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유재영, 「봄바다」

Bawoo 2016. 1. 22. 17:50

 

유재영

 

 

「봄바다」

 

첫 알을 낳은 물오리가 갈대숲을 차고 날아오르자 펄 속에서 기어 나와 느긋이 해바라기를 즐기던 달랑게 가족들이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때 가장 느린 속도로 전력을 다해 달려가는 어린 게가 있었다. 조금 전 어미 등에 업혔던 한 쪽 다리가 잘린 녀석이었다. 급한 나머지 온 힘을 다해 갯고랑으로 몸을 던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드라운 물살들이 다가와 가만히 품어 주었다. 한순간 바다가 기우뚱했다.



시_ 유재영 - 유재영(1948~ )은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1973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고욤꽃 떨어지는 소리』 『고요의 절반』 등이 있다.

낭송_ 선정화 - 배우. 연극 '김영하의 흡혈귀', '아 유 크레이지' 등에 출연.


배달하며

당신과 나, 4월이면 봄바다를 보러갈까요? 개펄과 갈대밭과 바다가 어울린 순천만이 좋겠어요. 봄바다에는 살생도, 도둑질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없고, 오직 환한 햇빛, 개펄, 그리고 달랑게 가족의 나들이만 있는데요. 아뿔싸, 물오리가 갈대숲을 차고 날아오르자 달랑게 가족은 혼비백산 달아나기 바쁩니다. 다리 한쪽이 잘린 새끼 달랑게도 전력을 다해 갯고랑으로 달아나네요. 이 평화로운 봄바다에도 약육강식의 세계가 빚어내는 숨가쁨이 엄연하군요. 한 눈 밝은 시인이 놓치지 않은, 한순간 기우뚱하는 봄바다 풍경입니다.

문학집배원 장석주


출전_ 『와온(臥溫)의 저녁』(동학사)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김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