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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강도 남작(귀족)[robber baron]

Bawoo 2015. 12. 21. 21:34

강도 귀족(robber baron)

사상 최고의 자본가, 석유왕이라고 불린 존 D. 록펠러, 1917년

 

강도 남작(robber baron)은 19세기 미국에서 되살아 난 과점 또는 불공정한 사업 관행을 추구한 직접적인 결과로 각각의 산업을 지배하여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사업가와 은행가를 가리키는 경멸적인 의미의 용어이다. 이 용어는 현재 거부가 되기 위하여 부정한 상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을 사고 있는 사업가와 은행가에 대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원래 이 용어는 라인 강을 횡단하는 배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한 중세 독일의 귀족으로부터 유래했다.

이 용어의 어원과 사용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1] 미국의 정치 경제 해설가인 매튜 조셉슨이 세계 공황기였던 1934년에 펴낸 책(강도 남작이라는 표제로)에서 이 용어가 대중화되었다. 그는 1880년 독점을 반대하기 위해 펴낸 소책자에서 캔자스의 농장주가 철도왕에게 적용한 것이 최초의 사용이었다고 생각했다.[2]

비공식적인 용어지만, ‘캡틴 오브 인더스트리’(captains of industry)는 ‘강도 남작’이 가지는 부정적인 의미를 피하기 위해 종종 사용된다.

 

영향

역사가들은 강도 남작으로 알려진 인물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이 사회 각층에 걸쳐 상당한 자산의 부적절한 분배를 기져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에서 강도 남작이 존재하는 가혹한 현실은 19세기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소스 타인 베블런으로 하여금 《유한계급이론》을 쓰게 했다. 이 저서에서 베블런은 국제 은행가를 포함한 현대 실업가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얻기 위하여, 억지스런 힘, 교활함, 충돌의 기술을 사용했으며, 스스로 물건을 생산하는 것보다 오히려 정복한 약탈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야만인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학 교수인 로버트 하일브로 등 현대의 학자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강도 남작을 설명한다. 그의 논문 《세속적인 철학자들》(The Worldly Philosophers)에서 하일브로는 강도 남작은 경제력과 산업 지배권을 획득하기 위해 사기, 폭력, 납치와 남다른 부정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역사가들은 강도 남작이 그들의 산업 인프라와 교육에 중요한 투자를 했기 때문에 강대국 미국의 변화에 필수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인랜드는 그런 인물은 ‘가장 훌륭한 수익’과 모든 역사적 경향에 따라 불가능한 생활수준을, 하늘이 도와준 나라에 제공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살아온 인류 최대의 인도주의자이며, 최대의 자선가였다고 말하고 있다. 경제학자 토머스 디로렌조는 제임스 제롬 힐존 록펠러, 코넬리어스 밴더빌트 등의 사업가는 대부분 자유 시장에서 합법적인 경제 수단을 통해 그들의 부를 획득했는데 강도 남작으로 불공평하게 불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정한 강도 남작은 국고 보조, 보호 관세와 정부에 의해 실시된 카르텔을 통해 정치적 수단과 그들의 정치적 공범자로 자신들의 배를 채운 사람들이었다.

뉴욕시는 대형 건축물과 박물관의 다수, 특히, 록펠러 센터,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쿠퍼 유니온, 플릭 컬렉션, 카네기홀, 그리고 뉴욕 공공 도서관은 이러한 인물들의 지원으로 소유하고 있다. 앤드류 카네기는 문맹 퇴치를 위해 미국과 전 세계에 걸쳐 2,500여개의 공공 도서관 설립에 자금을 제공했다. 존 모건 등의 인물은 “나는 공공 물건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등의 무자비한 성명으로 가끔씩 유명세를 떨쳤지만, 그럼에도 불구 모건은 예술과 대학에 중대한 공헌을 했다.

