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美術) 마당 ♣/- 화가[畵家]

[독일화가]Adolph Menzel

Bawoo 2016. 7. 3. 22:53






Adolph Menzel


German artist noted for drawings, etchings, and paintings. Along with Caspar David Friedrich, he is considered one of the two most prominent German artists of the 19th century,[1] and was the most successful artist of his era in Germany



꼭 가을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그림을 보다 보면 여름에는 그저 그랬던 그림들이 갑자기 좋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겨울이면 잘 다가 오는 작품들이 따로 있지요. 온도가 달라지고 햇빛의 기울기가

변하면 머리 속 시신경에도 미묘한 변화가 오는 모양입니다. 독일의 아돌프 멘젤 (Adolph Friedrich Erdmannvon Menzel / 1815 ~ 1905)의 몇 작품들이 눈이 밟혔습니다 

 

 

베를린- 포츠담 철도    The Berlin-Potsdam Railway / 1847

 

건너편 하늘이 환한 것으로 봐서는 아마 새벽에 출발한 기차인 것 같습니다. 기차가 발명되고 조금씩 철길이

멀어지면서 그림에 기차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롭게 열리는 세상에 대한 꿈과 낭만을 싣고 그림 속

기차는 달렸지요. 그러나 기차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까워지게도 했지만 떠나는 사람은 더욱 멀리 떠나게

했습니다. 세상은 철길이 깔리는 종착점만큼 넓어졌고 덩달아 그리움도 그만큼 넓어졌습니다. 세상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는데, 작은 기차가 텅 빈 가을 벌판을 가르고 있습니다.

 

멘젤이 태어난 집은 중산층 정도의 가정 환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여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석판화 기술자였습니다. 겸직을 하고 있던 아버지는 석판화 사업에 전념하기 위하여 멘젤이

세 살 되던 해, 학교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합니다.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은 겁이 나는 일이지만 잘 할 수

있는 것에 마음을 모으는 것은 해 볼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발코니와 방의 실내     Interior of a Room and Balcony / 58cm x 47cm / 1845

 

열어 놓은 문을 통해 들어 온 바람이 가볍게 커튼을 흔들고 있습니다. 바람을 따라 왔던 햇빛은 발코니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대신 방 안 깊숙이 눈길을 주고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문 앞 의자에 안자 있던 사람은 아마 발코니로 나간 것이겠지요? 그런데 등을 돌리고 있는 의자가 보입니다. 그럼 뭔가요 방금 전까지 싸우다가 한 사람은 발코니로, 또 한 사람은 방 밖으로 나간 건가요? 의자 하나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등은 돌리지 마세요. 등이 돌면 눈길도 마음도 함께 돌아 가거든요.

 

멘젤의 아버지는 아들을 교수로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우선 집 안 일을 배우는 것이 먼저였던지

열 네 살 되던 해부터 멘젤은 석판화 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다음 해 베를린으로 이사를 갔는데 2년 후,

그러니까 멘젤이 열 일곱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납니다. 기록에 따라서는 고아가 되었다는 것도

있는 것을 보면 혹시 부모 모두 세상을 떠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상황이 어찌 되었던 간에 가장을 맡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 아닌가요? 

 

버드나무가 있는 건설 현장    Construction site with willows / 41cm x 55cm / 1846

 

화면 오른쪽 건물을 올리는 현장에는 지붕의 골격이 하늘로 솟아 있고 인부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반대편

잘 생긴 버드나무 그늘에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 새참 준비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의 버드나무들은 모두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림 속 주인공은 버드나무가 되겠군요.

길 옆에 서서 오가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보았을 것이고 길 건너 마을이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는 모습도 기억

하고 있겠지요. 다시 태어나고 싶은 대상에 나무를 추가합니다 

당장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멘젤은 아버지가 하던 석판화 일을 물려 받았습니다. 동시에 초대 카드를 만드는 일이나 식당의 메뉴 표를 제작하는 일 같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했습니다. 그러는 한편 다음 해에 베를린 로얄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겨우 6개월을 다니고 멈춰야 했습니다. 아마 재정난 때문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나중에 멘젤의 영광스러운 시기를 생각하면, 어쩌면 이 시기는 그를 단련시키고자 한 신의 배려처럼 보입니다 

 

화가의 여동생 에밀   Emile, The Artist's Sister / 24.5cm x 18.6cm / Black chalk and pastel

 

멘젤의 가족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해서 형제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작품 중에는 여동생

에밀을 모델로 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여동생과 오빠라는 단어에는 순결함과 듬직함 그리고

아련함이 뒤섞여 있습니다.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는오빠를 기다리는 여동생의 노래를 오빠들이 나이

들어도 부르는 마음, 이해하시는지요?

