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이 맘마미아의 흥행기록을 제치고 개봉30일째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광고 카피에 2013년 아카데미 8개부분 노미네이트라고 씌였는데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할 수있는
골든 글로브에서 이미 3관왕이 되었다. 앞으로의 결과가 궁금하다.
이 영화에 대한 국내에서의 대단한 반응은 영화작품의 완성도에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원작 레 미제라블이 주는 사랑과 용서와 구원의 메세지가 잘 드러나 있는 영화이지만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 부분에서는 좀 떨어지지 않나 싶다.
방대한 원작의 내용을 제한된 시간에 압축하려면 부득히 생략되어 다 담아내지 못해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한다.
영화에서 1832년 6월 나폴레옹의 부관출신 국회의원으로 민중의 편에 섰다고 평가받는 라마르크장군의 장례식을 계기로 일어난 대학생들의 바리케이드사건에 많은 시간을 의미있게 할애하다가 이틀만에 진압된 후 시위참가자들은 모두 죽고 장발장의 도움으로 마리우스만 살아남은 뒤 코제트와 성대한 결혼식을 치루는 장면은 좀 더 설득력있는 전개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영화 속의 1832년 6월 5일 사건이
대선 후의 48%의 갈증을 대변해주고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으로 나아가는 희망을 발견하는 것 같다.
빅토를 위고Victor Marie Hugo ( 26 February 1802 – 22 May 1885)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1862년 작품으로 프랑스 혁명기를 배경으로 한다.
노틀담의 곱추(원제 파리의 노틀담)의 작가이기도 하다.
레미제라블은 뮤지컬로 제작되어 4대 뮤지컬 중의 하나로 사랑받는 작품으로 영화는 이 뮤지컬을 기본으로 한 작품이다.
1862년 레미제라블 초판본의 표지'비질하는 어린 코제트'
굶주린 어린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친 죄로 5년 수감생활 중 탈옥한 죄로 모두 19년 노역형을 살고 나온
장발장은 먹을 것도 잠잘 곳도 거부하는 냉혹한 현실에 대해 더욱 분노하고 좌절하였다. 장발장의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 좌절을 속죄와 용서와 사랑으로 이끌어 준 사람은 바로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웃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말했던 성경의 말씀처럼 장발장에게 먹을 것과 잠 잘 곳을 제공해준 미리엘 신부님이다.
수도원의 은식기를 훔치고 달아나다 잡힌 장발장이 경찰에게 신부님이 선물해준 것이라 거짓말 하자
미리엘 신부님은 선물한 것이 맞다며 오히려 형제여 왜 값나가는 은촛대는 두고 갔냐며 은촛대를 건네준다.
이후 장발장은 새로운 삶을 얻었다.
장발장의 구원의 삶의 여정에 등장하는 인물 중 자베르경감은 짊어져야만 하는 십자가와도 같은 존재다.
자베르의 가치관으로 장발장은 범법자이고 언제든지 다시 법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악이다.
자베르의 인생목표이자 법질서의 완성은 장발장을 붙잡는 일이다.
장발장과는 같은 하늘아래서 살 수없다며 어느 한 쪽은 존재하지 않아야 된다고 믿는 자베르는
선과 악의 극단적인 이분법에 사로 잡힌 인물이다.
장발장이 자베르를 더이상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며 목숨을 구해주자 자베르는 가치관의 극심한 혼란을 일으키며 그가 믿었던 모든 신념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구하고 하수구에서 나왔을 때 자베르는 그들을 체포하지 않고 가게 둔다.
그리곤 같은 하늘 아래서 두 인물이 살 수없다면 차라리 자신이 죽음으로 혼란과 갈등을 마무리 짓고 싶은 듯 센느강에 투신한다.
러셀 크로우가 자베르경감역을 연기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너무나 당연히 옳다고 여기는 가치와 신념이 때론 얼마나 왜곡되고 편협한가..
내게 짊어진 십자가를 인내하고 기꺼이 감수하며 사랑과 용서로 구원을 향해 나간다는 것 또한 얼마나 어려운가.
레미제라블 삽화: 거리의 부랑자들이 코제트의 집을 습격하려 하자 이를 막아서는 에포닌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또한 에포닌의 캐릭터도 생각해본다.
코제트를 사랑하는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면서 그를 위해 죽어가는 여인.
요즘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포스터로 에포닌을 표지로 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시대의 많은 마이너들에 대한 위로라고나 할까...
라디오를 듣다보면 에포닌이 마리우스 품에서 죽어가며 부르는 노래 on my own이 사랑받고 있다.
