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헤이트풀 에이트(헤이트풀8)
서부극과 밀실 살인 사건 그리고 미국 역사가 ‘헤모글로빈의 시인’을 만났을 때. 쿠엔틴 타란티노(53) 감독 신작 ‘헤이트풀8’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제목은 ‘증오의 8인’이란 뜻으로, 영화는 남북전쟁 직후 폭설로 고립된 산장에 모인 여덟 명의 성난 이들이 벌이는 핏빛 난장과 수다의 향연을 그린다. 타란티노 감독은 이 영화를 가리켜 “폐소 공포를 부르는 눈밭의 서부극(A Claustrophobic Snow Western)”이라 부른다.
타란티노 감독‘헤이트풀8’
폭설로 고립된 산장에 모인 8인
별안간 죽고 죽이는 핏빛 난장
현상금 사냥꾼 마커스 워렌(사무엘 L 잭슨)은 눈보라 속에서 헤매다 존 루스(커트 러셀)의 마차를 얻어 탄다. 워렌과 마찬가지로 현상금 사냥꾼인 루스는 죄수 데이지 도머그(제니퍼 제이슨 리)를 이송 중이다. 중간에 신임 보안관 크리스 매닉스(월튼 고긴스)도 합류한다. 레드락을 향해 가던 이들은 여장을 풀기 위해 산장에 들르고, 미리 와 있던 네 남자와 마주친다. 왠지 모를 긴장감으로 가득한 산장. 여덟 명 각자의 비밀과 욕망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곳은 별안간 서로 죽고 죽이는 아수라장으로 변모한다.
167분에 달하는 상영 시간 동안 이야기 대부분은 산장 안에서 펼쳐진다. 서부극이라 해서 드넓은 광야에서 펼쳐지는 호쾌한 질주를 상상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대신 극 전체를 관통하는 흑인과 백인, 북부 출신과 남부 출신의 신경전을 중심으로 시종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이 영화의 백미다. 의심과 배신으로 얼룩져 파국으로 치닫는 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감독의 장편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1992)을 연상케 한다.
서부극은 단순히 총만 쏘는 장르가 아니다. 특히 1950~70년대 서부극은 미국의 역사가 위대한 개척이 아닌 폭력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타란티노는 최근 들어 그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악덕 백인 농장주를 처단하는 흑인 카우보이의 활약을 그린 서부극 ‘장고 : 분노의 추적자’(2012), 그리고 이번 영화를 통해 미국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여전히 인종 차별이 만연한 미국의 현재까지 꼬집는다. 장편영화를 딱 열 편만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밝힌 감독의 여덟 번째 연출작이다.
디지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타란티노 감독은 필름을 고집한다. 그는 이 영화를 2.76대 1의 압도적 화면 비를 보여주는 울트라 파나비전 70으로 찍었다. ‘벤허’(1959)의 하이라이트인 전차 경주 장면을 촬영한 포맷이다. 제작사 와인스타인 컴퍼니는 이 영화의 필름 상영을 위해 북미 100개 상영관에 미국 전역에서 공수한 70mm 영사기를 설치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70mm 상영이 가능한 극장이 없어 디지털 버전만 상영한다. 오늘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눈 내리는 서부극, 미국 인종 차별 역사를 겨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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