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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안의 식민사관 '우리 역사는 아직 해방되지 못했다.' - 이덕일

Bawoo 2015. 10. 28. 21:20

 

우리안의 식민사관

 

'우리 역사는 아직 해방되지 못했다.'

강사: 이덕일=

     

 

이덕일(1961년 10월 7일 ~ ):대한민국의 작가, 언론인, 대학교수, 역사학자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 출신으로, 대한민국 학계에서 정설이지만 역사적으로 논쟁이 있어왔던 이슈들에 대하여 연구하고 관련 사료를 제시한 역사비평서들을 집필.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주의계 무장독립운동단체인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연구 논문인 '동북항일연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단법인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위키백과

 

<참고>

식민사관(植民史觀)일제강점기 한국인에 대한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일제에 의해 정책적 · 조직적으로 조작된 역사관으로서, 일제의 한국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사관을 말한다. 대체로, 한민족을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에 지배되어 왔고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정체된 민족으로 부각시켜 일본의 한국 병탄을 정당화하였다. 종종 민족사관과 대비되는 말로서 인식된다.

역사

식민사관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일본에서의 한국사 연구 전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의 한국사 연구 전통으로는 크게 주자학파(성리학, 신유학)와 국학파로 나뉜다.

임진왜란퇴계 이황의 제자 강항은 포로로 끌려가 일본 학자들에게 성리학을 전파하게 된다. 한편, 본래 남송의 주희가 세웠던 주자학(성리학)을 퇴계가 한층 더 심화하여 끌어올렸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강항에게 성리학을 배우게 된 일본 학자들은 조선을 일본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한 나라로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을 가진 한국사 연구자들이 주자학파였고, 일본의 한국사 연구 전통에서 소수를 이루었다.

 

한편,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사기일본서기에는 임나일본부가 기록돼있는데, 특히 일본서기에 따르면 고대 야마토(大和)조정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군사적 지배기구로 이해할 수 있다. 임나일본부의 일본서기 기록을 맹신함과 함께 일본을 한국보다 우월하게 인식한 일본의 한국사를 연구자들이 바로 국학파였으며, 일본의 한국사 연구 전통에서 다수를 이루었다. 국학파에 의해 19세기 중후반에 잃어버린 임나일본부 지역의 고토(古土)를 회복하고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이 대두되었고, 이러한 국학파의 주장은 메이지 유신에 반영된다.

 

식민사관은 국학파의 한국사 연구 전통에 뿌리를 둔다. 또, 식민사관은 만세일계를 주장하는, 일왕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황국사관과 맥을 같이 한다.

식민사관은 1887년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에서 사학과를 설치하고 식민사관에 입각한 한국사 연구가 진행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1908년에는 남만주 철도주식회사에서 만선지리역사조사실(滿鮮地理歷史調査室)을 만듦으로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식민사관의 연구는 더욱 심화되고 체계화되었다.

 

조선총독부는 합방을 정당화 하고 저항을 무마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사 편수회 등을 통해 《조선사(朝鮮史)》,《조선사료집진(朝鮮史料集眞)》,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등의 식민사관적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1923년에는 조선사학회(朝鮮史學會)를 조직하여 학술활동을 함으로써 식민사관을 퍼트렸다. 식민사관은 1924년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에서도 이어져 식민사관의 뼈대를 다져나갔다.

주요 이론

식민사관은 여러 분야로 나눌 수 있으나 크게 일선동조론, 정체성론, 타율성론의 세 방향으로 확립되었다.

1890년대 초, 청·일전쟁을 앞두고 대륙 침략 기운이 높아지면서 일본 도쿄제국대학의 관변학자(官邊學者) 들에 의해 조선사연구가 시작되어 여기서 이른바 만선사관(滿鮮史觀)이 날조되었고, 이는 이후 한국사의 독자적 발전과 주체성을 부정하는 타율성론(他律性論)으로 발전되었다. 만선사관이란 만주가 한반도 역사의 일부가 아니라 오히려 한반도 역사가 만주사의 일부라고하여 만주사에 대한 종속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후에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신라정벌설, 임나일본부설 등을 주장하고 이를 계승한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만들어,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했으며 민족말살정책의 논리적 근거로 삼았다. 즉, 고대에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으므로 조선이 일본에 흡수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한국사회 정체성론을 주장했는데, 이는 한국사에는 봉건제 사회가 없었으며, 따라서 조선은 자력으로 근대화를 이를 수 없는 낙후되고 정체된 후진사회이고 이를 근대적 사회로 개발시켜주는 것이 일본의 식민지지배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이른바 타율성론이 등장했다.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은 식민사관이 끝까지 견지한 왜곡된 역사인식의 본질로서, 일제는 이러한 역사인식 아래 합방 직후부터 취조국(取調局)이라는 부서를 두어 자료조사를 시작했고, 2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인 정리작업에 착수,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조선사> 편찬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연구기관·경성제대 및 일본 각 대학의 일본인 학자들이 참가했으며, 최남선·이능화·현채 등 일부 조선인 학자들도 참여했다. 이같은 식민주의 역사학에 대항하여 민족적이고 과학적인 근대 역사학을 확립한 것이 민족주의 역사학과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다.

