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이 작곡한 세 곡의 협주곡 중 가장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첼로 협주곡은 외면적으로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독주부와 관현악부가 일체가 되어 슈만 특유의 시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첼로 협주곡 A단조 Op.129는 이러한 특질을 가장 잘 띠고 있는 작품으로서, 독주 악기의 존재감을 화려하게 드러내 보이지 않고 관현악 속으로 자연스럽게 몰입시킨 점이 다른 첼로 협주곡들과의 다른 점이기도 하다. 외향적인 성격보다 내면적인 모습, 그리고 내면으로의 침잠이 아니라 외면을 향해 용솟음치는 고양감을 그려낸 작품인 만큼 독주자로 하여금 세심하면서도 대범한 연주 기법과 상상력 풍부한 표현력을 요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독주악기로 부각되기 시작한 첼로의 가능성
슈만 역시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하는 데 많은 고민과 시간을 거쳤음이 분명하다. 협주곡을 작곡하지 않았던 슈베르트는 예외로 치더라도, 그의 선배격인 모차르트나 베토벤은 물론이려니와 동시대 동료인 리스트나 쇼팽, 멘델스존, 브람스 역시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지 않았다. 19세기에 들어서자 바이올린과 마찬가지로 첼로를 위한 작품 수는 점차 감소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들은 당시에 유행했던 피아노를 반주로 사용함으로써 첼로라는 악기의 가능성을 독주 악기로서 개성을 발휘하게끔 이끌었다.
베토벤, 브람스, 쇼팽이 작곡한 첼로 소나타들의 경우가 바로 그 예다. 첼로는 독주 악기로, 그리고 오케스트라에서 사용되는 가장 서정적인 악기가 되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에서의 환상적인 레치타티보도 그러하거니와 브람스의 교향곡에서도 선율을 주도하는 악기는 바로 첼로이다. 더군다나 브람스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에서도 첼로의 역할과 비중을 높임으로써 독주 악기로서 첼로가 가진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했다.▶낭만주의 작곡가들은 독주 악기로서 첼로가 가진 가능성을 극대화했고 수많은 첼로 협주곡의 걸작을 쏟아냈다.
19세기 초중반은 첼로라는 악기에 대한 비르투오소적인 관점이 팽배해지던 시기였다.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이후 첼로에 대한 관심은 본격적으로 증폭되기 시작했다. 생상스, 랄로를 비롯하여 미요, 뒤티외, 포레, 댕디, 미요, 풀랑크,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브리튼 등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첼로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었다. 특히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와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달라피콜라와 크세나키스 등의 작품들은 첼로에 대한 풍부한 가능성과 표현력을 확장시킨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가운데 슈만의 첼로 협주곡이야말로 그 기법과 표현력, 형식면에서 선구자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첼로라는 악기는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기 이전부터 슈만에게 대단히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슈만과 첼로는 대단히 극적이며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그 인연은 슈만의 마지막 작품과 관련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마지막 작품은 피아노 작품으로, 1853년 10월 15일부터 18일 사이에 작곡한 <아침의 노래>(Gesänge der frühe Op.133)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슈만의 마지막 관심 대상은 바로 첼로였다. 1853년 11월 뒤셀도르프에서 작곡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로망스>라는 작품이 슈만의 사실상 마지막 작품인 것이다. 슈만이 세상을 뜬 뒤 40여 년이 지난 1893년에 클라라 슈만은 요제프 요하임의 권유로 이 작품을 불에 태워 파기해버렸는데 만약 이 작품이 지금까지 전해졌다면 슈만의 천재성이 최고도로 발휘된 감동적인 걸작으로 평가받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사망 전 마지막 행복한 시기에 작곡된 작품
1849년에 슈만은 괴테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드레스덴에 체류하고 있었다. 슈만은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괴테의 <파우스트>에 의한 같은 제목의 극음악을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바이마르에서 공연했다. 당시는 슈만에게 있어서 풍부한 결실의 해로 수많은 합창곡과 관악기용 작품이 탄생했다. <피아노와 호른을 위한 네 개의 행진곡> Op.76,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위한 환상 소곡집> Op.73, <네 개의 호른과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트슈튀크> Op.86 등이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동안 슈만은 마음속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진정한 음악가를 만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도시를 떠난 슈만 부부는 운 좋게도 1850년 가을 뒤셀도르프에 새로운 음악감독으로 부임하여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라인란트 지방의 자유롭고 친절한 분위기가 슈만 부부로 하여금 행복한 나날을 꿈꾸게 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클라라는 남편이 지휘대에 오르게 된 것을 진정으로 기뻐했다. 이렇게 작곡과 연주 모두에서 로베르트는 진정한 음악적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왼쪽] 로베르토와 클라라 슈만 부부. 첼로 협주곡은 슈만 부부가 뒤셀도르프로 거처를 옮겨 행복한 시기를 보낼 당시에 작곡된 작품이다.[오른쪽]독일 본에 위치한 슈만과 클라라의 무덤. 첼로 협주곡은 슈만 말년의 원숙한 음악성이 발휘된 곡으로 특히 2악장의 깊은 서정성이 인상적이다.
바로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11월과 12월에 작곡한 ‘라인 교향곡’과 더불어 첼로 협주곡을 꼽을 수 있다. 첼로 협주곡은 그가 라인 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하기 4년 전, 그리고 46세의 나이로 엔데니히 정신병원에서 숨져가기 6년 전인 1850년에 작곡한 작품이다. 슈만은 1850년 10월 10일부터 24일 사이, 단 2주 만에 작곡을 끝냈다. 안타깝게도 슈만은 생전에 이 작품이 연주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1851년 3월 23일 크리스티안 라이머가 솔로 파트만을 리허설했을 뿐, 전곡이 온전한 형태로 대중들 앞에서 연주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곡의 초연은 그가 세상을 뜬 4년 뒤인 1860년 6월 9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열린 슈만 탄생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비로소 루트비히 에베르트의 독주로 이루어졌다.
