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가민가하다, 아리까리하다, 아리송하다, 알쏭달쏭하다, 애매모호하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렵고 헷갈릴 때 쓰는 표현이다. 의미 영역이 다를 뿐 쓰임새는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이 중 하나만 표준어가 아니다. 입길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아리까리하다’가 그것. 글꼴이 주는 이미지 때문인지 우리 사전은 아리까리하다를 ‘알쏭달쏭하다’ ‘아리송하다’의 잘못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리까리하다를 일본에서 온 말로 오해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우리와 달리 북에서는 아리까리하다를 문화어(표준어)로 삼았다. 조선말대사전은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몹시 희미하고 아리송하다’는 뜻으로 올려 두고 있다. 북한에서는 ‘꼭 짚어 말하기 어렵게 몹시 희미하고 어렴풋한 모양’을 뜻하는 ‘까리까리’ ‘까리까리하다’도 쓰고 있다.
언중의 말 씀씀이는 쉼 없이 변화한다. 아리송하다는 ‘긴가민가하다’의 뜻 말고도 ‘기억이나 생각 따위가 떠오를 듯하면서도 떠오르지 않다’란 의미로도 쓴다. 젊은이들은 아리까리하다에서 ‘아리’를 떼어낸 ‘까리하다’는 말도 하는데, 뜻은 아리까리하다와 전혀 다르다. 어떤 물건이나 사물 등이 유별나고 멋있어 보일 때 쓴다.
부사 ‘긴가민가’도 한때 우리 사전의 속 좁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우리 사전은 긴가민가의 본말인 ‘기연가미연가(其然가未然가)’와 이의 준말 ‘기연미연’만 부사로 인정하고 ‘긴가민가’는 ‘긴가민가하다의 어근’으로 풀이했다. 그 바람에 긴가민가는 부사로서의 구실을 못 하고 접미사 ‘-하다’와 결합해야만 단어가 될 수 있었다. 많은 이가 “그가 하는 말은 도대체 긴가민가 믿을 수 없다”라고 하는데도 신문 방송은 ‘긴가민가해서’ 식으로 ‘-하다’를 붙여 써야 했다.
“도대체 기다 아니다 무슨 말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라고 할 때의 ‘기다’ 역시 한동안 ‘그것이다’가 줄어든 말이라는 뜻풀이와 함께 ‘그렇다’의 전남 방언으로도 올라 있었다. 지금은 방언 부분은 삭제했으며, ‘아니다’와 대비적으로 써서 어떤 사실에 대한 긍정이나 수긍을 나타낸다고 풀이하고 있다.
긴가민가를 부사로 인정하고, 기다의 쓰임새를 바로잡은 것은 사람들의 말 씀씀이를 존중해서일 것이다. 입말 ‘아리까리하다’도 표준어로 삼아야 할 때가 됐다.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 어문정책이 아리까리하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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