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양성우梁性佑 시인 시 몇 편

Bawoo 2015. 10. 25. 21:11

 

 

<양구 두타연 계곡 조각공원 안에 있는 시비>

--------------------------------------------------------

 

혼자 떠나는 새


나는 간다 그리워 마라
산과 바다 저 푸른 강물 다 두고 가마
눈 비 바람 슬픔 없는 다시 못 돌아오는 곳으로
나는 간다 꽃 지거든 나를 잊으라

굽은 나무 어우러진 수풀 가슴 저린 사랑도
다 두고 가마 다 두고 가마

금빛 햇살 눈부신 언덕을 넘어
내가 가는 머나먼 길 바라보지 마라
무한(無限) 천공(天空) 꺼이꺼이 울며
아 아 무한 천공

꺼이꺼이 울며
나는 혼자 떠나는 새

------------------------------------------------------

 

 

기다림의 시


그대 기우는 그믐달 새벽별 사이로
바람처럼 오는가 물결처럼 오는가
무수한 불면의 밤, 떨어져 쌓인
흰 꽃 밟으며 오는

그대 정든 임 그윽한 목소리로
잠든 새 깨우고,
눈물의 골짜기 가시나무 태우는
불길로 오는가 그대 지금
어디쯤 가까이 와서
소리없이 모닥불로 타고 있는가

---------------------------------------------

 

 

매화의 추억

 

마음이 고운 이가 오는가 보다

작은 새 대숲에 울고

앞 뜰에 매화꽃 봉우리 머무니

새순 같이 귀엽고 여린 이가 오는가 보다

새순 같이 여린 이가 오는가 보다

낮은 흑산 저 외진 비탈길 지나

여울을 건너서

눈 부신 햇살을 앞 새우고

그 넋이 맑은 이가 오는가 보다

눈물로 밤을 지새 본 사람은 알지

빈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에도 얼굴 붉어지니

가슴이 따듯한 따뜻한 이가 오는가 보다

가슴이 따뜻한 가슴이 따뜻한 이가

오는가 보다

--------------------------------------------

 

마음을 비울 수만 있다면

 

나는 내가 아니고 내 삶은 내 삶이 아니다.
내가 진정으로내 마음을 비울 수만 있다면,
모든 순간마다 그림자도 없이 사라지는 나를 찾아서
내가 쉬임없이 허덕일 까닭이 어디 있겠느냐?
보아라, 험하고 아득한 길 살아서 돌아온 내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니고 내 눈빛은 내 눈빛이 아니다.
내가 여기에서 티끌 하나 없이 온 넋을 씻고
내 마음을 모조리 비울 수만 있다면,,,,
모든 순간마다 그림자도 없이 사라지는 무수한 나를 찾아서

내가 굳이 몸던질 까닭이 어디 있겠느냐?
저 소리없는 작은 바람 끝에도 은빛으로 반짝이는 강물처럼
내 마음의 바닥까지 맑고 밝을 수만 있다면....

------------------------------------------

 

사랑의 힘

알 수 없어라, 사랑의 힘.
어디에서 어떻게 솟아나는 것일까?
그것은 불인가 바람인가?
아니라면 환상인가?
아아, 끝도 시작도 없는 기쁨의 바다에
눕고 싶다.
차라리 그 자리가 깊이 모를 늪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알 수 없어라.
몸과 넋 다 태우고 흔적도 없이 지우는
사랑의 힘.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

비 오는 날

 

그리움이란 누구에게나

아픔이 되는 것일까?

 언젠가는 그대 흰 옷자락 날리며

갈 때처럼 오리라 믿으면서도

나 애써 도리질함은

 끝없이 내리는 궂은비 속에서

혼자 보내는 오늘 하루가

 유난히 힘겹고 서글픈 까닭이라.

사랑하는 이여.

그대의 먼 모습 이미

내 가슴에 넘치니,

 돌아와 이 눈물을 그치게 하라.

---------------------------------------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모든 들꽃과 꽃잎들과 진흙 속에 숨어 사는
것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살아 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신비하다
바람도 없는 어느 한 여름날,
하늘을 가리우는 숲 그늘에 앉아보라
누구든지 나무들의 깊은 숨소리와 함께
무수한 초록잎들이 쉬지 않고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이 순간에,
서 있거나 움직이거나 상관없이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오직 하나,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은 무엇이나 눈물겹게 아름답다

----------------------------------------------


양성우(梁性佑, 1943년 11월 1일 ~ )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시 〈겨울공화국〉을 쓴 저항시인으로 유명하다. 1960년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에 4·19혁명 시위를 주도했고, 1961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호남지역 고등학생 총연맹 회장으로 활동하다 5·16군사쿠데타 직후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62년 학다리고등학교에 편입하였고 1963년 전남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다.1971년 대학교를 졸업한 뒤 학다리고등학교와 광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85년 숭실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1970년 〈시인〉지에 〈발상법〉과 〈증언〉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75년 2월 12일 광주YWCA에서 열린 '민청학련 관련자 석방을 위한 구국기도회'에서 유신체제를 '겨울'과 '한밤중'으로 묘사한 〈겨울공화국〉을 낭송한 것이 문제가 되어 광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사직에서 파면되었다. 또한, 1977년 일본 〈세까이[世界]〉 지에 번역 게재된 〈노예수첩〉과 〈우리는 열 번이고 책을 던졌다〉 배포 혐의로 국가모독 및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1979년까지 복역하였다.

 

그의 수감 이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소속 문인들을 중심으로 시집〈겨울공화국〉(1977)이 출간되었고, 이어 문인들이 체포되고 구속되는 '〈겨울공화국〉시집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국제펜클럽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구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5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복직권고를 내렸으나 중앙여자고등학교 재단은 그의 복직을 거부했다.

 

현실적인 발언을 하면서도 깊이 있는 서정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는 〈겨울공화국〉 외에 시집 〈발상법〉(1972), 〈신하여 신하여〉(1974), 〈북 치는 앉은뱅이〉(1980),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1981), 〈노예수첩〉(1985), 〈5월제〉(1986), 〈그대의 하늘길〉(1987), 〈세상의 한가운데〉(1990), 〈사라지는 것은 하늘일 뿐이다〉(1997), 〈첫 마음〉(2000), 〈물고기 한 마리〉(2003), 〈길에서 시를 줍다〉(2007), 〈아침꽃잎〉(2008) 등을 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 서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한국작가회의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1988년 평화민주당에서 출마해 제13대 국회의원(서울 양천 갑)을 지냈으며 민주당 당무기획실장, 한나라당 국책자문위원 등을 거쳐 2009년 8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85년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다. 2008년 전라남도 함평 화양근린공원에 그의 시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이 새겨진 시비가 건립되었다.<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