레미제라블 삽화: 사랑하는 마리우스의 품에서 죽는 에포닌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 속 배경인 프랑스의 격동의 혁명기 역사를 알아보자.
1789년프랑스대혁명은 절대왕정을 전복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군이 정치범 수용소인 바스티유(Bastille) 감옥을 습격한 사건을 시작으로
1789년 7월 16일 파리시 자치정부(Commune de Paris)가 수립되었고, 1789년 8월 26일 인권선언이 선포되었다.
혁명초기에는 입헌군주파가 주도권을 장악하여 입헌군주제를 성립시켰으나 혁명이 과격화되면서
1792년 왕정이 폐지되고 국민공회(Convention)를 설립함으로 프랑스 제 1공화국이 출범된다.
공화파들은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를 처형하였다. 곧 이어 10월에 왕비 마리 앙트와넷을 처형한다.
루이 16세 Louis XVI (23 August 1754 – 21 January 1793)
마리 앙트와넷 Marie Antoinette ( 2 November 1755 – 16 October 1793),
1793년 초부터 로베스 피에르 를 주축으로 하는 급진 자코뱅당이 정권을 잡고 공포정치를 실시한다.
1794년 로베스 피에르의 지나친 공포정치에 반대하는 국민공회가 로베스 피에르를 단두대로 보낸다.
이어서 5인의 집정관(Directoire)이 지휘하는 집단지도체제가 수립된다.
왕당파를 비롯한 반혁명 세력이 힘을 실어가는 분위기를 틈타서 구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1804년 황제자리에 오른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eon Bonaparte (15 August 1769 – 5 May 1821)
나폴레옹은 1815년 6월 워터루 전투에서 패배를 하고 영국의 감시하에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그의 나머지 인생 6년을 보냈다.
1815년 7월 8일 루이16세의 동생으로 프로방스백작이라 불렸던 루이 18세가 외국유랑을 끝내고 파리로 돌아와 왕위에 오른다
영화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지 26년 후인 바로 1815년이 장발장이 19년 노역을 마치고 풀려나는 해로 설정되어있다.
루이 18세 Louis XVIII (Louis Stanislas Xavier; 17 November 1755 – 16 September 1824)
장발장이 마들렌으로 이름을 바꾸고 시장이 되고 공장의 사장이 된 1823년 무렵의 시기는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확보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많았던 시기다.
1824년 루이18세가 사망하고 루이16세와 루이 18세의 동생 아르투와 백작인 샤를 10세가 왕위에 오른다.
샤를 10세 Charles X (Charles Philippe; 9 October 1757 – 6 November 1836)
샤를 10세는 구제도로의 복귀를 원하며 반동(反動)정책을 썼다. 국민들의 불만은 증대되고 경제위기는 계속 되었다.
1830년 7월 25일 출판 자유의 정지, 하원의 해산, 선거자격의 제한 등을 포함한 칙령 발표에 저항하며 ,
27일 소(小)부르주아 ·기능공 ·노동자 ·학생 등 파리의 민중은 바리케이드를 치기 시작하였고 곧 군대와 충돌이 시작되었다.
7월 혁명으로 샤를 10세가 물러나고 시민의 왕이라 불린 루이 필립이 왕이 되었다.
7월혁명을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들라크루와
Liberty Guiding the People, a painting by Delacroix inspired by the July Revolution
루이 필립 왕Louis Philippe, King of the French (1830–1848)
1832년 6월 5일은 영화 레미제라블의 학생봉기 바리케이트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1830년의 7월 혁명으로 집권한 루이 필립의 입헌군주정 시대에도 여전히 민중들은 식량난과 콜레라 등의 질병 등으로비참하게 살아고 이에 마리우스와 에포닌 그들의 친구들은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을 계기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시위를 벌인다. 그러나 이 시위는 이틀만에 진압된다.
레미제라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여기까지이다.
프랑스 혁명의 역사는 계속된다.
라마르크장군
1848년 2월 혁명으로 루이 필립의 왕정이 무너지고 프랑스 제 2공화국이 수립되고
나폴레옹1세의 조카인 나폴레옹3세가 대통령이 된다.
나폴레옹3세 Louis-Napoléon Bonaparte (20 April 1808 – 9 January 1873)
2월 혁명의 특징은 자발적인 민중운동이 급격하게 확대되었다는 점이고
그 속에서 '노동의 조직화'라는 목표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광범위하게 출현했다는 점으로 평가된다 .
* 출처: 네이버 블로그 "평강의 행복한 사주공간"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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