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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비관론도 경제에 독이다]

Bawoo 2015. 12. 17. 09:49

美 금리 인상, 저유가, 저성장, 가계부채 등 온갖 위기설
과도한 비관론은 지나친 낙관론만큼 경제에 해로워

 

송년회 철이다. 가는 식당마다 울상이다. 장사가 너무 안 된다고 한다. 화제도 경제 걱정이 태반이다. 경제위기가 닥친다는 주장도 많다. 이럴 때 나는 가끔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를 건배사로 한다. 만화영화 라이온 킹에 나오는, “걱정 마, 다 잘될 거야”란 의미다. 굳이 모임에 갈 것도 없다. 인근 대형서점에 들러도 요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폭풍 전야, 오일의 공포, 절벽, 충격, 두 번째 금융위기, 일본화 등. 경제 코너에 전시된 신간 책 제목에 들어간 단어들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파국이 들이닥칠 듯하다.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10조원이 넘는 추경을 편성했는데도 올해 성장률은 2.7%(한국은행 전망)밖에 되지 않고, 요즘 뉴스도 좋지 않은 것투성이니 말이다. 미국 금리 인상, 유가 폭락, 신기후변화협약 등. 내년 성장률도 잘해야 2%대란 비관론이 득세하고 급기야 2017년 경제위기 예언까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것까지는 없어서다. 우리 경제가 확실히 좋아진다는 건 결코 아니다. 이대로라면 내년 경제도 참 답답할 게 분명하다. 저성장의 피곤함이 더해져 피부로 느끼는 답답함은 올해보다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이것과 과도한 비관론은 전혀 다른 얘기다.

 가령 미국 금리 인상을 보자. 비관론자들은 당장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이 닥칠 것처럼 요란하다. 논거는 두 가지다. 우리가 덩달아 금리를 올리면 가계 및 기업부채가 폭발할 수 있단다. 둘째는 이를 우려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대규모의 자본 유출과 외환 고갈이 일어날 수 있단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가계와 기업부채가 문제라면 덩달아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만한 경제체력은 갖고 있다.

 우리 기준금리가 미국 연방기금금리보다 대체로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낮았던 때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96년 6월~2001년 2월, 2005년 8월~2007년 8월 등 무려(!) 두 번이나. 그때도 자본 유출과 외환 고갈은 없었다.

 예컨대 미국은 기준금리를 2003년 말 1%에서 2006년 6월 5.25%까지 숨 가쁘게 올렸다. 2005년 8월부터는 금리 차가 역전됐다. 심할 때는 우리 기준금리(콜금리 기준)가 1%포인트 더 높았다. 그런데도 자본 유출과 외환 고갈은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금리 역전도 아니다. 미국이 이번에 금리를 올려도, 설령 미국 중앙은행이 공언한 대로 내년 말까지 1%포인트 더 올린다고 해도 우리 기준금리가 더 높다. 게다가 외환 사정은 그때보다 훨씬 좋다. 무역흑자는 2004년 393억 달러에서 지난해 889억 달러, 외환보유액은 1990억 달러에서 3653억 달러로 커졌다. 또 단기채무 비중은 오히려 급락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출구전략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충격받을 만한 신흥국들조차 이미 단련이 됐다.

 그렇다고 금리를 올리지 말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부채가 문제라면 따라서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의미일 뿐이다. 하긴 비관론자들은 중국 증시 폭락 때도 ‘9월 위기설’을 주창했다. 그러나 9월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고, 중국은 경착륙보다 연착륙 가능성이 더 커지지 않았나.

 물론 비관론자들의 내심은 선의일 게다. 구조개혁은 미루고 단기부양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 정부와 정치권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었을 게다. 잘못될 것이라고 예언한 점괘는 틀려도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잘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잘못된 점괘는 그 죄가 용서되지 않는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사연이야 어떻든 과도한 비관론은 지나친 낙관론 못지않게 우리 경제에 독이 된다. 이는 경제학의 위대한 스승인 케인스의 얘기다. 사람들에게는 떼돈이 굴러올 테니 투자하라는 조언보다 손해가 예상되니 신중하라는 충고가 훨씬 잘 먹힌단다. 그 결과는? 케인스는 자본가의 이런 소극적 태도가 불황의 한 요인이라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저성장의 함정, 축소재생산의 악순환이다. 비관론이 지나치면 이렇게 된다. 그러니 송년회만큼은 “어제를 불러라, 시간을 되돌려라”고 외치던 셰익스피어의 호기를 부려도 되지 않을까.

김영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출처: 중앙일보] [서소문 포럼] 과도한 비관론도 경제에 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