이 작품은 첫 제시부의 긴 길이와 도입부의 초절기교적인 테크닉 때문에 슈만의 모든 작품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대범하고 모험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자필 악보를 보면 슈만은 협주곡이라기보다는 콘체르트슈튀크(Konzertstück)라고 명시해 놓고 있다. 이는 전통적 관점의 협주곡 양식과 결별해 작곡가 카를 베버로부터 비롯한 새로운 장르인 콘체르트슈튀크와 첼로의 가능성을 발전시키고 싶어 했음이 분명하다. 그의 다른 협주곡들과 동일하게 이 첼로 협주곡 역시 환상곡풍의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 악장이 쉼 없이 연주되는 단악장 형식을 취하고 있다. 슈만은 악장 사이에 박수가 나오는 것을 혐오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협주곡에 악장 구분을 없앤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짧은 오케스트라 도입부에 이어 첼로의 독주가 시작되고, 이후 서정적인 멜로디를 따라 오케스트라와 첼로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3악장 론도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음향과 개성적인 리듬을 만들어간다. 최근에는 마지막 코다 전에 등장하는 마지막 반주가 따르는 카덴차를 연주가 자신이 임의로 작곡한 무반주 카덴차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물론 슈만이 악보에 카덴차를 바꾸어 연주해도 된다고 지시한 사항은 아니다.
*아래의 악장 해설은 감상을 돕기 위해 웹에서 찾아 보충하여 넣은 것입니다. (글쓴이 불명)
슈만의 협주곡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독특한 영향을 주었다. 우선 이 곡도 고전주의 협주곡처럼 빠르고-느리고-빠른 3악장으로 구성되었지만, 악장 사이를 단절하지 않고 순환 형식으로 묶어 리스트의 교향시처럼 낭만적 특성을 갖게 했다. 또한 협주곡의 특성인 투티와 솔로의 이중 제시를 하지 않고 짧은 투티의 서주를 이어 첼로가 직접 제시부를 이루도록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2악장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작곡가의 심리적 이중성을 협주곡의 내용에서 부상시켜 독일 낭만주의의 진수를 투영토록 했다. 끝으로 빠른 악장에서 고전적 소나타 형식에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성격을 접목하여 표제음악을 예고한다.
1악장: 너무 빠르지 않게 Nicht zu schnell
목관들과 현의 피치카토가 A단조 화음을 세 번 울리면 바이올린의 분산 화음을 배경으로 첼로가 고뇌에 찬 주제 선율을 시작한다. 소나타 형식을 구도로 삼고 있는 1악장에는 2개의 주제가 있는데, 고전파 음악에서 보듯이 리듬과 선율의 대조가 없고 모두가 서정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다른 무엇을 어긋나게 맞추려는 인상을 주는데, 카잘스는 전자를 ‘고통 속에서 외치는 절규’, 후자를 ‘위로받을 수도 없는 애통함’이라고 했다.
2악장: 느리게 - 약간 활기차게 - 좀 더 빠르게Langsam-Etwas lebhafter-Schneller grazioso
첼로곡 중 가장 슬픈 곡을 선택하라면 주저하지 않고 슈만 협주곡의 2악장을 꼽을 것이다. 시적인 야상곡이나 로망스와 연계가 느껴지는데, 작곡가 자신이 적어 넣은 ‘표현적으로’란 지시로 더욱 강조된다. 중간 부분에서 첼로 솔로가 이중음으로 아련히 노래를 시작하면, 여기에 관현악의 첼로가 살며시 동참하여 첼로 트리오를 이루는데, 그 향기로운 음향은 낭만주의 색채의 극치라고 하겠다.
3악장: 매우 활기차게Sehr lebhaft
행진곡 풍 리듬으로 단호하고 확신에 찬 성격을 자아내는데, 부점음과 악센트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한편 풍부한 감정이 드러나는 선율적 2주제는 주요 주제와 명확한 대조를 이룬다. 발전부에서 목관악기들과 첼로 사이에 모방적 응답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서 즉흥적 면모를 보이는데, 이 협주곡이 연주하기에 어려운 점은 2악장 끝과 3악장에서 보이는 이 같은 산만함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지휘자와 독주자는 명철한 지혜로 연극적 연출과 교향곡적 성격을 이 부분에 부여하고 승화시켜 슈만이 구상했던 예술적 영상을 구현해낼 수 있어야 한다.
추천음반
슈만의 첼로 협주곡은 예로부터 훌륭한 연주가 많이 존재해 왔다. 그 가운데 엔리코 마이나르디의 DG 레코딩(Spectrum)은 풍부한 서정성과 투명한 음색으로 이 작품의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해낸 역사적인 녹음으로 손꼽을 만하고, 야노스 슈타커의 녹음(Mercury)은 이 작품의 에너지감과 고전적 형식미를 정확히 읽어낸 호연 가운데 호연으로 그 명성이 이어져내려 왔다. 모리스 장드롱의 우아하고도 귀족적인 녹음(Testament)도 개성적일 뿐만 아니라, 나탈리아 구트만과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연주(DG)는 이 작품의 모든 디테일에 영혼을 불어넣은 현대적인 연주로 적극 추천한다.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