 

 

거실에 있는 화가의 여동생 Living room with the artist's sister / 46.1cm x 31.7cm / 1847

 

얼굴을 보니 역시 에밀이군요. 누가 현관문을 두드린 걸까요 촛불을 들고 거실에서 살짝 내다 보는 얼굴에

호기심과 초조함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에밀이 기다리는 사람이겠군요. 혹시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온오빠

일까요? 오빠 오려면 아직 멀었다. 아이들 일이면 무엇이든지 다 아는 어머니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한 말씀 하십니다.

 

 

 

잠이 여동생 에밀    Sister Emile Sleeping / 47cm x 60cm / c.1848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쿠션에 고개를 묻고 말았는데, 기다림은 몸도 힘들게 하지만 마음을 더 힘들게 하지요. 더구나 기다리는 사람이 삶의 지평선 같은 사람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끝없이 나를 지켜보는 지평선을 보고 있으면 든든하기도 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그리움도 큽니다. 뭐 저렇게 해서라도, 꿈 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으면 그 것으로 괜찮지요. 

짧은 기간의 수업을 끝으로 멘젤은 거의 독학으로 그림을 배웁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벽지 제조업자였던 칼 아놀드를 만나게 되는데 둘은 친구가 되고 칼은 멘젤의 후원자가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귀인이 여기에도 있었군요. 열 여덟이었던 해, 멘젤은 화가로서 최초의 주문을 받습니다. 출판업자이자

미술품 딜러였던 루이즈 자흐세 (Louis Sachse)로부터 괴테의 시집에 들어 갈 삽화 요청이 있었습니다. 펜과크 드롱잉으로 된 그의 최초 석판화가 만들어 진 것이죠

 

 

뛸르리 정원의 오후    Afternoon at the Tuileries Garden / 49cm x 70cm / 1867

 

멘젤이 인상파에 발을 담갔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 작품입니다. 정원은 지금도 있지만 뛸르리 궁전이 소실 된

것이 1871년이니까 그 이전의 모습이겠군요. 화창한 오후 참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어른의 가랑이 사이가 놀이터가 되는가 하면 개가 무서운 아이는 앉아 있던 의자를 들고 얼른 자리를

피하고 있습니다. 언니 손에 끌려 가는 동생은 뭐가 아쉬운지 울음을 터뜨리고 있고 근사한 남자를 힐끗 쳐다 보는 나무 그림자 속의 여인도 보입니다. 그런데 왼쪽 노인 두분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신가요? 혹시 싸우신 건 아니죠? 그림 속에서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와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 그리고 날개 짓을 하는 새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활기찬 오후 맞습니다 

석판화로 시작한 멘젤은 나름대로 삽화가로 이름을 알리면서 유화를 시작합니다. 스물 네 살 되던 해 멘젤은

베를린에서 영국 낭만주의 화가 컨스터블의 작품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후 그의 작품은 인상주의에 참여한

것처럼 자유 분방한 붓 터치가 나타나는 일련의 작품들이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본인은 인상주의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말했는데, 공식적인 미술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느니 그렇게 말 할 수 도 있겠다 싶습니다. 

 

주물공장    The Foundry / 158cm x 254cm / 1872~1875

 

후끈한 열기가 화면 가득합니다. 용광로에서 흘러 나온 쇳물을 거푸집에 넣고 모양을 만드는 작업에 모두들

정신이 없습니다. 집게들 들고 거푸집을 잡는 사람들과 쇳물을 들어 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역동적입니다.

그런데 오른쪽 그림자 속에 있는 사람들은 잠깐의 휴식 시간을 이용해서 새참을 먹고 있습니다. 바구니에서

음식을 꺼내다 말고 올려다 보는 여인의 눈에는 피곤함이 보입니다. 산업혁명은 세상에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동시에 인류가 일찍이 겪어 보지 못했던 착취도 맛보게 했죠. 물론 그 뒤로 끝 없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에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지만, 적어도 그림 속 노동자들의 삶은 힘들고 가난했습니다.

