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 매카트니 백작 조지 매카트니(George Macartney, 1st Earl Macartney, KB, 1737년 5월 14일~1806년 5월 31일)는 영국의 외교관, 정치가이다.
생애
스코틀랜드 출신 귀족의 아들로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더블린에서 학업을 마친 뒤 7년 전쟁에 참가하였다. 귀국한 뒤에는 아일랜드 하원의 의원이 되어 활약하다가 당시 국왕 조지 3세에게 기사 작위를 받고 매카트니 경이라 불리게 되었다. 1775년 매카트니는 영국령 서인도 제도 총독이 되어 남작의 작위를 받았고 1780년에는 인도로 가 마드라스의 도독이 되어 1785년까지 다스렸다. 임기가 끝난 후 인도 총독으로 승진할 수 있었으나 거절하고 1786년 영국으로 귀국하였다.
청나라가 쇄국 정책을 펴며 외국간의 무역을 강력히 통제하고 무역 기간이나 물품도 통제하여 유럽 상인들이 별다른 수입을 올리지 못하자, 1792년(건륭 57년) 9월 26일, 조지 3세의 영국 정부는 다시 특별 사절단을 편성, 건륭제의 82번째 생일을 축하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지 매카트니를 특사로, 조지 스턴튼을 부사로 명하여 청나라에 파견하였다.매카트니 일행은 64개의 포함을 단 HMS 라이언을 타고 출항하였다. 하지만 본래 매카트니는 청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가서 쇼군을 만나 일본이 청나라에게 주로 수출하는 상품인 차를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요청을 하려 하였다.[1] 사절단은 대서양, 인도양을 거쳐 1793년(건륭 58년) 5월에 오문(마카오)에 도착하고 이를 알리는 서신을 가지고 수행원을 건륭제에게 보내 알현의 허락을 받고 다시 출발하여 그 해 7월에 북경의 항구인 천진에 닻을 내렸다.
당시 건륭제는 막 완공된 여름 별장인 열하 피서산장으로 가서 지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천진으로 온 다음 북경에서 여독을 풀고 다시 만리장성을 넘어 1793년(건륭 58년) 8월에야 피서산장에 도착해 건륭제를 알현하였다. 건륭제는 화신에게 사절단을 대접하는데 소홀하지 않도록 명을 내렸으나 도중 접견의 예의문제로 난항을 빚게 되었다. 본래 외국의 사신은 황제를 접견할 때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 즉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예를 취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매카트니는 자신은 청나라의 속국의 신하가 아니라며 단호히 거절하였고 결국 합의 끝에 건륭제 뒤에 영국 국왕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한쪽 무릎만을 굽히며 영국식 예만 취하도록 하였다. 건륭제는 탄신 만찬에서 매카트니가 가져온 조지 3세의 친서를 건네 받았는데 거기에는 무역을 늘리고 공사를 상주시키겠다는 요구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친서에 영국에게 주산 근처의 작은 섬을 할양해 영국인들이 사용하게 해달라는 내용도 쓰여있자 건륭제는 이를 거부하고 영국 사절단의 일체의 행동을 금하였다. 건륭제는 그 다음 달인 9월에 영국 사절단의 귀국을 강제 조처하였다.[2] 그 후 영국과 청나라의 관계는 악화되어 영국이 아편 전쟁 후 남경 조약을 통해 내정 간섭을 하는 빌미가 되었다. (↔건륭제·영중 관계·조지 3세)
이러한 일로 매카트니의 임무는 실패로 끝나고 1794년에 영국으로 귀국하였다. 그 후 이탈리아에서 특사로도 가는 등 외교 분야에서 활약하다가 1798년 은퇴하고 치즈윅에서 1806년 6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서훈
주석
- 이동 ↑ Harlow, Vincent; Frederick Madden. 《British Colonial Developments, 1774-1834》 (영어). Oxford.
- 이동 ↑ 매카트니, 존 배로우 (1807년). “매카트니 견문록(Some account of the public life, and a selection from the unpublished writings of the earl of Macartney)” (영어). 2012년 5월 28일에 확인함
*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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