 

강도 남작에 의해 축적된 거대한 부에 대한 문화적 충격은 ‘넝마에서 부자로’ 이야기가 미국에서 가능함을 입증해 보였기 때문에 ‘아메리칸 드림’을 정의할 때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허버트 거트먼이 지적한 것처럼, 너무 많은 미국, 특히 최근 유럽에서 이주해온 노동자 계급에게 ‘강도 남작’에는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의 ‘유럽화’를 두려워했으며, 강도 남작은 이민자가 두려워한 모든 것을 상징하게 되었고, 땅과 통화의 수정, 농장과 사업 협동조합, 노동 조합과 사회주의 등과 같은 운동에 참여를 그들에게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모두는 적어도 노동자 계급의 공화주의를 강화하는 것을 공감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부를 훔치는 것보다 오히려 귀족과 농노제 사이의 계급의식으로 현재 막다른 곳, ‘강도 남작’이라는 용어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피츠버그의 제동사는 철도 종업원들에게 유니폼 착용을 의무화하자 1877년의 폭력 사태(1877년 철도 대파업)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제동사에 따르면, 유니폼은 사회적 지위, 특히 농노제를 나타내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역사적 관점

역사적으로, ‘강도 남작’론은 1940년대까지 인기가 있었다. 매튜 조셉슨의 《강도 남작들》(The Robber Barons)는 아마도 이 테마에서 가장 유명하게 반복 인용된 문헌이었다.[3]

이 테마는 기업에 대한 대중의 경멸이 폭발한 대공황 기에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공황이 끝날 무렵, 특히 앨런 네뷘즈 같은 다른 사학자는 ‘산업정치인’론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네뷘즈 그의 《존 D. 록펠러: 미국 기업의 영웅 시대》 (John D. Rockefeller : The Heroic Age of American Enterprise) (2권, 1940년)에서 직접 조셉슨을 꼽았다. 록펠러는 비윤리적, 불법적인 사업 관행에 관여했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현대 산업의 혼돈에 질서를 가져온 그의 큰 공헌을 흐리게 하지 않는다. 네뷘즈에 따르면 금박의 시대의 자본가는 질서와 안정성에 대한 그들의 의지를, 경쟁적인 기업 환경에 부과하려 했다. 그들의 업적은 결국 20세기까지 미국을 최전선의 경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칭찬받을 만 했다는 것이다.[4]

 

강도 남작 또는 산업 정치가들이 하는 전체 토론은 알프레드 D. 챈들러의 《보이는 손》(Visible Hand, 1977년)에 의해 회피되었다. 여기서 챈들러는 산업화된 미국의 비즈니스는 역사적 과정이며, 선악이 대립하는 도덕극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숙고되지 않은 이데올로기적 가정과 전제에 기초하여 막연하게 정의된 도덕적 문제에 관한 논의보다는 뭔가 도움이 되는 일반화를 만들어 본 적이 있는가?”라고 이후에 말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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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도 귀족(Robber Baron)

 

중세 영주 멋대로 통행료 뜯어
백성의 거센 반발로 몰락 자초
시험 검사 기관 도덕성 외면해
원전 마피아에 대한 비난 고조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지식정보부장 = 권력이 진공상태에 빠지면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진다. 권력이 제 역할을 못할 때도 마찬가지다. 질서와 안정이 사라지면 폭력과 불합리가 기승을 떤다. 희생은 고스란히 약자(弱者)의 몫이다. 강자(强者)는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확대한다.

콘라드 4세가 1254년 죽음을 맞자 독일(신성로마제국)은 왕이 없는 '대공위(大空位) 시대'로 들어갔다. 콘월의 리차드와 카스틸의 알폰소 10세가 왕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제후들도 두 개 진영으로 나뉘어 줄다리기에 가세했다. 제후들이 1273년 합스부르크가(家)의 루돌프를 왕으로 추대하자 혼돈의 시대도 비로소 막을 내렸다.

