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감상실 ♣/ 영화 이야기

가족, 가장 멀고 가장 애틋한 인연 - 황금연못

Bawoo 2016. 2. 24. 23:56

 

황금연못

 

 

얼마전, <러브스토리>를 다시 보면서 새롭게 느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젊어서 그 영화를 봤을 때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속물에,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뭘 그렇게 잘못했지?싶은 의문이 드는 겁니다. 오히려, 아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큰돈도 빌려주고 며느리의 죽음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지만 아들이 끝까지 냉정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뭐하겠습니까, 저렇게 아들에게 외면당하는 불쌍한 노인인데요. 그 아버지의 잘못이라면, 세상의 기준대로 아들이 성공하길 바라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뿐 아닐까요. 이렇게 영화 하나를 봐도 예전에는 자식입장에서만 보던 것이 이제는 부모의 마음에 더 공감하게 되면서 <황금연못>(1981년작, 마크 라이델 감독)이 떠올랐습니다. 

늘 가시돋친 말로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노먼(헨리 폰다)은 이제는 은퇴해서 해마다 여름이면 아내 에델(캐서린 헵번)과 황금연못으로 불리는 별장을 찾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 첼시(제인 폰다)는 괴팍한 아버지에게 질려 왕래도 없지만 어느날 갑자기 별장으로 찾아옵니다. 애인여행을 가기 위해 애인의 아들, 빌리를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자식은 이렇게 미워하고 불편한 부모라도 아쉬울 때는 믿고 의지하며 곁으로 오는가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부녀는 여전히 불편하고 서로가 마땅치 않습니다. 팽팽한 부녀사이에서 엄마만 전전긍긍하며 서로를 이해시키기 위해 애쓰지만 아버지와 딸은 서로를 미워하고 싫어합니다. 그래도 노부부는 딸이 맡겨놓은 소년 빌리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세사람은 새로운 형태의 우정을 쌓게 됩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딸은 괴팍한 아버지가 빌리와 잘 지내는 것을 보며 놀라기도 하고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면서 두사람은 화해를 하게 됩니다. 

 

이 영화도 처음 봤을 때는 첼시가 받았을 상처에 정말 공감을 했었습니다. 제가 자식입장이기만 했을 때였으니까요. 그때는, 부모는 '어른'인데 왜 저렇게 어른스럽지 못할까 비판적으로 부모를 봤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부모 경력이 30년이 다되어가지만 부단히 노력하고 수양을 쌓지않으면 거저 지혜롭고 인자해지지 않는다는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예전에 어려운 이웃을 취재해서 소개하고 청취자의 후원을 연결해주는 <사랑의 가족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보니, 노인이 주인공일 때는 어린이가 주인공일 때보다 후원이 반밖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족도 버렸지만, 세상의 동정심마저도 노인에게는 야박하다는 것을 그때 무섭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의 자식을 만나보면, 부모에 대한 엄청난 원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있지만 어떻게 용서를 받아야하는지 여전히 모른채 영원히 만나지 않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런면에서 노먼은 행복한 노인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이해해주는 아내가 있으니까요. 남편이 심장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지자 에텔은 "하나님, 이 쓸모없는 늙은이를 데려가서 뭘 하시게요.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라면서 울고불고하는데 그 마음이 백프로 이해가 되고 저토록 죽음을 함께 슬퍼해줄 누군가가 있는 인생은 정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강해보여도 죽음을 코앞에 둔 '늙은 부모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입니다. 

                                                                                                  [조휴정 KBS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