌 후 일본 첩보원이 됐다는 일부 증언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구체적 근거는 없다. 오히려 체포된 뒤 고문을 당해 시력을 잃은 탓에 일본이 그를 써먹지 못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1940년대 초 그가 평양의 지하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단에서 활동한 것도 ‘밀정설(說)’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그의 활동 공백만으로 장기간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그를 민족 배신자로 모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영화 ‘암살’이 좌파 김원봉을 도드라지게 하고 우파 염동진을 악역으로 묘사한 것을 우연의 일치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나 좌파 인물에게는 관대한 반면 남한이나 우파의 잘못에 대해서는 유난히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역사학계의 분위기다. 염동진이 좌파를 괴롭힌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것이 더 혹독한 평가를 불렀을지 모른다. 진보 진영이 장악하고 있는 역사 인식의 창이 처음부터 그렇게 짜여 있는 탓이 크다.

이 영화는 해외의 독립운동 세력이 국내 친일파를 처단하고 광복 후 남한의 경찰로 변신한 염석진까지 응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스토리는 단순 명쾌하지만 이런 구도 또한 왜곡을 부를 수 있다. 김원봉 같은 인물이 독립운동을 통해 이룬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독립운동 세력만이 역사적 당위인 것으로 근현대사를 바라보면 당시 국내에 있던 대다수의 사람이나 이후 세워진 대한민국의 성취는 초라하거나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 된다.

 

더구나 이런 인식은 한국 사회를 분열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당장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이 영화에 자극받았는지 “아직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있다”며 올해를 ‘독립운동가 기억 원년’으로 삼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독립운동과 친일을 대비시키면서 남한을 은연중 깎아내리는 역사인식이 숨어 있다. 같은 당의 이종걸 원내대표는 아예 드러내놓고 “지난 70년은 친일 변절 독재가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은 그들만의 조국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수긍할 수 없는 편향된 주장이다. 그러나 비단 정치계뿐 아니라 교육현장 등 곳곳에 이런 시한폭탄이 잠재해 있는 게 현실이다.

광복절은 대한민국의 닻을 올린 날이기도 하다. 8월 15일이 국가기념일로 처음 지정된 것은 건국 1년 뒤인 1949년으로 당시엔 제1회 독립기념일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졌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는 날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편이 갈려 더 으르렁대고 있다. 유권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 중에는 이처럼 혼란스러운 국가 정체성을 확실히 바로잡으라는 뜻도 들어 있었다. 70주년인 올해 광복절이 아무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지나가려 하고 있다. 영화 ‘암살’을 잠시 즐기는 오락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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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영웅들은 믿었다, 조국의 독립을

    1970년대 교육의 결과이겠지만, 나름, 애국심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독립운동에 어쩌다 참여했다 해도 아마, 나같은 겁쟁이는 고문실에 들어가자마자 기절하거나 변절했을거다. 그렇게 보면, 나의 애국심이란 '평화'와 '안전'이 보장된 상황에서나 존재하는 나약한 감정이다. 언제 올지도 모를 독립을 위해 내 가족이 다치거나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모두 잃고, 심지어 목숨까지 버려야한다면? 폭력적 분위기만 조성되도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데 피말리는 도피생활, 고문, 가난, 배신, 죽음의 공포를 그 분들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그분들은 믿었을거다, 조국의 독립을! 

    믿을 수 있는 상황에서 믿는 것은 굳이 '믿음'이라 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35년, 한세대가 지나가도록 오지 않는 조국의 독립을 믿었기에 대담하고 때로는 담담하게, 또 때로는 인간적으로 갈등하면서도 그 가시밭길을 간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숙연해진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안옥윤(전지현), 염석진(이정재), 하와이피스톨(하정우), 속사포(조진웅) 등은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여러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조국과 동지를 배신하고도 잘 먹고 잘 사는 염석진의 "독립할 줄 몰랐다"라는 뻔뻔한 대답에 화가 나면서도 결국, 우리가 염석진을 만든것은 아닌지 참담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보다,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분들에게 극진한 보상을 하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백배 더 깊이 아팠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며 독립을 기뻐하지 못하는 약산 김원봉 선생과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던 백범 김구 선생 등 '조국 독립'을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던 지도자들의 무거운 표정에 공감하면서, 과연 한 개인으로 보면 조국의 독립과 개인의 삶을 맞바꿀 수 있는지, 다시 또 부끄러워진다. 국가의 보호를 받아본 적 없지만, 지붕이 무너져도 곧 독립 조국의 고향으로 돌아갈거라 고치지 않았다는 착하고 정직했던 평범한 한국인들과 역사에 이름 한 줄 올리지 못한 채 시신조차 추스르지 못하고 죽어갔을 수많은 독립군들을 생각하면 뭘 어떻게 보상해드린들 그 감사함을 표시할 수 있을까 싶다. 최동훈 감독을 비롯,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조진웅, 오달수 등 출연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영화인'이기에 앞서 '한국인'으로서 이 영화를 찍었기 때문 아닐까 혼자 상상해본다. 

    조휴정 PD(KBS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