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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디가[ Bardi family , ― 家]/페루치가[ Peruzzi family , ― 家]

Bawoo 2015. 12. 26. 23:54

 

 

바르디가[ Bardi family , ― 家]

[요약] 피렌체의 귀족가문.

은행과 금융회사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1250~1345년 유럽 재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세력이 되었으며,

정치활동에도 참여해 그것을 재정상의 이익으로 연결시킴으로써 피렌체의 주요상업가문이 되었다.

피렌체의 다른 여러 귀족가문들처럼 이들의 세력은 1293, 1295년의 법령에 따라 다소 약해졌다. 1341년에는 몇몇 영지를 잃었지만 주요한 정치적 지위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백년전쟁(1337~1453) 때 프랑스에 대항해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1327~77 재위)를 지지하고, 경쟁도시였던 루카와 전쟁을 하던 피렌체를 돕는 등 현명하지 못한 재정상의 모험 때문에 1345년 은행이 파산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피렌체뿐만

아니라 전유럽의 재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바르디 가문의 정치적 몰락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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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치가[ Peruzzi family , ― 家]

[요약 ]금융가로서 유력한 위치에 있던 중세 이탈리아의 가문.

중세 말기에 유럽 경제가 침체기를 맞은 데는 이 가문이 14세기에 파산한 데도 그 원인이 있다.

페루치 가문은 '인민파'(민주파)에 속했던 피렌체의 옛 가문으로 10명의 곤팔로니에레(최고 행정관)와 54명의 장관(prior)을 배출해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1275년경부터 금융가(家)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곧 대부분의 유럽 주요지역에 지점을 설치하고 바르디 가문의 뒤를 이어 유럽의 금융가로서는 2번째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피렌체의 연대기 작가인 조반니 빌라니도 페루치 가문과 함께 일했다. 페루치 가문은 백년전쟁이 벌어지자 초기에는 특히 나폴리·파리·런던 등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330년대가 시작될 무렵에는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3세에게 막대한 액수의 차관을 제공했는데 처음에는 바르디 가문과 공동으로 일을 했으나 뒤에 에드워드 3세가 스코틀랜드·프랑스와 전쟁들을 벌일 때에는 면화와 돈, 그리고 관세·세금의 부과를 통해 돌려받기로 하고 단독으로 차관을 제공했다. 그러나 1338~39년에 점점 늘어만 가는 에드워드 3세의 전쟁 비용을 지불하느라 페루치 가문뿐만 아니라 바르디 가문의 자금도 바닥이 났다. 1342~45년에 걸쳐 두 회사의 관계자들이 파산으로 인해 체포당했다가 대부금에 대한 이자를 모두 포기하고서야 석방되었으며 잉글랜드 왕은 페루치 가문에 갚아야 할 막대한 액수의 부채를 아예 말소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폴리의 국왕도 페루치 가문과 바르디 가문에 대한 부채를 갚지 않으려 했으며 프랑스의 국왕은 이 두 회사를 추방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해외에서 벌어진 이같은 재난으로 인해 이탈리아 국내의 페루치 가문을 비롯한 거대 금융회사들은 아테네 공작인 브리엔의 발테르를 피렌체의 통치자로 옹립했다. 즉 그의 외교정책과 재정정책을 통제하여 회사들이 파산하는 것을 막아보자는 생각이었다. 1343년 이러한 기대가 깨어지면서 실망한 금융업자들은 이 '용병'을 내쫓아버렸다.

혁명이 일어나 포폴로 미누토(popolo minuto:소규모 동업조합과 상인들)가 권력을 쥐었고 페루치 가문은 파산했다. 페루치 가문의 파산은 14세기 중반 극심한 경제위기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출처: 정보-책

세계사 속 경제사

205쪽/ 수집-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