혼돈의 시대를 맞으면 백성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지방의 영주들 가운데 상당수가 터무니없는 폭정을 저질렀다. 특히 상인들의 고초가 심했다. 과도한 통행료 부담을 져야 했다.

신성로마제국은 라인강을 오가는 화물선을 대상으로 통행료를 징수했다. 라인강에 쇠사슬을 가로지른 후 통행료를 내는 배만 통과시켰다. 세금에 비해 백성들의 저항이 적기 때문에 영주들로서는 매력적인 재정 수입이었다.

중앙권력이 영주들을 제대로 통제할 때는 통행료가 큰 부담이 아니었다. 합리적인 수준에서 통행료를 결정했고, 표준화된 징수 시스템도 적용했다. 통행료는 주로 은화(銀貨)로 받았지만 현물 납부도 가능했다. 어디에서든 똑 같은 금액을 부담했다. 통행료 징수 장소 사이의 거리도 최소한 5km 이상 떨어지도록 했다.

일부 영주들은 미꾸라지처럼 행동했다. 왕의 허락도 받지 않고 통행료 징수 장소를 추가로 설치하거나, 정해진 금액 이상의 통행료를 요구했다.

대공위 시대로 들어가면서 강력한 중앙권력이 사라지자 영주들의 전횡은 기승을 부렸다. 라인강 연안 곳곳에 통행료 징수 장소가 새로이 들어섰다. 통행료도 터무니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통행료만 요구하면 양반 축에 속했다. 화물과 배를 통째로 빼앗거나 상인들을 억류한 채 몸값을 내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고문을 감수해야 했다.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말이 영주지 노상 강도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이들을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라고 불렀다.

사회 불안이 심화되자 마인츠 등 라인강 유역의 4개 도시는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라인도시동맹을 결성했다. 강도 귀족의 횡포가 워낙 심했던 탓에 쾰른 등 라인 지방의 거의 모든 도시들이 속속 동맹에 합류했다.

라인도시동맹은 강도 귀족에 대한 토벌작전을 개시했다. 강도 귀족이 세운 성(城)은 허물어뜨리거나 불태웠다. 이들에게 붙잡혀있던 상인들은 풀어줬다. 왕위에 오른 합스부르크(家)의 루돌프도 강도 귀족을 엄단했다.

'강도 귀족'이라는 말은 대공황 때 다시 등장했다. 미국의 정치경제 평론가 매튜 조셉슨은 록펠러를 비롯한 독점 기업인들을 비판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이들은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해 독점을 추구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터무니 없이 적은 임금을 지급했다. 사실상 라인강 유역의 강도 귀족과 다를 바가 없었다.

원자력 발전소 관련 비리를 보면 강도 귀족이 한국에도 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원전 부품을 시험조차 하지 않고도 "사용해도 괜찮다"는 내용의 시험성적서를 발행했다. 검사료를 받고도 시험을 하지 않았으니 명백한 사기 행위다.

시험검사기관은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기구다. 제조업체는 최고경영자 직속으로 품질보증부서를 설치, 운영한다.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부서와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품질을 제대로 보증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공공 안전에 큰 영향을 주는 제품이나 부품의 경우 이것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에 외부 시험검사기관의 검증을 의무화한다.

원전 관련 부품은 불량품이 사용될 경우 끔찍한 사고를 가져올 수 있다. 눈곱만큼이라도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불합격' 판정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시험검사기관은 고도의 전문성과 함께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전문가들을 존중하는 것은 이들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보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로 자처하면서 전문성도 부족하고, 도덕성도 없다면 사기꾼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국민들은 무시무시한 사고 위험에 노출시켜놓고 제 이익만 챙겼다. 국내 원자력 산업을 좌우하는 '원전 마피아'는 중세의 강도 귀족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참고문헌
1) Interregnum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2) Robber Baron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출처: 정보 -책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사는가/ 수집-위키백과 및 다음뉴스-한국의 강도 귀족(Robber Ba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