일선동조론

한민족은 일본인에게서 갈라진 민족이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을 보호하고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한동조론'(日韓同祖論), '동조동근론'(同祖同根論)이라고도 한다. 이 주장으로 인해 일제의 한일합방을 일본의 한국을 위한 배려와 도움인 것으로 꾸몄다.

일선동조론은 1930년대 일제가 내세운 내선일체 사상의 근거가 되었으며 일본 제국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 침탈과 동화정책, 황국신민화, 민족말살정책 정당화에 이용되었으며, 일선동조론에 만주·몽골을 '동족'에 끌어들인 '대아시아주의(大亞細亞主義)'는 일제의 만주, 중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대동아공영권'의 근거로 이용되었다.

타율성론(他律性論)

한국사 안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부분은 최대한 줄이고, 타율적이고 종속적 역사만을 강조한 것이다. 한민족은 자율적인 역사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외세에게 지배와 영향을 받음으로써 발전을 이룩해 왔다는 주장이다. 타율성론은 한반도의 지리적 특수성을 강조함으로써 한국중국 대륙에 종속적인 관계라는 것을 주장한다. 일본은 만주를 대륙 침략에 있어 중요한 지역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한국을 만주에 부속시켜 한국인의 주체성을 꺾을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일본은 한국의 역사는 독자적이지 못하고 외세의 간섭과 영향에 의해서 진행되었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식민사관은, 조선은 어차피 타율적이고 종속적인 역사발전단계를 거쳤으므로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배해도 부당하지 않다고 함으로써 타율성론으로 뒷받침한다.

 

1) 단군조선 부정 타율성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단군조선을 부정한다. 기자와 위만은 중국인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므로, 단군조선을 부정해야 기자조선위만 조선으로부터 한국사가 시작되어 한국사가 처음부터 타율성을 띤다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타율성론은 위만조선이 멸망한 뒤에 고조선 땅에 세워진 한사군의 지배를 강조한다. 한사군(또는 한군현)은 중국 고대 국가인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식민통치기구의 중심지이다. <사기> 태강지리지에 보면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수성현이 한반도에 있는 황해도 수안군을 가리키는 것이라면서 만리장성을 황해도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군이라고 처음 주장한 인물이 일제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기치라는 점을 미루어 보면, 중국 동북공정 또한 일제 식민사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군조선에 대한 현전하는 기록은 일연삼국유사에서 단군신화로서 처음 나온다. 식민사학자들이 단군조선을 부정하는 근거로는 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군신화의 내용이 너무나 황당하여 믿을 수가 없다는 논리이고, 다른 하나는 일연이 단지 단군신화를 창작해서 썼을 것이라는 일연창작설이다. 이에 더하여, 일연창작설을 주장하는 두 가지 논거로 하나는 단군조선에 관한 그 이전의 기록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 원 간섭기이던 고려사회에서 일연이 원나라보다 고려의 역사를 일부러 높이 치켜세우려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2) 임나일본부설 타율성론은 고대 한반도 남부의 백제, 신라, 가야 지역이 일본에 약 200년 동안 간접적, 직접적 지배를 받았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실제 역사라고 주장한다.

임나일본부설에 의해 원래의 일본 땅이었던 조선 땅을 식민지화하여 지배하는 것은 고토회복 차원에서 당연히 정당하다는 논리가 형성되고, 곧 이는 일제의 조선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다.

