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동네에서 한 할아버지가 우리 동네로 마실을 나왔다.’
‘마실 갔다 돌아오던 앞집 할머니는 코가 깨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마도 사람이 그리워 마실을 갔을 것이다. 그러다가 할머니는 뭔가에 걸려 넘어지면서 변을 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안됐다는 생각보다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오는 건 왜일까. ‘마실’이라는 말맛에 이끌려서다.
‘마실.’ 언제 들어도 정겨운 우리말이다. 너나없이 입길에 올린다. 그런데 유독 우리 사전만은 딴판이다. 마실이 강원 경상 충청지역에서 쓰는 ‘마을’의 방언이란다. 밤에 이웃집으로 놀러가는 것도 ‘밤마을’이라고 고집한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밤마실’ 간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북한은 마실을 문화어로 삼고 있다.
사전대로라면 마실을 가면 안 되고, 마을만 가야 한다는 소린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위 문장도 마을로 고쳐야 말법에 맞다. 그러나 ‘마을을 나왔다’, ‘마을 갔다’고 한번 고쳐서 읽어보라. 얼마나 어색한가.
마실과 마을은 사투리와 표준어의 문제가 아니라 쓰임새의 차이로 봐야 한다. 마을은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을, 마실은 이웃에 놀러 다니는 행위를 가리킬 때 쓰면 된다. 다들 그렇게 쓰고 있다. 마을의 두 번째 뜻풀이인 ‘이웃에 놀러 다니는 것’을 ‘마실’의 설명으로 넘기고, 별도 표준어로 삼는 게 옳다.
말이 나온 김에 지적하자면 ‘마을’의 첫 번째 뜻풀이로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해놓았는데 이 역시 무리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에나 마을이 있게 마련이므로, ‘주로 시골에서’란 설명은 사족이다.
마실과 비슷한 처지였던 낱말이 있다. ‘속앓이’와 ‘놀잇감’이다. 두 낱말은 한때 ‘속병’과 ‘장난감’으로만 써야 했다. 그러다 속앓이는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걱정하거나 괴로워하는 일’을, 놀잇감은 ‘놀이 또는 아동 교육 현장 따위에서 활용되는 물건이나 재료’라는 뜻을 인정받아 표준어가 됐다. 둘은 뜻이나 말맛이 속병이나 장난감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올 추석엔 보름달을 벗 삼아 논두렁 밭두렁 건너 밤마실을 가보면 어떨까. 마실 한번 갔다 오면 어느 때보다 고향의 정을 듬뿍 안고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우리네 세상이 마실을 가고 싶은 마음도, 마실을 기다리는 마음도 메말라버린 것이 아쉬울 뿐.
* 동아일보 -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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