 

컨스터브의 작품을 만났던 1839, 멘젤은 프란츠 쿠글러 (Franz Kugler)가 프레데렉 대왕에 대해 쓴 역사책의 삽화 주문을 받게 됩니다. 프레데릭 대왕은 나중에 빌헬림 2세와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 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만든 왕이죠. 10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했다고 스스로 확신할 만큼 멘젤은 삽화 제작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400점이 넘는 드로잉이 3년간에 걸쳐 완성되고 난 후 당대 최고의 삽화가라는 평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무엇을 해도 목숨을 걸면  ---- 사실 잘 안 되는 일도 가끔은 있었습니다. , 목숨을 덜 걸어서 그랬을까요? 

 

 

거기 누구야!     Who Goes There / 23.4cm x 14.9cm / 1876

 

수상한 기척에 칼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 갔습니다. 툭 불거진 손 등위에 핏줄과 부릅뜬 눈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습니다. 팽팽한 긴장감은 수염 가닥 가닥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렇게 화면을 뚫을 것 같은

눈 빛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누군가는 저런 눈 빛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저런 눈 빛은 이제 사라진 모양입니다. 연극의 한 장면 같은 그림을 보면서 별 생각이 다 듭니다.

 

 

1853, 38세가 되던 해 멘젤은 로얄 미술 아카데미 회원이 됩니다. 그리고 3년 뒤 아카데미의 교수가 됩니다. 정규 미술 교육은 6개월이 전부였던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들고 싶어 했던 교수가 된 것이죠. 멘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이지만, 가장 큰 효도를 한 것이겠지요. 우리 나라에는 가뭄에 콩 나듯 학력에 관계없이우뚝 선 분들이 계시지만 비 오고 난 뒤 새 싹들이 나오 듯 늘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무도회장   The Dance Hall / 71cm x 90cm / 1878

 

무도회장은 역시 여인들이 주인입니다. 한 것 멋을 낸 여인들은 의자에 앉아 있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남자들은 기회가 되면 여인들에게 말을 건 냅니다. 물론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서로 인사를 나누는 남녀도 보이고 음식을 먹는 여인들도 보입니다.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니까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왼쪽의 세 신사 --   배가 고팠나 봅니다.

 

1855년 마흔의 나이에 멘젤은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합니다. 쿠르베의 사실주의 작품을 본 그는 그 후 자주

파리를 찾습니다. 아마 나름대로의 충격을 받았겠지요. 2년 뒤 오스트리아와 라인강, 다뉴브강을 거쳐 발틱해 그리고 네델란드와 이탈리아를 돌아 오는 여행길에 오릅니다. 이 여행을 통해서 파스텔화와 풍속화를 위한 풍부한 주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푸석해지면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해면처럼 모든 것을 흡수해서 출렁거리는 몸으로 돌아 오고 싶습니다 

 

가진 사람이 축복 받은 사람   Blessed are those who have / 27.5cm x 21.5cm / 1888

 

그림 속에 풍자가 담겨 있으면 보는 사람도 속이 다 시원합니다. 돈 많은 사람이 집 수리를 하는 모양입니다.

나무에 올라가서 잔 가지를 자르고 내려 오는 남자도 있고 기둥에 붉은 칠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손에는 생선 바구니를 들고 도 한 손에도 물건을 든 어린 소년의 허리가 구부정합니다. 벽면 장식을 하는 화가는

안타까운 눈으로 소년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머리가 벗겨진 주인은 뭔가 주문을 하는 것 같은데 공교롭게도 화가는 눈길을 돌리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로 가진 사람들이 축복 받은 사람인가요? 그럼 가난한 사람들은 축복을 못 받은 사람들인가요? 그런 축복이라면, 그걸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신이라면 별로 따르고 싶지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멘젤 선생님께서도 그런 생각이시죠?

 

1884년 베를린 그리고 다음 해 파리에서 멘젤의 작품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프랑스에서도 그의 명성은 대단

했습니다. 70세가 되던 해에는 베를린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살아서 멘젤만큼 자신의 조국과 외국으로부터 칭송을 받은 화가는 많지 않습니다 

 

Head Of A Man / 21cm x 13.3cm / 1896

 

83세가 되던 해 멘젤을 독일 정부로부터 화가로서는 최초로 검독수리 훈장 (Order of the Black Eagle)과 함께 귀족의 작위를 받습니다. 그의 이름에 von이 추가 된 것이죠. 화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살아 온 인생에 대한 평가였죠.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와 함께 19세기 독일의 가장 중요한 화가로 불리는 멘젤은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Menzel's tomb in Berlin



가져온 곳 : 
카페 >화가 진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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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국화| 원글보기