 

3) 반도적 성격론 타율성론에 해당하는 주장 가운데 반도적 특성을 강조하는 사관을 흔히 반도사관 또는 반도적 성격론이라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반도적 성격론은 한국사 무대의 지정학적 위치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반도에 있어 한국사가 부수성과 주변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한반도를 거대한 대륙 국가인 중국의 부속품 정도로 치부하며 타율성론을 뒷받침한다.

 

4) 사대주의론 식민사학자들은 거란과 여진 등의 북방 민족은 모두 한족에 동화된 데에 반하여 한민족이 생존과 독자성을 지킨 비결은 사대주의였다고 말한다.

 

5) 민족성론 민족성론에는 두 가지의 유형이 있다. 하나는, 한민족은 애초부터 타율적이며 자립할 능력이 없는 정체성을 띠는 민족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위의 타율성론 1)~4)에 의해 한민족의 민족성이 타율적으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정체성론(停滯性論)

한국은 역사적으로 많은 사회적, 정치적 변동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질서나 경제가 전혀 발전하지 못했으며 근대로의 발전에 필요한 봉건사회가 이룩되지 못하여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고대사회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주장이다. 사회경제사학에서 이른바 '보편적 역사발전단계'는 원시공산제-고대노예제-중세농노제-근대자본제-사회주의로 설명되는데, 식민사학자들은 19세기 말 ~ 20세기 초 한국의 사회, 경제체제의 수준이 일본의 고대사회 말기인 10세기경 후지와라(藤原) 시대, 곧 고대노예제 사회와 비견된다고 주장하며 조선의 봉건제결여론을 펼친다. 식민학자들은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가 고대노예제 수준에 머물러있던 조선의 사회, 경제체제를 곧바로 근대자본제로 빠르게 발전시켰다는 주장을 폈다.

반론

그러나 1960년 이후 한국 사회경제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라 위의 '보편적 역사발전단계'는 서양의 역사에 맞는 틀이고, 한국은 서양과는 다른 형태로 사회가 발달했으며, 이 안에서도 계속되는 사회적 정치적 변동으로 조선 후기에는 자본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대표적인 사회경제사학자중 하나인 백남운은 고려시대의 노비 제도가 외국의 봉건제도와 유사한 형태이며, 조선 후기를 '상품화폐 경제가 태동하며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시기'라고 주장함으로써 정체성론을 비판했다.

당파성론(黨派性論)

이러한 세 가지의 주장들 외에 당파성론이 추가로 제기되었다.
한민족의 민족성은 분열성이 강하여 항상 내분하여 싸웠다는 주장이다.[1] 한민족의 병적인 혈연, 학연, 지연성과 배타성 및 당벌성이 역사현실로 반영되어 당쟁주의를 가지고 서로의 이해를 두고 배격하는 사당의 정쟁으로 간주하여 정책대결이 아닌 정권 쟁탈전에 집착하여 정치적 혼란, 사회적 폐단을 유발하였기에 이로 인해 조선왕조가 멸망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반론

조선의 붕당정치가 후기에 갈수록 변질 된 것은 사실이나, 일제가 주장한 당파성론은 변질된 붕당정치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것이며, 조선의 붕당은 오히려 왕의 권력남용을 견제하는 기능을 가진다. 이것은 오늘날의 정당과 유사한 기능을 가짐으로써 매우 발전된 정치형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정치집단의 형성은 어느나라에서나 있어온 것이며 현재 알려진 사실도 식민사학자에 의해 과장되고 왜곡된 점이 많다. 또한, 변질된 붕당정치를 억제하기 위해 탕평책을 실시한 영조, 정조 시대 이후 오히려 세도 정치가 등장하고 나서야 조선 사회는 이전의 붕당 정치 사회보다 더 부패하고 쇠퇴하게 된다.

관련 서적

같이 보기

주석

  1. 이동 국사 편찬 위원회; 국정 도서 편찬 위원회 (2004년 3월 1일). 《고등학교 국사》. 서울: (주)두산. 382쪽쪽. 

참고 자료

  • 「북한의 역사 만들기」, 전근대 정치사 연구의 새로운 경향, 한국역사연구회 저, 푸른역사(2003년, 153~157p)
  • 「21세기 한반도와 주변 4강대국」, 식민사관의 비판적 이해, 강성현 저, 가람기획(2005년, 149~151p
  • 「한국 근대사 산책」, 고종·대한제국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강준만 저, 인물과사상사(2007년, 153~161p)

외부 링크

*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